Marriageable Age Wuli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538
제122장 도주 (1)
나락(奈落).
한순간에 나락으로 변한 왕묘는 무간지옥과도 같았다.
조금 전까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싸우던 무림맹의 동료들은 적의를 표출하며 길을 막아섰다.
“신무학관 교관 초운휘! 저들을 조종한 이가 바로 네놈이렷다!”
화검문의 태상장로 소양군은 원래부터 자신을 증오하던 자였다.
제자가 신무학관에서 방출당한 후 줄곧 원한을 품고 있던 그가 절절한 외침과 함께 길을 막아섰다.
“체엣!”
단야의 귀갑철극이 움직였다.
챙! 챙!
엄중하게 검을 휘둘러 펼친 검막을 뚫고 철극의 한 자락이 그의 목을 휘감았다.
“안돼!”
“왜-애! 주군! 이놈들은 적이야-!”
“…손속에 여유를 둬라.”
목숨을 거둔 순간, 이들 모두가 완벽히 살의에 휘말릴 것이다.
현실적인 이유 이외에도 초운휘는 결코 피를 보기를 원치 않았다.
만약 이곳에서 살육을 자행한다면.
‘두 번 다시 돌이킬 수 없어.’
피로 피를 씻는 전투가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단야는 답답한지 우는 소리를 내뱉었다.
“주-군. 지금 여유를 둘 때가 아-냐. 알아?”
안다.
하지만, 이성보다 감정이, 감정보다 직감이, 목숨을 거둘 것을 만류하고 있었다.
차라락. 퍽.
“컥!”
허리를 굽힌 채 소양군이 밀려나자, 뒤에 달려오던 정파의 무인들과 한 덩이가 되어 우르르 쓰러졌다.
철극을 회수하며 단야가 외쳤다.
“사막살수들은 목숨으로 막아!”
달려드는 것은 그들 뿐이 아니었으니까.
“존명!”
사막살수들이 움직였다.
내상을 다스리던 환영마군 남학이나, 적미요군 진하영 또한, 마졸들을 지휘해 왕묘의 한구석을 돌파했다.
“놈들이 도망친다!”
감각만으로 송곳처럼 진형을 구축해, 신속하게 일갈을 뚫으며 도주하는 뒤에서 어지러운 고함이 난무했다.
벽을 타고 들리는 사나운 목소리가 울렁거리는 내력을 더욱 진탕시키는 것 같았다.
‘제길.’
일전의 여파에서 내상을 입은 천마신군 갈중혁과 구자극도 움직였다.
“내가 누구라 생각하느냐!”
“어린 양떼들이 뭉친다고 노부를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으냐!”
펑. 쩌엉!
천마군림보가 펼쳐지자, 일각이 완전히 허물어졌고, 허공에 뛰어오른 구자극의 일장이 뒤따르자 수십여 명이 피를 토하며 갈대처럼 쓰러졌다.
“정말. 피를 보기를 원치 않은가?”
“아저씨. 여기서 피를 보면 더는 돌이킬 수 없어.”
“이미 늦은 것 같지만.”
갈중혁은 침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존의 말을 들어야지. 나름대로 노력해 보겠네.”
그러나, 도주는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다.
정사 고수들이 모인 용담호혈 같은 곳에서 살생을 금하며 싸우는 것은 손을 묶고 싸우는 것이나 진배없었으니까.
무엇보다, 지금부터가 진짜였다.
“과연 천마신군이로군.”
“우리도 가세하세.”
진짜배기 고수들이 나선 것이다.
개중에 가장 먼저 유려한 신법을 펼치며 달려온 것은 백염을 흩날리는 고수였다.
“태극검존 현진자.”
백염에 점점이 찍힌 핏자국을 소매로 훔치며 그가 검을 들어 올렸다.
“간악한 술수를 부렸더군.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 말게. 오늘의 일은 목숨으로 책임을 다해야 할 것이야.”
그의 곁에 태극이 그려진 무의를 입은 무당 도사들이 날아내렸다.
“무량수불.”
“마도의 마군들께서는 걸음을 멈추시오.”
“멈추지 않는다면 부득이하게 피를 보아야 할 것이오.”
대화를 하려고 했지만, 그들의 눈빛을 보니 말이 통할 것 같지 않았다.
이에, 갈중혁이 나섰다.
“현진자. 정녕 피를 봐야 하겠는가?”
“장문인께서 그대들의 술수에 당해 목숨이 경각에 달렸소. 천마신군께서는 이해하시오.”
“…무당파는 신교를 우습게 보는군. 본좌가 마음을 먹었다면 모두 죽이고 남았으리라 생각지 않는가?”
일갈은 무당파 도인들의 원독에 찬 눈빛에 묻혔다. 각성체와의 싸움에서 사제들을 잃은 그들은 적의를 흘리고 있었다.
특히 배신감에 찬 이도 있었으니.
“초운휘 교관. 정녕 자네가 마인이었던 것인가?”
“심의 상급교관.”
“더러운 입으로 본관을 입에 담지 말게나.”
그는 불거진 눈으로 검을 들어 올렸다.
“자네와의 연은 끊어졌네. 지금 여기에 선 나는 장문인께 독수를 펼친 마인을 징벌하고자 서 있음이야!”
“…….”
역시 안되는구나.
생각하며 눈을 감는 사이, 현진자를 비롯한 무당파 고수들이 일제히 쇄도해왔다.
파파파팟!
무당파의 제운종(梯雲從).
구름을 밟고 날아오르는 표표한 신법과 함께 오 장여를 날아오른 그들이 일제히 검을 앞세우며 달려들었다.
동시에 무수히 일어나는 수많은 태극의 흐름.
“갈(喝)! 아둔한 말코 놈들과 대화를 하는 것 자체가 멍청한 짓이야!”
구자극이 분기탱천해 살수를 쓰려는 순간, 초운휘는 앞서 튀어 나갔다.
쐐애액!
몸 여기저기에서 비명이 울렸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펑!
재빨리 달려들어 그의 가슴을 두들기고, 좌수로 목울대를 잡아 제압한다.
“컥!”
“움직이지 마! 길을 열지 않으면 죽이겠다!”
“초운휘 교관.”
배신감에 치를 떨며 검을 들어 올리는 심의 상급교관을 곁눈질하며 초운휘는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어쩔 수 없다. 지금은 왕묘를 빠져나가는 것이 중요해.’
싸울 시간도 부족하다. 정사의 고수들이 이곳을 향해 몰려오고 있었으니.
“…….”
그의 곁에서 믿을 수 없다며 입술을 떠는 청수의 모습에 어쩐지 가슴 한구석이 시려왔다.
“사제들은 손을 써라! 내 목숨 따위는 걱정 말고 어서!”
왈칵 내지르는 심의의 뒷목을 때리자, 그가 뻣뻣하게 굳으며 쓰러졌다.
푹.
“큭!”
쓰러지면서도 용조수의 수법으로 옆구리를 뜯어내는 독랄함을 잊지 않았다.
“빌어먹을 말코 놈! 머리를 깨부숴주마!”
“그만!”
핏발이 선 눈으로 심의를 죽이려 달려드는 마군들을 제지하며, 초운휘가 빠르게 말했다.
“왕묘를 나간다. 이런 것에 지체할 시간이 없어!”
챙챙챙챙!
벌써 뒷열에 따라붙은 정파의 고수들과 격렬한 전투를 벌이는 마군들을 본 이들이 울분을 삼키며 고개를 숙였다.
“존명!”
부복하며 외치는 그들 너머로, 배신감과 충격에 흔들리는 청수의 눈동자가 비쳐 보여 애써 잊었다.
***
무당파의 추격을 뿌리치고 나아갔으나, 왕묘를 빠져나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빌어먹을! 개미굴 같은 곳이군!”
몇 번의 충돌로 한층 더 진기가 상한 구자극은 욕설을 내뱉었다.
어렵게 길을 뚫던 환영마군 남악이 다가와 외쳤다.
“교주! 놈들이 사방에서 몰려들고 있습니다!”
“길을 찾았나?”
“앞쪽에 있습니다. 하지만, 쉽사리 뚫어내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점창파와 청성파의 무인들이 길을 막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지. 뚫어내야지.”
그는 비통하게 뇌까리며 초운휘를 향해 물었다.
“초운휘. 네가 무슨 마음임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나오는 마당에 우리가 피를 보지 않아야 할 이유가 있느냐?”
“선배. 그만두시오.”
초운휘가 창백한 안색으로 말했다.
“저들을 죽여 원수가 되는 것이 바로 일사도가 바라는 것이오.”
“이곳에서 뒈질 것 같으니 하는 소리 아닌가! 당장 목숨이 경각에 달렸는데 답답한 사람 같으니!”
“미로를 만든 것도 일사도가 우리와 정사가 공멸하기를 바라 꾸민 모략이겠지.”
“모략이든 뭐든 당장 죽게 생겼다. 절반이 넘는 마군들이 뒤에 남지 않았더냐! 죽여 버렸다면 간단한 것을!”
언제나 자신만만하던 구자극도 좀처럼 수가 없는 상황에 화를 감추지 못했다.
“…….”
갈중혁은 창백한 채로 헐떡이는 초운휘를 보며 생각했다.
‘이미 탈진한 채로 너무 오랫동안 움직였다. 동공에는 초점이 사라졌어. 우리보다 더욱 바쁘게 싸웠으니, 지칠 만도 하지.’
그의 짐작으로는 현재 초운휘의 상황은 어떤 누구보다 심각했다.
애초에 일사도와 격렬한 접전을 벌인데다, 정사의 포위를 뚫기 위해 가장 애썼으니 당연한 일.
‘초운휘 형제가, 이토록 지친 모습은 처음 보는군. 아니, 이 사람도 인간이었나 싶구나.’
쌔액. 쌔액.
이제는 본능이 몸을 움직이는 지경이라, 불러도 대답을 하지 못한 채 암혼을 들어 묵묵히 나아가는 모습은 처절하기까지 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상처는 계속해서 늘어났다.
“경천검괴. 어찌 네가 나를 속일 수가 있느냐?”
개방도와 함께 울분을 토하던 취걸개도.
“얌전히 오라를 받으세요. 그럼 오해를 풀 기회가 있을 거예요. 아니라면, 본녀가 상대하겠어요.”
아미파의 복마신니도.
“친구. 부디 멈춰주게.”
울먹이며 가로막았던 화산파의 매화검수도.
모두 스스로 뿌리쳐내며 길을 내는 모습은 숙연하기까지 하였다.
그렇기에 더욱 불살(不殺)의 요구를 외면할 수가 없었다.
시야 속에서 상처 입은 마군들을 지키며 미친 듯 검을 휘두르는 모습은 마치 고통에 몸부림치는 절규와도 같았다.
“지금 상황에서 누구보다 마음이 아픈 것은 저 친구일 것이오.”
“안다. 하지만 이미 탈진해 이야기도 듣지 못하는 지경이 아닌가. 서 있는 것이 용할 지경에 어찌 후일을 먼저 걱정하냔 말이다.”
구자극이 화를 내는 것도, 상황에 대한 짜증 때문이 아니라, 은연중에 초운휘를 걱정하기 때문임을 어찌 모를까.
“하하. 선배. 어차피 멋대로 살아온 와중에 만난 진짜 지존이요. 그의 말을 들어야지.”
“꽉 막힌 놈. 답답한 놈. 너도 마찬가지다!”
꽥 소리를 지르는 구자극은 욕설을 내뱉으면서도, 뒤따르는 무리를 발견하자 먼저 움직여 그들을 제압했다.
바람처럼 휘몰아쳐 검을 튕기고, 장심을 내밀며, 무인들 사이를 휘젓자 삼십여 명의 무인들이 짚단처럼 우르르 쓰러졌다.
“백호당의 무인들이로군.”
“헉헉. 나도 한계다. 공력이 바닥이 났어. 선천지기마저 끌어써야 하는 지경이야.”
“…최악이로군.”
이미 바닥을 드러내는 진기에 탈진한 마군들이 이탈하고 있었다.
막무가내로 포위를 뚫어내며 내상이 도지기를 반복했으니, 천하고수라도 도무지 용쓸 도리가 없었다.
“…….”
저벅. 저벅.
허나, 어떤 만류에도 휘청이며 나아가는 초운휘를 보며, 뒤따르던 이들은 입술을 깨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도 한계에 달했음일까?
휘청.
“초운휘!”
“자네!”
그들의 외침에 사사명이 달려가 빠르게 부축하며 경맥에 진기를 불어 넣었다.
그의 안색이 어두워지는 것을 보고, 갈중혁이 물었다.
“휘의 상세는 어떠한가?”
“내상도 문제지만 외상이 심각합니다. 갈비뼈 여덟 대가 나갔고, 옆구리는 뜯겼으며, 다리와 팔의 혈맥도 크게 다쳤습니다.”
“최악이로군. 살아 있는 것이 용할 지경이야.”
“당장 손을 쓰지 않는다면, 부러진 뼛조각들이 근육을 찌르고 오장육부를 다치게 만들 것입니다.”
사사명이 공허한 눈동자를 살피며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심력이 완벽히 무너졌습니다. 이래서야 왕묘에 떠도는 사기에 침습 당하는 것은 한순간일 테지요.”
“한시라도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이 급선무로군.”
갈중혁이 근심 섞인 목소리를 내뱉을 때였다.
상세를 살피던 구자극의 눈빛이 어둠 너머를 노려보고는 매서워졌다.
“꼬리가 붙었네.”
“!”
좌중이 놀라는 가운데, 그가 빈 소매를 펄럭이며 일어섰다.
“이곳은 내가 막겠네.”
“무리입니다.”
“누군가는 시간을 벌어줘야 할 것이야. 걱정 말게. 쉽게 당해줄 생각은 없으니.”
“구 교주.”
“후후. 그런 얼굴 하지 말게. 천하의 천마신교 신군이 어찌 그런 얼굴을 하는가?”
피로한 가운데 웃음을 띄우며, 구자극이 뇌까렸다.
“나도 한때 이런 날을 꿈꾼 적이 있었네. 내 목숨을 대가로 누군가를 살릴 날을 말이야.”
“…구 교주.”
“기억하는가? 자네와 다시 만난 날, 초운휘. 저 녀석이 없었다면 우리는 죽기를 각오하고 싸웠을 거야. 북마교와 남마교의 원한은 깊고, 간극은 대해보다 넓었으니까.”
“필시 그랬을 겁니다.”
“허나. 어쩌다 보니 함께 길을 걸어가는 날이 왔군. 평생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거늘.”
그가 웃으며 말했다.
“만약 다시 내가 살아 돌아간다면, 자네는 나를 살리기 위해 손목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나?”
천막 안에서,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린 갈중혁은.
“…….”
잠시간의 침묵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구 교주. 손목이 아니라, 내 목숨도 내어줄 것이오.”
“목숨까지나?”
“그대가 살리는 것은 내 목숨 이전에, 마도일통을 이룩한 거룩한 존재의 목숨이니까. 마도를 걷는 이들치고 감사함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을 테니까.”
“흐흐.”
구자극이 남은 왼팔을 수평으로 들어 올리며, 돌아섰다.
“지존을 부탁하네.”
“꼭 무사히 이곳에서 빠져나가게 하겠소이다.”
말을 한 갈중혁이 덧붙였다.
“내가 그대를 뒤따르게 될지라도.”
“아주 사람 뒤지라고 욕을 하는군.”
웃으며 구자극이 남은 진기를 끌어 올렸다.
“살리게. 마도일통의 위업을 이룩한 유일한 지존이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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