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ageable Age Wuli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71
제21장 단야 (1)
방학의 끝이 얼마 남지 않은 날의 저녁.
미뤄두었던 게으름을 한껏 만끽하고자 침상을 구르고 있는데, 독고율의 전음이 들려왔다.
[주군. 드릴 이야기가 있습니다.]‘으잉? 왜 이 녀석이 갑자기.’
꽤 의외의 접선이었다.
얼마 후, 은천관의 검술 교두로 입성이 결정된 독고율은 최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바빴으니까.
더군다나, 직접 숙소에 찾아와 전음까지 보내는 일은 드문 일이기도 했다.
혹여라도 친분이 있는 것이 알려지면 뒤에서 밀어주는데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어째 기분이 쌔 한데….’
얼마나 철두철미한지, 최대한 동선마저 겹치지 않게 관리하던 수하다.
굳이 방문까지 한 현 상황에 찜찜함을 금할 수가 없었다.
“설마 바쁜 일 다 끝난 와중에 또 골치 아픈 일이 생기지는 않겠지.”
작은 기대를 안고 초운휘가 창문을 열었다.
휘익.
그리고는 창틀에 발을 얹기가 무섭게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
“주군.”
아니나 다를까. 역시나.
“사소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못 보던 사이 한층 더 수척해진 수하는 얼굴을 맞대기가 무섭게 대뜸 사과부터 박았다.
“저로서는 도무지 해결할 방도가 떠오르지 않아, 주군의 평온을 방해하고 말았습니다.”
“어. 그건 안 괜찮은데. 이제 괜찮아졌어.”
피로에 찌든 낯짝을 보니, 뭐라 탓하기도 애매하거든.
오히려 의아해졌다.
낮에는 믿음직한 정파의 고수로, 밤에는 염탐꾼으로 빈틈없이 일을 처리하던 독고율 아닌가.
이 능력 좋은 수하가 죽는소리를 하는 경우는 좀처럼 없다.
‘설마….’
이런 때는 딱 한 가지다.
“단야와 관련된 일이야?”
“네, 맞습니다.”
이런 젠장.
역시 맞다. 천하의 독고율을 고생시킬 정도라면 동종 업계 미친놈들인 암혼흑풍사 정도지.
한층 더 마음에 불길함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율. 내가 심장이 떨려서 그러는데, 미리 하나만 묻자.”
제발 아니기를.
“사안이 좀 크냐?”
“아직까지는 괜찮습니다.”
“휴우.”
천만다행이었다.
암혼흑풍사는 하나하나가 뒤가 없는 녀석들이라 작정하고 사고 치면 수습이 꽤 곤란하거든.
아직 눈깔이 돌아가 개차반을 벌이지 않았다면 충분히 수습할 수 있다.
“단야의 일이라니 마음고생이 꽤 심했겠네. 왜 진작 알려주지 않았어?”
“주군께서 갑자기 사라지신 통에, 말씀드릴 기회를 놓쳤습니다.”
아, 맞다.
워낙 충동적인 강호행이었기에 독고율에게도 알리지 않았지.
“그래서 뭐야. 무슨 일인데?”
“주군의 명대로 단야에게 합류를 권하는 서신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직접 주군을 뵙지 않고는 믿지 못하겠다고 나오더군요.”
“뭐야, 예상했던 범위잖아.”
살수답게 의심이 많은 단야다.
전서 한두 개로는 의심을 쉬이 거두지 않을 수도 있겠지.
“말없이 떠났던 나에 대해서 서운한 구석도 있을 테고.”
갑자기 다시 돌아와 불러대면 이상해하는 것이 당연하다.
“좋아. 내가 해결할게. 단야에게 서신을 쓰면 되나?”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왜? 녀석이 의심 많은 성격이긴 해도, 내 증표를 못 알아볼 녀석은 아닌데 말야.”
“서신 쪽이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단야의 거취입니다.”
거취?
사막에 눌러살고 있던 놈이 딱히 움직일 일이 있나?
싶은 순간 가슴이 철렁하는 대답이 이어졌다.
“단야가 사막을 떠났습니다.”
“헉! 진짜?”
사아아아아.
어쩐지 몸의 온도가 몇 도는 내려간 듯한 기분이다.
‘설마. 그냥 떠난 것이 아니라.’
역시나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주군께서는 굳이 서신을 쓰실 필요 없이 청벽루로 가시면 됩니다.”
“처, 청벽루는 왜?”
청벽루는 하오문의 무한지부.
단야의 이야기에 청벽루가 언급될 일은 하나뿐이다.
“X발. 단야가 청벽루를 공격하고 있는 거냐?”
“네, 그렇습니다.”
“아니, 왜!”
“일전에 서신을 보낼 때, 하오문의 심부름꾼을 통해 보냈는데,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으억.”
이 미친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도 그렇지. 하오문을 공격해?
“안 심각하다면서! 사소한 문제라면서!”
꽥 소리를 지르자, 독고율이 침착하게 대답했다.
“아직 아무도 죽지 않았습니다.”
“문파가 박살 난 곳도, 떼죽음을 당한 곳도 없습니다.”
“사소하게 심부름을 갔던 하오문도 하나가 발가벗겨져 성벽에 걸려 있던 정도입니다.”
아, 뒷골이야.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져 왔다.
***
덜덜덜덜.
요란의 손끝이 쉴 새 없이 떨렸다.
그녀의 앞에 부복한 수하가 머리를 조아리며 외쳤다.
“루주님! 대책이 필요합니다.”
대책이야 당연히 필요하겠지.
하지만, 요란의 입은 쉽사리 열리지 않았다.
조금 전 수하가 가져온 소식이 워낙 충격적이었던 탓이다.
“종 총관마저 실종되었다고?”
청벽루의 총관 종여는 보통 인물이 아니다. 어릴 적부터 자신을 보필해온 충신이며, 그녀의 대역을 자처해 각종 대소사를 처리해온 측근이기도 했다.
오래 지내온 만큼, 하오문의 내밀한 비밀도 많이 알고 있기에, 그의 실종은 쉬이 넘길 일이 아니었다.
“흉수는?”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다만, 이것이 총관님의 방에.”
수하가 내민 작은 철패를 본 요란의 눈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 포박유희(捕縛遊戲).
손바닥만 한 검은 철패에는 피가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새빨간 글귀가 적혀 있을 뿐이다.
“포박유희? 묶어서 즐긴다? 또 이 자인가?”
요란의 시선이 책상 한 귀퉁이를 향했다.
이미 열 개나 되는 검은 철패가 아무렇게나 쌓여 있었다.
하오문을 공격하고 기이한 철패를 놓고 가는 괴인.
불과 며칠 전부터였다.
이 무한성의 밤거리에 이 괴이한 자가 마수를 뻗치기 시작한 것은.
처음에는 딱히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무한성의 부유함에 홀려 싸움을 걸어오는 멍청이들은 언제나 있어 왔으니까.
그런데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시작은 상급 기녀였다.
“지부장님. 애란이가 사라졌습니다.”
“애란이가?”
이때 요란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공식적으로 애란이는 노래와 춤에 뛰어난 기녀(妓女)이지만, 실제로는 하오문에서 직접 파견한 무공을 익힌 문도였으니까.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큰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무공을 익혔다지만, 어디까지나 삼류 정도 수준이고, 딱히 대단한 하오문의 극비 정보를 아는 중요인물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자신이 큰 착각을 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제는 나루터의 사공연합이 습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안가 두 곳이 소리 소문도 없이 털렸습니다. 안가에 숨겨둔 이중장부가 털렸습니다.”
“루주님. 마방을 관리하는 진 대인께서 실종되셨습니다.”
“루주님! 루주님!”
이어지는 보고에 요란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뱃사공들이 조직한 사공연합은 불과 얼마 전 하오문이 은밀히 포섭한 단체.
‘아직 본 문과의 관계가 공표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알고 공격한 거지?’
우연일까 싶었지만, 절대 기밀로 취급해야 할 안전가옥의 존재나, 은밀히 하오문의 자금을 지원하는 전주(錢主)까지 실종되자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님을 직감하게 되었다.
상대는 이쪽 업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자다.
“이외의 흔적은 남기지 않았나?”
“무척 신출귀몰한 자입니다. 흔적은 고사하고 목격자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아주 전문가라는 말이군.”
하오문이 공격받고 있다.
정체조차 알 수 없는 적에게.
문득 요란의 상념에 하나의 세력이 떠올랐다.
‘망천회.’
천하 각지에 숨어 호시탐탐 강호를 노리는 자들이라면 가능하겠지.
그러나, 의아한 구석이 있었다.
‘어째서 무림맹이 아니라, 우리를 노리는 거지?’
공식적으로 망천회와 싸우는 것은 무림맹이다.
하오문이 밀고한 탓이긴 했지만, 내막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공격 대상도 이상하다.
‘본 문을 노리려면 총단을 공략해야지, 일개 지부를 노린다?’
무한성 지부는 전략적으로는 중요하지만, 하오문 내에서의 가치는 많이 떨어지는 편이다.
무림맹의 눈치를 봐야 했기에, 세력 확장에 제한이 걸리는 탓이다.
‘가장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바로 이 철패야.’
정체를 숨기는 데 급급한 망천회가 자랑스럽게 흔적을 남겨 놓는다?
“놈들의 방식은 절대 아니야.”
그렇다면 누구일까.
문득 가물가물한 기억 속에 이상한 기벽을 가진 인물이 떠올랐다.
비록 아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저 멀고 먼 사막에서 압도적인 무력과 치밀한 심계로 밤의 제왕으로 군림하는 자.
“사막살수곡의 주인. 흑야(黑夜).”
자신이 다녀간 곳에 자랑스레 징표를 남겨 둔다는 괴인.
철패만 보아도 사막의 거친 무인들이 벌벌 떤다 하였다.
“정말 흑야가 맞다면, 어째서 무한성에까지 나타난 것이지?”
사막살수곡이 암약하는 곳은 저 서쪽 대장성(大長城) 너머다.
그곳에 여섯 달 내내 어두운 달과 여섯 달 내내 밝기만 한 달이 이어지는 모래만으로 이루어진 땅이 있다 하였으니, 그곳이 대사막.
흑야는 그 대사막의 어둠과 살아 있는 것들의 생사여탈권을 장악한 존재라고 하였다.
“심지어 정황을 보아하니 단신으로 온 것 같은데.”
아무리 사막에서 왕처럼 군림하는 존재라지만, 이 용담호혈인 무한성에 홀로 잠입했다?
숫제 자살행위나 다름이 없었다.
그리고 이것이 상대의 정체를 확신하지 못하는 이유였다.
“뭐, 지금에 와서는 중요한 것이 아니지.”
자신을 대신해 청벽루의 얼굴이 되어준 종 총관마저 사라진 마당이다.
지금은 행동해야 할 때.
요란이 나직하게 말했다.
“밤거리에 존재하는 모든 낮은 것들에게 전해.”
“모두에게 말입니까?”
“그래. 술에 취해 있는 자, 약에 절어 있는 자, 심지어 말을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와, 장님들에게까지 빠짐없이.”
“네, 루주님.”
요란이 바라는 것은 하나였다.
“공격을 받았으면 이자를 쳐 갚아줘야겠지.”
약하고 힘없는 자들로부터 태어났지만, 누구보다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하오문의 철칙 때문이었다.
– 당한 만큼 되갚는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한성 밤거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려 줘야겠지.”
요란의 눈이 위험하게 빛나던 찰나였다.
살랑.
한줄기 가벼운 바람이 귀밑머리를 흩트린다 싶었더니, 여유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무 늦지 않았나 모르겠군.”
고개를 돌린 요란은, 창틀에 걸터앉아 희미하게 웃고 있는 사내를 발견하며 외쳤다.
“상공!”
“잘 있었어?”
***
멍.
부복하고 있던 수하의 표정이 사라지더니, 이내 푹 고꾸라졌다.
그것을 보던 요란이 한숨과 함께 곱게 웃어 보였다.
“오랜만에 오셨네요.”
“응. 한동안 성을 떠나 있었거든. 그나저나 시간 괜찮아? 꽤 경황이 없어 보이는데.”
“상공께서 걱정하실 일은 없답니다. 다소 작은 문제가 있지만, 머지않아 수습할 수 있을 테죠.”
“…미안해.”
뜬금없는 말에 요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자기 무슨 말씀이세요? 상공께서 미안해하실 일은 없답니다.”
“지금부터 할 말을 들으면 미리 사과하는 이유를 알게 될 거야.”
깜빡. 깜빡.
요란의 큰 눈동자가 의아함으로 물들었다.
“사실은 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