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Gacha RAW novel - Chapter 4
3. 만룡각의 비급(2)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두 사람은 멀어져 갔다.
“쩝, 저 자식은 뭐 피해를 준 것도 아닌데 지랄이야?”
다들 제대로 된 사문에서 지도를 받고 온 모양이니 우습게 보일만 하긴 했다.
‘그래도 자군이는 비웃는 기색은 아니었는데, 초영호 저놈은 내가 같은 조인 게 영 못마땅한 모양이네.’
소종천은 어깨를 으쓱이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인간관계야 언제나 마음대로 되는 일도 아니고, 딱히 저깟 녀석이 뭐라 하던 관심도 없다.
그보다는 지금은 제한 시간이 있으니 무공의 선택에 집중해야 할 때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허공에 글자가 튀어나왔다.
[임무 발생!]“엥?”
시야 구석에 새로운 이름의 창이 생겼다.
[임무]눌러보자 아래의 임무를 수행하라는 글과 함께 상세한 설명이 떠오른다.
[군계일학(?)] [100명 이상의 인원이 모인 자리에서 전원의 주목을 받으십시오.] [보상 : 감정서 7개]“뭔가 했더니 게임의 퀘스트인 거네.”
감정서 7개면 700은의 가치다.
그렇지 않아도 감정서가 필요하기는 했는데, 임무라는 것이 생겨나 다행이었다.
‘일일 보상으로만 재화를 얻는다면 성장 시간이 엄청 오래 걸릴 테니 이런 것도 있나 보네.’
그렇지만 임무가 생겼다고 해서 쉽게 보상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100명 이상의 다수가 모인 자리에서 한 명도 빼놓지 않고 모두의 주목을 받으라니.
‘언제 깰 수 있을지 모르겠네. 군계일학이라, 근데 물음표는 왜 붙어 있는 거야?’
난감한 표정으로 설명을 보던 소종천은 임무 창을 닫았다.
기다리면 기회는 언젠가 오긴 할 테고, 지금은 일단 무공서를 고르는 것이 먼저다.
검법, 창법, 도법, 부법, 곤법.
여러 병장기를 다루는 무공들이 대분류로 나뉘어 책장에 꽂혀 있다.
‘그래도 몸에 익은 권법을 보는 편이 나으려나? 아니, 하지만 아무리 무공을 익혔다 해도 맨몸으로 날붙이를 든 상대랑 싸우기는 좀…… 역시 무기술을 하나쯤 배워야 할까?’
고민하며 돌아다니던 차에 심법들을 모아둔 책장이 눈에 들어왔다.
“가만, 심법이라.”
청명토납공과 초영권을 죽어라 수련한 기억이 남아 있다지만, 사실 무공이라는 공부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하기는 어렵다.
어릴 적에 부친의 지도를 잠시 받은 것을 제외하면 제대로 된 사부도 없이 무공을 익혔기 때문.
다만 무공에 있어서 심법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안다.
‘무협지에도 보면 심법을 익히는 게 모든 무공 수련의 시작이잖아? 비유하자면 심장을 만드는 작업 같은 거니까.’
검법이니 도법이니 백날 익혀도 내공이 없으면 고수가 될 수 없다고 알고 있다.
기억상으론 청명토납공이 썩 대단치 않은 심법이라 되어 있으니, 내공심법부터 좋은 거로 바꾸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게 좋은 건지 봐도 잘 모르겠지만, 그거야 다른 무공들도 마찬가지고.’
딱히 뭘 익힐지 정해놓은 목표도 없기에, 일단은 내공심법이 적힌 서적들을 쭉 살펴보았다.
태극토납공, 백결심법, 삼양공, 대허심법.
손에 잡히는 대로 꺼내서 훑어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자리에 꽂아 넣기를 반복했다.
‘많긴 많은데…… 역시 뭐가 좋은지 잘 모르겠네. 심법은 아무거나 함부로 익히면 안 된다고 알고 있긴 한데.’
머리를 긁적거리며 서적들을 살피다가 뭔가 묘한 이름을 발견했다.
‘벽력공, 건곤심법, 반야신공, 현원기공…… 응?’
“반야신공?”
간간이 보던 무협 소설에서 많이 등장했던 이름이다.
구파일방의 수좌, 무림의 태산북두라 불리는 소림의 무공.
그것도 소림의 많고 많은 무공 중에서 최고의 내공심법 중 하나로 등장하지 않던가.
이름부터가 다른 것들과 달리 무려 신공이라고 되어 있다.
“뭐지!? 이거 진품인가? 설마…… 이런 건 소림사 내부에서 꽁꽁 숨겨져 있어야 하는 비급 아니야?”
꼴깍.
침을 삼키고 책을 꺼내어 펼쳤다.
정갈하지만 힘 있는 문체로 심법의 구결이 빼곡하게 적혀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은 정사 무림 연맹 직할 교육기관인 잠룡학관의 무공 서적을 보관하는 장소다.
길거리 약장수가 파는 물건도 아니니, 진본이 아닌 사본일지언정 가짜일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다.’
가문의 그저 그런 심법에서 절세의 신공으로 갈아탈 기회다.
다른 선택지를 찾을 이유가 없어 보였다.
‘딴 놈들은 왜 이런 걸 안 배우고…… 아, 나만 없는 집 자식인 건가? 다들 명성 있는 문파에서 오랫동안 수련한 무공들이 있을 테니, 근본이 되는 심법을 함부로 갈아탈 순 없겠구나.’
소종천은 반야신공의 비급을 품에 꼭 끌어안고 자리를 벗어났다.
두리번거리며 움직이다 보니 사서로 보이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장소가 눈에 띄었다.
“저기요. 대여 등록을 하는 곳이 여깁니까?”
“맞습니다. 소협이 마지막이군요.”
아직 반 시진도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다른 이들은 전부 등록을 마친 모양이다.
‘나처럼 서고를 살피던 사람이 꽤 있었는데…… 다들 이미 등록을 마치고 구경하던 거였나?’
“보자, 반야신공? 음?”
소종천이 내민 비급을 받아든 사서가 놀랍다는 듯이 눈을 치켜뜬다.
‘설마 이건 대여가 불가능하다고 하는 건 아니겠지?’
괜히 불안해하고 있자니 비급을 살피던 사서가 마저 말을 이었다.
“흐음. 대단하군요. 한번 등록한 서책은 허가가 떨어질 때까지 교체하지 못한다는 건 알고 계시겠죠?”
“네, 들었습니다.”
뭐가 대단하다는 건지는 모르지만, 혹시라도 안 된다는 소리가 나올까 조마조마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대로 등록하겠습니다. 비급이 훼손되지 않도록 주의하시고, 자리는 많으니 편한 곳에서 읽으시면 됩니다. 당연히 아시겠지만 만룡각 외부로 가지고 나가실 수는 없으니까, 퇴거 시에는 다시 이곳으로 와서 맡겨주셔야 합니다.”
“옙!”
등록이 완료되었다며 넘겨주는 비급을 빼앗듯이 받아들고는, 희희낙락하며 자리를 벗어났다.
‘좋아! 시작이 괜찮은 것 같네. 소림의 신공이라니, 제대로 건진 거겠지?’
인적이 드문 장소로 가서 자리를 잡은 소종천은 비급을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시진 뒤.
비급을 완독한 소종천은 웃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흐흐…… 뭐라는 거야. X벌. 더럽게도 어렵네.”
그냥 읽기만 했는데도 머리가 아파 온다.
차마 구결들의 뜻을 풀이할 엄두가 나질 않았다.
‘매번 찾아오기도 번거로우니 일단 기본적인 내기의 운용법만이라도 외워두자. 구결의 해석은 뭐…… 시간 날 때마다 공부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초반부에 쓰여 있는 진기 운용의 방법을 집중적으로 읽으며 암기하고 있자니, 사서 중 한 사람이 다가와 말을 걸어왔다.
“이제 곧 퇴거 시간입니다. 서적을 반납해 주십시오.”
“아, 벌써 시간이…… 알겠습니다.”
시간이 금방 지나갔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내기의 운용법만은 외운 것 같다.
비급을 반납하고 만룡각을 나선 소종천은 다른 생도들을 따라 다시 제2 연무장으로 향했다.
같은 시각.
지도 교관 추오명은 생도들이 등록한 무공의 기록지를 전달받아 확인하고 있었다.
“뭐야? 이 자식은?”
덤덤하게 기록지를 읽어 넘기던 추오명의 표정이, 두 개의 단어를 눈에 담자마자 흉하게 일그러졌다.
[소종천-반야신공]“설마 아니겠지. 담당자가 잘못 적은 모양이군.”
뚫어지게 기록지를 쳐다보던 추오명의 표정이 이내 풀어졌다.
사람이 일을 하다 보면 실수할 수도 있다.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이, 소림의 심법을 선택한 생도의 존재보단 합리적이다.
시간이 지나 만룡각으로 향했던 생도들이 다시 되돌아왔다.
“다 모였군.”
일반인이라면 모여든 인원의 수를 확인하느라 괜한 시간을 잡아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일류의 끝에 달한 고수인 추오명은, 쓱 한번 훑어보는 것만으로 208명의 인원이 전부 모여 있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었다.
생도들의 앞에 선 추오명이 입을 열었다.
“이제 중식 시간이니 길게 말하진 않겠다. 금일 유시(酉時)에 진행되는 생도 정신 교육은 전원이 필히 참석하도록 하고 그 외의 시간에는 자유롭게 활동하도록 해라. 특별히 별도의 지침이 있기 전까진 앞으로도 매일 손시(巽時)에 이곳으로 집합하며, 황룡단에 임무가 내려질 경우에는 각 과목의 수업 역시 일시적으로 중단된다.”
말을 멈춘 추오명은 이만 해산하라고 하려다 말고 무언가를 떠올렸다.
‘기록지의 오류를 수정해야겠군. 굳이 만룡각에 찾아가 실수를 지적하며 감정을 상하게 할 필요는 없겠지.’
“소종천.”
“예!”
“만룡각의 기록에 착오가 있던 모양이더군. 어떤 무공을 등록했지?”
“반야신공입니다!”
대답을 들은 추오명은 일순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소림의 내공심법인 반야신공을 말한 게 맞나?”
“네, 맞는데요?”
소종천의 대답에 주위가 소란스러워졌다.
“뭐야? 내공심법을 골랐다고? 뭐하는 놈이야?”
“소림의 무공이라니, 무슨 생각으로 그런 걸 선택했지?”
주변의 분위기가 이상해지자, 소종천은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뭐지? 왜들 이러는데?’
당황해하는 소종천에게 추오명이 쾌속한 신법으로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며 다가왔다.
“구할 수 있는 무공서는 전부 몰아넣은 장소가 만룡각이긴 하지만, 심법을 선택한 생도는 잠룡학관 역사상 한 손에 꼽을 수 있겠군. 하물며 그 소림의 신공절학이라?”
무인에게 내공심법은 걸음마나 다름없는 기초 중의 기초다.
아주 특별한 상황이 아니고서야 기존의 심법을 버리고 새로 심법을 익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리고 그 희귀한 경우에 속하는 소종천은, 추오명의 말에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신공절학이면 좋은 거란 소리 맞잖아? 근데 왜 잘못했다는 듯한 말투야?’
“반야신공이…… 혹시 뭐 금서라거나 그런 익히면 안 되는 종류의 무공입니까?”
“안 될 거야 없지. 그런데 굳이 기존의 심법을 버리고 성취를 얻기 어려운 공부를 하려는 이유가 뭔가? 그것도 잠룡학관에 입관해서까지 말이다. 불가의 무공은 이제는 가르침을 줄 스승을 구할 수도 없다는 걸 잘 알 텐데?”
반야신공은 신공이라는 이름이 붙은 만큼 대단한 상승 무공인 것은 맞다.
하지만 동시에 불교에 뿌리를 둔 무공답게, 불가의 가르침과 깨우침 없이는 진전을 볼 수 없는 무공이기도 했다.
게다가 그 난해함이란 오랜 수련을 쌓은 불제자들조차 고개를 젓게 만든다.
“스승을 구할 수 없다는 게 무슨 말씀인지…… 교관분들 중에 소림 출신은 없다는 겁니까?”
소종천은 추오명의 말에 의문을 표했다.
무림 연맹의 교관 중에 소림의 인물이 하나도 없을 리가 있나 싶었다.
‘천하공부출소림’이란 말도 있지 않던가.
진짜 스님은 없더라도 하다못해 속가제자라도 있어야 정상 아니겠나?
‘내가 봤던 무협 소설들이랑 뭔가 세계관이 다른 건가?’
소종천의 질문에 추오명은 인상을 쓰며 대답했다.
“소림이 멸문(滅門)에 가까운 타격을 입고 더는 무림의 일에 끼어들지 않겠다며 문을 걸어 잠근 지가 언제인데 그런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는 게냐? 이제 더 이상 무림에 무승(武僧)이 없다는 걸 설마 모른다고 하진 않겠지?”
‘엥?’
소종천의 입이 벌어졌다.
‘진짜야? 마교 때문에 엄청난 피해를 입은 세계관인 건 알았지만, 소림이 봉문(封門)할 정도였어? 미친…… 그래서 소림 최고의 절학이 학관 따위에 돌아다녔던 거야?’
대부분의 무협 세계관에서 정파의 최고봉에 우뚝 서 있는 소림.
그런데 아무래도 이 세상의 소림은 망했다는 모양이다.
뽑기로 무림최강 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