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Gacha RAW novel - Chapter 3
3. 만룡각의 비급
‘영상보다 어려 보이기는 하는데. 분명 같은 얼굴이야. 뭐지? 동료 영웅이라는 건 영웅 뽑기로 뽑는 게 아니었었나?’
뭐가 어떻게 되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마침 자리가 비어 있기에 남궁건의 앞자리에 가서 앉았다.
‘영상에 나왔던 인물들은 영웅 아니면 마인들이었지. 남궁건은 영웅들 중 하나고.’
뽑기로 얻을 수 있는 수많은 영웅 중에서 인트로 영상에 나온 영웅은 극히 소수에 불과했다.
그건 즉, 스토리와 관련이 있는 주요인물이거나 유저들이 위시 리스트에 넣고 싶어 할 아주 강력한 영웅일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쩌리 영웅을 굳이 영상에 넣진 않았을 테니. 별호 자체도 꽤 강할 것 같은 느낌이고. 어느 쪽이든 안면을 터 둬서 나쁘진 않을 것 같은데.’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소?”
뚫어지게 쳐다보는 시선을 느낀 남궁건이, 소종천을 향해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아. 그냥 왠지 낯이 익어서. 남궁건 맞지?”
“틀림없는 소생의 이름이오만.”
“창천검성?”
“……놀리는 거요? 분수에 맞지 않게 별호를 붙여준 분들이 있긴 하지만, 감히 내 주제에 검성이란 명칭을 쓸 수 있을 리가 없잖소.”
눈썹을 꿈틀거리며 불편함을 드러낸 남궁건이 따지듯이 물었다.
“초면인 듯한데 그런 농을 걸다니. 대체 누구시오?”
‘하긴, 15살짜리가 벌써 검성 같은 별호를 쓸 리가 없지. 괜히 생각 없이 내뱉었다가 관계가 틀어지게 생겼네. 근데 벌써 뭔가 별호가 있긴 한 거야? 대단하구만.’
소종천은 쓸데없이 함부로 입을 놀렸다 자책하며 변명을 늘어놓았다.
“난 소종천. 혹시 기분 상했다면 미안. 놀리려는 의도는 아니었어. 내가 관상을 조금 볼 줄 아는데, 크게 될 기운이 느껴져서 무심코 나온 말이야. 혹시 아나? 그쪽이 나중에 진짜 검성으로 불리게 될지.”
“……크흠! 이상한 학우로군. 어디 가서 그런 허황된 소릴랑 하지 마시오. 검성이라니! 으음, 창천검성……? 훗…….”
어떻게 잘 넘어간 듯하다.
그래도 듣기 싫은 소리는 아니었는지 남궁건은 얼굴을 살짝 붉히며 검성이란 단어를 되뇌었다.
‘영상에서는 40대 정도의 중년으로 보였는데, 창천검성의 어릴 적 시절이란 건가? 그럼 영웅 뽑기로 남궁건이 걸리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세계관이 뭔가 이상하네.’
여러모로 의문스러운 상황이었지만 당장은 알아볼 방법이 없다.
일단 통성명 정도는 했으니, 굳이 억지로 더 말을 붙이지는 않고 식사에 집중했다.
친해져서 나쁠 것 없는 인물 같지만, 오늘은 이만하면 되었다.
‘얼굴은 익혔으니 오며 가며 보일 때마다 인사나 하면 되겠지. 괜히 억지로 친해지려 했다가 악효과가 날 수 있으니.’
식사를 마친 소종천은 입관식에서 안내받았던 일정에 따라 제2 연무장으로 향했다.
길이 아직 익숙지 않지만 다른 생도들을 쫓아가기만 하면 되기에 헤매지는 않았다.
첫날의 수업은 전원이 참석해야 하기에 어차피 이동하는 방향이 다들 똑같았다.
연무장에는 사람이 많이 모여 있었지만, 소란스럽지는 않았다.
아직 서로를 잘 모르니 잡담을 떠드는 이가 드문 탓.
다들 나이가 어려도 무인들인지라,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적당히 오와 열을 맞춰 조용히 대기하고 있었다.
“얼추 모인 듯하군.”
생도들이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멀뚱멀뚱 서 있자니, 어느샌가 중년인 한 사람이 나타나 단상 위로 올랐다.
입관식에서 소개받은 기억이 있는 인물이다.
삼절권호 추오명.
불혹을 갓 넘긴 나이로 안휘성 일대에서 꽤 명성을 떨친 권사라고 들었다.
“반갑다. 어제도 봤지만, 다시 소개하지. 1년간 너희들의 담임 교관을 맡게 된 추오명이다. 일단은 지도 교관이지만 동시에 황룡단의 단주이기도 하지. 마찬가지로 너희들 역시 이제부터는 잠룡학관의 생도이자, 정사 연맹의 무력 집단인 황룡단의 단원이기도 하다. 이 둘을 잘 구분해야 할 것이다.”
추오명은 생도들의 면면을 쭉 훑어보며 계속 말을 이었다.
“선생과 제자의 관계로 내 수업에 참여하거나 지도를 받을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은 너희의 자유다. 하지만 황룡단 소속으로서 임무를 수행해야 할 일이 있을 때는 철저하게 상명하복 해야 한다는 뜻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임무에서의 항명은 즉결 처분이 가능하다.”
그 말대로라면 상황에 따라 이 인원들의 목숨 줄을 쥐게 되는 사람이라는 뜻.
살벌한 이야기가 나오자 분위기가 살짝 딱딱해졌다.
“다들 네 명씩 방 배정을 받았겠지? 그 인원이 하나의 조다. 황룡단은 네 개의 대로 편성되고, 대마다 열셋의 조가 들어가지. 다들 자신의 방이 몇 호인지는 기억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추오명의 말에 소종천은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같이 생활하는 네 사람이 한 팀이란 말이군. 우리 방이 분명 30호였지?’
“일 호부터 십삼 호까지의 방이 일 번대. 나머지 역시 같은 방식으로 사 번대까지 속한다.”
그 말대로라면 소종천의 소속은 삼 번대다.
“이제부터 각 대의 대주를 선출하겠다. 호명한 생도는 앞으로 나오도록. 일번대주 당진!”
“예!”
“이번대주 진유린! 삼번대주 남궁건! 사번대주 모용설호!”
이름이 불려 앞으로 나서는 이들 중 아는 얼굴이 섞여 있었다.
‘남궁건이 삼번대주야? 같은 대이니 자주 보겠네.’
“이상의 네 사람이 너희들의 대표다. 단에 관해 건의할 일이 있을 땐 항상 대주를 거치도록.”
“질문이 있습니다.”
추오명의 말에 누군가 손을 들며 목소리를 높였다.
자연스럽게 시선이 그쪽으로 모였는데, 누군가 했더니 같은 방에 속해 있던 이름을 듣지 못한 그 소녀였다.
“말해라.”
“대주는 무공의 수위로 뽑는 것이 아닌가요? 제가 저들보다 약하다고 생각되진 않습니다.”
불만이 가득한 얼굴.
날이 선 표정으로 앞에 나온 네 사람을 쏘아보는 기색이 꽤나 심상치 않다.
“흠. 이름이?”
“한사혜입니다.”
어제는 듣지 못했던 이름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한사혜의 대답에 추오명은 품에서 서류뭉치 같은 것을 꺼내더니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생활 기록부 같은 건가?’
정답이었다.
“여기 있군. 한사혜, 적사방 출신인가.”
“그렇습니다.”
적사방.
이름만 들어도 사파 계열 집단이란 느낌이 강하게 든다.
‘초영호는 잘 모르겠지만 장자군은 구파일방 중 하나인 점창이니 당연히 정파, 한사혜는 적사방이란 사파에서 왔구나.’
그리고 소종천은 이도 저도 아닌 그야말로 듣보잡 가문 태생이다.
제각기 다른 성향의 인원들을 한방에 두는 걸 보니, 확실히 출신을 따지지 않는 곳이긴 한 모양이다.
“입관 심사에서의 성적은 나쁘지 않았군. 확실히 무공의 고하만 놓고 보자면, 앞의 네 명과 별 차이는 없다.”
“그럼 어째서죠?”
“당연한 걸 묻는군. 입관 심사가 단지 무공만을 뽐내는 자리였던가? 종합 평가의 점수에서 무공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는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을 텐데?”
“…….”
“종합 점수의 순위로 대주를 선출했으니 더는 의문을 제기하지 말도록. 불만이 있다면 반기별로 행해지는 시험 평가에서 더 높은 점수를 거둬라.”
“칫…… 알겠습니다.”
성적순이라는데 더 할 말이 있을 수 없다.
수긍한 표정은 아니지만 한사혜는 입을 다물고 물러났다.
“수업 일정은 숙소에 전부 비치되어 있으니 알아서들 시간에 맞춰 강의 장소를 찾아가도록 하고, 오늘 해야 할 일은…… 만룡각의 개방 정도인가. 다들 우측을 봐라.”
추오명 교관은 손가락을 들어 생도들의 오른쪽 방향에 있는 커다란 건물을 가리켰다.
“저곳이 만룡각이다. 무림에 알려진 수많은 무공 서적이 전부 저 만룡각에…… 있지는 않지만, 어쨌거나 꽤나 이것저것 모아 놨지.”
‘만룡각? 어째 이 동네는 전부 이름마다 용이 들어가 있네.’
“일반 생도들은 기본적으로 정해진 기간 외에는 만룡각의 서적열람이 불가능하다. 다만 첫날인 오늘은 너희들에게도 열람이 허가되어 있지.”
추오명의 말에 몇몇 생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룡학관의 역사가 그리 길진 않지만, 신입생도의 모집이 처음인 것도 아니니, 이 자리에 있을 만한 사람들에겐 다들 알고 있는 정보인 것이다.
물론 그럴싸한 뒷배도 없고, 부친의 유공자 혜택이 아니었으면 입관이 어려웠을 소종천으로서는 처음 듣는 이야기.
“서적은 많지만 한 사람당 한 권만 대여가 가능하며 외부로 반출은 금지되어 있다. 한번 정한 서적은 다음 허가 기간까지 교체가 불가능하니 잘 선택하도록. 건물 내부에 보관소가 따로 있으니 그곳에 등록하고 필요할 때 가서 열람하면 된다. 두 시진 뒤에 다시 집합하도록. 가라!”
추오명 교관이 짝 소리가 나도록 손뼉을 치며 외치자, 모여 있던 생도들이 만룡각을 향해 우르르 움직이기 시작했다.
“……넌 안 가고 뭐 하는 거냐?”
“예? 아, 갑니다.”
멀뚱멀뚱 서 있다가 맨 뒤에 남은 소종천은, 추오명이 인상을 쓰며 말하자 느릿느릿 걸음을 옮겼다.
‘무공에 대해선 몸에 남은 기억으로밖에 알지 못하는데. 그나마도 가전 무공 몇 가지 외엔 정보가 거의 없으니, 뭘 알아야 필요한 걸 고르든지 말든지 할 거 아냐.’
십오 세에 잠룡학관에 입관하는 생도들은 대부분 출신 세가나 사문을 통해 무인으로서 기본적인 기반을 닦아놓은 이들이다.
이미 다들 자신만의 틀이 잡혀 있었고 입관하기 전에 귀띔을 받은 것이 있기에, 어떤 종류의 무공 서적을 선택할지 미리 정해놓고 움직이고 있었다.
예외가 되는 것은 소종천뿐.
‘두 시진이면 네 시간. 그리 긴 시간은 아니긴 한데…… 뭐 일단 어떤 책들이 있나 살펴볼까.’
많은 서적을 모아뒀다는 교관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만룡각의 중심에 들어서자 거대한 책장이 줄줄이 이어지며, 어디로 시선을 돌려도 보이는 것은 온통 책뿐이었다.
‘무공서만 모아 놨다는 데도 도서관이 따로 없네. 엄청나구만.’
두 시진은 매우 짧은 시간이었다.
책 제목만 읽어도 다 살펴보기 전에 시간이 초과될 것 같았다.
“무공이라.”
소종천은 자신이 익히고 있는 무공에 대해 떠올렸다.
청명토납공과 추영권.
청명토납공은 가문에 전해져 내려오는 하나뿐인 심법이고, 추영권은 권법과 신법, 보법이 하나로 묶여 있는 체술로 기초 수련용 무공이었다.
‘둘 다 그리 대단한 무공은 아니지.’
기억상으로는 분명 다른 가전 무공들이 더 있었다.
5세쯤부터 기초 무공인 추영권으로 몸을 단련하고 10세가 되면 오행연환검을 배우기 시작하며, 어느 정도 성취를 보인 후에는 청운절영검을 익히는 것이 가문의 수련 방법이다.
‘문제는 가르쳐 줄 아버지가 너무 일찍 돌아가셨다는 거지.’
소종천이 9세가 되던 해에 부친이 사망했다.
무공비급을 보관해두었다면 혼자라도 어떻게 익혀볼 텐데, 사고와 함께 소실되었는지 비급은 구경도 하지 못했다.
결국, 소종천이 배운 것은 청명토납공과 추영권 두 가지뿐.
‘가문의 대표 무공은 검법인데 검은 배우지도 못했네. 염병…… 그래도 기초 무공만으로 이런 곳에 입관할 정도로 수련을 열심히 하긴 한 모양인데.’
수련 무공이라지만 추영권은 저잣거리의 약장수들이 파는 삼류 무공보다는 뛰어난 묘리가 담겨 있는 권법.
하지만 일류라 부르기엔 아무래도 손색이 있다.
청명토납공은 그보다 더하다.
도가 쪽에 뿌리를 둔 것으로 추측되는 심법으로 정순한 내공을 쌓을 수 있게 해주지만, 솔직히 대체할 다른 심공이 없어서 집안에 전승되는 것뿐이지 대단찮은 심법이었다.
‘다른 무공을 배울 기회라. 어떤 걸 골라야 맞는 거지?’
“소 씨 친구잖아? 서적은 고른 거야?”
무공 선택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데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고개를 돌리자 같은 방 생도인 장자군과 초영호의 모습이 보였다.
“아? 아직. 너희는 벌써 고른 모양이네.”
두 사람 모두 비급으로 보이는 책을 손에 쥐고 있었다.
“이제 와서 사문의 무공 외에 다른 걸 주류로 삼을 순 없지만, 신법 쪽에 응용할 만한 게 있어서 집어왔지. 내가 익힌 신법은 빠르긴 해도 내기의 소모가 큰 편이라, 전투가 아닌 평범하게 이동할 때 쓰기엔 효율적이지 않거든.”
장자군의 대답을 들은 소종천이 자연스럽게 초영호에게로 시선을 건넸다.
너는 뭘 골랐냐는 의미였으나, 초영호는 눈을 마주치지 않고 고개를 돌려 소종천을 무시했다.
“어이, 영호! 아까 교관이 말한 거 못 들었어? 우린 그냥 방만 같은 게 아니라 유사시에 등 뒤를 맡겨야 하는 조원들이잖아? 딱딱하게 굴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야지.”
“흠.”
분위기가 나빠지려 하자 장자군이 중재하듯 말을 꺼냈고, 초영호는 못마땅한 기색이 담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보법을 조금 연구해 보려고 한다. 미리 알아본 것이 있어서 바로 찾아올 수 있었지.”
“그런가. 다들 뭘 고를지 이미 정해놓고 있던 모양이네.”
“종천! 너는, 아! 편하게 이름으로 불러도 되겠지?”
“물론이야.”
“그래. 너는 밖에서부터 미리 생각해 두지 않은 거야?”
이런 일정이 있는 줄도 몰랐으니 당연히 그렇다.
“몰랐거든. 이제부터 생각해 보려고.”
소종천의 말에 초영호가 눈살을 찌푸린다.
“몰랐다? 허, 사문이 어디기에 그런 정보도 못 받았지?”
“난 따로 사사받은 곳 없이 가전 무공을 익힌 게 전부라서.”
“쯧…….”
“하하, 역시 독특한 친구네. 우린 방금 등록을 마쳐서 이제부터 탐독의 시간을 가질 건데, 종천 너도 늦지 않게 선택을 하고 오라고.”
“어, 그래야지. 먼저 가.”
반응이 좋지 않은 초영호와 달리, 장자군은 웃으며 소종천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는 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쫓던 초영호가 소종천을 지나치다 말고 입을 열었다.
“같은 조라고 하나하나 챙겨줄 생각은 없으니 발목 잡지 않도록 해라.”
“……엥?”
말하는 꼴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꽤나 얕잡아 보이게 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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