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13
12화 시작부터 왜 이래?(1)
백무호의 말을 듣고 표행에 합류해 보자는 결심을 한 상태였지만, 바로 다음 날에 표행을 떠날 거란 선언은 너무 갑작스러웠다.
갑자기 정해진 일에 관한 이야기를 가족들에게 했을 때 가족들을 각각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너 정도면 다 큰 나이다. 굳이 하나하나 우리 허락을 받을 게 뭐가 있느냐. 네가 알아서 해라.”
아버지는 한껏 무게를 잡으셨다.
자신의 앞날을 스스로 선택하고 나아갈 줄 안다면 아무리 나이가 적어도 어른과 같다고 하는 분이시니.
그런 면에서는 은근히 할아버지와 닮은 부분이 있는 분이시다.
“……노잣돈은 넉넉하게 챙겨 가고.”
그러면서도 은근히 뒤로는 약한 모습을 한 번씩 보이는 것이 할아버지와는 또 다른 모습이긴 하지만.
건네주시는 주머니에 때가 묻어 있는 걸 보면 제법 시간을 들여 알뜰살뜰 모아 두었던 비상금 같다.
거절하면 아무렇지 않게 거둬 가겠지만 뒤로는 또 시무룩해 하실 게 뻔해서 냉큼 받았다.
모든 게 아버지를 위한 효심인 거다. 오해하면 곤란하다.
어머니는 뭐.
“이 녀석아! 아이고 이 녀석아!”
어머니다우셨다. 등짝이 남아나지 않을 것 같았다.
결국, 허락하긴 하셨다.
할아버지야 ‘잘 다녀오너라.’ 하고 어깨를 다독여 주시는 거로 끝이었다. 무엇을 해도 좋으니 한 번 마음을 먹으면 끝을 보라는 게 할아버지의 성격이었으니까.
자신이 길을 이탈하려는 것이 아닌 이상 무슨 일을 해도 지지해 주실 분이다.
그리고 가장 험난한 난적이었던.
“형아.”
동생 청우.
가지 말라고 매달릴 것 같았던 동생은 내 다리를 꼬옥 끌어안고 울먹이며 말했다.
“다쳐서 돌아오면 싫어할 거야.”
마지못해 허락하지만, 이것만은 용납할 수 없다는 듯 울먹이는 와중에도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복 받은 줄 알아라. 저런 동생 어디 없다.]장삼풍 사부가 혀를 차며 말했다.
아니, 실전 필요하다고 등 떠미셨던 분들이 왜.
그나저나 그 와중에 달마 사부는 아무 말이 없으시다.
또 그림이라도 한 장 그리시는 중이신가?
[좋군.]정답인 것 같다.
대체 무슨 그림이기에 장삼풍 사부 반응이 저리 한결같은 건지.
어쨌거나.
모두 다 같은 방식은 아니었지만, 가족들은 내 선택을 지지해 주었다.
자식이, 손자가, 형이 결정하면 그를 지지하고 받쳐 주는 게 가족의 역할이라는 듯.
내가 무당파에서 그렇게 엉망인 대접을 받으면서도 끈질기게 버텨냈던 원동력은 여기에 있었을 거다.
나를 지탱해 주는 사람들.
그리고 내가 지탱해야 할 사람들.
가족.
그런 가족들을 향해서 나도 마음을 담아 말했다.
“다녀오겠습니다.”
그 말 그대로.
아무 상처 없이.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이 집으로.
***
“복습 좀 하자.”
“그건 또 어딜 또 패겠다는 소리냐?”
“패겠다는 소리가 아니야. 누굴 또라이로 아나.”
“…….”
“넌 있다가 좀 더 털려야겠다.”
대화를 하다 보면 원치 않아도 백무호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보이니 자꾸 손이 간지럽다.
이전부터 느끼는 건데, 이 녀석 옆에만 있으면 뭔가 성격이 변하는 기분이 든다. 태생적으로 주변 사람 성질 버려 놓는 안 좋은 기운 같은 거라도 타고난 건가?
“이 표행에 대해서 다시 설명 좀 해 줘 봐.”
어제는 이 녀석 얼굴을 땅바닥과 입맞춤시키느라 설명을 제대로 듣지 못했으니까.
말했다시피, 나는 절대 이놈을 패지 않았다.
다만 좀 던졌을 뿐이지.
어쨌거나 패진 않았다.
머리 아프게 세세한 거 신경 쓰면 지는 거다.
[예전부터 느낀 거지만, 정신머리 하나는 참 튼튼하구나.]장삼풍 사부의 칭찬인 듯 칭찬 아닌 칭찬 같은 말.
그냥 칭찬으로 듣자.
장삼풍 사부의 말처럼 튼튼한 정신머리가 장삼풍 사부의 말을 잘 씹어서 소화시키는 가운데 백무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중신상회의 의뢰야. 이건 기억하지?”
“그 부분이야 기억하지.”
중신상회. 그곳의 주인인 사람에 대해서라면 나도 잘 알고 있으니까.
종인걸.
흔히 종 대인이라고도 불리는 그는 근방에선 꽤나 이름 있는 인물이다.
한 분야에서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져 있는 사람이라 해도 자신과 관련이 없으면 모르는 것이 보통이지만 내 경우 이 이름은 잘 알고 있는 편이었다.
어떻게 보면 그의 행보는 할아버지와 비슷한 부분이 있었던 탓에 할아버지와 연관 지어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말을 종종 들었던 탓이다.
종인걸은 할아버지처럼 관리였다. 뭐, 할아버지처럼 중앙까지 진출했을 만큼 잘 나가진 않았지만 여기 호북에서 쭉 근무했던 사람이다.
덕분에 호북에서 인맥이 아주 잘 잡혀 있다고 한다.
할아버지와 비슷한 유형이라고 말했다시피, 호북에서 오랜 세월 관직 생활을 하며 적극적으로 친구를 사귀고 인맥 만드는 걸 좋아했던 사람이었다.
할아버지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인맥 만드는 것에 계산속이 있었다는 것 정도랄까.
친구 관계라도 이득이 오가는 거래를 하면 순수한 우정이 퇴색된다고 이야기하던 할아버지와 달리, 종인걸 그 사람은 그 인맥을 적극 활용하여 관직을 그만둔 이후 상단을 차렸다.
결과는 대성공.
여러 상인들을 규합하고 하나로 묶어 큰 상단을 이뤄낸 그의 중신상회는 기존에 그 자리를 잡고 있던 기득권들을 밀어낼 정도로 성장할 수 있었다.
재미있는 부분이 하나 있다면, 중신상회에 밀려난 기득권 중에는 초기 중신상회가 자리를 잡을 때 도움을 준 사람들이 제법 되었다는 점이었다.
평생 관직에만 있다가 온 양반이라 제대로 자리를 잡기 힘들 거라 생각하고 도움을 주었는데 뒤통수를 거하게 얻어맞고 세력을 뺏겼다는 이야기다.
종인걸이란 사람이 퇴임 이후를 얼마나 철저하게 준비를 했었던 것인지, 그리고 그가 인맥을 맺을 때 얼마나 계산속이었는지 증명해 주는 부분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나는 종인걸이라는 사람에게 그리 호감이 가지 않았다.
할아버지와 비슷한 행보를 걸었지만, 성향만 따지고 보면 할아버지와는 대척점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할아버지와 엮여서 이야기가 나올 때가 많아서 그런 부분도 있었다.
같이 언급되는 것만도 찜찜한데 신경 거슬리는 이상한 비교를 하는 일부 사람들까지 있다.
몇몇 사람들은 종인걸을 두고 자신의 역량을 꽃피운 대단한 사람이라고 호평하는 반면, 할아버지에 대해서는 빛 좋은 개살구라는 식으로 혹평했다.
겉만 본다면 그런 식으로 판단을 내릴 수도 있겠구나 싶긴 했다. 사람을 보지 않고 그 사람이 이룬 것만 보고 판단한 경우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인이라 할 수 있는 가까운 사람들은 전혀 다른 판단을 내리고 있다.
그러니 더욱 좋아할 수가 없는 인사였다.
“이대로 중간 지점에서 명운표국과 합류하는 거야. 그리고 그곳에서 명운표국과 힘을 합쳐 물건을 전달하면 끝.”
“내가 잘 이해 가지 않는 부분이 거기 거든. 표국끼리 연합하는 경우가 흔하던가?”
표국이란 물건을 안전하게 운반할 목적으로 비용을 지불하고 고용하는 전문 집단이다.
당연히 고용하는 이들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표국을 두 곳이나 동원한다는 건 얼핏 들으면 좀 더 큰 힘을 모으고 싶다는 의미이지만, 달리 말하면 한 곳만으로는 믿을 수 없다는 불신의 의미이기도 하다.
표국의 입장에서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고 평판이 깎여 나가는 일이기도 하다.
나는 그 부분을 짚었다. 이쪽 업계에 대해서 내가 전문가라 할 만큼 해박하지 않은 건 사실이니까.
다만 문외한인 내 입장에서도 이상하게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내 물음에 백무호가 볼을 긁적였다.
“뭐, 보통은 없는 일이긴 해. 솔직히 우리에게 이런 의뢰가 왔으면 콧방귀를 뀌며 내쳤겠지. 하지만 명운표국에는 예전에 신세 졌던 게 있어서 말이야.”
“그쪽 체면을 봐준다는 거네.”
“의뢰가 갔던 것은 저쪽. 도움을 요청한 것도 저쪽. 요청에 응한 건 이쪽. 그렇게 보면 우리 쪽 체면이 깎일 일은 아니지.”
이전에 진 빚을 갚는다. 의뢰를 수행하는 주체는 명운표국이고, 백가표국은 조력자로 힘을 보태는 입장이다.
여기까진 알아들었다.
“그럼 이 표물들은 뭐야?”
“이거?”
지금 나와 백무호가 올라타 있는 곳은 표물을 싣고 가는 짐마차의 위쪽이다.
의뢰의 주체가 명운표국인데 표물을 왜 여기 백가표국이 움직이고 있단 말인가.
이번 물음에는 퍽 재미있는 사연이라도 있는 듯 백무호가 피식 웃었다.
“가짜야.”
“응?”
“눈속임용이라고.”
“이야기를 되게 꼬는 재주가 있는데?”
뭔가 단번에 이해가 가지 않는 이야기다.
갑자기 가짜 이야기는 또 뭔지.
“이야기를 잘 꼬아대는 건 내가 아니라 종인걸, 그 양반이라고 해야겠지. 뭐라더라? 허허실실(虛虛實實)이라나? 그런 거라고 하더라고.”
허(虛)를 내놓고 실(實)을 꾀하는 계책. 가짜와 진짜를 섞어 적을 속이는 책략을 언급하는 백무호의 말에 괜히 눈살이 찌푸려진다.
“속여야 할 사람이 있단 소린데…….”
“급격하게 세를 늘렸다는 건 그만큼 적으로 돌린 곳이 많다는 의미잖아. 그중에서 중신상회가 가장 경계하는 곳을 굳이 하나를 꼽자면 홍무문이겠지. 중신상회가 커 가면서 홍무문의 이권을 제법 뜯어 먹었거든. 홍무문에서 이를 갈고 있는데, 종인걸 그 양반 인맥이 워낙 쟁쟁해서 손을 쓰지 못하는 형편이라 들었어. 뭐, 그것도 이번에 이조의 참정이 새로 부임해 오면서 살짝 흔들리는 중이라지만.”
“새로 부임한 호북 승선포정사사 이조의 참정이라.”
이조는 인사를 담당하는 곳. 사람을 고르는 곳이다. 당연히 권한이 막강할 수밖에 없다. 참정은 그런 곳의 수장이니 그런 이가 새로 부임해 왔다면 인맥을 중시하는 종인걸로서는 반드시 연을 맺어 둬야 할 사람이었다.
인맥을 방패로 삼고 있는 중신상회.
그런 중신상회를 공격하고 싶은 홍무문.
이조의 수장이 새로 부임해 오며 흔들린 종인걸의 인맥.
이 모두를 합쳐 보면 이 표물의 실체가 보인다.
“이거 뇌물이구나.”
아니, 백무호가 허허실실이라 했으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뇌물인 척하는 미끼.”
“그런 거겠지.”
종인걸은 두 개의 표국을 움직였다. 조용히 움직여도 모자랄 판에 최대한 크게 움직이며 시선을 끌었다.
“두 개의 표국을 움직여서 눈길을 끄는 사이 진짜는 다른 곳으로 조용히 움직인다?”
이야기가 슬슬 정리된다.
그런데 정리된 이야기가 마음에 안 든다.
욱신!
머리를 써서 그런 걸까? 갑자기 머리 한가운데가 욱신거리는 걸 느꼈다. 시큰한 감각이다.
일전에 경험해 본 것 같은 감각. 무의식중에 이 감각과 비슷했던 것을 머릿속에 떠올려 봤다.
마치 다른 누군가의 마음이 부딪쳐 오는 듯한 감각.
백가표국에서 적의를 날리며 부딪쳐 왔던 신입 표사들을 상대할 때 이런 느낌을 받았었다.
이건 그것보다 더 농밀하다.
살의라고 할까.
나는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폈다.
그 와중에도 백무호의 말은 이어졌다.
“여전히 관리 냄새를 풍기는 사람이랄까? 기분 나빠.”
관리들의 세상은 계급사회다.
상명하복.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지시를 내린다.
말 그대로 장기 말처럼 다뤄지는 기분이라고 백무호는 토로했다.
방금 느낀 감각이 아니었다면 나 역시 그 말에 맞장구를 쳐줬겠지만 당장의 관심사는 그쪽이 될 수 없었다.
“정지!”
비단 그것을 느낀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나 보다.
“경계!”
앞쪽에서 표행을 이끌던 백진성 아저씨의 목소리가 낭창하게 울려 퍼졌다.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이들이 무기를 뽑아 들었다.
하지만 한참이 지나도 주변은 고요하기만 했다.
백진성 아저씨가 실수한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한 경험 얕은 몇몇 신입 표사들의 주의력이 흩트려졌다.
나는 그런 신입 표사들의 행동에 소리쳤다.
“앞을 봐!”
백진성 아저씨는 먼 거리에 있는 적의 존재를 감지했던 것이다.
어떻게 그것을 알아차렸는지 신기할 정도로.
정작 나 역시 그것을 알아차린 입장이지만 당장은 그것을 신기해할 겨를이 없었다.
[이제 진짜 첫 실전이구만.]장삼풍 사부가 재미난 구경거리라도 되는 것처럼 말했지만, 나는 그 말보다 앞서 몸을 날리는 중이었다.
남동박이라 했던가?
갑작스레 길목 옆의 수풀을 찢고 적이 튀어나오는 순간 저 신입 표사의 움직임이 경직되는 것이 보였다.
흐트러진 주의력을 가르는 한 줄기 칼날.
내가 개입한 것은 그 찰나였다.
팍! 퍽!
뚝! 딱! 두 번의 움직임이었다.
범처럼 달려들어 발끝으로 칼날을 내려치는 팔의 팔꿈치를 부수고, 이어 내뻗은 주먹이 턱을 부쉈다.
한순간에 튀어나온 적을 박살 낸 내 움직임에 모두가 놀라는 가운데.
[허허, 이번은 소림권인가.]달마 사부의 웃음소리가 머릿속에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