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108
107화 미래를 위한 포석(1)
양쪽 모두 뜬금없는 제안을 받은 것이기에 일단 자리를 파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감정적으로 행동해선 안 된다는 백진성 아저씨의 조언 덕분인지 주소란이란 소녀 역시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하는 모습이었다.
나는 나대로 현재 상황에 대해서 가늠해 보았다.
“자질은 있어 보였죠?”
[주소란이란 여아를 말하는 거냐?]“예.”
[뭐, 자질‘만’이라면. 심신을 단련하지 않은 사람이면 개 짖는 소리에도 기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백진성이란 녀석 수준이면 기세만으로도 사람을 기절시킬 수 있지. 어느 정도 손속에 사정을 두긴 했다만, 그 기세를 접하고도 버틴 것은 평가해 줄 만하구나.]사람은 위급한 순간이 되었을 때 본성이 드러난다.
대부분 혼란에 빠져 허둥대지만, 일부는 맞서 싸우기 위해 뭐든 하려 한다.
주소란은 후자였다.
[맡아 볼 생각이냐?]“이전부터 생각하던 게 있거든요.”
주소란 소저를 돕는 것은 부차적인 것이다. 어느 의미로 이용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내 경우는 무척 예외적이지만, 일반적으로 무공이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한 계단 한 계단 쌓아 가야 하는 것이다. 당연히 기초가 비틀려 있으면 높이 쌓아 올릴 수 없다.
내 장기적인 목표 중 하나는 현재 잘못된 무공의 흐름을 바로잡는 것이다.
실제로 지금까지 접해 본 무공들은 어딘가 하나씩 비틀려 있다.
구파는 물론이요, 마교까지.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지난한 길을 걸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을 꼽자면 ‘실적(實績)’이다.
파급력이라면 구파의 무공이 더 영향력 있다.
하지만, 구파 무공들은 대부분 문외불출의 절기다. 윗물이 아래로 내려오지 않는다.
또한, 구파는 무공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어지간해서는 굳어진 사고를 바꿀 수 없다.
다시 말해 내가 무공을 재정립하여 퍼트렸을 때 구파보다는 표국 같은 실질적인 곳을 통하는 것이 유효할 수밖에 없다.
보여 주고 증명해야 한다.
고인물들을 뒤엎을 만한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이는 사부님들에 대한 보은(報恩)이기도 하지만, 사실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내 무공 성취도를 생각하면 갑작스럽게 비명횡사만 하지 않는다면 무난히 천상에 오를 것이다.
문제는 진한 먹물 같은 천상의 근무 환경에 대해 듣자니 어떻게든 이를 개선할 필요가 있었다.
그 천옥(?)에서 허우적거리고 계신 사부님들을 위해서라도!
내 만수무강을 위해서라도!
천상에 올라가기 전까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근무 환경(?)을 바꿔 놔야 한다.
‘범각 녀석은 당연히 끌어들여야 할 거고…….’
삼양현에 무관을 차리기 위해 파견을 나왔다고 했다.
소림의 취지가 그렇다면 적극적으로 이용해 주는 것이 예의이자 범절이다.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된 무공을 심어 잘 키운다면, 차후 소림의 체질 개선에 앞장세울 수 있을 것이다.
지난할 구파에 대한 최적의 실적이 될 것이다.
“한 명이라도 더 천상으로 보내려면 뭐든 시도해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장삼풍 사부가 감동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그리고 금방 나와 같은 생각에 다다르셨다.
[그렇구나. 표국을 통한 대중화라……. 내가 세상에 태극권을 퍼트린 것과 비슷한 거라 보면 되려나?]“좀 더 실전적인 면모가 있긴 해야겠지만, 꾸준히 수련하는 것으로 수련자의 자질을 싹틔울 수 있는 무공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알았다. 적당히 만들어 보마.]장삼풍 사부가 흔쾌히 받아 주셨다.
말만 하면 필요한 무공이 딱딱 나온다.
무공이라는 영역에 있어 사부님들의 존재는 사기나 다름이 없었다.
그렇게 내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했을 즈음.
“잠시 시간을 내어 주실 수 있으신지요.”
주소란이 나를 찾았다.
***
대화하기 편한 자리를 찾아 주소란과 얼굴을 마주했다.
협조하는 방향으로 마음을 정하긴 했지만, 저자세로 숙이고 들어갈 필요는 없다. 그래서도 안 되고.
나름의 목적이 있는 만큼 이를 관철하기 위한 영향력은 가져야 한다.
때문에 일단은 도도하게 행동했다.
나를 살피고 관찰하던 주소란이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해 봤습니다. 무엇을 제시하는 게 좋을지. 하지만 무엇도 부족하다는 생각만 들 뿐이었습니다. 저희에게 재물이 있긴 하나 소협을 꾀어낼 만큼 많지는 않고, 나름 무공이 있으나 소협의 눈에는 차지 않을 듯싶고. 좀처럼 답이 나오질 않더군요.”
제안을 위해 내어줄 수 있는 것들을 열심히 생각해 본 모양이다.
“해서 묻고자 합니다. 저희가 소협을 설득하려면 무엇을 내놓아야 할까요?”
나쁘지 않은 접근이다.
[허무맹랑한 제안이나 어설픈 제안을 던지는 것보단 낫군.]“그러네요.”
백진성 아저씨의 말을 듣고 성장한 걸까?
확실히 싹은 괜찮아 보인다.
어쨌거나 덕분에 말을 꺼내기가 편해졌다.
“재물도 무공도 필요 없습니다만, 나름 뜻을 세운 바가 있어 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 그러신가요?”
전혀 방법이 없다는 말이거나, 들어줄 수 없는 요구가 나올 거라 생각하고 있었는지 주소란이 화색이 되었다.
“지금 이후로 명운표국은 제 말에 무조건 토를 다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제가 지시하면 명운표국은 따릅니다. 이게 조건이라도 응하실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내 말을 들은 주소란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 말씀은…… 그러니까, 절대복종을…… 원하신다는?”
“예.”
잠깐 위험한 상상을 했는지 주소란이 자신도 모르게 한 손으로 반대편의 팔꿈치 부근을 움켜쥐었다.
보통 위협을 느꼈을 때 팔꿈치나 목을 매만진다.
예를 들어 정조의 위기를 느꼈을 때라든가.
[쟤 방금 무슨 상상했을 것 같니?]갑자기 유쾌하게 치고 들어오는 장삼풍 사부에 나까지 이상한 생각이 들 뻔했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명일서란 중년인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네놈이 그리 잘났어? 너희가 그리 잘났냐고?”
백진성 아저씨에게 당했던 일을 가슴에 담아 두고 있었나 보다. ‘너희’라는 단어에 짙은 감정이 담겨 있었다.
‘자격지심에, 의심인가?’
나를 보고 있지만, 나를 모른다.
“저를 어떻게 생각하시는데요?”
“헛소리와 허풍으로 가득 한 애송이!”
“거기부터인가요.”
무림에 돌고 있는 내 소문을 정작 나는 듣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해낸 일이 퍼지고 있다면 이런 반응이 이해가 된다.
나만 하더라도 내 소문을 들었다면 믿지 못할 거다.
나라는 존재가 규격 외인 것이다.
일단 이것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대가를 지불하기 전에, 무엇을 사려 했는지 알아 두는 것도 필요하겠죠.”
이런 성격은 말로 설득이 불가능하다.
직접 보여 주고 증명해야 한다.
“나갈까요? 근처에 괜찮은 공터가 있는데.”
“바라던 바다!”
한판 붙어 보자.
명일서란 중년인은 보이는 성격대로 거부하지 않았다.
***
갑자기 무기를 맞대는 상황에 당황스러운지 주소란은 잔뜩 얼굴을 굳혔다.
무력감도 느껴지는지 몇 번이나 바지를 움켜쥐기도 했다.
그런 끝에 꺼낸 말은 애처롭고 무력했다.
“제게는 소중한 분입니다.”
자주적인 의견이 없는, 그저 부탁.
“괜찮습니다. 저런 사람, 싫어하진 않아요.”
나는 주소란을 향해 웃어 보였다.
‘딱히 좋아하지도 않지만.’
사부님을 만나기 전에 나는 무당파에서 가장 밑바닥이었다. 늘 주변을 신경 쓰고 살펴야 했기에 사람을 관찰하는 법을 배웠다.
할아버지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내 나름의 기준에서 본다면, 명일서는 감정이 계산보다 앞서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단점도 크지만, 장점도 크다. 손익 계산을 하기 전에 감정적으로 판단을 내리기에 잘만 대우해 준다면 절대 배신을 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의리에 목숨을 거는 사람이다.
지금만 봐도, 망한 거나 다름없는 명운표국을 어떻게든 해 보려 하고 있지 않은가.
중책을 맡기긴 힘드나, 현재 부실한 명운표국에서는 나름의 구심점은 될 수 있으니 어떻게든 끌고 가야 한다.
대신 전제 조건이 있다.
이런 사람을 쓰려면 고삐를 확실하게 잡아야 한다.
마음으로 굴복을 시켜야 한다.
다행히 좋은 방도가 있다.
“자, 그럼.”
이내 적당한 공터에 다다르자 몸을 돌려 손을 들어 올렸다.
“오시죠?”
“오냐! 각오해라!!”
명일서가 허리춤에서 박도를 꺼내 기세 좋게 달려들었다.
몸이 앞으로 기울어져 보일 정도라 몸을 내던지는 것처럼도 보였다.
그러면서 두 손으로 잡은 박도를 몸 뒤에 꼬리처럼 달고 달렸다.
잔재주다.
몸으로 칼날을 가려 간격을 흩트리는 수작이다.
기세를 앞세워 칼날을 숨긴 수작을 가리고 있지만, 몸을 앞으로 내세워 노출시킨 만큼 위험도도 높다.
목숨을 칼날 위에 올리고 싸우는, 실전에서 잔뼈가 굵은 자들의 방식이었다.
“흐압!”
다섯 걸음 정도의 거리를 두었을 때 비로소 칼날이 튀어나왔다.
달려온 기세를 담아 휘두른 참격이 코앞을 지나갔다.
“흐럇! 흐랴럇!”
기합을 내지를 때마다 칼의 궤적이 변한다.
도(刀)는 베는 무기다.
칼끝이 그리는 궤적은 언제나 완만한 곡선을 그린다.
좌우로 번갈아 휘두르며 내 영역을 헤집듯 베어 왔다.
화락! 사사삭!
‘확실히 실전에서 다듬은 칼이네.’
수련을 쌓은 흔적이 있지만, 깊이를 추구하기보단 상대를 속이는 기교에 치중한 칼질이다.
가장 단적으로 어깨의 움직임을 들 수 있다.
어깨는 모든 공격의 시작이다.
어깨를 보면 상대가 어떤 공격을 뻗을지 알 수 있다.
하물며 명일서는 박도를 몸 뒤로 숨긴 채 달려들었다. 다시 말해 어깨를 앞으로 돌출시켰다는 소리다.
한데, 칼을 휘두를 때마다 명일서는 어깨의 움직임을 묘하게 비틀었다.
어깨의 움직임을 보면 횡으로 칼을 휘두를 것 같은데, 정작 튀어나오는 칼은 아래의 사각을 파고드는 방식이다.
칼날 앞에 몸을 던지는 대담함을 보이고 있지만, 결국 상대를 속여 이득을 취하는 방식이다.
‘삼류라면 통한다. 이류는 애매하고. 일류라면 칼을 뻗기도 전에 목이 날아가겠네.’
하지만, 내게 통할 리는 만무하다.
쏟아지는 공격을 일정한 간격으로 피하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피하기만 할 거냐!”
아마 그 사실은 명일서 본인이 더 잘 알 거다.
일방적인 공세를 취하고 있다지만, 내 털끝 하나 베지 못했으니까.
저 외침은 두려움과 답답함의 표출이다.
“볼 건 다 봤으니 피하기만 하는 건 여기까지 하죠.”
“큭!”
나는 뒤쪽으로 크게 도약하여 물러났다. 능운금광보를 사용하진 않았지만, 명일서의 눈에는 순식간에 사라진 거처럼 보였을 거다.
거리를 확보한 나는 허리춤의 송문고검으로 손을 가져갔다.
스릉.
뽑히는 검.
리이이이잉!
들려오는 울음소리.
검집에서 나온 검이 왜 이제야 꺼내 주냐며 투정 부리듯 울음을 토해낸다.
“……검명(劍鳴)?”
“지금부터 보여 줄 것은 숙제입니다.”
장소월 소저의 검법처럼 지독히도 깊이 있고 짜임새 있는 무공을 상대로는 할 수 없는 짓이지만.
“두 눈 뜨고 똑바로 보세요.”
앞의 상대라면 할 수 있다.
“……부탁합니다, 사부님.”
[오냐.]호가호위(狐假虎威)하는 방법이긴 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