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Gacha RAW novel - Chapter 142
59. 속가제자(2)
여자아이는 소종천의 질문에 눈을 내리깔며 시선을 피했다.
몇 번 더 재촉하듯 물어보았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경계심이 많은 성격인가?’
하긴 처음 보는 사람이 그런 질문을 하면 경계할 수도 있겠거니 싶다.
“이야압!”
어떻게든 잘 구슬려보려고 하고 있는데, 오금 쪽에 가벼운 자극이 있었다.
주인집 아들이라던 꼬마 놈이 목검으로 소종천을 후려친 것이다.
옆에서 뭐라고 계속 쫑알거리는 것을 싹 무시하고 있었더니, 저 혼자 화를 참지 못하고 저지른 일이었다.
“저리 가라고! 하압!”
“이놈의 애새끼가?”
간지럽지도 않았지만, 마냥 가만히 둘 수도 없기에, 살짝 짜증을 내며 꼬마 놈을 향해 기세를 풀었다.
“흐익!?”
물론 초절정의 경지인 소종천이 진심으로 화를 낸다면, 갓 무공에 입문한 이런 어린아이는 살기만으로도 심장이 멈출 수가 있다.
적당히 공포를 느낄 정도로만 압박을 가하자 꼬마는 벌벌 떨며 오줌을 지리더니, 이내 철퍼덕 주저앉으며 그대로 기절하게 되었다.
“어엇!?”
“형우야……?”
“으에엥!”
기세의 방향을 조절하여 집중했기에 다른 아이들은 영향을 받지 않았지만, 대부분이 바들거리며 쓰러지는 친구의 모습에 겁을 먹고 후다닥 도망가기 시작했다.
“도련님!”
꼬마가 기절하자 조금 떨어진 곳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던 남자 한 명이 허겁지겁 달려온다.
행색을 보아하니 그 집의 하인으로 일하는 사내인 모양.
덩치는 좋지만, 무공을 익히진 않은 일반인이었다.
“그, 그만두시오! 이분이 어떤 신분인지 알고…….”
소종천이 손을 대지 않고 쓱 쳐다본 것만으로 꼬마를 기절시킨 것은 남자도 보았다.
그래서 그런지 막 강하게 으름장을 놓진 못하고, 조심스러운 말투와 태도로 소종천을 막아서려 들었다.
“그깟 놈한테 관심 없으니 그냥 데려가쇼.”
“크흠.”
사내는 소종천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꼬마를 안아 들고 물러났다.
소종천은 다시 여자아이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자신을 괴롭히던 꼬마가 사라져서 그런지 여자아이는 한결 표정이 풀어졌다.
하지만 소종천이 왜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는지 알지 못하기에, 심경이 복잡한지 눈빛이 흔들리는 것이 보인다.
“오라버니는 누구세요?”
조용히 지켜보고 있자니, 드디어 아이가 입을 열었다.
“너랑 같은 무공을 익힌 사람.”
“네? 이건 저희 집안에 전해지는 무공인데…….”
“흐음. 가전무공이라고? 그럼 부모님께서 무공을 가르쳐준 거니?”
“아버지께서…….”
여자아이는 소종천의 눈치를 살피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꼬박꼬박 답은 해주고 있지만, 여전히 눈빛에는 의심과 경계의 기색이 가득하다.
난데없이 나타나 동문이라고 우기는 사람을 만났으니, 수상하게 여겨지는 것이 당연하긴 할 것이다.
‘분명 소림의 무공들을 익혔는데 그냥 가전무공이라 알고 있다? 아버지란 사람이 무공을 가르칠 때 출처를 알려주지 않은 건가?’
일단은 아이의 부모를 만나봐야 자세한 내막을 알 수 있으리라.
소종천은 아이에게 아버지를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고, 여자아이는 수상한 사람을 데려가고 싶지 않은지 눈을 굴리며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소종천을 내쫓을 능력도 없고 마냥 이 자리에서 버티고 있을 수도 없기에, 결국 불안한 표정으로 소종천을 힐끔거리며 길을 안내했다.
“미안. 물자 보충은 너희들에게 맡겨야겠다. 좀 알아봐야 할 일이 생겨서.”
“사문과 관련된 일이라면 당연한 거지.”
“꼼꼼하게 챙겨둘 터이니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시오.”
아무 관계가 없는 장자군과 남궁건까지 동행할 필요는 없기에, 두 사람에게는 원래 하려던 일을 떠넘기고 혼자 움직이기로 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게 될지 모르기에 다시 만나지 않고 먼저 돌아가라고 전하자, 장자군이 묘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종천은 어디 갔냐고 분명히 물어볼 텐데. 우릴 따로 보내고 어린 소녀의 뒤를 쫓아갔다고 해도 되나?”
“……틀린 말은 아니지만, 굉장히 곤란해질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괜히 이상한 소리를 들으며 시달리고 싶지 않으니, 잘 좀 둘러대 달라고 부탁했다.
도망치듯 종종걸음으로 달려가는 여자아이의 뒤를 따라 걸으며, 소종천은 감정을 사용하여 정보창을 확인했다.
[이름 : 백서향] [별호 : 없음] [재능] [오성 9.03] [근골 7.36] [감각 8.34] [내공 0.43] [무공] [불광심법 4성] [소림오권 1성] [감정 관계] [경계, 호기심]‘호오? 재능 수치가 제법 높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오성의 수치가 눈길을 끈다.
소종천은 그간 여러 사람을 만나보며 감정을 사용했다.
재사용 대기시간이 60분이니, 특별히 감정해야 할 물품이 없는 경우엔 지나가는 사람을 아무나 지정해 감정을 써보기도 했다.
특히 사천지부에 머무르는 동안 부하단원들이나 마주치는 다른 무인들에게 감정을 사용하며, 재능 수치가 과연 무공을 익히는 데 있어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 연구해보기도 했었다.
‘기간이 짧아서 크게 유의미한 자료를 모으진 못했지만.’
확실히 무공을 배우는데 가장 영향이 큰 재능은 근골이긴 했다.
근골 수치가 높을수록 무공수련의 성취가 빠르고, 다른 이들보다 경지에서 앞서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다만, 그럼 오성과 감각은 쓸모가 없냐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었다.
일류 상위권이나 절정급의 수준 높은 무인들을 보면, 대부분 오성이나 감각 둘 중 하나 정도는 남들보다 높은 수치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둘 다 정확히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지.’
애초에 감이라는 것은 어떻게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도 어려운 것이고, 지능 역시도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꽤나 포괄적인 개념이다.
기억력, 산술 능력, 상상력, 연역과 추론, 언어 능력.
지력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세세하게 따지자면 한두 가지로 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소종천이 살펴봤던 사람들 중에는 ‘이런 답답한 놈이 어떻게 오성이 이리 높아?’라는 의문을 품게 되는 이도 있었고, ‘얘는 굉장히 빠릿빠릿한데 의외로 오성 수치는 평범하네.’ 싶은 사람도 있었다.
말하자면 평균의 함정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다른 건 영 머저리 같은데 기억력만 신기하게 뛰어나거나, 기이할 정도로 계산 속도가 빠른 경우처럼 말이다.
‘그래도 9점을 넘는 수치라면, 어떻게 따져도 평균을 월등히 뛰어넘는 수준이라 볼 수 있겠지.’
내공은 위의 재능들과는 다른 개념이기에 별개로 치고, 5점에서 6점이 정말 딱 평범하다는 정도라면 7, 8점은 수재 소리를 듣는 수준이다.
9점부터는 오성이든 근골이든 확실하게 천재의 영역이라는 느낌.
‘오성 9점이면 반야신공도 초반부는 어렵지 않게 성취를 보겠는데? 근골이 7점 초반대로 약간 아쉽긴 해도, 그만하면 쓸 만한 재능이라 평가받을 테고. 감각까지 8점이니 앞날이 기대되는 유망주구만.’
난해한 불경 공부를 병행해야 하는 소림 무공의 특성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뛰어난 인재가 아닐 수 없었다.
성별이 여자아이라는 점이 걸리긴 하지만 말이다.
‘근데 심법은 4성에 권법은 1성이라. 영 균형이 안 맞네. 머리가 좋아서 심법의 성취가 빠른 건가?’
백서향이라 이름을 알게 된 여자아이의 무공은 딱 심법과 권법 하나씩으로 단출했다.
“꼬맹아, 너 몇 살이니?”
소종천의 목소리에 움찔하며 잠시 걸음을 멈춘 백서향은, 이내 다시 발을 움직이며 대답했다.
“제 이름은 백서향이에요.”
“아, 그래. 그래서 몇 살이냐고.”
“……9살인데요.”
대충 그 정도쯤 되어 보이긴 했는데, 확실히 어리긴 어리다.
‘보통 빠르면 대여섯 살에 무공을 시작하니까, 이상한 성취는 아니긴 하네.’
대여섯 살이라고 해도 내공을 배우는 기준일 뿐이지, 본격적으로 외공을 수련하는 것은 조금 더 뒤다.
특히 소림오권은 소림의 비전절기에 속하진 않아도 꽤나 상승의 무리가 담긴 권법.
다섯 가지 형의 기본을 숙지하는 것도 어린아이에겐 쉽지 않으니, 아직 1성에 머물러 있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하긴 했다.
‘응? 그러고 보니 조금 묘하긴 하네. 보통 육합권 같은 그런 기초공으로 몸을 만들고 나서 소림오권을 배우는 게 정상일 텐데.’
아까도 형을 제대로 유지하지 못해 영 아슬아슬한 균형으로 무공을 펼치는 것을 봤었다.
몇 살 더 어린 꼬마 놈이었기에 상대가 되었던 거지, 비슷한 수준이었다면 금방 허점을 찔려 엉망으로 바닥을 굴렀을 것이다.
소종천이야 뽑기로 무공을 배웠으니 무공을 익힌 순서가 뒤죽박죽이지만, 일반적인 기준을 가졌을 백서향의 성취는 조금 이상한 구석이 있었다.
‘애한테 물어봐야 알 수가 없으니. 일단은 무공을 가르쳤다는 부친을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게 우선이겠네.’
드러난 정보를 두고 이런저런 평가를 해보며, 소종천은 백서향을 따라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꽤나 으리으리한 대저택 앞에서, 백서향의 발길이 멈춰 섰다.
“엥? 여기가 너희 집이라고?”
“……여기서 일해요.”
“아아.”
그러고 보니 종살이를 한다 했었다.
고작 9살짜리 여자아이를 누가 따로 고용했을 리는 없으니, 부모가 이 집에 머무르며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일 터.
상당한 부잣집으로 보이는 곳이니, 아마도 부친이 경비 무사라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하인들이 이용하는 것으로 보이는 쪽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간 소종천은, 곧 백서향의 부친을 만날 수 있었다.
“아버지.”
“서향이냐. 으응? 같이 오신 분은 누구신지……?”
마구간에서 오물을 치우고 있던 백서향의 부친은, 소종천을 보며 낯선 이에 대한 경계심을 드러냈다.
‘어라. 뭐지?’
소종천은 소종천대로 당황하여 바로 입을 열이 못했다.
분명 무인을 만나게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무리 봐도 허드렛일을 하는 하인이다.
내공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으며, 다리 한쪽을 저는 것이 몸도 정상은 아니었다.
‘아니. 무인이 아닌 것이 아닌가?’
남자를 살펴본 소종천은 얼굴과 팔에서 희미한 흉터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고로 생긴 것이라 생각하기엔 자잘한 흉터가 적지 않다.
그리고 그건 분명 날붙이에 의해 생겨난 상처들이었다.
‘무림에 발을 들였던 사람은 분명한데. 혹시 단전이 망가져서 내공을 잃은 건가?’
일단 의문은 접어두고 대화부터 시도했다.
“저는 소림의 무인인 소종천이라 합니다. 서향이가 익힌 무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예? 소림? 그럴 리가…….”
태도를 보아하니 소림의 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떨떠름해하는 남자를 상대로 소종천은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며 긴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로 인해 궁금했던 사정을 상세히 알 수 있게 되었다.
백서향의 부친은 백무종이란 이름을 가진 이로, 그의 조부는 소림의 속가제자로 활동했었다고 한다.
소림오권은 나름대로 소림본산의 상승 무공에 속해 있기에, 어지간해서는 속가제자에게 전수되지 않는다.
사실상 속가제자에게 가르치는 것이 허락되는 최고수준의 무공인 소림오권이 백씨 집안에 전해졌다는 건, 백무종의 조부가 꽤나 소림과 연이 깊은 무인이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제법 잘나가던 무가였던 백씨 집안은, 소림의 멸문과 함께 몰락하게 되었다.
“조부께선 살아남은 소림의 무승들을 지원하며 재건을 위해 힘쓰셨지만, 결국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돌아가시게 되었지요. 그 와중에 부친께서도 변을 당하시고…….”
백무종의 부친 역시 그 유지를 이어받아 다른 속가제자들과 힘을 합쳐 재건활동을 했지만, 상황은 점점 악화되고 여러 가지 방해에 부딪히게 되었다.
거기에 백무종의 부친은 소림의 일에 신경 쓰느라 자식을 가르치는 데에 집중할 수 없었으니, 후손인 백무종은 제대로 무공을 익히지 못했다.
그 탓에 가문의 윗대가 가졌던 명성에 어울리는 무인이 될 수가 없었다.
“그래도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무공으로 밥벌이를 하고자 나섰지만, 현실이 만만치 않더군요. 주제에 맞지 않는 일을 받았다가 단전에 큰 부상을 입고만 탓에…….”
목숨은 간신히 건졌지만 결국 익혔던 무공마저도 잃게 되었다.
“그 와중에 안사람이 태생적으로 몸이 약했던 탓에, 서향이를 낳다가 난산으로 떠나고 말았습니다.”
경지가 낮다 해도 무인이 무공을 잃는 것은 모든 의욕을 잃을 만큼 끔찍한 일이지만, 어린 자식을 두고 삶을 포기할 수도 없으니 이런 허드렛일이라도 하며 살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
뭐 딴에는 눈물겨운 사정이긴 한데, 듣고 있던 소종천은 조금 지루해졌다.
솔직히 과거야 어땠는지는 알 바 아니고, 관심이 가는 건 앞으로의 일에 대한 것뿐이다.
‘문파를 재건하려면 제자도 필요하고, 어차피 나중에 심 사형을 만나기도 해야 하니. 아, 여자애라고 뭐라 하시려나? 에이! 뭐 상관없겠지.’
소림과 인연이 있는 아이라니 못 본 척하기도 그렇고, 저만한 재능이면 키워볼 만한 가치도 있다.
소종천은 백서향을 새로 만들어질 소림의 제자로 추천하고자 마음을 먹었다.
“보아하니 무공을 전하긴 했지만 제대로 가르치진 못하신 것 같은데.”
“몸이 이렇게 되기도 했고 제 배움도 짧았던지라…….”
백무종의 대답에 소종천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럼 따님을 저한테 넘기시는 건 어떻습니까?”
“무, 뭐요?”
소종천의 말이 너무 앞뒤 없이 간결했기 때문인지, 백무종은 얼굴을 심하게 일그러뜨렸다.
뽑기로 무림최강 14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