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177
176화 마(魔)의 주인(3)
내게 있어 천마무겁수는 꺼려질 수밖에 없는 무공이다.
내 사상과 근간이 정파에 중심을 두고 있는 이유도 있지만, 처음 천마무겁수를 전수받았을 때의 일이 정신적 상처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무공을 사용하는 순간, 의식이 날아갔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중토신공이 칠 단계쯤은 되어야 감당이 가능한 무공이란 경고를 받았다.
‘뒈지기 싫으면 쓰지 말란 의미셨지.’
사람은 아픈 꼴을 당하게 되면 자연히 그것을 피하게 되어 있다.
이후 간간이 그 힘을 활용해야 하는 상황이 왔을 때 목숨을 걸고 도전하긴 했지만, 솔직히 무서웠다.
그야말로 절벽 끝에서 탈춤을 추는 심정으로 천마무겁수의 영역에 들어갔다.
하지만 연경심법이 많은 것을 바꾸었다.
상화가 내 몸에 자리를 잡고, 연경심법으로 그 힘을 키우며 얻은 공능은 실로 놀라웠다.
감각이 비약적으로 상승한 결과는 단순히 반응 속도가 빨라진 것에 그친 것만은 아니었다.
기의 운용이 촘촘해졌고, 어설픈 빈틈들은 사라졌다.
십육식과 대연기공으로 갈고 닦았던 신력들이 자연스럽게 몸을 보호하게 되었다.
이렇게 갖춰진 기반 아래, 보패인 천마 사부의 권갑이 부족한 나머지를 채우면…….
‘……된다!’
중토신공 칠단공은 되어야 활용할 수 있을 거라던 힘이 자연스럽게 돌아간다.
과거 화산파 부근에서 마적 떼를 뭉개버릴 정도의 수준은 무리지만, 의식적으로 활용하는 수준으로는 끌어올릴 수 있게 됐다.
더 이상 쫓기듯 목숨을 걸고 도전하는 힘이 아니라, 내 의지에 따라주는 말 잘 듣는 맹수 같은 무언가다.
이제야 제대로 세 분 사부님의 진전을 이어받은 느낌이다.
기분 좋은 전능감이 온몸을 휘감는다.
‘이게…… 천마무겁수!’
손을 뻗으면 세상이 나를 위해 하늘이라도 뒤집어 줄 것 같고, 한 걸음 나아가면 땅이 스스로 움직여 나를 도울 것 같다.
세상과 내가 이어진 느낌!
세상 속의 내가 아니라, 세상이 나를 위해 움직인다는 이 감각은 특별했다.
‘삼재일기공이 묘한 움직임을 보이는 것 같은데…… 이것도 사부님들이 설계한 것인가?’
묘한 부분이 있다면 삼재일기공이 평소와 다른 느낌으로 움직이는 중이란 점이다.
평소라면 중토신공과 천마무겁수 사이를 소통하는 통로 같은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번져나가는 물감처럼 바깥으로 뻗어나가 물들이려는 느낌이다.
어쩌면 그 덕분에 천마무겁수의 존재감이 더욱 강하게 주변을 장악하는 것 같았다.
‘뭐, 상세한 것은 추후 점검하도록 하고……,’
지금은 눈앞의 일을 정리하는 것이 우선이다!
“저자.”
내 손가락이 가리키는 순간,
뚜둑!
그자의 머리가 사라졌다.
내 지시에 종 노인은 벼락같이 반응했다.
지시를 내리는 내가 섬뜩할 정도로 빨랐다.
상화와 연경심법으로 인해 지금의 감각만큼은 어지간한 절정고수들을 상회하고 있다.
절정의 경지에 오르지 못한 자라면 종 노인의 그림자조차 보지 못했을 거란 이야기다.
“허어…….”
“이게 대체…….”
녹림 산적들의 얼굴에 경악이 그려졌다.
내가 일으킨 기운이 심적인 부분을 제압했다면, 종 노인은 무력으로 위압한 꼴이다.
완벽하게 눌린 자들이 반항할 힘을 잃은 채 두려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뭐 하는 짓인가!”
다만 한 사람, 이천경만은 달랐다.
억지로 힘을 쥐어짠 반동으로 복부에서 붉은 얼룩이 번지고 있음에도 몸을 일으켰다.
“뭐 하는 짓이냐고 물었다!”
아직도 내가 휘하에 들일 사람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야망이 있고, 그 야망을 이용할 수 있다 여겨 무작정 꺾지 않으려 했지만…….’
이미 계획은 어그러졌다.
“뒤처리를 해 주고 있지.”
“뒤……처리?”
“그래, 네가 하지 못한 일.”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지금은 확실하게 꺾어 놔야겠다.’
지금은 찍어 누를 때다.
“그보다, 내가 발언을 허락했던가?”
삼재일기공을 움직였다.
중단전에 힘을 모은다.
천마무겁수와 어울리더니 평소와 다른 성향을 보이던 삼재일기공이었지만, 내 의지가 닿자 상단전과 공명하면서 힘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우우우우우우웅!!
착각이 아니다.
분명 주변의 공기가 요동쳤다.
펄럭이는 깃발들처럼 내가 담은 의지가 넘쳐흘렀다.
과거 선화문에서 펼쳤던 천마사부의 힘!
홀로 높으며, 홀로 존귀한 독존자의 광오함!
삼라만상을 눈 아래로 보는 오만한 의지!
그 모든 것이 이 한걸음에 실린다!
쿠웅!!
소리 자체는 크지 않았다.
지진을 일으킬 만큼 땅을 흔들지도 않았고, 거창하게 과시하지도 않았다.
“커억!”
“욱! 우웩!!”
“쿨럭!! 컥!”
하지만 사람만큼은 확실하게 흔들었다.
몸이 아니라 마음을 꺾고자 하는 의지를 담으니, 같은 수를 펼쳤음에도 그 여파가 다르다.
허리를 꺾고, 무릎을 꿇는 자들이 속출했다.
“……군림보……마……군림보…….”
누군가 횡설수설하는 말이 주변으로 울려 퍼졌다.
‘천마…… 군림보……. 오래전 실전(失傳)됐다고 들었는데…….’
주변의 시선과 반응에 조금 당황스럽긴 했다.
천마군림보.
정파무림에서도 전설처럼 언급될 만큼, 사실상 천마를 상징하는 무공이기 때문이다.
그 무공을 내가 펼쳐낸 것이다.
주변의 반응들은 지극히 예상대로 흘러갔다.
나를 따르는 자들은 경외를,
내게 순응하지 않는 자들은 경악을.
그리고 그 외의 반응들.
“가짜야! 그럴 리 없어!”
부정하는 자들이 있다.
하나같이 머릿속에 고독을 품고 있는 자들이다.
“죽어!!”
“토막을 내주겠다, 가짜!”
그들이 적의를 드러내며 내게 몸을 날렸다.
‘이상한데?’
채주급 강자들이다. 악군패에 미치진 못해 보이지만, 어딜 가서도 어깨를 펴고 다닐 수 있는 고수들이다.
‘약해 보여.’
그런 고수들이 사납게 달려들고 있음에도 마음이 평온하다.
손발을 어떻게 뻗어도 닿을 것 같다.
형과 식이 필요 없어진 기분이다.
생각한 대로 돌아가는지 직접 움직여봤다.
뻐억!
“커억!”
저돌적으로 달려들던 자의 턱에 내 주먹이 꽂혔다.
털썩!
그걸로 끝이었다.
외마디 비명 한 줄기와 함께 쓰러진 자가 발작하듯 꿈틀거리더니 이내 축 늘어졌다.
반응의 격이 다르다.
그뿐만이 아니다.
‘너네 뭐 하니?’
천마무겁수와 삼재일기공이 손을 잡더니 묘한 짓을 하고 있다.
그로 인해 만들어지는 기묘한 힘.
내가 주먹을 쥐면,
세상도 주먹을 쥔다.
세상이라는 망치를 쥐고 휘두르는 느낌이랄까?
마침 이 힘을 휘둘러볼 상대가 달려드는 중이다.
내 머리 위로 떨어지는 매서운 검격에 자연스럽게 손을 가져다 댔다.
쩌엉!!
도자기처럼 깨져 부서지는 쇳조각들!
그중 하나를 손가락을 튕긴다.
푸욱!
“크악!!”
쇳조각은 그대로 눈을 관통한 뒤 머리를 뚫고 나왔다.
녹림 최강자급 둘이 순식간에 뭉개져 버렸다.
몸과 마음이 꿇려져 있던 녹림도들의 머리가 완전히 땅바닥에 닿았다.
완벽하게 복종했다.
짙은 침묵이 주변을 장악했다.
하지만 나는 당장 내 머릿속이 걱정되었다.
검을 간단히 부숴낸 순간, 마치 내 손에 무언가 크고 거대한 것을 한아름 움켜쥔 채 후려치는 것 같았다.
‘끄아아아…… 머리…… 머리가……. 아우우…….’
문제는 그 반동이 심상치가 않았다.
뇌수에 손을 담그고 뭉개진 연두부가 될 때까지 주물럭거리는 것 같다.
아직 내게 허락되지 않은 영역이라는 느낌이다.
천마무겁수를 활용할 수 있게 되었지만, 가야 할 길은 아직 먼 것 같다.
천마무겁수를 거두고, 삼재일기공의 소통을 끊었다.
‘……어우!’
주변의 공기를 요동치게 만들던 마기가 거두어지자 다리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물속에서 한나절은 쉬지 않고 헤엄치다 뭍으로 나온 느낌이다.
중토신공이 미친 듯이 움직이며 몸을 바로잡아주지 않았다면 꼴사납게 바닥을 굴러야 했을 거다.
나는 태연함을 가장한 채 이천경 앞에 섰다.
반항하는 자들을 모두 제거한 종 노인과 이화, 천마수신위들이 내 뒤로 도열했다.
“생각할 시간을 주겠어. 하지만 이천경 네가 택해야 할 건 결국 하나야.”
“……인정……하라는 건가?”
“받아들여. 이게 현실이니까.”
나는 이들의 주인임을 선언했다.
이미 이를 태반이 받아들였다.
내가 뿜어낸 마기를 접한 녹림도들의 시선은 어느새 휘하의 마인들과 닮아가고 있었다.
알고 있는 거다.
내가 진짜라는 것을!
“한 식경 주지. 그 안에 결정을 내리고 표국 쪽 파벌에 합류하도록.”
그 말을 끝으로 나는 등을 돌렸다.
털썩!
“하아…….”
누군가 주저앉는 소리와 함께 긴 한숨이 들려왔다.
내겐 이천경의 마음이 꺾이는 소리처럼 들렸다.
“곧 파벌에 합류하겠네요. 이천경 저 사람은 부상 때문에 큰 도움까진 힘들어 보이지만, 저만한 고수들과 숫자라면 어떻게든 될 거예요.”
나는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척 설아 누나를 향해 말했다.
방금 보고 들은 것이 있는 설아 누나에게 나는 일말의 두려움을 담아 물었다.
“이해해…… 줄 수 있어요?”
“괜찮아. 더 무서운 것도 본 적 있는걸.”
“……이해해 준단 소리…… 맞죠?”
설명은 해 주지 않겠지만 보여준다고 했다.
그리고 보여줬다.
설아 누나의 반응은 내가 염려한 것과 다소 거리가 있었다.
‘언젠가……였지.’
믿을지, 믿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설아 누나에게라면 언젠가는 진짜 비밀인 천상에 관한 이야기를 해 줄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것보다도…….’
사실 지금 겁먹어야 할 쪽은 내 쪽인가?
착각인가?
***
느긋하게 자리에 앉아 외부의 소란스러운 소리를 들으며 벽지심은 때가 무르익었다고 판단했다.
계획된 대로다. 축배라도 들고 싶은 심정이었다.
“참 길었군.”
자의든, 타의든, 피치 못할 사정이든 평범한 사회에서 도망쳐와 산적이 된다는 것은 평범과는 거리가 멀다.
반골 정신과 독선의 극의에 다다른 자들을 하나로 모으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벽지심은 한자리에 모인 녹림칠십이채의 면면을 보자마자 평범한 방식으로는 대통합을 절대 이룰 수 없을 것이라 예견했다.
그래서 일부러 시간을 끌었다.
독자 생활에 익숙한 자들을 부대끼게 만들었고, 기존에 없던 것들을 심었으며,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노출된 약점이나 틈새를 찾아 공략했다.
그 기나긴 노력(?)의 성과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제 거두기만 하면 되겠어.”
욕심으로 눈이 뒤집힌 파벌들은 다른 파벌들을 강제적으로 병합하려 들 거다.
욕심이 없는 파벌이라 해도 공격을 당하면 반격할 수밖에 없다.
자연스럽게 힘이 빠지게 된다.
그럼 벽지심은 어부가 되어 편안하게 거두기만 하면 된다.
설령 반항할 힘이 남아 있다 해도 내부에서 벽지심에 호응하여 칼을 거꾸로 잡은 자들까지 튀어나오면 이미 상황은 끝난 것이나 다름이 없다.
녹림 전체적인 전력에는 손해지만, 설령 얼마의 손해가 나던 벽지심으로서는 기존의 수십 배에 달하는 힘을 손에 넣게 된다.
그 힘으로 녹림의 왕이 되어 무림의 새로운 패권 세력으로 군림할 것이다!
“으음?”
희망찬 미래를 상상하던 벽지심은 조력자를 돌아보다 그대로 굳어졌다.
사내의 외견이 바뀐 탓이다.
본래 흑의의 사내는 군살 없이 탄탄했다.
하지만 지금은 벽지심 자신만큼이나 덩치가 불어나 있었다.
“어어…….”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즘, 벽지심은 온몸의 힘이 빠지기 시작했음을 느끼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맞아. 참 쓸데없이 길었지.”
입을 연 사내의 목소리는 기이할 정도로 벽지심을 닮아 있었다.
일이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느낀 벽지심의 얼굴에서 생기가 사라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