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Gacha RAW novel - Chapter 122
54. 절체절명(2)
마차를 타고 편하게 이동하고 있다가 처음 마기를 감지했을 때만 해도, 소종천은 딱히 위기감을 느끼진 않았었다.
“정지!”
“무사 나으리? 어쩐 일로…….”
“잠깐 세워보세요.”
소종천의 말에 마부는 의아해하면서도 지시에 따라 마차를 세웠다.
조용히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던 일행들은, 소종천의 돌발행동에 의문을 표했다.
“종천? 왜 그래?”
“소 단주. 무슨 일인가?”
“적이 있습니다.”
“이런.”
적이 있다는 말에 소종천의 동료들은 눈빛을 바꾸며 신속한 움직임으로 마차 밖으로 나갔다.
“적이라고? 흐음.”
함께 지부로 복귀하고 있던 당사준은 미심쩍다는 얼굴로 천천히 그 뒤를 따랐다.
‘행인이 많이 지나다니는 관도에서 마인을 다 만날 줄이야. 하긴 마인이라고 해서 항상 사람들을 피해 숨어다니기만 하는 건 아닐 수도 있지.’
감지된 마기가 하나뿐이고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았기에, 소종천은 그저 우연한 만남이라 생각하고 느긋한 태도를 취했다.
마기가 느껴졌던 전방을 향해 시선을 돌리자, 길 한편에 꼿꼿한 자세로 앉아 이쪽을 보고 있는 중년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모르고 지나가면 그대로 날려 버릴 생각이었는데, 제법 감이 좋군.”
“……엇?”
시선을 마주하며 일어서는 중년인의 모습에, 소종천은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느꼈다.
앉은 자리에서 기립하는 작은 움직임일 뿐인데, 어째 산사태를 마주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지던 마기가 점점 거대해지며, 주변을 집어삼키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기운을 억누르고 있었나?’
결코, 절정급의 아래로 보이지 않는 기세.
이렇게 짙은 마기를 겪어본 적은 지금까지 단 한 번뿐이었다.
“네놈이 소종천이로구나.”
‘오악인가!?’
재빨리 감정을 통해 상대를 정확히 살펴본 소종천이 신음을 흘렸다.
“권마…….”
“호오? 나를 바로 알아보다니 신기하군. 아니, 소문이 사실이라면 신기한 일도 아닌가.”
“소 단주? 지금 무슨 말을…… 권마라고? 저자가 말인가?”
어리둥절해 하며 말을 거는 당사준은 일단 무시한 채, 소종천은 주먹을 움켜쥐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한 말투인데? 함정인 건가? 딱히 근처에 다른 마인들은 없는 것 같은데.’
당가를 떠나 사천지부가 위치한 중강현으로 돌아가는 길은, 잘 닦여진 관도를 통해 움직이면 된다.
가장 빠르고 편리하게 이동일 수 있는 방법이니, 굳이 다른 길을 찾을 이유가 없었다.
그 말인즉슨, 소종천 일행의 행선지만 알고 있으면 누구라도 쉽게 예측할 수 있는 이동 경로라는 뜻.
‘마교의 끄나풀이 날 감시하고 있던 건가?’
마교의 세력과는 이미 수차례 얽혔었고 이목이 많은 곳에서 도마를 처치하기도 했으니, 놈들에게 주목을 받게 될 것이란 생각을 하긴 했었다.
하지만 사천지부에 몸담고 활동한 몇 달 동안 딱히 의심스러운 일이 없었기에, 정보가 퍼지지 않은 건가 싶어 마음을 놓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을 보니, 처음 생각대로 자신에 대한 것이 알려져 있던 모양.
‘이상하네. 도마를 죽인 게 나라는 것이 제대로 알려졌다면, 혼자서 나타날 리가 없는데.’
눈앞에 나타난 권마가 도마보다 훨씬 윗줄의 고수라면 모를까.
감정을 통해 확인한 정보를 살펴보니, 권마의 내공 수치는 13을 약간 넘는 정도였다.
15에 가까웠던 도마에 비하면 아무래도 처지는 수준이다.
‘이제 막 내공 수치가 12를 돌파한 나보다야 높지만, 문제가 될 만한 차이는 아니지. 마교의 최고수 중 하나를 처리할 좋은 기회야.’
도마 때는 영웅 뽑기로 신승의 힘을 빌리고 나서야 겨우 승리를 가져오긴 했다.
그래도 그때와 달리 초입이나마 같은 경지에 들고 새로운 무공을 익혀 전력이 강화된 지금이라면, 저 권마라는 마인 정도는 비벼볼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절정의 무인인 당사준과 그에 준하는 무위의 동료들까지 가세한다면, 충분히 상대할 만할 것이라는 판단이 섰다.
그러나 그런 생각도 잠시뿐.
막 기세를 일으키며 앞으로 달려 나가려던 차에, 일행들이 지나왔던 반대 방향에서 섬뜩한 기운이 감지되었다.
‘어억?’
정체불명의 무언가가 일행들이 있는 곳을 향해 섬전 같은 속도로 날아오고 있다.
‘사혜? 이대로는 꿰뚫리게 될 거야!’
다가오는 투사체가 향하는 목표를 파악한 소종천은, 피하라고 말하려다 말고 한사혜를 향해 달려들었다.
지시를 내리고 그녀가 반응하길 기다려서는, 늦는다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
“앗! 종천!? 무슨…….”
갑자기 덮쳐든 소종천이 허리를 끌어안고 바닥으로 넘어뜨리자, 한사혜가 당황해하며 얼굴을 붉혔다.
“이런 야외에서 다른 사람들까지 보고 있는데…… 하, 하지만 네 취향이 그렇다면…….”
“얜 또 뭐래? 정신 안 차리냐!”
“꺄악!?”
속눈썹을 바르르 떨다 결연한 표정으로 눈을 감는 한사혜를, 옆으로 휙 집어 던졌다.
소종천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땅을 뚫고 들어간 투사체의 정체를 확인했다.
‘화살?’
얼마나 위력이 강했는지 구멍을 파고 땅속으로 들어가 꽂힌 화살.
끝부분에 달려 있는 깃이 아니었다면 화살인 줄도 몰랐을 것이다.
“히익!”
무림인의 싸움에 휘말렸다는 것을 늦게나마 깨달은 마부가, 벌벌 떨며 마차 밑으로 기어들어 간다.
화살이 날아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상당히 떨어진 거리에 또 다른 마인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활을 들고 있는 것을 보니 이 무시무시한 화살을 쏘아 보낸 장본인이 분명할 터.
워낙 멀어 감정이 제대로 써질지 자신 없어 하며 확인을 해보았는데, 상대를 정확히 인식하고 있어서인지 문제없이 정보 창이 떠올랐다.
권마보다 미미하게나마 내공 수치가 더 높은 마인.
‘궁마? 이런 미친! 오악이 둘이라고?’
역시 함정이 맞았다.
자신감이 대번에 바닥으로 떨어진다.
초절정의 마인 둘의 합격이라면 무림의 어느 누구를 데려다 놔도 살아나갈 수 없을 것이다.
“허! 그걸 반응하다니. 반로환동한 고수라는 정보가 사실이었나?”
소종천의 몸놀림을 보고 경지를 파악한 권마가 눈에 이채를 띠며 걸음을 옮겼다.
동시에 소종천에게만 보이는 하나의 알림이 떠올랐다.
[임무 발생!]‘망할! 저리 꺼져!’
임무의 내용을 확인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기에 곧바로 알림을 치워 버렸다.
이쪽으로 다가오는 권마를 향해 마주 달려 나가며, 소종천은 일행들을 향해 외쳤다.
“이쪽은 내가 맡을 테니 다들 어떻게든 버텨!”
상황이 최악이었지만 가만히 죽음을 받아들일 수는 없으니 발악이라도 해야 한다.
두 마인 중 하나라도 쓰러뜨린다면 그나마 살아나갈 가능성이라도 생길 것이다.
그렇기에 소종천은 홀로 권마를 상대한다는 선택을 했다.
일행들과 함께 권마와 싸울 경우에는, 궁마가 다른 사람을 노리고 쏘아 보내는 화살을 막아줄 여유가 없다.
차라리 혼자 싸우는 편이 부담은 될지언정 덜 신경 쓰인다.
‘다른 이들도 날아오는 화살을 피하는 것에만 집중한다면 생존할 확률이 올라가겠지.’
모르고 있을 때야 다들 공격을 감지하지도 못했지만, 상대를 계속 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거리가 상당한 만큼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적의 경지가 경지이니만큼 불안함이 없는 건 아니지만, 지금은 동료들이 잘 버텨주길 믿고 권마를 빨리 해치우는 것에 주력할 수밖에 없다.
끼야아악!
느긋하게 걸어오던 권마가 귀령규환공을 발동시켰는지 귀곡성이 울려 퍼진다.
커허엉!
소종천 역시 사자후로 응수하며 주변을 잠식하는 사이한 기운들을 몰아내었다.
“과연. 중놈들의 무공이 맞군. 도마를 단신으로 쓰러뜨렸다는 말도 사실인 건가?”
“뭘 새삼스럽게 이제 알았다는 척이야? 다 들은 게 있으니까 혼자는 무서워서 두 놈이 온 거잖아?”
놀랍다는 듯이 감탄하는 상대에게 이죽거리자, 권마는 눈가를 찡그리며 불쾌함을 드러냈다.
“……건방 떨지 마라. 네놈을 상대하는 건 나 혼자서도 충분하니. 내 권법이 소림의 권법보다 위에 있음을 알려주마.”
잠시 서로를 노려보던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땅을 박차며 몸을 날렸다.
시간을 질질 끌어서 좋은 게 없기에, 소종천은 곧바로 연대구품으로 신형을 나누었다.
상대의 눈을 현혹시키는 어지러운 신법을 보이며 권마를 포위한 분신들이, 제각기 다른 무공을 펼치며 연환공격을 가했다.
소림오권의 다섯 형을 각각 취하며 근접전을 시도하는 분신들과, 백보신권 또는 탄지신통을 이용한 중거리에서의 공격.
소종천의 본체 역시 일단은 간을 보고자 후방의 대열에 끼었다.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을 거의 다한 위력적인 합격에, 권마의 몸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아예 피하지도 않아?’
생각보다 쉽게 당해주는 모습에 의아해하던 소종천은 이내 얼굴을 구겼다.
“안마가 시원하군.”
전신을 감싼 호신강기.
당연한 일이겠지만 상대는 소종천보다 훨씬 강기의 운용에 능숙했다.
‘그래. 중년처럼 보여도 저자 역시 백년은 묵었을 늙은 괴물이겠지.’
호신강기를 뚫고 타격을 주려면 이쪽 역시 권강을 발현하는 수밖에 없다.
다만, 본체 하나라면 모를까 분신들에게까지 전부 권강을 사용하게 하는 것은, 아직 강기를 다루는 것이 미숙한 소종천에겐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연대구품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내력은 이제 감당할 만하지만, 강기까지는 상당히 무리인데.’
분신으로 무공을 펼치는 것은 본체가 소모하는 내력보다 훨씬 많은 내력을 필요로 한다.
거기에 강기까지 전부 사용하려고 한다면, 단전이 텅텅 비어버리는 것은 한순간일 것이다.
‘그래도 하는 수밖에.’
어차피 본체로는 권강을 쓰면서 분신들은 저대로 그냥 내버려 둔다면, 눈속임의 역할조차 해내지 못할 터.
전부는 아니더라도 분신 역시 위협이 될 수 있도록, 강기의 사용을 섞어주어야 했다.
그나마 내력을 회복할 수 있는 영웅 뽑기라는 보험이 아직 있으니, 무조건 내력을 아끼려고만 할 필요는 없다.
‘확정 뽑기를 이번에 써야 하겠네.’
권마를 이기더라도 뒤에 남은 궁마까지 생각하면, 천급 영웅의 내공이 필수다.
내력이 다 떨어지면 곧바로 지난번에 얻은 확정 뽑기권을 써야겠다고 생각하며, 소종천은 파괴적인 강기를 손끝에 담았다.
파앙!
손가락을 튕기자 날카로운 파공성과 함께 여태까지와는 다른 위력의 기탄이 쏘아져 나갔다.
강기로 만들어낸 탄환을 활용한 탄지신통.
강환이라고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그것은 기존의 기탄과 달리 불투명한 형체가 눈에 보여, 무음과 무형이라는 장점이 사라지게 되었다.
하지만 그 파괴력만큼은 비교가 무의미할 정도였다.
“흠!”
권마 역시 강환에 실린 위력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하고, 아까와 다르게 회피 동작을 취하며 사선에서 벗어나려 했다.
그런 권마를 붙잡아두기 위해, 소종천의 분신들도 주먹에 권강을 일으키며 달려들었다.
‘으윽.’
재차 강환을 만들어내려던 소종천이 흘러나오는 신음을 삼켰다.
배꼽 아래에서 인두로 지지는 것 같은 통증이 느껴진다.
예상은 했지만, 한순간에 빠져나가는 내력의 소모가 너무 크다 보니, 단전에 적지 않은 무리가 가는 것.
‘사기적인 무공들이지만 역시 잡아먹는 내력이 너무 커. 이런 식으로 계속 싸워서는 2갑자 내공으론 턱없이 부족하겠는데.’
그래도 효과는 확실히 있었다.
강기를 사용하는 분신들의 공격을 무시하지 못하고 발이 묶인 권마가, 날아오는 강환을 피하지 못하고 어깨를 내주었다.
호신강기를 부수고 들어간 강환이 어깨 주변의 살점을 한 움큼 물어뜯고 지나간다.
“잔재주 부리지 말고 사내답게 앞으로 나서라!”
성난 고함을 내뱉은 권마가 주먹을 내질렀다.
구우웅!
대기가 진동하며 어마어마한 압력이 발생한다.
권마의 권법은 난폭하기 짝이 없는 극강의 힘을 추구하는 무공이었다.
“억!?”
두 종의 신법절학을 익혀 회피에는 자신이 있던 소종천이다.
그런데 단순하게 뻗는 권마의 주먹을 피하지 못하고, 근처에 있던 분신 셋이 한 수만에 사라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피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불영선하보와 금강부동신법의 신묘한 움직임으로 직격에서 벗어났는데, 생각 이상으로 강력한 권격의 여파에 분신들이 실체를 유지하지 못하고 일그러져 소멸했다.
‘염병! 더럽게 무식한 권법이네!’
사람이 아니라 무슨 신화 속의 거인이 휘두른 일격 같다.
분명히 제대로 피했는데도 타격을 입어야 한다니.
예민한 감각과 뛰어난 신법절학으로 유리하게 상대와의 간격을 조절하며 싸우는 소종천과는, 상성이 별로 좋지 않아 보였다.
‘아냐. 그래도 새로 얻은 절기를 사용한다면, 부딪혀 볼 만할 것 같긴 해.’
신체 능력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리는 아라한신권이 더해진다면, 저 끔찍한 위력의 권격을 어느 정도 맞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만 다른 무공들과 궤를 달리하는 기의 운용법을 가진 아라한신권은, 연대구품으로 만들어낸 분신으로는 사용할 수가 없다.
‘몇 번 실험해봤지만 불가능했지.’
결국, 소종천 본인이 앞으로 나서야 한다는 말.
남은 분신들을 뒤로 물린 소종천은, 권마의 정면으로 들이닥치며 아라한신권의 요결을 운용했다.
“이놈이?”
나서라고 말은 했지만 정말로 소종천이 마주 튀어나올 거라 생각하진 않았기에, 살짝 당황한 권마가 처음보다 조금 늦게 거력이 담긴 주먹을 내질렀다.
구르르릉!
건물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기묘한 소리를 발생시키며 내밀어지는 권마의 권격.
그에 맞서 빛살처럼 쏘아져 나간 소종천 역시 주먹을 마주 뻗었다.
쐐애액!
이윽고 권과 권이 부딪혔다.
꽈앙!
폭탄이 터지는 것 같은 굉음이 들리며 거대한 충격파가 주변을 휩쓸었다.
뽑기로 무림최강 12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