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Gacha RAW novel - Chapter 119
53. 중원제일독문(8)
“정말 자네가 이걸 설계했단 말인가!? 대단해! 정말이지 천재적인 발상이네!”
“아, 네…….”
대야장 당곡의 격정적인 칭찬에, 소종천은 머쓱한 표정으로 뺨을 긁적거리며 대답했다.
무슨 일로 아침부터 급히 호출한 건가 했더니, 어제 잠시 이야기를 나눴던 야장이 시제품으로 제작한 암기를 당곡이 발견하고 꽤나 소동이 일었다는 모양이다.
기존의 형태에서 홈을 새긴다는 단순한 방식이 추가된 것뿐이지만, 원래 극적인 변화라는 것도 대부분 그런 작은 차이에서 시작되는 법.
아직 연구가 시작된 지 고작 하루가 지났을 뿐이지만, 이미 시제품으로 만들어진 암기가 기존의 것과 유사한 성능을 보여주고 있다고 들었다.
“확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니고 기존과 그냥 비슷한 위력이면, 그다지 대단한 발전도 아니지 않습니까?”
“무슨 그런 바보 같은 소리를! 이 친구 정말로 이쪽 분야에 대해선 문외한이었군!”
이게 그리 호들갑 떨 만한 일인가 싶어 말했더니, 당곡은 펄쩍뛰며 열변을 토해냈다.
“외형에 이 정도의 변화가 있다면 그에 맞춰 내력의 운용법과 투척 동작 등, 수정해야 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닐세. 게다가 이미 최적의 두께와 길이, 무게를 맞춰놓은 기존의 추혼산화정과 달리, 이 신형은 아직 개량할 수 있는 여지가 잔뜩 남아 있지 않나!”
“음. 그렇군요.”
잘은 모르겠지만 맞는 말일 테니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간다.
“아무튼, 정말 고맙네. 소협 덕분에 오랫동안 정체되어 있던 추혼산화정의 개량에, 새로운 가능성이 생겨나게 된 걸세.”
당곡은 진심을 담아 소종천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암기와 독, 두 분야의 정점에 오른 세가라는 것이 당가가 가지고 있는 힘의 근원이다.
다만, 독이라는 것은 자칫 함부로 사용하다간 다른 무림세력들의 지탄을 받을 수 있는 물건이기에, 아무리 강력한 독을 개발했다고 해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당가에서 무림행을 나설 때 주력으로 선보이는 능력은, 자연스럽게 암기술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당곡은 암기의 개발과 제작을 전담하는 천화장의 전권을 지닌 대야장.
다른 이름으로는 천화장주라고도 불린다.
독에 대한 전권을 지닌 천독림주와 더불어, 천화장주는 당가 내에서 가주에 못지않은 발언권을 가진 높은 직책.
그런 이가 외부인에게 진심어린 감사를 전한다는 것은, 상당히 드물고 흔치 않은 경우였다.
“소협은 본가를 지탱하는 암기술과 용독술, 이 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어…… 그, 글쎄요. 상황에 따라 강력한 수단이 되겠죠?”
갑작스러운 질문에 소종천은 살짝 당황했다.
용독술과 암기술은 대다수의 무림인들에게 비겁한 수단이라는 인식을 준다.
독은 말할 것도 없고, 암기 역시 비무가 아닌 바에야 보통은 은밀하게 암습을 가할 때 사용되는 무기.
소종천은 적을 쓰러뜨릴 수 있다면 뭐든 상관없다고 여기긴 하지만, 독이나 암기가 정정당당하지 못한 방식이라는 생각에는 동의할 수 있다.
다만, 그걸 물어본 이가 자신에게 감사를 전하고 있는 당가의 인물, 그것도 암기를 제작하는 장인이었기에 적당히 말을 골라 대답했다.
“독과 암기는 하수가 고수를 위협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수단이지. 강력한 만큼 위험하고, 비겁하다 여겨지는 것이 당연한 약자의 무기일세.”
“에.”
그런데 오히려 당곡이 적나라하게 당가의 근본에 대한 비판을 늘어놓아, 소종천은 할 말을 잃고 입을 다물었다.
“인식이야 어쨌든 나는 그런 방식이 잘못된 것이라 생각하진 않네. 애초에 무공이란 것 자체도 약자가 강자에게 대항하기 위해 발전되어 온 것 아닌가? 고대의 무공은 그저 심신을 단련하기 위한 체조에 가까웠다지. 그러던 것이 점점 살상력을 가진 힘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고 말일세.”
“음음.”
“그리고 무공을 모르는 일반인도 사용할 수 있는 독과 달리, 암기는 제대로 위력을 발휘하려면 다른 무공들처럼 부단한 노력이 필요한 수단이 아닌가? 싸잡아 무시를 당하면 조금 억울하지.”
“네에…….”
뭘 말하고 싶은 건지 잘 모르겠지만, 그냥 대강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해 주었다.
그런 소종천을 보며 당곡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나는 내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네. 명검이나 보갑을 제작하는 것처럼, 뛰어난 암기를 만들어 내는 것도 분명 가치 있는 일이라 믿고 있지.”
“예. 그럼요.”
“다만, 그렇게 노력을 해왔음에도 아직 팔대극독에 견줄 수 있는 암기를 만들어 내진 못했다네. 그건 꽤나 속상한 일이지.”
팔대극독은 당가가 가지고 있는 절대적인 힘이자 최후의 수단이다.
다만, 가문의 고위 무인 몇몇에게나마 사용이 허가된 군자산을 제외하면, 팔대극독은 무림에 공개된 기록 자체가 매우 드문 극비의 물건이었다.
그저 그런 경탄할 만한 독이 있다는 정도로 이름만 알려져 있을 뿐.
초절정의 무인조차 암살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독이니, 함부로 사용하거나 유출시킬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팔대극독은 워낙 희귀한 재료들이 필요하고 고난이도의 제조법을 가져, 만들어 내기가 극히 까다롭기도 하지.”
팔대극독은 당가가 가진 가장 강력한 힘이다.
당곡은 자신이 만든 암기가 그 자리를 대체할 수 있기를 바라며, 오랜 세월 암기 제작에 매달려 왔다.
“암기로는 초절정의 무인을 잡을 수 없다는 것이 불변의 정설이었네. 호신강기의 존재 때문에 말일세.”
“그건 그렇죠.”
“본가가 지닌 암기술의 극의라는 만천화우조차, 호신강기를 뚫을 수는 없지. 물론 완전한 만천화우를 펼치려면 초절정에 올라 강기를 다룰 수 있어야 한다지만…… 그래서는 너무 빛바랜 전설 아닌가?”
그것도 그렇다.
초절정 무인이 같은 초절정 무인을 상대할 수 있다는 게 자랑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
같은 초절의 경지끼리 맞상대할 수 있는 것은, 만천화우가 아니라 다른 어떤 수단이어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호신강기를 뚫어보자고 개발된 암기와 수법 중에 가장 가능성이 유력했던 것이 이 추혼산화정인데, 이것도 한계에 부딪혀 오랫동안 정체되어 있었다네. 자네의 발상은 그런 와중에 새로운 길을 제시해 준 것이고 말이야.”
“흠.”
뭐 얼마나 대단한 조언이라고 호들갑을 떠나 했는데, 이렇게 구구절절 듣고 나니 고마워하는 것이 이해가 간다.
암기로 호신강기를 파훼하는 것은 당가의 야장들에게 오래도록 이어져 내려온 염원이었다.
“어쩌면 드디어 내 대에 이르러, 이 염원을 이룰 수 있게 될지도 모르겠군. 다시 한번 감사를 전하네. 이 방식을 통해 추혼산화정의 개발이 결실을 맺는다면, 내 반드시 소협의 도움에 보답하도록 하겠네.”
“뭐, 그렇게까지. 흠흠. 거절은 안 하겠습니다. 그런데 제 수갑은 다 정비가 되었나요? 이왕 온 김에 가지고 갈까 하는데.”
“윽! 그, 그것이…… 깜박 잊고 있었군.”
“…….”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바라보는 소종천의 시선에, 당곡은 겸연쩍은 얼굴로 눈을 피했다.
어제 신형 시제품을 발견하고 흥분해서 눈이 뒤집힐 지경이었으니, 다른 일이 머리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그…… 이 개발 건부터 해결하고 나서 처리해 주면 안 되겠는가? 벌써 여러 가지로 구상해 둔 것들이 있는지라, 몸이 근질근질해서 참을 수가 없다네.”
“아니, 그게 하루아침에 끝나는 일도 아닌데 어찌 기다리라는 겁니까? 저는 연회가 끝나면 떠날 사람인데요?”
“끄으음. 이곳에만 처박혀 있어도 나도 귀가 있어서 소문을 접했다네. 소협과 우리 가문의 여식과 혼담이 오가고 있다고 들었네만.”
“윽.”
소종천은 당가의 여인과 혼인할 생각이 없었다.
‘그냥 적당히 어울리다가 내뺄 건데.’
하지만 아무리 호의를 가진 이라도 당가의 인물 앞에서 그런 내심을 밝히기가 곤란해, 제대로 부정하지 못하고 잠시 우물거리다 입을 다물었다.
“고민하지 말고 그냥 받아들이게. 소협이 한 식구가 된다면 참 기쁠 것 같구먼.”
“그건…… 어찌 될지 모르는 일이니 넘어가시고. 아무튼, 오늘 안으로 돌려받아야겠습니다. 정 시간이 없으면 그냥 주세요. 대충 동네 대장간에 맡기죠. 뭐.”
퉁명스러운 말투에 당곡은 눈을 부릅뜨며 소종천을 만류했다.
“무슨 그런 섭섭한 소리를 하는가! 쯧, 알겠네. 아무리 몸이 달아도 약조를 해놓고 두말해서는 안 되는 일이지. 내 소협의 물건부터 꼼꼼하게 정비해 둔 후에 개발 작업을 재개하겠네.”
수리가 완료되면 사람을 시켜 숙소로 보내주겠다는 확답까지 받아낸 뒤에, 소종천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천화장을 벗어날 수 있었다.
* * *
“에이. 밥때를 놓쳤네.”
천화장에 들리며 이야기가 조금 길어진 탓에 조식 시간이 지나 버렸다.
툴툴거리며 돌아가고 있는데, 누군가가 소종천을 불러 세웠다.
“앗! 소 공자님!”
옆을 돌아보니 혼담의 대상이었던 여인 중 하나가 총총대며 다가오는 모습이 보인다.
“혜교 소저였던가요?”
“맞아요! 기억해 주시니 기쁘네요.”
어제 만난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는 게 뭐 대단한 일이겠느냐마는, 당혜교는 몸을 배배 꼬며 소종천의 팔에 매달려 왔다.
“어딜 다녀오시는 길이신가요?”
“천화장에요.”
“아아, 그러고 보니 어제도 천화장에 들리셨다 들었어요. 본가의 암기에 관심이 있으신가 봐요.”
“그렇다기보다는 조금 다른 일인데…… 대야장이란 분이 불러서 이야기를 나누느라.”
“어멋? 당곡 어르신이랑 친분이 있으신 건가요?”
“딱히 친분이랄 건 아닌데. 음, 뭐 그냥저냥 친해졌다고 해도 무방하겠네요. 저를 마음에 들어 하시는 것 같고.”
당혜교의 눈빛이 놀람으로 물들었다.
방계 출신으로 어느 분야로나 딱히 이렇다 할 두각을 보이지 못한 당혜교다.
자신은 말을 거는 것조차 어려운 가문의 높은 어른과 하루 사이에 친분을 다졌다니, 관심을 보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당숙부님께 꼭 붙잡아야 하는 인물이라 듣기는 했지만, 역시 보통이 아닌가 봐. 이 남자를 내 치마폭 아래 잡아둘 수만 있다면…….’
당혜교가 보기에 소종천은 아직 사내 티가 별로 나지 않는, 아직은 앳된 느낌의 소년이었다.
그럼에도 본신의 무위가 대단하여 가문에서 정략혼을 추진한다고 들었고, 자신에게까지 제안이 넘어왔던 상대다.
방계이기도 하고 무재가 부족한 당혜교로서는 능력 있는 데릴사위를 가문으로 들여오는 것이, 가문의 권력에 조금이라도 다가설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어제는 웬 귀신 같은 년 때문에 무산되었지만, 다른 경쟁자가 손을 대기 전에 어떻게든 내가 꼬셔야만 해.’
사실 어젯밤에도 소종천에게 수작을 부리기 위해 숙소로 찾아가긴 했었는데, 함께 온 일행인 듯한 년 하나가 입구를 틀어막고 있어서 그냥 되돌아와야만 했었다.
눈빛으로 사람을 찢어 죽일 수 있을 것 같은 기세라, 어찌나 무서웠던지.
“공자님. 아침 식사는 어떠셨나요?”
“못 먹었어요. 천화장에서 볼일을 보느라.”
“어머나! 이를 어째요? 괜찮으시다면 제 방에서 다과라도 대접해 드릴게요!”
소종천의 대답에 당혜교는 옳다구나 싶어 미끼를 던졌다.
듣자 하니 어제 사촌 동생인 당수현이 소종천을 방으로 끌어들이고도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던데, 자신은 그런 실수를 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바보 같은 계집애. 확실하게 하려면 약을 써서라도 잡아둬야지!’
당혜교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지 못하는 소종천은, 그냥 단순히 간식으로라도 배를 채우면 되겠거니 하며 제안을 받아들였다.
“저야 고맙죠.”
“호호! 어서 가요!”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두 사람은 금세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크게 대우받지 못하는 방계 출신다운 소박한 공간.
‘그래도 덕분에 향이 빨리 채워지니, 약 기운이 금방 돌 거야.’
평소에 자신의 방을 마음에 들지 않아하던 당혜교였지만, 오늘은 이 작은 크기가 도움이 될 것이라 여겼다.
소종천을 방에 들인 당혜교는 구석에 놓여 있는 향로에 어떤 가루 같은 것을 뿌렸다.
달짝지근한 향기가 작은 방을 순식간에 가득 채웠다.
“잠시 기다려 주세요. 제가 다과를 내올게요.”
“네. 고마워요.”
당혜교가 향로에 넣은 것은 최음의 성분이 담겨 있는 물질로, 독을 다루는데 익숙한 당가의 인물이라면 쉬이 구할 수 있는 재료 중의 하나였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하지.’
거기에 차와 간식거리에까지 몇 가지 약을 뿌려 가져왔다.
적당히 사용한다면 불감증을 치료하거나 원만한 부부생활을 보조하는 용도로 쓰일 수 있는 것들이지만, 이렇게까지 중첩되어 과도한 양을 사용하면 이제는 사람의 이지를 망가뜨리는 독이나 마찬가지다.
그야말로 최선을 다해 소종천의 코를 꿰겠다는 일념이 드러나는 행동.
‘후훗. 이만큼의 양이면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라 해도 양물을 세우고 달려들 수밖에 없…….’
“이거 맛있네.”
‘……?’
출출했던 소종천은 당혜교가 내온 다과를 게 눈 감추듯 전부 집어삼켰다.
그럼에도 전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안색에 변화가 없었다.
‘엣! 뭐, 뭐지? 조합에 실수가 있었나?’
저만큼의 약을 섭취했으니 분명 성욕이 들끓어 참을 수 없어야 정상인데, 상대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
“죄송한데 더 없나요? 어제 저녁을 적게 먹어서 그런지 아직 출출하네.”
당혜교는 크나큰 당혹감에 빠졌다.
“자, 잠시만요.”
뽑기로 무림최강 120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