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119
118화 나는 사부님들의 제자다
‘내가? 이 사람이랑?’
내가 아무리 명성을 높이고 있다곤 하지만, 어디까지나 후기지수 중에서일 뿐이다. 진짜 고수들의 무서움은 익히 알고 있다.
허도진인과 검을 섞었을 때의 공포는 지금 떠올려도 등골이 오싹할 정도다.
장문경은 그런 허도진인과 같은 선상에서 평가를 받는 무인이다.
“비무라니, 농이 과하십니다.”
“자네 무공이 보고 싶을 뿐이네.”
“저를 상대로…… 검을 들고 싶으시다는 겁니까?”
내가 묻고도 어이가 없는 소리다.
천하십검이다.
검에 있어서 천하를 통틀어 사람 열을 꼽으라 했을 때, 그 한 자리를 차지할 사람 중 하나라는 소리다.
물론 기인이사들이 득실거리는 것이 무림이라는 세상이다 보니 어떤 괴물이 어디에 숨어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외부로 드러난 인물 중 세인들에게 인정을 받은 고수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 사람이 내게?
“맞네.”
“…….”
갑자기 궁금해졌다.
이 사람은 나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나를 통해서 다른 무언가를 보고 있는 걸까?
내가 보지 못하고 있는 무언가가 보이는 걸까?
‘붙어 보면 알 수 있을까?’
갑자기 배 속에서 불길이 치솟는 것 같았다.
귓가에 이명처럼 무언가 불타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온몸이 후끈 달아오른다.
불의 신력 탓일까?
“까마득한 후배를 상대로 하실 말씀은 아닌 것 같은데요.”
불의 신력 탓이라 생각하니, 충동적으로 움직여선 안 될 것 같아 나 자신을 눌렀다.
허나 그 변명 같은 말에 돌아온 대답은 다시 한번 나를 자극했다.
“나의 절정 검도는 천하 모든 검법의 정수가 망라되어 있다고들 이야기하지. 그럼 내가 만기(萬技)라 칭할 만큼의 검들을 어찌 얻었겠나?”
재능과 집착.
깊숙한 곳에 숨겨 두었던 굶주림이 표면 위로 떠오른다.
“나는 무공 앞에서 수치를 모르네.”
굶주린 늑대 같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모든 것을 이뤘음에도 만족을 모른다.
더 이상 참기가 힘들었다.
“알겠습니다.”
내 피 또한 뜨겁게 달아올랐다.
“까짓거, 한번 박살 나 보죠.”
***
독대를 마치고 밖으로 나서니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천의무봉 장문경이 방문했다는 소문이 퍼졌는지, 몰려든 사람들은 장문경의 모습에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 반신반의했던 모양이다.
뭐, 나라도 이런 허접한 곳에 장문경이 방문했다고 하면 믿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장문경과 함께 앞마당으로 향했다.
온갖 표물을 받고, 싣고, 내리기 위한 앞마당은 일반적인 장원에 비해 몇 배는 넓다.
지금은 의뢰가 뚝 끊겨 있는 상황이라 걸리적거리는 것 하나 없이 말끔했다.
넓은 공터의 중심 한곳에 서자, 장문경 또한 나로부터 삼 장(약 9m) 정도 떨어진 곳에 섰다.
“선공은 양보하지.”
“……헙?!”
“진짜?”
장문경의 담담한 말을 이해한 사람들이 기함을 했다.
천하십검인 장문경이 약관도 안 된 후기지수와 비무를 한다고 하면 누구라도 저런 반응일 것이다.
다만 몇몇은 다른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특히 장소월 소저의 시선에는 짙은 걱정이 자리해 있었다.
‘딱 봐도 대충하는 성격은 아니니까.’
장소월 소저의 반응만 봐도 이 비무가 꽤 거칠어질 것임을 추측할 수 있었다.
무공에 대한 부분에서는 무척이나 진지한 사람이니, 어설프게 지도 대련 같은 것이라 생각하고 나섰다간 크게 낭패를 볼 것이 분명했다.
그러지 않더라도 낭패는 확정된 것이나 다름이 없지만.
‘추한 꼴 좀 보이겠네.’
방금까지만 해도 명운표국 사람들에게는 천하에 적수가 없을 것 같은 위용을 과시했었는데, 못 볼 꼴을 보이게 될지도 모르겠다.
천마사부의 권갑을 끼며 가볍게 몸을 풀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검은?”
“맨손이 더 익숙해서요.”
장소월 소저를 상대로는 검을 들고도 일말의 여유를 갖추었었지만, 이 사람을 상대로는 어림도 없다.
“……그렇군.”
나를 뚫어져라 주시하던 장문경이 대충 뭔가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측면으로 슬쩍 손을 흔들었다.
휘익! 탁!
앞마당을 청소할 때 쓰는 빗자루 하나가 휙 날아와 장문경의 손에 들어갔다.
빗자루에서 쓸데없는 것들을 쳐내고 나니 적당한 검 길이의 막대기 하나가 뚝딱 만들어졌다.
검을 뽑지 않은 나에 대한 배려 같은 건가?
‘그럼 목 잘릴 일은 없겠……. 아니, 저 양반 손에 들려 있으면 또 이야기가 다른가?’
천하십검인 고수의 손에 쥐어진 이상, 저 막대기는 예리한 명검이나 다름없다.
조금 전 상상했던 장면이 다시 떠올라서인지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런 내 생각 따윈 모르겠다는 듯, 장문경이 허공에 막대기를 휘둘러보더니 입을 열었다.
“오게.”
그리고 그가 막대기 끝을 세워 겨누는 순간!
콰아아아아아!!
“후우……!”
갑자기 주변의 풍경이 바뀌었다.
원근감이 이상해졌다.
분명 조금 전까지 체격이나 신장이 나와 비슷했는데 몸 전체를 보려면 고개를 위로 치켜올려야 할 것 같다.
갑자기 몸이 몇 배나 커진 것 같다.
‘벽 같다.’
고작 막대기일 뿐이지만, 암담한 크기의 성벽이 세워진 것 같다.
절대 부서지지 않을 것 같은 난공불락의 성벽이다.
부딪치면 무조건 박살 난다.
그리고 나는 저 성벽에 대가리를 들이박아야 하는 멍청한 검은 소대가리(黑牛)고.
‘그것도 웃기겠네.’
내 일이 아니었다면 웃었을 것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그런 멍청한 검은 소대가리(黑牛)가 있었다고 씹어댔을 법한 이야기다.
하지만, 그 멍청한 짓을 앞두고도 입꼬리가 올라갔다.
가끔 그럴 때가 있다.
충동이 몸을 지배할 때!
모든 것을 놔 버리고 싶을 때!
앞으로 튀어 나가는 나는 분명 그랬다.
‘시작은 소림으로!’
능운금광보가 내 몸을 움직인다!
“금강부동?”
소림의 금강부동신법은 작은 움직임과 반동으로 한순간에 폭발적인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아무런 준비 자세 없이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오기에 거리감을 잡기 힘들게 한다.
그야말로 정(靜)적인 움직임의 극치.
그 요결이 능운금광보에도 담겨 있다.
장문경의 눈가에 이채가 어렸다.
그리고….
‘극강격!’
콰앙!
“호오?!”
시작부터 크게 보여 준다!
예상을 뛰어넘는 파괴력이었는지 이채(異彩)는 놀라움으로 변했다.
하지만 놀란 것은 오히려 나다.
‘크윽!! 안 통한단 말이지?!’
아직 내 역량을 제대로 보지 못한 상태이기에 생각지도 못한 비수가 될 거라 생각했다.
달마 사부가 천상에서 일천 번을 다듬었다는 무공.
아직 그 깨달음의 만 분지 일, 십만 분지 일도 담아냈다 말하기 창피한 수준이라지만, 지금까지는 그럭저럭 먹혔던 무공이다.
그러한 극강격이 완전히 막혔다.
막대기와 주먹이 부딪치는 순간, 미묘한 반탄력이 내 힘을 흡수해 버렸다. 타격의 힘이 고스란히 쏠리는 타점을 흘려내기까지 했다.
거의 움직이지 않았지만, 내 힘과 부딪히는 순간 저 막대기 속에는 수십 가지 힘의 흐름과 변화가 담겼다.
일단, 저런 막대기쯤은 박살을 내놓고 시작할 거라 생각했던 예상이 완전히 날아가는 순간.
‘연격!’
하체가 움직인다.
발끝이 제비처럼 선을 그리며 올라간다.
파앙!
소림의 무공을 익힌 자는 온몸이 흉기가 된다.
살짝 손끝이 걸치는 정도로도 사람의 몸을 찢어 버릴 수 있는 것이 소림의 권사다.
다각도에서 쏟아지는 공세가 단번에 장문경의 좌우를 덮쳤다.
탕! 터텅! 팡!
“칫!”
싸우기 전에 성벽에 머리를 꼬라박는 검은 소(黑牛)를 떠올렸었다.
정말 생각한 그대로다.
저돌적으로 때려 박고 있지만, 어느 하나 통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치 볼 건 다 봤다는 듯 내 공세를 일방적으로 받아 주던 장문경의 막대기가 움직였다.
“큭!!”
깨달았을 때는 이미 지척에 닿아 있는 막대기다.
청경과 공감각의 경계를 비집고 들어온 일격이 코앞에 다다른다.
무박자.
공격 전후로 아무런 낌새도 없기에 읽기 까다로운 수법!
내가 보여 줬던 정적인 움직임에 대한 답례라는 듯 날카로운 검격이 파고들었다.
가까스로 반응한 감각이 내 몸에 담긴 무공 한 자락을 꺼낸다.
영강수.
장삼풍 사부가 각고로 다듬어 만들어낸 절세의 신공이 검격을 받아낸다.
텅! 쿵! 데구르르!
“아윽!”
가까스로 받아내 흘렸지만, 다 흘려내지 못한 힘이 몸을 날려 버린다.
땅바닥에 내팽개쳐지고 지면 위를 몇 번이나 튕기게 했다.
저 볼품없는 막대기에 담긴 힘은 능히 집채만 한 바위도 가루로 만들 힘이 담겨 있었다.
간신히 몸을 멈춰 세우는데, 재수 없을 만큼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아갈 때는 소림, 물러날 때는 무당인가. 괜찮군. 근래 소림 무공을 보며 기교가 기세를 잡아먹는다 생각한 적이 꽤 있었지. 오히려 이쪽이 진짜 소림 무공을 보는 느낌이다.”
“하하…….”
여유가 있다면 지금 범각의 표정을 보고 싶었다.
저 말을 듣고 잔뜩 인상을 쓰고 있을 테니까.
“구파의 무공을 잘 배웠다. 오히려 나아. 하지만 보여 줄 게 그 정도가 다라면 여기까지만 하는 걸로 하지.”
호평(好評)이자, 배려가 담겨 있는 말이다.
이 정도면 잘했다.
약관을 넘지 않은 후기지수가 천의무봉 장문경에게 이 정도 평가를 받았다는 것은 평생의 자랑거리다.
‘배알 꼴리네.’
하지만 이상하게 속이 꼬였다.
질 거란 건 알고 있었지만, 받아들이기 싫다.
무엇 때문에 그런 마음이 드는지 금방 알 수 있었다.
‘나는 장삼풍 사부의…….’
내 안의 모든 것들은 어디에서 왔는가?
‘달마 사부의…….’
내 안의 모든 것들은 사부님들께 바치는 찬가다.
‘천마 사부의…….’
그게 나다.
‘제자다!’
고금제일(古今第一)을 논하는 전설들의 제자다.
내가 짊어진 것은 천하십검의 위명보다 무겁다.
‘그런 내가 패배를 당연히 여긴다?’
개소리다.
‘움직여라!’
조금 전과는 다른 힘이 내 안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신력(神力).
여느 무림인들에게는 없는 힘.
일반적인 내공의 상위 호환에 있는 힘.
‘불태워라!’
불의 신력이 쇠의 신력을 범한다.
쇠를 정련하는 것은 불꽃.
쇠의 신력이 벼려져 날카롭게 날을 세운다.
땅의 신력이, 중토신공과 어울리며 함께 불타오른다.
‘내 안에서 녹아라!’
삼재일기공이 하나의 세계가 되어 그 힘을 담는다.
미쳐 날뛰는 힘이 나라는 그릇을 가득 채우며 그 여파를 줄기줄기 뿌렸다.
쿠웅!
격정에 못 이겨 내지른 진각.
땅을 구르는 발길질이 분위기를 뒤집는다.
“후우우…….”
내뱉는 숨결에 불의 호흡이 가득하다.
폐가 익어 버릴 것 같다.
터져 나오려는 힘이 내 안의 피를 끓여 증발시키는 느낌이다.
공기가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진다.
나를 바라보는 시선들이 바뀌는 것이 느껴진다.
‘부숴 버린다!’
패배 따윈 좆 까라는 거다!
나는 아직 지지 않았다!
***
“과연.”
연청운의 주변 공기가 뜨거워지고 있다.
기분 탓 같은 것이 아니다.
일격을 준비하는 연청운의 뒤편은 일렁거리는 아지랑이 탓에 제대로 보이는 게 없을 지경이다.
끓어오르는 공기 속, 아지랑이 속에서 일렁이는 흐름 사이로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눈의 착각일 수도 있지만.
“소천룡이라…….”
장문경의 눈에는 그 그림자가 구전으로만 전해지는 어떤 신령한 것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