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176
175화 마(魔)의 주인(2)
빠르게 악군패 측 파벌을 받아들이며 전열을 정비했다.
그사이 나는 백진성 아저씨에게 다가갔다.
뜬금없는 말이 되겠지만, 일을 진행하기 전에 미리 조율을 해야 할 것이 있기 때문이다.
“녹림에는 마공을 익힌 파벌도 있겠죠?”
“그야 있겠지. 일반 산적이라면 모를까, 녹림이라면 여러 가지 이유로 세상을 등진 무림인들이 모여 있는 곳이니까. 몰라서 묻는 건 아닐 테고, 그건 왜 묻는 거냐?”
“잘하면 그 파벌도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허어? 그쪽을? 어떻게?”
백진성 아저씨가 의외라는 듯 눈에 힘을 준다. 그러다 내 턱짓이 향하는 방향을 보고 바로 납득을 하셨다.
“아! 그러네. 워낙 중후한 양반이라 깜빡했어. 저 어르신도 마인이었지?”
종 노인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던 백진성 아저씨가 눈을 반짝이신다.
나와 달리 녹림을 먹겠다는 계획 자체가 급조된 상황인지라 이제야 그 부분이 보이시는 모양이다.
확실히 돌아가는 상황이 급작스러워 정신이 없기는 했다.
“마공을 익힌 파벌을 먹는다……라…….”
정파에 뿌리를 두고 있어서인지, 백진성 아저씨는 본능적으로 망설이는 모습이셨다.
사고의 폭이 넓은 백진성 아저씨가 염두에도 두지 못할 영역이니 그럴 만도 하다.
“관리가 쉽지 않을 텐데?”
“힘든 일은 누군가 하겠죠.”
“……누구에게 배워서 그런 못된 생각을 하게 된 걸까?”
백진성 아저씨의 눈매가 가늘어지며 나를 노려보셨다.
그것도 잠시.
“뭐, 해 봐라. 저 괴물 같은 양반이 따라간다면 어디서든 목숨이야 건져오겠지.”
“설아 누나도 갈 테니 걱정 마세요.”
“뭐? 야, 인마! 너 이…….”
“몰라요! 안 들려요!”
뭔가 험한 말이 튀어나오기 전에 나는 양 귀를 막으며 훌쩍 몸을 뺐다.
***
원래는 종 노인과 천마수신위 정도만 데리고 빠르게 움직일 계획이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설아 누나가 따라오게 되면서 백가표국 직속의 숨겨진 세력인 한영과 설영들까지 일부 따라오게 되었다.
어지간한 대문파도 쑥대밭으로 만들 만한 전력이다.
백진성 아저씨 입장에서는 그만한 전력이 떨어져 나갔다는 이야기다.
백진성 아저씨 눈빛에는 허탈감이 가득했다.
이게 그 딸자식 키워 봐야 소용없다느니, 하는 부모의 모습 같았다.
‘아, 조금만 기다려 봐요. 좋은 거 가져온다니까 그러시네.’
이경천 그 짭천마 세력을 끌어오면 냉큼 삼키실 거면서 엄살이 심하다.
새로 합류하게 된 채주들의 숫자도 늘어났고, 신승 어르신이 듬직하게 계시는데 뭘 그리 약한 척인지 모르겠다.
‘그나저나, 설아 누나는 뭔가 걱정이 많아 보이는 얼굴인데.’
짭천마 이경천이 있는 곳으로 경공을 펼치며 달리는데 뭔가 물어보고 싶은 게 많은 얼굴이다.
내가 독심술 같은 걸 배운 적은 없지만, 뭘 걱정하는지는 대충 알겠다.
‘마공에 대한 거겠지.’
설아 누나는 내가 정파 무공을 익힌 것으로 알고 있다. 그것도 소림과 무당이라는 구파 무공이 근간이라 알고 있다.
그런 내가 마공을 익히는 것은 세간의 기준으로 볼 때 빨리 죽고 싶어 안달 난 자살행위다.
주화입마로 향하는 최고의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내 스스로 말할 거라 당부했기에, 섣불리 이를 언급하는 것은 추궁이라 여기는 모양이다.
아무튼, 무척이나 복잡해 보이는 표정이다.
“나 마인 아니에요.”
“정말!? 앗!”
진즉에 들통 난 속내를 이제야 들켰다고 생각했는지 설아 누나의 얼굴이 붉어졌다.
나는 옆을 스치고 지나가는 나뭇가지 하나를 낚아채 손에 들었다.
“마인이 이런 걸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새싹의 순만 나 있는 나뭇가지에 나무의 신력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순이 벌어지고 싹이 텄다.
꽃나무였는지 예쁜 봄꽃이 가지 위에서 화사하게 피었다.
“와아…….”
설아 누나는 순수하게 감탄하며 내가 건네는 나뭇가지를 받아들었다.
이건 무공의 영역에서 설명할 수 있는 힘이 아니다.
“저건…….”
“허어…….”
놀란 사람은 설아 누나뿐만이 아니었다.
종 노인조차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천마수신위들의 경우는 날 사람이 아닌 무언가로 보는 시선이다.
광신도 같은 기질이 더 짙어진 느낌이라 실수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봄이라…… 봄을 가져오는 사람이라…….”
반면 설영들의 수장인 한영은 어딘가 애증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설아 누나도 마찬가지인 걸까?
설아 누나는 내가 건넨 봄꽃 가득한 나뭇가지를 소중히 품에 넣었다.
***
봄내 나는 분위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마공 쪽 파벌들은 녹림 내에서도 이질적이었는지 다른 산채들과 거리를 두고 있었다.
타 산채들과 접촉할 일이 적은 곳에서 요란한 소리들이 들려오고 있었다.
“조용히 넘어가질 않네.”
이미 어느 곳과 한 판 붙는 중인 것 같다.
“전투 준비!”
내 지시가 떨어지자 종 노인을 비롯한 마인들의 눈빛이 바뀌었다.
“저희가 나섭니까?”
이화도 종 노인도 아닌 천마수신위에서 물어왔을 정도다.
“제대로 날뛰어 봐. 그동안 갑갑했던 거 다 풀어. 어차피 저곳은 ‘아군’과 ‘아군이 될 사람들’뿐이니까.”
“예! 그럼 그런 자들만 남겨 놓도록 하겠습니다.”
천마수신위를 대표하는 마인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웃었다.
“우리도 나설까?”
전의를 불태우는 마인들에게 자극을 받았는지 한영이 은근슬쩍 허락을 구해 왔다.
“설아 누나가 허락하면요.”
“저런…….”
한영이 아쉬움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가운데 교전 중인 이들이 눈앞에 드러났다.
“기습?”
“뭐 하는 놈들이냐!”
우리의 존재를 이제야 알아차렸는지 싸우고 있던 이들의 시선이 향해온다.
그들을 살펴보는 내 감각에 뭔가가 잡혔다.
‘전자였나?’
벽지심이 난 놈이긴 난 놈이었나 보다.
교전을 벌이고 있는 자들 모두가 마기를 줄기줄기 뿌리고 있는 것을 보면 배신자를 만다는 것에 성공한 모양이다.
아니, 그것보단.
‘학! 그놈들도 있어.’
역겨운 기색이 느껴졌다.
머리에 고독이 심겨 있는 자들도 있다.
자발적인 배신인지, 아니면 고독에 당해 굴복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해결해 줄 방법은 내겐 없다.
그렇다고 사정 봐줄 상황도 아니다.
“어깨에 붉은색 띠를 두른 놈들이 적이다!”
“존명!”
누가 적인지 아군인지 알 수 없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피아를 명확하게 구분해준 내 지시에 종 노인과 천마수신위가 태풍처럼 몰아치며 적들을 쓸어버리기 시작했다.
가슴이 웅장해지는 무위에 절로 호기가 생기며 함께 날뛰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쌓인 거 풀라고 던져준 먹잇감(?)을 같이 씹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조용히 억눌렀다.
쾅! 콰콰쾅!
“크악!”
“뭐야, 이 새끼들!”
순식간에 짭천마를 배신한 녹림도들이 개박살 났다.
“와우!”
고삐가 풀린 종 노인과 천마수신위의 무위는 진짜 무시무시했다.
이 정도면 거의 맷돌로 갈아버리는 수준이다. 아까 싸울 때는 무척이나 조심스럽게 싸웠다는 걸 알겠다.
‘뭐, 한 명은 마교 최강자 중 한 명이고, 나머지도 마교에서 고르고 고른 정예 고수들이었다고 하니…….’
격의 차이를 생각하면, 어떤 의미로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잘해줘야겠다.’
앞으로 정말 잘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무럭무럭 샘솟았다.
그렇게 속 시원히 날뛰는 종 노인과 천마수신위에 의해 상황이 마무리될 무렵 나는 어안이 벙벙해 있는 녹림도를 향해 물었다.
“이 채주는?”
“어어…….”
혼란스러웠던 전장을 순식간에 정리해 버리면서 묻는 말이다. 그 무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저기…… 채주님과 아는 사이신지…….”
“보면 몰라?”
나는 턱짓으로 종 노인과 천마수신위가 있는 쪽을 가리켰다.
순정한(?) 마기를 뿜어내고 있는 이들이 눈을 부라리고 있다.
막 고삐가 풀린 상태로 피를 봐서인지 잠시 절제를 내려놓은 마인들이 나와 대화하던 녹림도를 죽일 놈 보듯 노려보고 있다.
대충 저 눈빛을 번역하자면, ‘니가 감히 지금 우리 천마님 하명에 대답 안 하고 개기냐?’ 정도쯤 되시겠다.
내가 봐도 살벌한데, 저 눈빛을 직접 감당하는 상황이라면 오줌을 지려도 이상하지 않을 거다.
“이, 이쪽으로…… 아, 아니! 모시겠습니다!”
다행히 눈치가 있고, 처신이 빨랐다.
녹림도를 따라가자 곧 마인 파벌이라 부를 수 있는 이곳의 알맹이를 볼 수 있었다.
‘이러니 개판이었네.’
종 노인이나 천마수신위가 녹림에서 어설픈 마공을 익힌 자들과 격이 다른 것은 맞지만, 너무 일방적인 이유가 있었다.
채주급들의 강자, 진짜들은 이곳에 모두 모여 있었다.
외부에서 벌어지던 싸움도 이곳에 있던 전력들이 움직였으면 쉽게 제압되었을 거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들이 움직이지 못한 이유가 있었다.
“찔렸군.”
짭천마 이경천이 피로 물든 붕대를 배에 감고 쓰러져있었다.
“……부끄러운 꼴을 보이는군. 배신자가…… 있었다.”
꽤나 창피한지 얼굴을 들지 못하는 짭천마가 이빨을 으드득 갈았다.
“그래도 용케 단전은 피했네.”
“가까스로.”
피에 물들어 있는 붕대를 보아하니 단전을 찌를 생각이었던 것 같다.
나름 신뢰하던 자의 배신이었는지 찔리는 순간 몸을 비트는 것이 고작이었던 모양이다.
“몇 명 더 죽여야 할 것 같은데, 괜찮을까?”
“……무슨 소린가?”
“뭔 소리긴.”
알아들었을 텐데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전형적인 현실 부정이다.
그런 짭천마를 상대로 굳이 구구절절하게 설명해 줄 생각은 없다.
그럴 시간도 없고.
“종 노.”
“종극, 여기 있습니다.”
“지금부터 내가 가리키는 놈들, 싹 다 죽여요.”
“존명(尊命)!”
나는 여기 모여 있는 자들의 의견 따윈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어차피 여기에서 살아나갈 사람은 아군이거나 아군이 될 사람들뿐이다.
그 외에는 다 사라져야 한다.
“저놈.”
내가 가리키자 종 노인이 움직였다.
퍼걱!
뭔가 질퍽하고 단단한 것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피떡이 되었다.
“갑자기 무슨 짓인가!”
“해 보자는 거냐!”
스릉!
종 노인과 천마수신위가 뿜어내는 마기에 압도당해 있던 자들이 그제야 정신을 차리며 무기를 뽑아 들었다.
금방이라도 내게 달려들려는 그들에게 나는 힘을 담아 말했다.
“지금부터는 손에 무기 쥐고 있는 놈도 죽는다.”
“…….”
예의는 잠깐 내려놓을 시간이다.
나는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안과 밖을 연결하는 호흡 사이로 무언가를 일깨웠다.
‘저 짭천마가 좋은 걸 보여줬었지.’
의지를 드러내 주변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수법.
천마 사부는 저 짭천마보다 내가 이 힘을 더 잘 다룬다고 했다.
무의식적으로 사용했던 힘이라지만, 알고 인식했다면 의식적으로도 다룰 수 있다.
내 안에 담겨 있는 천마 사부의 가르침.
마(魔).
신(神)과 반대편에 서서 신에 이르는 위대한 진리.
마에 닿아 마를 이루었다는 내 본질.
내 안에 있는 그것을 끄집어낸다.
‘나와라!’
크어어어엉!!
그 의지에 화답하는 것이 내 안에서 소리를 낸다!
좁은 심장 속에서 밖으로 내보내 달라 아우성친다!
그것이 풀려나온다.
“아아아아!!”
누군가 탄식인지 환희인지 구분할 수 없는 외침을 토해낸다.
아마도 천마수신위 중 한 명이 아닐까 싶다.
‘내 중단전은 크고 넓다.’
장삼풍 사부가 심혈을 기울여 구축한 중단전이다.
일반적인 범주에서는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머리의 생각을 가슴에 담고 뿌린다.
머릿속 심상을 현실에 구현한다.
천마무겁수!
무림에 뿌려져 있는 모든 마(魔)의 시원(始元).
그 영역 안에 속한 것이 기쁜지 종극이 거침없이 마기를 뿜어낸다.
천마수신위들은 물론이고 이화마저 상기된 채 호응한다.
온 세상이 마의 불길에 휩싸인 듯한 광경!
그 중심에 내가 있다.
마에 닿아 마를 이룬, 마 그 자체로 군림하는 자.
여기에 있는 나는 평소의 나와 다르다.
“내가…….”
나는…….
“너희의 주인이다!”
천마(天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