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114
113화 내 안에 불꽃이 있다
명운표국은 힘든 시기에도 죽은 표사들의 가족을 챙겼다.
좋은 일이다.
다만 내가 확인하고자 하는 것은 우 부인의 성향이 어느 쪽이냐는 거다.
‘어설픈 마음가짐이라면 손을 떼야 할지도.’
죽은 표사들의 가족을 챙긴 것은 책임감인가, 동정인가.
전자라면 좋다.
하지만 후자라면 곤란하다.
동정심으로 수용하지 않아야 할 짐덩어리까지 짊어지는 것은 내 계획에 없다.
‘동정심으로 움직이는 사람이라면 실권을 완전히 거두고 허수아비로 만들어야겠지. 반발한다면 손을 떼야 할 것이고.’
주소란에게 절대복종을 전제로 도움을 주겠다고 했지만, 그것은 아직 명운표국의 총의(總意)는 아니다.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어지는 것이 사람 심리다. 맺어진 계약이 반드시 지켜지지는 않는다.
보아하니 명운표국의 정신적 지주는 우 부인이다. 그런 사람을 배제하려 한다면 나머지 구성원들이 나를 진심으로 따르지 못하게 된다. 결국, 절대복종이란 명제는 허울에 불과해진다.
그런 상황이라면 빠르게 손절하는 편이 낫다.
때마침 명운표국이 딱 알맞은 조건이었을 뿐이다. 그 조건에 어긋난다면 굳이 얽매일 필요는 없다.
“마음 같아선 목이라도 베고 싶습니다.”
“오호?”
‘생각보다 당차네.’
주소란의 외가라고 했다. 우 부인에게는 혈족들이며, 같은 배에서 나온 형제자매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들의 목을 베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그건 안 되겠죠. 보는 눈들도 있으니까요.”
내심 우 부인에 대한 평가를 높였다.
냉정한 판단력도 갖췄다.
가끔 무림인들이 지 꼴리는 대로 사람 죽이고 다니는 줄 아는데, 현실은 다르다.
무림인들끼리 싸우다가 무림인이 죽으면 무림의 일이기에 넘어가지만, 무림의 일에 민간인이 죽거나 하면 관에서도 가만히 관망하지 않는다.
가끔 민간인을 거리낌 없이 죽이는 놈들도 있긴 한데, 그건 진짜 뒤가 없는 작자들이다. 부평초처럼 떠도는 자들이나 벌이는 짓이다.
저들의 목을 치는 것은 관의 개입을 부르게 된다.
사천 같은 곳과 달리 이곳 호북은 관의 입김이 강하기에 저 판단은 타당하다.
우 부인은 심정과 현실의 두 가지 생각을 표했다. 다만 정해진 것은 없다.
이제 결론이 나와야 한다.
“허, 허면…….”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고모님!”
누군가는 입을 더듬으며 작은 희망을 가졌고, 어떤 녀석은 바로 머리를 땅에 박으며 반성하는 모습을 취했다.
웃기는 건 저 고모님 운운하며 머리를 땅에 박는 놈이 제일 먼저 단검을 들고 도광조를 쑤시려 했던 놈이라는 거다.
‘뱀 같은 놈이네.’
같은 지붕 아래 있기 싫은 녀석이다.
내심 혀를 차고 있는데, 문뜩 우 부인의 시선이 느껴졌다.
이내 얕은 한숨을 내쉰 우 부인이 당차게 입을 열었다.
“잘못이 있다면 그에 맞는 벌과 반성이 있어야겠구나.”
“예! 무슨 벌이든 다 받겠습니다! 고모님의 모든 혈족분들이 그러실 겁니다!”
“그래.”
굳이 혈족이란 말을 덧붙이는 모습에 우 부인의 입가에 쓴웃음이 자리 잡았다.
“그럼 벌을 내리겠다.”
“예!”
“당장 이곳에서 나가라.”
“기꺼…… 예?”
어떻게든 위급함을 넘겨 보려 했던 그놈의 얼굴이 뻣뻣하게 굳었다.
“고모님!”
“명운표국의 재산을 탐내어 죄를 범했으니, 명운표국의 그 어떤 것도 허락하지 않겠다. 그것이 내가 주는 벌이다.”
“하아……!”
뱀 같은 놈의 입에서 나온 짧은 한숨 소리가 마치 비웃음처럼 들린다. 그 비웃음이 자신을 향한 것인지, 우 부인을 향한 것인지는 구분되지 않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반쯤 정신줄을 놓은 것처럼 입을 쩍 벌린 채 웃는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 정상이 아니다.
뭔가 툭 끊어진 사람 같다.
[사고 치겠네.]‘예, 뭐.’
“씨!발!년!이!”
예상대로 뱀 같은 놈이 단검을 들고 우 부인을 향해 몸을 던졌다.
한발 물러선 곳에서 지켜보던 나는 빠르게 개입했다.
작심하고 펼친 능운금광보!
어지간한 무림인들도 허깨비를 본 것 같을 움직임으로 놈의 앞을 가로막았다.
빠각!
“악!”
내딛는 발목을 걷어차 쓰러트리면서 단검을 쥐고 있던 팔뚝을 마른 나뭇가지처럼 꺾어 버렸다.
“치료 잘해라. 뼈 잘못 붙이면 병신 될 테니까.”
가벼운 충고와 함께 목덜미를 잡아 그놈의 혈족들을 향해 던져 줬다.
털썩!
하지만 아무도 그 녀석을 받아 주는 사람이 없었다. 오히려 그중 일부는 혐오감 가득한 눈으로 쓰러진 그놈을 노려보기 바빴다.
명운표국의 재산을 빼돌리고 우 부인을 도광조에게 팔아넘기려 한 주모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는 모습이다.
[저놈, 병신 신세 면하긴 글렀네.]“그러게요.”
부러진 뼈를 제대로 치료하지 않아 잘못 붙이면 병신 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저쪽 분위기를 보아하니 저놈을 의원에게 데려갈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재물 하나 없이 쫓겨났는데, 몸까지 성치 않다면 둘 중 하나다.
병신 행세를 하며 비럭질을 하든가, 어디 높은 곳에서 몸을 던지든가.
씁쓸한 얼굴을 한 우 부인이 내게 고개를 숙였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명운표국의 안주인 우지혜라고 합니다.”
“연청운이라 합니다. 주 소저의 청으로 명운표국을 돕기 위해 왔습니다.”
“그러신가요.”
내 말에 우 부인의 표정이 복잡 미묘해졌다.
나도 일단은 말을 아꼈다. 지금 같은 때 주소란과 나눴던 조건을 꺼내는 것은 좋지 않은 판단이기 때문이다.
‘주 소저가 알아서 설명하겠지.’
일단은 저 짐덩이들을 내다 버리는 것이 우선이다.
***
반란을 주도했던 우 부인의 혈족들은 맨몸으로 쫓겨났다.
돌아가는 상황을 모두 목도한 마을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 않으니 혜화현에서 발붙이고 살긴 힘들 거다.
고리대금업자인 도광조는 강탈하려 한 명운표국의 재산만큼의 재물을 내놓으며 납작 엎드렸다. 적지 않은 재물이라 명운표국의 재건에 도움이 될 것이기에 그렇게 넘어가기로 했다.
다만, 앞으로 이 동네에서 장사하긴 어려울 것이기에 다른 지역으로 떠나야 할 것이다.
대략 일을 정리하자 백무호가 다가왔다.
“너, 원래 그렇게 살벌했냐?”
“내가?”
“어. 못 느꼈냐? 너 오늘 무지 살벌했어.”
뭔가 떠보는 것 같은 말에 나는 오히려 코웃음을 쳤다.
“누가 할 소리를. 얀마, 오늘 너네 눈 뒤집혀서 날뛰는 걸 보며 내가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아냐?”
“어, 음…… 그게 또 그렇게 되나?”
미쳐 날뛴 것은 범각이었지만, 백무호도 만만치 않았다.
눈빛이 살벌하게 번뜩였다니까.
지금은 어벙하게 고개를 갸웃거리는 놈만 남았지만.
마치 냉수 한 사발 뒤집어쓰고 정신을 차린 것 같은 모습이랄까.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니 문뜩 그 냉수가 지금 백무호가 말한 것과 연관이 있는 것 같았다.
‘내가 그렇게 살벌했나?’
조금 전의 일을 복기해 보았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순리대로 일을 풀었다. 해야 할 일을 했다고 할까?
자연스럽게 처리한 만큼 딱히 위화감이 느껴지는 부분은 없었다.
하지만 백무호의 말을 그냥 넘길 순 없었다.
아마 나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 세 명을 꼽으라면 반드시 한 자리를 차지할 녀석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사부님들도 내가 독해졌다고 했지?’
장삼풍 사부는 무림인다워졌다고 했고, 달마 사부는 독해졌다고 평하셨다.
뭔가 달라진 건가 싶어 스스로를 관조하는데, 가슴에서 뭔가 일렁이는 느낌이 들었다.
불길이 일렁이며 만들어진 뜨거운 열기가 하늘하늘 흔들렸다.
‘내 안에 불꽃이 있다?’
“불의 신력…….”
[영향을 받는 걸지도 모르겠구나.]달마 사부가 조심스럽게 주의를 주셨다.
경각심을 가져야 할 상황인가 생각해 보는데, 문뜩 오행의 상성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불의 신력만 독립적인 상황이네.’
땅의 신력과 쇠의 신력은 오행의 상성이 서로 호환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불의 신력은 독립적이다.
그뿐 아니라 불은 쇠의 신력을 잡아먹는 힘이기도 하다.
견제할 힘이 아예 없는 상태인 것이다.
‘조심해야겠다.’
정말 불의 신력에 영향을 받는 상태라면 평소보다 언행을 조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빠른 시일 내에 불의 신력을 견제할 다른 신력을 얻거나, 아니면 삼재일기공의 성취를 높여서 불의 신력이 내게 영향을 끼치는 것을 최소화해야 한다.
삼재일기공을 단련해야 할 필요성이 더욱 늘어났다.
‘그런데, 이게 정말 불의 신력 때문이라면 이화는 대체…….’
나는 그림자처럼 따라붙어 있는 이화를 돌아보았다.
눈을 마주친 이화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사람을 강아지에 비유하는 것은 실례겠지만, 내 눈엔 마치 강아지가 주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해 갸웃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귀엽다는 거다.
나도 모르게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
이화가 이번엔 반대편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참으며 손을 떼자 뒤통수가 따끔거렸다.
누가 노려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뒤를 돌아보니 더러운 것을 만지기라고 한 것처럼 손을 털어대는 장소월 소저가 있었다.
‘……아니겠지?’
말도 없이 사천을 갔다 온 이후로 콩깍지도 다 떨어진 걸로 아는데.
***
종인걸의 지시로 형문산에 오른 심부름꾼은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가는 오싹한 공기에 고개를 저었다.
“진짜 오기 싫었는데…….”
음습하고 한기가 도는 곳이다. 방금 목덜미가 오싹했던 것도 귀신이 장난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이전에도 몇 번 방문했지만,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았다.
“이런 기분 나쁜 곳에서 사니 그런 괴물이 되는 건가?”
“괴물이라…….”
“히익!”
어디선가 들려온 목소리에 심부름꾼은 화들짝 놀랐다.
말실수에 해코지를 당할까 벌벌 떨며 넙죽 엎드렸다.
“계, 계셨습니까요.”
“화 안 났으니 일어나라.”
“저, 정말이신지요?”
“괴물이란 무지한 자들이 위대한 존재를 두려워 칭하는 것이지. 그것도 경외의 하나라 생각하면 화를 낼 이유가 없느니라.”
청아한 목소리로 말하는 존재가 허공에서 스르륵 나타났다.
청수한 인상의 창백한 얼굴을 한 도인이 부채를 팔락이며 사내를 내려다봤다.
종인걸의 지시로 찾아온 인물, 구악도인이었다.
“종인걸이 보내서 왔느냐?”
“예, 옛!”
“근래 종인걸이, 호북 이조참정 서윤건 때문에 골치라고 듣긴 했지만, 그를 죽여 달라는 거라면 사절이다. 관직에 있는 이들을 건드렸다간 손해가 막심해. 이는 종인걸도 알고 있을 터인데?”
구악도인의 말에 심부름꾼이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서, 서윤건이 목적이 아닙니다!”
“그가 아니다?”
“예, 예. 그냥 애송이 놈 하나 죽여 주시면 됩니다.”
“애송이 놈이라……. 무림인?”
“예!”
심부름꾼의 말에 구악도인의 눈이 가늘어졌다. 청수하던 인상이 순식간에 사이하게 변했다.
“대가는 그대로고?”
“빨리 처리해 주신다면 갑절로 값을 치르신다 하셨습니다.”
“호오?”
만족스러운 듯 입꼬리가 올라가자 거기에 있는 것은 더 이상 도인이라 부를 수 없는 존재였다.
“어디 있는지는 알고 온 거겠지?”
“예. 물론입죠.”
“앞장서게.”
직접 나서는 구악도인을 보며 심부름꾼은 살갑게 웃으며 앞장섰다.
“연청운이라는 놈, 이제 죽은 목숨이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