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151
150화 녹림 채주의 역량(2)
“무슨 소린지 모르겠지만, 천천히 들어보도록 하지. 다 끝나고 나서.”
빙빙 돌려서 이야기하긴 했지만, 뭔 소리인지는 잘 알겠다.
‘허! 살려는 주시겠다?’
고수의 자신감 넘치는 선언이라 할 수는 있겠지만, 듣는 하수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꼬왔다.
들끓는 불의 신력 때문인지, 저 강철 같은 적을 향한 열기가 뜨거워져만 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성의 끈을 놓진 않았다.
혼자 싸우고 있는 상황이 아니기에 지금 필요한 것은 저돌적인 본능보다, 냉철한 이성이다.
‘합일권이라면 저 연금강이라는 무공을 깰 수 있으려나?’
합일권은 천마무겁수를 기반으로 중토신공과 삼재일기공의 힘을 하나로 모은 일격이다.
천마사부의 완벽한 천마무겁수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내가 구현할 수 있는 최강의 수다.
준비와 가동에 시간이 걸리는 만큼 좀처럼 쓰기 어려웠지만, 시선을 끌어줄 수 있는 고수가 있는 지금이라면 어떨까?
‘그나저나, 저 연금강이란 무공…… 뭔가 익숙한 느낌인데?’
충격을 담았다가 되받아치는 무공이라니.
방어가 곧 공격이다.
게다가 간격 안에서의 공격과 방어가 무척 충실하다.
본연의 영역을 확실하게 지켜내는 무공의 투로는 꽤나 익숙하다.
“어?”
저자의 장점을 나열하자 몇 가지 특징이 떠올랐다.
자신의 영역 안에서 싸우는 것을 강제한다.
상대를 자신의 영역으로 끌어내려 순수한 기량 싸움으로 몰고 간다.
이건 내가 알고 있는 무공이다.
“……소림?”
[그래. 몇 가지 다른 무리가 가미되긴 했지만, 그 근본이 소림에서 나온 것은 맞다.]장삼풍 사부의 대답에 한 가지를 더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장삼풍 사부는 저 무공을 알고 계셨어. 과거 지상에 계셨을 무렵 겪어본 무공이란 뜻이겠지?’
어쩌면 저 무공이 장삼풍 사부가 이야기하셨던 까다로웠던 고수의 무공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탐나네…….’
소림 특유의 기공을 이용한 무공인 모양인데, 거기에 무당 특유의 부드러움을 가미한다면 어떨까?
정확한 구결은 알 수 없지만, 땅의 신력을 기반으로 한다면 어떻게든 가능하지 않을까?
땅의 신력은 담아 수렴하고, 때가 되었을 때 발산하는 기질이 있다.
이를 잘 활용한다면 저와 같은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 같다.
‘내 육신은 사부님들이 고루 담금질했다. 이는 그 돌원숭이가 인증해줬어.’
위대한 무의 신들이 일군 터에 내 스스로 기둥을 세워본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생각이 움직이니 몸이 행한다.
땅의 신력을 중심으로 새롭게 판을 짜는 가운데, 소림의 무공 중토신공이 기다렸다는 듯 돕기 시작했다.
‘미숙하지만…… 될 것 같다.’
시작부터 도검불침(刀劍不侵)의 공능을 바라진 않는다.
하지만 충격을 흡수하는 부분만이라면?
“눈빛이 달라졌군.”
처음으로 녹림 고수의 발걸음이 앞으로 움직였다.
“조심하게!”
다른 셋이 경계하며 거리를 벌리는 사이, 나는 앞으로 나아가며 떨어지는 도끼질을 향해 두 팔의 권갑을 교차시켰다.
이전 일격을 받아낼 때와 같은 공격, 같은 방어다.
콰아앙!
“흡!!”
무지막지한 압력이 두 팔을 눌렀다.
천마 사부의 권갑이 아니었다면 그대로 동강이 났을 거다.
하지만 보패는 날카로움을 견뎌내며 이름값을 했다.
남은 것은 무지막지한 무게감이 실린 파괴력뿐!
이전에는 물수제비 신세가 된 돌멩이마냥 날아갔었다.
“받아냈다고?”
이번에는 아니다.
여전히 팔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충격이 있었지만, 막아냈다!
그 여세를 몰아 안으로 파고든다.
그 순간!
퍼억!
기다렸다는 듯 철탑 같은 몸을 내세워 몸통 박치기를 해 온다.
강맹한 고법(靠法)으로 나를 밀친다.
이 공격에 밀려나면 이어질 것은 뻔하다.
‘받는다!’
화경이 경지에 다다랐다면 흘려낼 수도 있겠지만, 이자의 힘은 내 부드러움을 끊어낼 수 있는 경지다.
무공을 논할 때 사람들이 종종 이야기하는 묘리가 있다.
능유제강(能柔制强).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제압한다.
하지만 현실은 강함이 부드러움을 끊어내는 경우가 대다수다.
능유제강의 묘리가 드물기에 널리 회자되는 것이다.
흘려낼 수 없다면 받아낸다.
중토신공과 힘을 합친 땅의 신력이, 그리고 부족한 점은 쇠의 신력이 보완한다.
‘그때와…… 같아…….’
처음 합일권을 펼쳤을 때의 감각.
내 몸에는 사부님들의 안배가 층층이 깔려 있다.
마치 여과기처럼 늘어선 채 나를 해하려는 힘을 걸러내고 또 걸러낸다.
단번에 절단당하는 것만 아니라면.
그저 단순히 힘을 받아낼 뿐이라면.
콰앙!
‘된다.’
두 번째 일격도 받아냈다.
그 여파로 팔뚝에서 팔꿈치 부근에 이르는 피부에 누런 황톳빛이 얼룩처럼 번졌다.
싹을 틔워 떡잎을 피워내고, 가지를 뻗어 기둥을 세운다.
스스로 세워 본 기동 하나가 그렇게 올라갔다.
공격이 막힌 녹림 고수의 눈이 크게 떠졌다.
“……연금강?”
본인의 것과는 다르지만, 맥이 비슷한 무공이 펼쳐졌다.
놀랄 수밖에 없을 거다.
“나한테 한눈팔 때가 아닐 텐데!”
나로선 좋은 일이지만.
내가 녹림 고수의 시선을 묶어 두는 사이, 다른 이들이 움직였다.
황급히 옆으로 몸을 피하자 섬뜩하리만치 강한 푸른빛이 섬광이 되어 녹림 고수를 향해 뻗었다.
푸욱!
심장을 노린 공격을 마지막 순간 몸을 뒤틀어 피해냈지만, 어깨를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연금강으로 어떻게든 막아 보려 한 듯 어깨 부근에 검은 얼룩이 생겼으나, 푸른 검광은 그 강신공을 꿰뚫었다.
“건방진!”
어깨를 꿰뚫린 녹림 고수가 신경질적으로 반대편 주먹을 휘둘렀다.
“커억!”
검이 어깨에 물려 있던 남궁세가 고수의 어깨가 함몰되다시피 하며 나가떨어졌다.
아예 죽일 참인지 결정타를 넣으려는 녹림 고수의 공격을 남궁세가의 청년이 끼어들며 받았다.
카앙!
어깨를 관통한 상처가 얕지 않은지 녹림 고수는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하앗!”
파파팍!
그 틈을 타 개방 인물이 녹림 고수의 가슴팍을 연거푸 세 번 걷어찼다.
큰 타격을 입은 것 같진 않지만,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듯 녹림 고수가 이를 갈았다.
“이 망할 놈들이!!”
쿠오오오오!
살기를 끌어올리는 녹림 고수의 기세에 주변 나뭇잎이 거세게 흩어졌다.
동시에 저 커다란 도끼 위로 검은 불길 같은 기운이 타오르듯 일어났다.
“돌겠네……. 힘을 아끼고 있었다고?”
지금부터가 진짜라는 듯 내보이는 힘에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정말 지겹게 강한 자다.
그렇다고 겁먹고 꼬리를 말 수는 없다.
“좋다. 해 보자.”
나 역시 숨겨 둔 한 수가 있다.
‘여차하면 밑바닥을 드러내서라도 죽인다!’
내 기세가 남다름을 알아보았는지, 분노로 얼룩진 녹림 고수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그렇게 서로의 결의를 확인한 순간.
삐이이익!
어디선가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적?’
아군은 아닐 것이다. 만약 다른 아군이 주변에 있었다면 진작 개입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접근한 자는 산적이다.
“가야 합니다, 대형.”
“…….”
“안휘는 상처 입은 몸으로 오래 있을 곳이 아니라고요. 당장 저것들 쓸어버리는 거야 문제가 없으시겠지만, 몸을 빼내려면 서두르셔야 합니다.”
하지만 날렵하게 거리를 좁혀 온 자는 녹림 고수를 닦달하며 퇴각을 종용했다.
‘통했나?’
눈을 마주치고 있던 나는 알 수 있었다.
녹림 고수의 눈가에서 전의가 가라앉았다.
“너, 이름은?”
그냥 물러나기가 분한 건지 다음을 기약한다.
“미쳤냐? 내가 그걸 왜 알려 줘?”
“…….”
녹림 고수의 얼굴에 당혹감이 어렸다.
납득이 안 간다는 표정으로 잔뜩 눈을 찌푸리더니 이내 어깨의 검을 뽑아 던지며 몸을 돌렸다.
“흥! 무당파를 들쑤셔 보면 나오겠지.”
‘아, 송문고검.’
허리춤에 차 있던, 뽑히지 않은 송문고검은 알아본 모양이다.
녹림 고수는 더 이상 미련 두지 않겠다는 듯 수하와 함께 빠른 속도로 물러났다.
거구임에도 상상 이상으로 빨랐다.
“흐아!!”
녹림 고수가 사라지자 개방 인물이 거세게 숨을 내쉬며 털썩 주저앉았다.
사선을 넘나든 자 특유의 인생에 대한 찬미가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반면 남궁세가는 달랐다.
“숙부, 괜찮으세요?”
남궁세가 청년이 황급히 중년인의 상세를 살폈다.
“……으음!”
애써 신음을 참아 보려 했지만, 어깨가 뭉개진 중년인의 상태는 무척 위중했다.
그 괴물딱지 같은 녹림 고수의 공격을 받아낸 충격으로 내 팔도 힘없이 떨리고 있었지만,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수박 겉핥기로 익힌 것이긴 하지만 화타 선생과 편작 선생에게 의술을 배운 몸이다.
당시 배운 의술은 사부님들에게 배운 무공만큼이나 내 몸에 배어 있었다.
“제가 의술을 좀 아는데, 봐도 되겠습니까?”
“아! 예!”
객잔에서 봤을 땐 당당한 사내대장부였던 청년이 지금은 비에 쫄딱 젖은 강아지마냥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부디! 잘 부탁드립니다!”
황급히 내게 자리를 비키며 목소리를 높여 재촉했다.
자리를 잡고 뭉개진 어깨를 살피는데, 장삼풍 사부의 진단이 떨어졌다.
[쯧쯧. 관절은 찢어지고, 뼈는 으스러졌다. 안됐군. 검을 쓰던 팔인데. 저 상태라면 자르는 게 나아. 어설프게 붙여 놓겠다고 놔두면 오히려 더 해가 될 거다.]내 판단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도 방법이 아예 없을 것 같지는 않았다.
장삼풍 사부의 진단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이거라면…….”
예전 소림에서 받았던 약을 꺼냈다.
소림의 수련법이 워낙 거칠다 보니 근육이 터지고, 뼈가 부러졌을 때 사용하는 영약에 준하는 약이라 했으니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될 거다.
검을 드는 것까지는 무리더라고, 팔을 자르는 것은 막아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조심스럽게 으스러진 뼈를 추스르고, 맞춘 다음 중년인의 어깨에 약을 발랐다.
“읍……?!”
고통이 심한지 중년인이 몸을 바르르 떨었다. 고래고래 비명을 지르지 않는 것만으로도 잘 단련된 사람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도 내심 안도가 되었다. 고통을 느낀다는 것은 약효가 발휘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황을 알지 못하는 남궁세가 청년은 뭔가 잘못된 게 아닌지 불안해하는 눈치였다.
“잠깐! 그, 그거 설마…… 현유보신고…… 맞소?”
대신, 개방 인물이 내가 꺼낸 약을 보며 경악했다.
과연 개방이다. 알고 있는 것이 많다.
‘역시, 이 사람 앞에서 이화의 힘을 보이지 않은 게 옳았어.’
“예. 어떻게 알았습니까?”
“영약쯤 되는 물건이면 보관하는 용기도 특별해야 하니까. 현유보신고쯤 되면 좀 특별한 용기가 필요하기도 하고. 아니, 그보다 왜 무당파 제자가 소림의 영약을…… 아앗!”
주저리주저리 떠들던 개방의 인물이 다시 한번 놀라며 나를 가리켰다.
“소천룡!”
곧장 나를 알아봤다.
다시 들어도 참 얼굴 뜨거워지는 별호다.
남궁세가 청년 역시 입을 떡하니 벌린 채 놀라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화제를 돌릴 겸, 나는 내심 궁금한 점을 꺼냈다.
“녹림이 왜 안휘에 온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