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150
149화 녹림 채주의 역량(1)
[사람은 둘만 모여도 이끄는 사람이 생긴다. 그리고 그 수가 많아지면 나름의 규칙, 규범, 규율이 만들어진다. 흔히 법(法)이라 부르는 것이지. 당연한 소리지만, 이는 무림에도 존재한다. 국법을 어긴 자가 그 사회에서 살아가지 못하는 것처럼, 무림의 법도를 어긴 자 역시 그 집단에서 살아갈 수 없게 되지. 그렇게 된 자가 어디로 가겠느냐?]산적 따위가 이렇게 강해도 되는지에 대해 의아해하는데, 장삼풍 사부의 설명이 장황하게 이어졌다.
“무림이면서 무림이 아닌 곳…… 산이겠네요. 아니면 저 멀리 새외로 가거나.”
[그래, 정확하다. 보통 산으로 가지. 여느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어렵기 때문이다.]평생 무공을 펼치지 않는다면 무림을 벗어나 일반인으로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좋은 의도였든, 나쁜 의도였든 혈기를 참지 못하고 문제를 일으킨 자가 평생 무공을 접고 죽은 듯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런 자들의 무공이 모여 녹림 무공의 정수가 되었지.]정상적인 절차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일에 분연히 일어나 칼을 쥐고 일을 저지른 자, 재물이나 비급 혹은 영약 같은 신외지물을 탐하다 선을 넘은 자, 욕망을 참지 못해 일을 저지르고 도망친 자.
그런 자들이 뒤섞어 녹여낸 대화로(大火爐) 같은 곳이 녹림이라는 것이다.
[이 사부가 과거 육골범태의 몸으로 무림을 거닐 때도 제법 까다로웠던 녹림 고수가 있었다.]“사부님이요?”
이건 좀 놀랐다.
[어지러웠던 시대였던 만큼 정의로웠던 이들도 오욕에 손을 담그길 주저하지 않았다. 그들 가운데는 성정이 담백하여 정진에 뜻을 두고 있는 이들도 많았지. 그런 이들이 산에 자리 잡았다 하여 마냥 타락하지는 않았을 터. 녹림에는 그런 이들이 모여 정‧사‧마의 구분을 두지 않고 오로지 강함만을 추구하며 모든 것을 녹여낸 대화로(大火爐) 같은 시절이 있었다. 그 무맥(武脈)들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왔다면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사부님의 말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동시에 다짜고짜 손도끼를 날린 녹림 고수의 무력도 납득이 되었다.
긴장감을 다잡으며 달아오르는 몸속 힘을 가다듬었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상대가 분명히 보인다.
남궁세가 고수로 보이는 이가 둘, 개방인으로 보이는 이까지 셋을 감당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내게 손도끼를 던진 것이다.
아직 여력이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거리가 적지 않았음에도 쳐내는 순간 손이 얼얼할 정도였다.
그러고 보니 문득 백진성 아저씨가 녹림에 대해 평했던 말이 떠올랐다.
‘녹림이 사도의 하늘이라는 제육천에 들지 못한 건, 세가 지나치게 흩어져있기 때문이라셨지?’
녹림칠십이채라 하나로 뭉뚱그려 불리지만, 사실상 일흔두 개의 별도의 세력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산채 간의 거리도 문제려니와 각 산채의 성향이 너무도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이들이 하나로 힘을 모을 수 있다면?
여기에 장삼풍 사부의 평가대로 힘이 합쳐진다면?
정사마의 균형을 흔들 새로운 세력이 대두되는 것이다.
절대 무시할 수 없는 힘이 된다.
‘우선 돕자.’
녹림의 고수가 왜 안휘에 들어왔는지는 의문이지만, 당장은 남궁세가와 개방의 고수를 돕는 쪽이 먼저다.
앞으로 달려가던 다리에 힘을 더 주었다.
파앗!
능운금광보의 묘리와 함께 순식간에 상대와의 거리가 좁혀졌다.
먼저 상대했던 녹림도를 경악시켰던 움직임이다.
이번에도 통하리라 믿었다.
“어?”
그것이 패착임을 느낀 것은 순식간이었다.
상대의 간격에 발을 들인 순간, 내 머리를 노리고 낙뢰처럼 떨어지는 도끼날이 있었다.
도끼날이 내 상체를 가릴 정도로 거대함에도 무게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 같은 움직임이다.
“큿!”
콰아아!
장삼풍 사부의 청경, 천마 사부의 공감각과 더불어 주마등(?)의 힘까지 빌린 후에야 몸을 굴려 가까스로 피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있던 곳으로 천재지변과도 같은 무시무시한 무엇인가가 떨어져 내렸다.
‘뭔데 이거?’
극강격 같은 절기를 펼쳤을 때나 날법한 위력과 소리가 평범하게 휘두른 도끼날에서 느껴졌다.
‘나 방금 죽을 뻔한 거?’
멀리서 봤을 때, 거대한 도끼를 회초리처럼 휘두른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코앞에서 직접 겪은 것은 상상 이상이었다.
[시, 식겁했다, 이노마아아아! 정신 안 차릴래?]이어 장삼풍 사부의 잔소리가 내려왔다.
[이 사부가 괜히 녹림에 대해서 장황하게 설명한 것이 아니다. 이 녀석아아아아아!]확실히 사부님이 해 주신 조언들은 모두 경고나 다름이 없었다.
요즘 좀 잘나간다고 긴장의 끈이 너무 풀렸다.
다시금 긴장의 끈을 빡빡하게 조이는 순간!
후확!
다시 한번 나를 쪼개기 위해 도끼날이 떨어져 내렸다.
‘이번엔 확실하게 봤다고!’
무게에 비해 상식을 벗어날 정도로 빠른 도끼질이지만, 사부님들의 무공은 그 이상이다.
감각에 몸을 싣고 그 흐름에 탄다.
종이 한 장 차이로 공격을 피해내며 물 흐르듯 상대의 품 안으로 파고든다.
워낙 순간적으로 이뤄진 공방의 흐름이라 극강격으로 이어나가진 못했지만, 불의 신력이 담긴 일격이었다.
그런데, 그 일격이 만들어낸 소리는 참으로 낯선 것이었다.
텅!
속이 꽉 찬 범종을 때린 느낌이다.
힘이 제대로 뻗어나가지 못한 기분이랄까.
[연금강(軟金剛)! 조심해라!]좀처럼 없던 장삼풍 사부의 경고에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그제야 가격한 상대의 몸이 눈에 들어온다.
내가 타격한 곳을 기점으로 검은 얼룩 같은 것이 파문처럼 뻗어 있다.
그 얼룩이 순식간에 줄어들며 원점으로 모여들었다.
‘위험하다?’
따앙!
황급히 타격 지점에서 손을 떼는 순간, 강한 반탄력이 일어나며 불꽃이 튀었다.
마치 내가 때린 힘을 고스란히 돌려받은 것 같다.
그렇게 떠밀리듯 엉거주춤 물러나는 사이.
‘썩을.’
내 머리 위로 다시 한번 도끼가 떨어졌다.
콰앙!
“크흡!”
천마 사부의 권갑을 교차해 간신히 막아냈지만, 그 힘을 다 해소하지 못했다.
그 결과는 처참했다.
거대한 공이라도 된 것처럼 땅에 튕겨져 버렸다.
‘이대로…… 후속타가 오면……!’
체공 중인 상황이라 몸을 가누지 못해 다음 공격은 피할 수가 없다.
두 팔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충격이 남아 있었지만, 어떻게든 감각을 세우며 이어질 공격에 대비했다.
다행히 추격은 없었다.
“네 상대는 이쪽이다!”
시선을 끌기 위함인지 청수한 인상의 중년인이 목소리를 높이며 녹림 고수의 등을 노렸다.
“흥!”
푸른 기운이 담긴 중년인의 검을 무시할 순 없는지 녹림 고수의 도끼가 방향을 바꿨다.
천하에 명성이 높은 남궁세가의 중검과 녹림 고수의 도끼질이 부딪쳤다.
콰아아아앙!
놀랍게도 녹림 고수의 도끼가 남궁세가의 중검을 밀어냈다.
“여기도 있다!”
“흡!”
그 틈을 타 남궁세가 청년과 개방의 인물이 사각을 파고들었다.
남궁세가의 젊은 청년은 기억에 있다.
객잔에서 날뛰던 그 청년이다.
우연치곤 좀 얄궂다는 느낌이다.
감상에 빠지기엔 상황이 급박하기에 접어 두었지만, 그들이 펼치는 공격은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합격의 효율이 안 좋아.’
밀리긴 했어도 남궁세가의 중년인은 분명 녹림인의 공격을 받아낼 정도의 고수다.
문제는 그 뒤를 받쳐야 할 두 사람의 연계가 원활하지 않다.
혼자가 어렵다면, 여럿이 손을 잡는 것이 방도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연수합격이란 것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같은 무공을 익히고 있는 상황에서도 서로의 무공이 겹치지 않게 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실제 구파에서도 연수합격을 위한 합격진은 오랜 노력과 연습이 있어야만 합을 맞춰 제 위력을 발휘한다고 한다.
하물며 남궁세가와 개방으로 소속이 다르다.
함께하는 사람의 특기, 특징, 성향 등을 모른 채로 힘을 합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최악의 상황까지 간다면…….’
최악의 상황까지 간다면 방도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이화가 나서는 것도 고려할 수 있고, 천마 사부의 천마무겁수를 펼치는 방도도 있다.
하지만, 개방 인물이 있는 자리이기에 쉽게 선택할 수 없는 문제다.
그렇다면?
‘연수합격의 흐름을 좀 더 완전히 한다면……. 공격의 흐름이 겹치지 않도록 중간에서 정리를 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내게는 가능한 일이다.
다만,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저를 벨 것 같은 순간이 와도 검을 멈추지 마십시오.]객잔에서 했던 느낌을 살려 청수한 인상의 중년인에게 뜻을 전했다.
잠시 움찔하는 반응을 보며 내 목소리가 분명히 닿았음을 확인했다.
동시에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후웅!
상대의 영역을 파고든 순간, 귀신처럼 도끼질이 떨어져 내렸다.
허나 이번에는 나도 제대로 준비했다.
신력이 담겨 있는 극강격!
날뛰는 불의 신력에 나무의 신력을 싣는다.
나무의 신력이 우직하게 뻗어나간다.
불의 신력이 그러한 나무의 신력을 잡아먹을 기세로 확산한다.
두 힘의 흐름이 역동적으로 움직이며 극강격에 담겼다.
터어어엉!
“호오?”
온전히 준비를 갖춘 일격이라면 충분히 호각을 이룰 자신이 있다.
보패라는 말을 듣기에 부족함이 없는 천마사부의 권갑이 힘의 충돌을 감내해냈다.
“터져라!”
이 순간, 충돌한 힘을 터트린다!
극심뢰!
첫 충돌에서 터져 나온 힘의 잔재를 터트려 틈을 연다!
콰아아앙!
“큭?!”
연거푸 터져 나온 힘은 예상 못 했는지 사나우면서도 빈틈없던 적의 영역이 흐트러졌다.
그 흐트러진 영역으로 파고들었다.
팍!
찌르듯 내뻗는 각법이 상대의 가슴에 박혔다.
허나 장삼풍 사부가 말한 연금강이란 수법이 그 충격을 고스란히 먹어 치웠다.
‘여기까진 예상대로.’
파고들어 타격을 가했지만, 상대는 거뜬히 받아냈다.
조금 전에 당했던 수순을 생각하면 반격이 들어올 차례다.
즉시 몸을 숙였다.
눈으로 보지 않았지만 알 수 있다.
지금 등 뒤에선 남궁세가의 고수가 검격을 날리는 중이다.
‘이건 못 봤지?’
내 뒤통수에 눈이 달려 있진 않다.
하지만 천마 사부의 공감각은 감각의 눈으로 사방에 눈을 둔 것처럼 내 주변을 읽는다.
보지 않아도 어디에 검이 있는지 알고 있다.
내 상체를 갈라 버릴 기세로 뻗어진 검격이, 내가 몸을 숙인 순간 녹림 고수에게로 향한다.
눈으로 보지 못하는 시야의 사각에서 펼쳐지는 연계다.
아군을 베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의 연계.
이보다 더 정교한 연수합격이 있으랴!
사악!
검은 얼룩이 피어나고 있던 곳에서 붉은 피가 튀어 올랐다.
유효한 타격이 일어난 것은 분명하지만, 쇠도 절단할 것 같은 푸른 검격에도 몸이 조각나지 않은 것을 보면 역시 꽤나 단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더럽게 강하네.’
소주에서 부딪쳤던 흑기의 고수도 강하고 빠르긴 했지만, 역시나 흑기가 지닌 특성을 앞세웠었다.
이 녹림 고수는 그냥 그 자체로 강했다.
나름 성장했다고 느낀 내 기량을 부족하다 느끼게 만들었다.
녹림 고수가 앞가슴을 쓱 만지며 손에 피를 묻히더니 나를 노려보았다.
“내 강신공을 이런 식으로 깨는 건 처음이군. 뭐 하는 놈이냐?”
왠지 알려주기가 싫어 심술을 부렸다.
“어떨 때는 용이었다가, 어떨 때는 꽃돌이었다가, 조금 전에는 요괴라 불렸지.”
“…….”
아무래도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