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120
119화 드높은 마음으로
장문경은 명운표국에 오기 전 무당산에서 허도진인을 만나 어떻게 깨달음을 얻었는지 물었다.
보통 무림에서 깨달음의 단초들은 비전으로 여길 만큼 귀히 여긴다. 문외불출의 비전이나 다름이 없다.
무공 앞에서 수치를 모른다는 장문경이기에 가능한 행동이기도 했다.
물론 장문경도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사실, 깨달음을 얻은 허도진인의 검을 보기 위해 방문했다는 쪽이 맞았다.
하지만 허도진인은 장문경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해 주었다.
그중 가장 많이 거론된 것은 연청운이라는 어린 후기지수였다.
“연청운 덕분에 깨달음의 단초를 얻었다네.”
허도진인의 그 말을 장문경은 우연으로 치부했다.
깨달음이란 그냥 오지 않는다.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찰나의 번뜩임으로 그칠 뿐이다.
반대로 준비된 자에게는 세상 모든 것이 스승이 될 수 있다.
하다못해 둥글게 말려 있는 돼지 꼬리를 보고 깨달음을 얻었다는 인물도 있을 정도다.
아마도 그 연청운이라는 후기지수가 펼친 어설픈 한 수에서 허도진인이 자신의 부족한 것을 보고 스스로 깨달음을 얻었을 것이다.
장문경의 판단은 그러했다.
하지만 이어진 말에서는 흥미가 동했다.
“두각을 드러낸 지 채 일 년이 넘지 않았단 말입니까?”
“맞네. 무당파에서도 그 이름을 듣고 동명이인이라는 착각을 했을 정도였다네.”
풍문으로 전해지는 연청운의 무위는 가히 절정의 경지를 넘어선 무인이다. 구파의 장로들과 비견될 만한 고수라면 그 정도 평가는 당연하다.
그런 녀석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무당파의 속가제자 수준이었다고 한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속성으로 무공의 성취를 올린다는 마공이라도 그렇게 빨리 강해지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장문경이 발품을 팔아 가며 연청운을 찾아온 이유다.
“어? 아버지?”
그 목적지에서 무림에 나섰던 딸을 본 것은 기대하지 않았던 즐거움이었다.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장문경은 사람의 몸만 봐도 그가 어떤 무공을 쓰는지, 어떤 성취를 이루었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보고, 느끼고, 부딪치는 것만으로 상대의 무공을 파악하고 장단점을 분석할 수 있는 것이다.
절정검도는 그 재능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무공이다.
그러한 재능을 통해 본 딸은 한층 더 성장해 있었다.
한창 수련에 매진해야 할 때 무림을 떠돌고 있으니 답보 상태에 빠져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좋은 의미로 예상을 벗어나 나름 흡족했다.
하지만 그 흡족함도 연청운을 대면하는 순간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런 미친놈을 봤나.’
아마 장문경 본인이 아니라면 누구도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동시에 왜 무당파에서 고작 속가제자에 머물렀는지도 알 수 있었다.
일반적인 무림인이 구축한 기초와 재능을 건물에 비유하면, 기와집 정도로 볼 수 있다. 기와집만 한 크기의 기초에 기둥을 세우고 벽을 만들고, 지붕을 올려낸다면 일가를 이루었다며 자화자찬한다.
그렇기에 빠르게 기둥을 올리고 벽을 세울 수 있는 자를 ‘재능 있다’ 평가하는 것이다.
연청운은 달랐다.
저 어마어마한 기초 덩어리는 거대한 성, 아니 그 성을 포용하는 거대한 도시였다.
너무도 크고 방대하여 장문경조차 가늠할 수 없는 온갖 것들이 저 몸에 자리 잡아 가는 중이었다.
실제로 장문경이 처음 연청운을 보았을 땐, 마치 ‘거대한 무언가가’ 다가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장문경은 생전 처음으로 재능에 한계를 느꼈다.
염치 불고하고 어린 후배에게 비무를 청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직은 덜 여물었다.’
연청운에게는 광대한 기초와 끝을 가늠하기 어려운 재능이 있으나, 아직 그 기초 위에 세워진 것은 기둥 몇 개에 불과했다.
그것만으로 이 정도 기량을 낸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지만, 장문경이 기대할 만한 것은 없었다.
‘그러고 보니, 두각을 드러낸 것이 채 일 년이 되지 않았다고 했지?’
그래도 몇 년 정도만 지나면 놀라운 성취를 이룰 것이 기대되는 재목임은 분명했다.
너무 서둘렀다는 반성이 일어날 정도였다.
“구파의 무공을 잘 배웠다. 오히려 나아. 하지만 보여 줄 게 그 정도가 다라면 여기까지만 하는 걸로 하지.”
여기에서 망가트릴 생각이 없기에 다음을 기약하려 했다.
그 순간.
‘허어?’
변했다. 아니, 변하고 있다.
실시간으로.
저곳만 시간의 흐름이 다른 것처럼 삽시간에 저 광대한 기초 위에 뚝딱뚝딱 기둥들이 올라갔다.
말도 안 되는 성장 속도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장문경의 눈에는 또렷이 보였다.
‘이 녀석, 정말 인간이긴 한 건가?’
어린아이가 눈앞에서 순식간에 키가 몇 척씩 훌쩍 자라는 것을 본다면 누구나 할 법한 생각일 거다.
이 정도면 성장이 아니라 진화다.
땅을 기어가던 벌레의 유충이 허물을 벗어던지고 나비가 되는 수준의 격변이다.
타고난 재능으로 타인의 무공을 얻어 왔던 장문경조차 따라갈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다.
“과연.”
이 정도까지 어이가 없는 상황을 인식한 끝에 다다른 결론은 단순하게 생각하자는 것이었다.
이놈은 사람이 아니다.
“소천룡이라…….”
인세에 없는, 태어날 곳을 잘못 잡고 태어난 무언가다.
답지 않게 반쯤 농이 섞인 결론이지만, 달리 말하면 반쯤은 진지하게 믿어 볼 요량이기도 했다.
장문경이 다시 한번 막대기를 들었다.
***
지금까지 내가 신력을 사용한 방식은 상생(相生)에 있었다.
토생금.
땅의 신력과 쇠의 신력은 서로에 기여하여 동반 상승효과가 있기에 잡음이 없었다.
지금 내가 힘을 쓰는 방식은 상극(相剋)이다.
잡아먹으면서 힘을 키운다.
“후우우…….”
그 여파는 작지 않았다.
내 안에 힘들이 움직일 때마다 몸 어딘가가 쩍쩍 갈라질 것 같았다.
당장이라도 쪼개지고 갈라진 틈새에서 용암처럼 들끓는 기운이 쏟아져 나올 것 같았다.
터져 나올 것 같은 힘을 담아 가둔다.
내 안에서 승화시킨다.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며 순화시킨다.
소용돌이.
들끓는 힘을 하나의 흐름으로 만들어 고정하는 순간.
빠직!
몸 안에서 뭔가 부서지는 파열음 같은 것이 들렸다.
‘폭발적으로 들끓는 힘의 소용돌이를 감당하지 못하는 건가?’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잠시 떠올랐지만, 금방 들끓는 열기에 불타 사라졌다.
‘버티는 거다.’
상대가 누구라도, 포기란 없다.
그게 내가 짊어져야 할 업이다.
가르치는 것이 사부님들의 몫이라면,
배워 행하는 것은 나의 몫.
부딪쳐 부서질지언정, 내가 먼저 패배를 인정할 생각 따윈 없다!
빠직!
그렇게 다시 한번 내 몸에서 파열음이 들렸을 때쯤이다.
리이이이잉!
천마 사부의 권갑이 소리를 내는 순간, 모든 것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커진다?’
몸이 스스로 변하기 시작했다!
스스로 느낄 만큼 빠르게.
내부의 힘을 감당하기 위해 스스로 진화를 택한 몸이 빠르게 재구축되었다.
문이 열리고 다음 경지가 코앞으로 밀어닥친다.
중토신공 사단공!
콰앙!
앞으로 뛰어나가기 위해 땅을 박찼을 뿐인데, 들리는 소리는 이전과 다르다.
벼락이 내리치는 굉음과 함께 내 몸이 작렬하는 불꽃처럼 거세게 반응했다.
어리는 힘이 다르다.
뻗어내는 힘 또한 같을 리 없다.
투웅!
회초리 휘두르듯 내지르는 장문경의 참격과 맞부딪친 주먹에서 묵직한 소리가 났다.
좀 더 깊이 있는 울림이 퍼진다.
조금 전 무의미하게 성벽을 두들길 때와 같은 소리가 아니다.
내 힘이 통한다!
‘벼려라!’
불길로 정련한, 날을 세우는 도검!
불의 신력이 땅의 신력을 불사르며 쇠의 신력을 벼린다!
광포함 그 자체인 힘이 벼락처럼 뻗었다!
콰앙!
굉음이 터져 나오고 장문경의 몸이 뒤로 물러났다.
“호오?”
묘한 호성을 내는 그의 입가가 실룩인다.
방금 일격이 그만큼 괜찮았다는 방증이다.
실제로 내 손에 닿은 감각도 그랬다.
‘솜이불을 때린다는 느낌도 없어졌어.’
처음에는 기묘한 반발력이 일어나 내 힘을 흡수하고 흘리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두꺼운 솜이불을 때리는 것 같았달까?
지금은 그런 느낌이 적다.
조악한 막대기를 들고 있는 탓에 내구도가 떨어져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내가 고려할 사항은 아니다.
‘잇는다.’
내 몸이 자연스럽게 소림의 법을 따랐다.
[머리부터 시작해 주먹을 쥔 권, 손을 쓰는 장, 잡고 꺾고 뚫는 손가락에서부터, 어깨와 팔꿈치, 엉덩이와 허벅지, 무릎과 발이 모두 유기적인 형태로 이어져 뻗어나가는 것이 소림권의 요체이니. 손이 앞서고, 눈이 뒤이으면, 몸이 따르고, 보법이 구축한다. 어깨와 허벅지가 하나 되고, 팔꿈치와 무릎이, 손과 발이 합일하여 심의, 의기, 기력을 하나로 모으면 비로소 소림권의 구색이 맞춰졌다 할 수 있다.]달마 사부에게 가르침을 받던 시절, 천축어처럼 들리던 가르침은 이제 몸에 완전히 익었다.
주먹이 움직이면 발이, 팔꿈치가 움직이면 무릎이.
위아래가 상호 호환하며 연잇는다.
각법이 움직이고.
쾅!
주먹이 뻗고.
쾅!
팔꿈치와 무릎이 호환한다.
콰쾅!
연거푸 공격을 쏟아부으며 몰아붙였다.
불꽃처럼 격렬하게.
‘더럽게 단단하네!’
하지만 뚫리지 않는다.
왜 천의무봉이라 불리는지 알겠다.
그저 막대기 하나 들었을 뿐이나, 그 막대기에 담긴 것은 일천의 검, 아니 일만의 검이다.
웅장한 성벽의 견고함은 변함이 없다.
저걸 뚫어야 한다!
‘방어를 깨부수는 수법이라면…….’
내가 쓸 수 있는 가장 강맹한 수가 자연스럽게 내 손에 준비된다.
으드득!
그 순간 팔뚝 근육이 비명을 지른다.
요동치며 날뛰는 힘을 감당하지 못하고 한계를 드러낸다.
‘성향이…… 달라…….’
극강격은 내가 추구할 수 있는 최대한의 완벽을 구축하는 것. 조금의 빈틈도 없이 그 자체로 완전해지는 것이 첫 단계다.
이를테면 극한의 압축이다.
하지만 지금 내 힘은 불꽃 그 자체가 되어 날뛰고 있다.
제어할 수 없으니 제대로 구축이 되지 않는다.
반작용으로 일어나는 거대한 합력에 팔뚝의 힘줄과 핏줄이 피부 위로 찢고 나올 만큼 부풀어 올랐다.
한계다!
그렇다면?
‘지른다!’
이제 와서 알았다고 한들 물러설 수 있는 순간이 아니다.
모든 것을 쏟아내야 할 자리다.
그 마음으로 뻗어내는 일 권!
콰아아아앙!
불완전한 극강격이 장문경의 막대기와 닿았다.
지금까지 나왔던 소리 중 가장 묵직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허나 장문경의 방어는 건재했다.
하지만 극강격이 날뛰는 힘과 어울리지 않는다면 반대로 그것과 잘 어울리는 무공도 하나 있다.
“터져라!”
극심뢰.
쿠콰아아아!
“허어?!”
지금까지 내 주먹에서 나온 적 없던 소리가 한순간에 터져 나왔다.
콰콰콰콰콰콰!!
***
장문경은 모든 힘을 다 쏟아내고 쓰러진 연청운을 내려다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웃기는 놈이군. 나를 진짜 이길 생각으로 덤볐어.”
중얼거리는 그의 손에서 부스러기 같은 것이 흩날렸다.
새카맣게 타 버린 잿가루가 눈처럼 느리게 흩어진다.
조금 전까지 철벽의 성벽 같았던 그것이 형태조차 남지 않았다.
연청운이 내지른 마지막 일격의 흔적이다.
이 결과를 누가 믿을까?
한낱 막대기에 불과했다 하나 다름 아닌 장문경의 손에 들려 있던 것인데.
“너는 경이롭다.”
허나 장문경은 그 결과를 인정했다.
“심지어 내 기준에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