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Repair RAW novel - Chapter 125
125화 혈사의 진실
나는 무엽에게 천가 놈의 용모파기를 그려주고 주의사항에 대해서도 단단히 숙지시켰다.
첫째론 지맥의 기운이 이상할지도 모른다는 것.
둘째론 영계종의 백리영이란 여인을 주의하라는 것.
특히나 둘째를 강조했다.
괜한 호승심을 일으키지 말고 마주친다면 자리를 피하라는 당부 또한 잊지 않았다.
천법축기를 이룬 내가 더 이상 비경으로 들어갈 수 없었기에 마련한 궁여지책이었다.
무엽이 천 공자와 마주치는 것이 힘들겠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내 마음이 놓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하나뿐인 친구이니 이 정도는 해야겠지.’
하지만 이 생각이 뒤바뀌는데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 *
여섯 명의 사형들과 인사를 나눈 다음 날.
나는 비경의 인솔자였던 자가 이사형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그리고 그의 경지에 대해서 어렴풋이 추측할 수 있었다.
대사형이 삼사형에게 훈계하듯 내뱉던 말.
– 삼사제도 이제 다음 경지에 올라야지. 언제까지 오행(五行)만을 붙잡고 있을 것이냐. 더 이상 스승님께 심려 끼치지 말고, 부단히 노력해서 힘이 되어드려야지.
다른 때와 달리 삼사형은 격식을 차리며 답했다.
대사형을 어려워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았지만 왜인지 진지한 목소리였다.
– 예, 대사형. 안 그래도 내력의 정기에 집중한지 오래입니다.
– 잘 생각했다. 너는 이미 극에 이른지도 오래일 터이니 곧 좋은 소식을 들려주겠구나.
중년의 나이로 짐작되는 대사형.
그는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 잔소리를 내뱉지 않았다.
여러모로 이곳은 예상 밖의 일이 자주 일어났다.
피가 터지고 죽음이 난무할 것이라 여겼는데, 알고 보니 사람냄새가 나는 장소였다.
삼사형의 대답은 노화순청에 오르기 위해 내력을 정순하게 가다듬고 있었다는 소리였다.
그 탓에 그는 잡스런 기운을 들이지 않기 위해 영약의 복용을 일체 꺼리고 있었다.
삼사형이 내상을 금방 털어낼 수 있었던 이유도 스승인 적운자가 몸을 직접 다스려준 덕분이란다.
그리고 이사형 역시 노화순청의 괴물이란 것을 알아챘다.
‘그러니 믿고 맡겼겠지…….’
비경으로 배정된 인솔자들은 모두가 장좌나 당주, 각주급의 결단 후기 수도자들.
노화순청의 무인이라면 그들에게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나머지 일곱이 모두 배신을 하고 뒤통수를 노린다 해도 능히 물리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삼사형의 밑인 사, 오, 육사형들은 순차적으로 조금씩 경지가 뒤쳐질 터였다.
‘나와 붙었던 육사형은 오기조원의 초입쯤 되겠구나.’
결단경과 대응되는 오기조원의 초입.
나는 고작 그 정도도 당해내지 못할 뻔했던 것이다.
물론, 그의 전법이 워낙 독특한 탓에 대응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래도 이젠 삼륜을 얻었으니 이야기가 달라진다. 흐흐흐.’
삼륜만 생각하면 기분이 좋았다.
뜻하지 않게 적운자에게 도움을 받은 것이었지만, 그래도 내 힘으로 개척해낸 것이지 않은가?
이제 멸선뢰를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륜의 힘으로도 백리영과 호각지세였다.
얼마나 더 강해졌을까.
그날, 삼륜을 얻을 당시 터져 나왔던 막대한 뇌기가 바로 멸선뢰의 힘이었을까?
곧장 시험을 해보고 싶었지만 꾹 눌러 참아냈다.
‘이곳은 아직 나에게 완전한 안전구역이 아니다. 일단 능력을 숨기는 것이 옳아.’
이사형과 대사형을 보며 생각했다.
내력의 기운이란 것은 애초부터 영력에 비해 현격히 부족하다.
하지만 내력과 영력을 구분할 수 없는 경지.
즉, 노화순청에 이르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때부턴 무공이 수도와 완전히 동등해지기 시작하고.
오히려 전투술에 기반을 둔 무공이 도를 닦는 수도공법보다 더욱 더 강력할지도 몰랐다.
적운자가 노리는 것도 이것이지 않을까?
하계에선 천인지경이 허락되지 않으니 황제를 물리치기 위해선 오직 무공만이 정답이란 소리였다.
도(道)를 닦는 수도(修道),
사람을 죽이는 무도(武道).
다만, 내가 궁금한 것은 ‘어떻게 해야 등봉조극(登峰造極)에 오를 수 있는가’였다.
고금제일의 무인, 무제(武帝).
오직 그만이 가능했던 불가사의의 경지.
천인들을 도륙할 수 있고, 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이다.
“아니면 천도원영도 답이 되겠지.”
“응? 천도원영? 그게 무슨 소리야?”
삼사형이었다.
그가 때마침 내 처소에 들렸다.
“아, 아닙니다. 사형. 무슨 일이십니까?”
“사제가 어제 스승님께 도움을 청했다며? 오늘 도와주신다고 하셨어. 모두들 준비하고 있으니 어서 밖으로 나와 봐.”
도움을 청했던, 천도금단의 뇌겁.
드디어 적운자가 나서준다는 소리였다!
* * *
사형과 함께 내원의 깊은 곳으로 향했다.
외원의 제자들이 모두 모종의 ‘준비’에 나섰다고 했다.
그 숫자가 무려 102명.
모두가 삼화취정의 고수들이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오기조원급의 사형 한명이 그들을 통솔하기로 되어 있었다.
102명의 고수들과 여섯의 초고수들.
그들이 합치면 108명이다.
그리고 팔대종문에는 백팔마검(百八魔劍)이라는 위명을 떨치고 있었다.
곧 있을 겁에 대비해 천무각을 에워싼 자들이 각자의 자리에 선 채 진법을 형성했다.
통솔자의 자리엔 삼사형이 자원했다.
아무래도 그는 나에게 마음의 빚이 있는 것 같았다.
천무각으로 오는 동안 내상이 심해보였기에 은연중에 그를 배려하긴 했었다.
초고수니까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다섯의 사형들이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한다고 했다.
“어떤 것을 대비한단 말입니까?”
“사실 우리 천무각이 여러 군데에서 미움을 사고 있어. 예전에 있었던 혈사(血史)… 들어보았겠지? 스승님에게 노조들 여섯이 덤벼들었던 사건 말이야.”
들어본 적이 있다.
약 일백 년 전 있었다던 그 사건이었다.
그 덕분에 적운자의 무력이 만천하에 드러났지 않은가.
궁금한 마음에 재빨리 답했다.
“자세히는 모릅니다. 들어볼 수 있을까요?”
삼사형이 고개를 끄덕인다.
워낙 유명한 사건인 탓에 별달리 비밀엄수가 필요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때 스승님께서 염마종의 장로 하나를 제압해 오셨거든. 그리고 활강시로 만들었고. 이건 알지?”
“예.”
“그 뒤가 문제야. 그 장로 년이 워낙 끗발을 날리는 가문 출신인 탓에 여기저기에 연줄이 짙었단 말이야. 그런 와중에 스승님께서 그 년을 납치해 일을 벌였으니 당연히 소란이 터지지 않았겠어?”
사형의 말에 따르면 그 장로의 연줄이 이곳 백혼종의 노조들에게까지 닿아있던 탓에 그 당시 그녀를 풀어주기 위해 전 방위로 뇌물이 오고갔다고 하였다.
“어떻게 됐겠어……? 배가 터질 정도로 영석을 구겨 넣으니 노조들의 무거운 엉덩이도 들썩이지 않겠어? 탐욕스러운 놈들이니 별 수 없지. 마침 명분도 저쪽에 있겠다, 안 그래도 눈에 거슬렸던 스승님을 손봐줄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나섰던 거야. 하하하…….”
그때 당시까진 적운자의 힘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 상태였다.
적운자의 성품 자체가 그다지 수도자들을 좋아하지 않기도 하였고, 무도의 길을 걷는 자답게 오직 자신의 힘을 갈고 닦고 있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원영에 이르러 노조의 신분을 얻은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
여섯의 노조들은 그의 힘을 얕잡아 보고 한 수 가르쳐주겠다는 듯 덤벼들었다가…….
“스승님의 검격 한번에 그놈들 여섯 모두가 패퇴했지. 크흐흐. 백락(百落)이라고 알지? 적운공의 최후 초식 말이야. 그 초식을 펼치자 그야말로 벼락줄기가 터져 나왔어. 여섯의 원영 노괴들이 모두 피를 토하며 나가떨어지는 광경. 하하하하하!! 평생에 걸쳐 못 볼 진귀한 구경거리였다고! 선두에 있었던 두 놈은 아예 몸뚱어리가 터져버렸고. 크하하하!”
한바탕 이야기를 쏟아낸 삼사형은 속이 뻥 뚫린 듯 시원한 표정을 지었다.
아닌 게 아니라 나도 기대감이 들었다.
청운까진 목격한 바 있었지만, 백락은 아니다.
오기조원일 때 허락되는 청운.
당연히 백락은 노화순청의 경지가 요구될 것이다.
덧붙이는 사형의 말에 따르면, 이론적으론 오기조원의 경지에서도 네 가지 운기(雲氣)를 모두 다룰 수 있기만 하면 백락 또한 가능하겠지만.
노화순청의 극한에 다다른 기운 통제력이 없는 한, 오히려 시전자 본인이 다칠 수 있다고 하였다.
통제되지 못한 네 가지 기운이 서로를 밀어내려는 성질 때문에 터져버리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그 때문에 적운자는 문하의 제자들이 노화순청의 경지를 이룩한 것이 아닌 이상 백락의 사용을 허락하지 않고 있었다.
“보고 싶네요. 백락이 얼마나 강력할지 궁금합니다. 원영기 여섯이 일격에 찢겨나갔다니…….”
그 위력을 상상하기도 힘들었다.
사형이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사제도 오기조원에 이르면 백락에 욕심이 생길거야. 그때 내 말을 기억해야 돼! 백락은 위험하다고……! 나도 오기조원에 막 올랐을 때 도전해봤는데… 기운 셋을 통제하는 것도 버거웠어. 검이… 터져버릴 것 같더라고. 뭐, 지금와서는 쉬워졌지만. 하하하.”
조언과 더불어 약간의 자기 자랑을 섞는다.
사형과 이야기를 나눌수록 그의 인간적인 성품이 참 마음에 들었다.
신이 난 사형이 말을 이었다.
“곧 보게 될지도 모르겠네. 사제를 돕기 위해서 모두가 나선 것을 보면 분명 청운의 힘만으론 힘들기 때문이겠지… 아마 오늘 백락이 모습을 드러낼 거야. 믿어봐.”
걸어가며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혈사가 있은 뒤부터 적운자는 그 누구도 무시하지 못하는 최강자의 반열에 올랐고.
그때부턴 거리낄 것이 없었기에 아예 드러내놓고 자신의 세력을 키워오고 있었다.
‘너무 세력이 커진 탓에 역모를 꾸민다고 오해받는 것일까?’
하지만 걸리는 점이 있었다.
그렇다고 일개 상인에게까지 알려질 정도일까.
아마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삼사형이 장난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그거 알아?”
“말씀하십시오. 사형.”
이미 삼사형의 이야기보따리가 터진지 오래다.
지금은 적운자도 말릴 수 없다.
“아, 어? 그래. 하하하. 사실 스승님께선 그때 범인들을 위해서 나선 것만이 아니야. 다른 이유가 있었다고. 바로… 대사형을 위해서야.”
“……?”
내 얼굴이 의문으로 물들자 삼사형이 만족한 듯 웃었다.
“그 염마 년 때문에 하필 대사형의 친족들이 혈석 때문에 희생되어 버렸거든! 그 사실을 알고 대사형이 수련을 하던 도중에 주화입마에 들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어. 그래서 스승님께서 나서신 거야.”
사형의 말은 쉴 새 없이 이어졌다.
나도 흥미가 돌아 집중한 채 경청했다.
“당연히 모든 사형제들은 스승님을 말렸지. 염마종과 사이가 틀어지면 어찌될지 모르니까… 심각한 경우엔 전쟁이 일어나는 것도 이상하지 않아. 하지만 그때의 스승님은 그 누가 와도 덤벼들 것 같은 기색이었어. 염마 년을 제압한 뒤에 죽이지 않고 그렇게 심하게 응징했던 것도 그 이유에서야. 활강시로 제련해 영원의 고통을 주는 게 목적이었거든. 크크크.”
그리고 이어진 말에 나는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활강시를 대사형에게 선물로 주시더군! 쾅!! 그때 정말로 충격이었단 말이야.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원수를 선물로 주다니… 정말 최고의 복수가 아니겠어? 그랬더니 어떻게 됐는지 알아? 주화입마에 걸렸던 양반이 곧바로 정신을 되찼았어……!! 정말이지 그때 그것을 본 뒤론 나는 스승님께 진정으로 마음을 바치고 있다. 사제도 이것만은 기억해줘.”
아마 내가 줄곧 적운자에게 벽을 세우던 것을 지적하는 것일 터.
삼사형은 내 능력을 알아보곤 자신들에게 진정으로 합류해주길 원하고 있었다.
주화입마를 벗어던진 대사형과 적운자는 그 길로 염마종의 영역에 쳐들어갔고, 흉수의 가문을 찾아내 닥치는 대로 몰살시켰다고 했다.
그렇게 해야 대사형의 마음 속 깊이 자리 잡은 심마가 가라앉을 수 있을 테니까…….
나도 생각에 잠겼다.
이곳에 오고 나서 적운자의 색다른 면모를 여럿 발견했다.
적운자가 나쁘고, 성격이 더럽고, 두이를 납치하며 몸값이라며 기화초를 던져준 미친놈이라지만…….
자신의 제자가 피해를 입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나나서는 호쾌한 면모도 있었다.
그는 그런 광인(狂人)이었다.
내겐 깊은 감명을 주었다.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그런 사람이라면 괜찮을지도…….’
기댈 곳 하나 없던 이 세상에서.
어쩌면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자가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