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113
112화 독해졌구먼, 우리 제자
‘좋은 기회라고 해야 하나?’
명운표국에 대해 제대로 파악할 기회다.
명운표국을 무공을 개선해 나가는 교두보로 삼을 생각이었지만, 문제가 많은 곳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안 그래도 장대한 시간을 들여야 하는 계획이다.
쓸데없는 일에 심력을 낭비할 생각은 없다.
그저 인연이 닿았기에 손을 내밀어 줬을 뿐이다. 다른 방법을 찾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있다.
허도진인을 통해 새롭게 연이 맺어진 무당파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고, 범각을 내세워 소림을 움직이는 방법도 있다.
다만, 시작부터 구파를 통할 경우 내가 전하고자 하는 진정한 본질이 외부의 간섭에 의해 흐트러질 수 있기에 선택지에서 제외했을 뿐이다.
한데, 이곳 명운표국에서 내 영향력에 간섭해 올 작자들이 보였다.
두목 놈의 발언에 발끈하고 나서는 주소란의 외가 친척들이 그들이다.
‘확인해 봐야겠어.’
사람은 구석에 몰렸을 때 본질이 드러난다.
그걸 보고 나도 다시금 선택을 해야 할 것 같다.
이들을 버릴지, 취할지.
“그럼 우선…….”
내 가정이 맞는지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확보한다.
저 두목 놈을 자극하면, 주소란의 외가 친척들이 본색을 드러내게 할 수 있다.
진짜 대가리 깨지기 전에 막아야 한다.
범각의 선언처럼, 저 두목은 당장 부처님 되기 직전이다.
지체할 여유가 없어 바로 몸을 움직였다.
금강부동신법의 요결이 들어가 있는 능운금광보는 큰 움직임 없이도 단숨에 거리를 제압하는 능력이 있다.
내 움직임을 꿰뚫어 보지 못하는 수준의 인물이라면 이형환위 수법을 펼치는 것으로 착각할 수도 있다.
탕!
대가리를 내려찍으려는 육중한 말의 발굽을 쳐내자 쇠로 된 벽을 치는 듯한 소리가 났다.
쳐낸 말의 무게를 옆으로 흘려내는데, 다른 힘이 개입해서 내 움직임을 막았다.
“뭐야, 왜 껴들어?”
쳐낸 말의 무게중심을 기울여 다치지 않도록 안전하게 받아서 땅에 내려놓을 생각이었는데, 범각이 다시 회수해 갔다.
히이이이잉!
육중한 말을 이제는 제 수족처럼 다루는 범각의 손놀림에 말이 구슬픈 울음을 토해냈다.
쟤도 주인 잘못 만나서 고생이 많다.
“잠깐 물어볼 게 있어서 그래.”
“……날 방해하겠다는 거네?”
“아마도?”
내 대답에 순간 범각 놈이 눈빛을 번득였다.
“안 그래도 니 대가리가 더 탐나던 참이다!”
완전히 눈이 돌아갔다. 눈에 보이는 게 없는 모양이다.
“으라랏!”
히이이이이이이이잉!
그리곤 저 육중한 체구의 말을 두 손으로 휘휘 휘둘렀다.
[항마곤……이구나.]달마 사부가 바로 알아보시고는 한숨을 내쉬셨다.
범각은 소림 무공 중 봉술의 수법으로 말을 휘두르고 있는 모양이다.
[푸훕! 마공(馬功)으로 펼치는 항마곤……. 풉!!] [허허허…….]웃음기가 가득한 장삼풍 사부의 평에, 할 말을 잃은 달마 사부의 웃음소리가 공허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좀 웃겼지만, 차마 웃을 수가 없었다.
[얼른 끝내라. 저러다 이상한 거라도 사방에 뿌리면 낭패가 아니냐.]“…….”
이제는 내 얼굴이 굳어질 차례였다.
말은 겁이 많은 동물이다. 저렇게 곤봉 다뤄지듯 휘둘러지면 겁먹은 말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끔찍한 사태를 막기 위해 앞으로 한 걸음 내디딘다.
내 손에는 장삼풍 사부가 가르쳐 주신 태극권의 한 수가 담겼다.
터억! 퉁!
비껴내고, 담아 버틴다.
두 가지의 흐름을 한 수에 담아 벼락처럼 내리치는 말의 몸을 받아냈다.
그렇게 말을 잡아 고정시킨 다음은 간단하다.
탓! 퍼억!
가볍게 치고 들어간 내 발끝이 범각의 복부에 닿았다.
“크흡!”
“자라, 좀.”
말을 내려놓고 범각에게 파고든다.
복부를 맞고 허리가 굽혀진 범각의 머리에 내 손에 올라갔다. 잡을 것이 없는 미끈한 머리에 올라간 내 손이 우악스럽게 뒤통수를 움켜쥐고 땅에 박았다.
쿠웅!
“꺽!”
여정에 쌓인 피로도 그렇고, 체력적으로도 한계였나 보다.
한줄기 비명과 함께 범각의 의식이 날아갔다.
가볍게 범각을 제압한 뒤 몸을 돌리자 일어나지도 못한 채 뒤로 물러서고 있는 두목 놈이 있다.
꾸욱!
“그냥 가면 섭하지. 댁 때문에 동료도 재웠는데.”
“끄윽!”
나는 두목 놈의 가슴을 발로 짓눌렀다. 말 뒷발에 차였던 곳이다.
뼈가 간당간당한 상황인지 발에 눌리는 감각이 미묘했다.
두목 놈이 고통에 겨워 신음을 흘리는 모습에 나는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
좋은 것을 알았다.
이자에게 고통은 매우 유효한 수단이다.
뚝!
“끄아아아아악!”
간당간당하던 부분을 아예 부러트려 버렸다.
싸늘한 미소는 덤이다.
개인적으로는 좋은 표정이었다고 생각되었다.
“내가 물을 때만 입을 열어, 아저씨. 듣기 싫은 비명 따위를 지를 때마다 뼈를 하나씩 분질러 버릴 거야.”
“……읍! 흐읍! 흡!”
두목 놈이 필사적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 우리 제자 많이 무림인다워졌는데?]‘그거 칭찬 맞죠?’
귀가 좀 간지럽다.
뭐, 좋게 생각하자.
“아저씨 뭐 하는 사람이야?”
“도광조. 고리……대금업자입니다.”
“아하.”
조금 전까지 저 중년의 미부를 겁박하며 위풍당당하던 모습은 간데없고 말 잘 듣는 삼류 파락호만 남았다.
무얼 물어도 잘 대답해 줄 것 같다.
스스로를 도광조라 소개한 고리대금업자는 고통을 참으며 나를 똑바로 주시했다. 오히려 질문을 바라는 것처럼 보였다.
빠르게 답할 것을 답하고 편해지고 싶어 하는 모습이다.
그때였다.
“이 악적! 죽엇!”
대뜸 품에서 단검을 꺼내든 자가 내가 짓누르고 있는 도광조란 자에게 달려들었다.
제법 매서운 기세였지만, 그래 봐야 무공을 익히지 않은 민간인의 칼질이다.
가슴을 노리고 달려들던 단검의 칼날 앞으로 태극선을 돌린다.
“우앗!”
칼날의 방향을 비틀어 힘의 중심을 뒤트는 것만으로 상대는 몸의 균형을 잃고 나가떨어졌다.
기세 좋게 달려든 본인의 힘이 그대로 되돌려졌기에 땅바닥을 두 바퀴나 구른 뒤에야 몸을 멈출 수 있었다.
사내는 내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왜 그 악적을 보호하는 건가!”
“그러는 댁은 왜 이 고리대금업자의 입을 막으려는 거요?”
“그야……!”
답이 궁한 사내는 붕어처럼 입을 뻐끔거렸다.
그사이에 도광조가 다급하게 외쳤다.
“왜냐하면, 내게 찾아와 명운표국의 재산을 강탈하자 제안했기 때문이지!”
“입 닥쳐라! 어디서 그런 망발을!”
“이판사판이다! 이 쓰레기 새…… 아악!”
뚜욱!
악에 받쳐 소리를 지르던 도광조의 입에서 뼈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고통스러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갈피를 잡기 어려운지 도광조의 눈이 고통과 혼란으로 뒤엉켜 흔들렸다.
나는 도광조를 밟은 발에 힘을 주며 친절히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내가 물을 때만 입을 열라고 했던 것 같은데? 내가 입을 열라고 했던가?”
“크으으윽!”
고통에 몸을 부들부들 떠는 도광조의 다리 사이가 축축하게 젖었다.
[지렸네.] [독해졌구먼, 우리 제자.]고통스럽고, 치욕스럽고, 화가 나고, 미칠 것 같고. 온갖 감정이 안에서 소용돌이치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다.
하지만 내 지시대로 끝내 입을 열진 않았다.
‘됐네.’
잘 길들여진 도광조를 보며 슬슬 물려 둔 재갈을 풀어도 괜찮다고 판단했다.
‘내가 움직인 이유는 어디까지나 심증이었으니까. 이런다고 뚜렷한 증거가 나오진 않겠지만, 본질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차라리 이런 쪽이 낫지.’
지금이라면 대놓고 헛소리는 하지 못할 거다.
“좋아. 알고 있는 거 싹 다 풀어 봐.”
“흐아…… 흐아아악! 이게 다 저 개자식들 때문입니다! 저 자식들이 나를 먼저 찾아왔다고요! 저 새끼들이 하자는 대로 했을 뿐이라고요오오!”
되는대로 분출해 버리는 도광조에게선 광기마저 느껴졌다.
그 외침에 담긴 감정이 얼마나 짙었는지 주변이 한순간 조용해졌을 정도였다.
“거짓말하지 마! 이 천하의 악적이!”
“지가 살라고 사람을 모함해!”
더 이상 내버려둬선 안 된다는 위기감에 주소란의 외가 친척들이 살기 어린 눈으로 도광조에게 달려들려 했다.
하지만 그들의 시도는 앞을 막아서는 이들로 인해 무산됐다.
“좀 더 들어보죠.”
“다리 부러지기 싫으면 그냥 가만히 있으란 소리야.”
장소월 소저와 백무호가 흉흉한 눈으로 그들의 앞을 막았다.
그 뒤에는 주소란과 명일서가 일그러진 얼굴로 노려보는 중이다.
‘예상했던 게 맞았다고 해야 하나.’
“막연하게 남 탓만 하지 말고 자세하게 말해 봐. 누가 들어도 납득할 수 있게.”
“며, 며칠 전에 저놈들이……!”
꾸욱!
“아악!”
“자세하게 말하라니까. 며칠 같은 애매한 소리 하지 말고. 언제? 어디서? 누가? 어떻게? 육하원칙 몰라?”
“나, 나흘! 나흘 전 오시(午時:11시~13시)쯤 제 거처에서!”
잔혹한 내 행동에 주변에서 구경하는 사람들이 질린 눈이 되었다. 두려워하는 시선도 섞여 있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사람들이 도광조의 말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게 됐다는 거다.
지금이라면 어지간히 허무맹랑한 말을 해도 믿을 정도다.
“계속해. 자세하게.”
“저놈들, 저놈들이 날 찾아왔습니다! 우 부인 뒤통수를 치고 싶어 안달이 난 쓰레기 같은 것들이! 저것들이 무슨 제안을 했느냐면…….”
그 뒤로 나온 이야기는 예상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다.
고리대금업자인 자신을 찾아온 그들이 있지도 않은 빚을 만들고 장부를 조작했다는 이야기였다.
시시콜콜하게 모조리 말하라고 했더니 사실은 자신도 저들의 뒤통수를 치고 명운표국의 재산을 모조리 꼴깍해 버릴까 했다든가, 주변 사람을 핍박해서 우 부인까지 자신의 손아귀에 넣을 생각이었다는 말까지 모두 털어놓았다.
하나하나가 듣는 귀를 씻고 싶을 만큼 더러운 내용들이라, 고문에 가까운 처사를 당하고 있는 것에 일말의 동정을 보내던 사람들의 시선도 어느새 차갑게 식었다.
지금이라면 도광조를 밟아 죽여도 박수를 치며 환호할 것 같은 분위기다.
‘저쪽은 그 이상이고.’
포위당한 주소란의 외가 친척들은 도광조보다 더한 놈들 취급을 받고 있었다.
“증거! 증거 있어? 저 새끼 말이 사실이라는 증거 있냐고! 그냥 우리한테 다 덮어씌우는 거잖아!”
주변의 분위기에 압박을 받던 중 가장 먼저 단검으로 도광조를 찌르려 했던 자가 발악하듯 소리쳤다.
하지만 그의 말에 동조하는 사람은 없었다.
“저 정도면 덮어씌운다고 하기보다 자복(自服)에 가깝지 않아?”
“덮어씌울 생각으로 한 말이면 제 잘못은 쏙 빼고 이야기했겠지.”
“쯧쯧쯧. 이 상황이 되어서도 거짓말이나 하고 있어.”
“우 부인만 안 됐지. 저런 놈들이 가족이라고…….”
증거가 없다는 말로 넘기기엔 도광조가 터트린 것이 너무 많았다.
좌중의 분위기는 이제 완전히 넘어왔다.
그렇게 판결만 내리면 되는 상황에서 나는 그 권한을 휘두르지 않았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권한을 휘둘러야 할 사람은 따로 있다.
극명하게 대조되는 입장들 중에서 가장 동정받고 있는 사람.
“부인께서 판단하셔야 할 일 같은데요.”
우 부인에게 나는 그 권한을 넘겼다.
내 선에서 처리해 버리는 게 명운표국 입장에선 가장 편하겠지만 나는 이들 편해지라고 온 사람이 아니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내 행보도 달라질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