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19
18화 갑질
사실 장삼풍 사부나 달마 사부가 며칠 앓아누울 거라는 식으로 이야기했을 때는 좀 쫄았었다.
그런데 막상 정신 차리고 보니 많이 아프긴 해도 버틸 만했다.
그래서 달마 사부가 이번에 아플 거라 충고했던 이야기도 그냥저냥 참을 만한 수준이겠거니 싶었었는데.
아니었다. 진짜로.
차라리 흑역사 한 번 찍는 것이 낫지 않았나 싶었을 정도였다.
알고 보니 장삼풍 사부와 달마 사부가 무지막지하게 때려 박았던 내 기초가 생각보다 튼튼해서 참을 만했던 거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 것은 기초 위에 만들어진 것을 단단히 다지는 과정 같은 거라 기초가 튼튼한 것과는 관련이 없는 부분이라셨다.
중토신공이 자리를 잡는 과정 같은 거였다던가?
기왕 물꼬를 터놨는데 그냥 허무하게 날려버리는 건 아깝다는 것이 달마 사부의 의견이셨다.
어쩌겠어. 그냥 미련하게 참는 수밖에.
그래도 성과는 있었다.
[기초가 튼튼해서인지 중토신공이 생각보다 빨리 자리를 잡아 가는구나. 일 단공을 이루는 속도가 제법 단축되겠어.]역시 믿고 쓰는 천상표다. 내 몸에 들이 부어지고 있는 그 기초라는 것들도 따지고 보면 하나하나가 천상에서 가다듬어진 것들이니까. 그러니 이렇게 발전이 빠른 것이기도 하고.
달마 사부의 말에 따르면 중토신공은 달마 사부가 말년에, 그것도 거의 천상에 오르기 직전에 창안한 무공이라 하셨다. 그래서인지 굳이 입문자 수준인 일 단공 같은 구분을 지을 필요가 없으셨다나. 그냥 창안할 때부터 완성에 가까웠으니까.
다만 내 수준에서 굳이 구분을 짓는다면 입문자 수준인 일 단공이 내가 그리 감탄한 경지였다는 것이다.
놀라는 것도 이제는 지치는 기분이다.
그렇게 자꾸 내가 놀라고 감탄하는 모습을 보이니 장삼풍 사부가 날 선 목소리를 드러냈다.
[조금만 기다려 봐. 나도 조만간 끝장나는 거 하나 알려 줄 테니.]장삼풍 사부는 내가 중토신공으로 활약하는 걸 보고 꽤나 자극을 받으신 것 같다.
뭐, 사실 장삼풍 사부에게 태극권과 청명심법을 배우긴 했지만, 중토신공의 위력을 느낀 지금은 아무래도 달마 사부의 가르침이 더 굉장하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니까.
물론 청명심법의 효용과 능력은 중토신공과 방향을 달리한다는 점에서 비교할 게 아니기는 하지만, 그래도 장삼풍 사부는 그게 영 신경에 거슬리는 것 같다.
[중토신공과 충돌 없이 호환하면서도, 완벽하게 상위로 조화를 이루는 놈을 가르쳐 주도록 하지. 당장 네 수준이 너무 낮아 함부로 손댈 수는 없겠지만,쥐꼬리만 한 성취로도 중토신공쯤은 넘어설 수 있는 놈으로.]달마 사부의 중토신공을 상당히 경쟁적으로 보시는 것 같았다.
[호오?]그런 장삼풍 사부의 말에 달마 사부도 살짝 기분이 상한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어느 쪽이든 나는 좋은 일이다.
대체 어떤 무공일까?
상상만 해도 기대감이 무럭무럭 차오른다.
다만 그 전에.
“뭐야, 벌써 회복한 거?”
일단 눈앞의 ○을 치워야 할 필요가 있었다.
“덕분이다, 이놈아.”
“별말씀을?”
보란 듯이 자리에서 일어서는 나를 가늘게 뜬 수상한 눈초리로 위아래를 훑어보던 백무호의 시선이 게슴츠레하게 변했다.
그 고갯짓은 너무 노골적인 거 아니냐?
작은 빈틈이라도 있으면 파고들 것처럼 살피는 그 모습은, 오늘 아침까지 회복을 못 했을 시 어떤 결과로 이어졌을 것인지 이야기해 주는 것처럼 보였다.
이걸 보니 정말 고생한 보람이 느껴졌다.
그래, 밤새 고생한 걸 생각하면 흑역사라도 없어야지.
“도움이 필요하면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말고 언제든지 이야기해. 나야 너랑 안 해본(?) 거 없는 사이인 거 알잖아.”
“……알지. 잘 알지. 빠득!”
뒷말이 없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말이다.
안 해본 거 없다는 말에 괜한 흑역사가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그럼 내가 부! 탁! 하면 도와주는 거다?”
“칫!”
쐐기를 박는 내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혀를 차며 한 걸음 물러섰다.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포기한 눈치는 아니다.
몸이 완전하게 회복될 때까지는 주의해야겠다.
***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백무호 때문에 잠시 경계를 내비치긴 했지만 의외로 해결은 다른 방향을 통해서 이뤄졌다.
그동안 붕 떠 있었던 내 입지가 백가표국 내에 깊이 자리를 잡아 간 덕에 굳이 백무호가 아니더라도 날 돕겠다는 사람은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중 몇몇은 내가 한밤중에 고통을 참느라 신음을 흘리는 소리를 간간이 들었다며 안부를 물어왔다.
그냥 아픈 기색을 드러내도 괜찮은데 굳이 그것 참아보려 애쓰는 걸 듣고 많이들 신경이 쓰였다고 했다.
사실 아파서 끙끙거린 주된 이유는 백무호 때문이고, 그 결과는 모두 나의 성장을 도울 밑거름이 되었으니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되지 않으려고 참았지만, 다른 사람들 입장에서는 달리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것이었다.
물론 그런 사람들의 말에 나는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굳이 일일이 설명하면서 오해를 풀어주기보다는, 어떻게 보면 ‘내색하지 않으려 했는데 들켰네요.’ 같은 느낌을 풍기는.
뭐, 오해라곤 해도 이 정도 호의를 받을 만큼은 노력했고, 성과도 냈으니까.
어쨌거나 그 덕분에 그나마 남아 있던 나에 대한 안 좋은 인식들이 싹 사라지고 좋은 면모만 남길 수 있었다. 백가표국에서 분쟁이 났을 때 제일 먼저 내게 이빨을 드러냈던 남동박이라는 사람조차도 미안했다며 사과를 해 올 정도였으니까.
이래서 사람은 착하게 살고 볼 일인가 보다.
가볍다면 가벼운, 혹은 지랄 같다면 지랄 같은 죽마고우끼리의 토닥거림 덕분인지 표행만큼은 나름 지루하지 않게 큰 문제 없이 쭉쭉 진도를 나갔다.
딱히 산적이랍시고 날뛰는 녀석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고, 애초에 홍무문의 방해를 배제하면 딱히 위험할 것이 없는 표행이기도 했다.
그렇게 표행은 큰 문제 없이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근방에서 대놓고 우릴 건드릴 만큼 간 큰 곳은 얼마 없으니까.”
백무호의 말에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백가표국이 명성을 날리기 시작한 세월이 거진 이십 년쯤 됐던가?
확실히 그만한 세월 동안 근방의 의뢰들을 맡아 왔다는 건 주변에 산재해 있을 어지간한 적대 세력은 대부분 쳐냈거나 몰아내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명운표국도 그렇게 생각했을 거야.”
“거긴 재수가 없었던 거고. 그래도 무슨 말인지는 알겠다.”
하지만 무림은 방심할 수 없는 세상이다. 언제 어디에서 어떤 위험한 악연과 음모에 얽히게 될지 알 수 없다.
진짜 위험이란 것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찾아오는 법이니까.
원래 ‘설마’라는 생각이 떠올랐을 때가 가장 위험한 법이다.
설마 그러겠어?
무심결에 떠올린 그런 말을 우스갯소리로 치부하며 무시할 때가 죽음에 한 걸음 다가설 때라고 했던가.
내가 무림초출이라는 걸 아는 표사들, 그것도 오랫동안 나를 알아 온 중년층의 표사들은 시간이 생길 때마다 무림에 관해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해줬다.
실제 무림에서 활동할 때 도움이 될 만한 기본적인 정보들과 주의사항들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어지간히 귀에 박히도록 이야기해줬나 보다.”
별로 재미있는 이야기는 아니라는 듯 백무호는 혀를 내민 채 고개를 휘휘 저었다. 나와는 달리 이전에도 여러 번 들었기에 저런 태도일 거다.
“너도 새겨들으라는 의미도 있었을걸?”
“뭐, 그런 거겠지.”
백무호는 시원스레 납득했다. 가볍게 듣는 것 같은 모습이다. 저런 모습이니까 아저씨들도 몇 번이고 당부를 하는 거겠지만.
하지만 내가 볼 때는 이미 충분하기에 저러는 것 같았다.
허술한 듯 보여도 의외로 틈이 없는 녀석이니까.
다 큰 어른에게 아이에게나 할 법한 충고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실제로 백진성 아저씨나 정일상 아저씨는 백무호를 그리 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아랫사람들이 멋대로 백무호를 걱정해서 하는 말들을 제지하지 않고 놔두는 건.
“……괴롭힘인가?”
“뭐가?”
“아니, 의외로 피는 못 속인다는 생각이 들어서.”
멋진 어른의 표본 같은 백진성 아저씨에게 백무호 같은 일면이라니!
이 무슨 무서운 상상.
“흠! 뭔가 기분 나쁜 생각을 한 것 같은데?”
“네가 기분 나빠 할 생각은 아니니까 발끈하지 마.”
나는 얼버무렸지만 백무호는 신경이 쓰이는지 계속 질척거렸다.
쿵!
여기까지 오는 사이에 충분히 몸을 회복했기에 그 질척거림에 대한 대답으로 짐마차 한구석에 내다 꽂아버렸지만.
뭔가 이렇게 한 번씩 던져서 꽂아 버릴 때마다 얻어가는 게 있다는 느낌이 들긴 한데.
뭐, 사부님도 말씀하셨다. 도는 배움을 청하는 이에게 인색하지 않다고. 저것도 저놈 나름대로 배움을 청하는 일이라면 기꺼이 내다 꽂아주는 게 인지상정일 거다.
그러니까 다음은 어디 뒷간 근처에서 그 지랄 좀 한번 해보자. 확 좋은 곳에 꽂아 버릴 테니까.
그런 식으로 짧은 토닥거림을 주고받는 사이 짐마차는 어느덧 도시 안으로, 그리고 도시 안쪽에 있는 큰 장원에 다다랐다.
흥겨운 잔치라도 준비 중이라는 듯 커다란 장원 안에는 여러 사람들의 북적이는 기척으로 가득했다.
그 기척들의 근원을 말해 주는 듯 대문 안쪽으로는 사람들도 많았고, 사람들이 가져온 것으로 보이는 선물 같은 것들도 가득 쌓여있다.
사람들이 서 있는 줄을 관리하는 문사 한 명이 있었는데, 대문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가 제각각이다.
아무래도 무인을 싫어하는지 표국 사람들이 짐을 싣고 들어갈 때는 노골적으로 언짢은 얼굴을 하며 인상을 썼다.
칼을 들고 설치는 것들은 죄다 무뢰배라 여기는 전형적인 문사의 반응이다.
호북 승선포정사사 이조 참정의 수문장 역할을 하고 있으니 더욱 그런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어차피 조심히 대할 사람은 무뢰배들인 무인들이 아니라 돈을 쥐고 있는 상인들, 혹은 관직에 있는 관리들뿐이라 여기는 것 같았다.
그 추측은 틀리지 않았다.
“백가표국이라. 종 대인 선물을 가져왔군.”
“그렇소.”
“알았다. 통과. 어서 안에 짐이나 내려놓아라. 그리고 볼 일 다 보거든 안에서 기웃거리지 말고 썩 나가도록. 너희 같은 것들이 오래 있어서 좋을 게 없는 자리다.”
얼굴에 드러난 감정 그대로 말한다.
백가표국의 여러 표사들이 얼굴 근육을 꿈틀거리며 눈을 찌푸렸지만, 백진성 아저씨는 그런 말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리다. 어차피 그쪽에 아쉬울 것도 없으니.”
“……흥!”
주인이 정승이면 그 밑에서 일하는 하인도 권력이 생기는 법이긴 하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다. 호북 이조 참정의 대문을 지키는 자라면 나름 힘이 있다곤 하지만, 그렇다고 백가표국에 해를 줄 수 있는 위치는 아니다.
서로 손을 댈 수 있는 상대는 아닌 것이다.
아쉬운 게 있는 처지라면 모를까.
[저쪽 것들은 변하질 않는구만.] [눈만 떴지 장님이나 다름없으니 어찌하겠는가.]두 분 사부의 시대에도 붓을 잡고 관직에 나갔던 이들 중에 저런 자들이 많았는지 기분 나쁜 감정을 에둘러 말씀하셨다.
할아버지가 관직에 있었던 만큼 나는 영 찜찜한 느낌으로 사부님들과 주변의 분위기를 슬쩍 넘기며 몸을 움직였다.
시작부터 불쾌하게 대문을 넘게 된 백가표국은 들은 그대로, 말한 그대로 얼른 짐이나 놓고 사라질 참으로 부랴부랴 움직였다.
이조 참정에게 상납할 진짜 선물(뇌물)이라 할 수 있는 백옥이라면, 의뢰주인 종인걸이 알아서 챙길 것이니 신경 쓸 필요도 없다. 어차피 계약서에 명시된 품목도 아니다.
[호오?]“달마 사부?”
[옆을 봐라.]달마 사부가 흥미를 드러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왜 달마 사부가 그랬는지 알 것 같은 사람들이 보였다.
이마에 계인이 있고 가사를 입은 중들이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소림의 계를 받은 사람들이다.
[이조 참정이라는 자가 생각보다 발이 넓은 것 같구나.]이곳은 호북이다. 소림이 위치한 숭산은 하남이고. 맞닿아 있는 바로 아래 지방이긴 하지만 거리는 짧지 않다. 그 거리를 넘어 여기까지 발걸음을 행했다는 건 친분이 제법 있다는 뜻이다.
할아버지처럼 무림의 인물들과도 두루 교분을 나누는 성격의 사람인 걸까?
그런 사람이라면 한번 만나 보고 싶단 생각도 들지만, 아무래도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그러기는 힘들 것 같았다.
“흠흠.”
그런데, 부지런히 가져온 짐을 풀고 있는 우리에게 싸가지 없었던 대문의 문사가 헛기침을 하며 다가왔다.
“혹시, 백가표국이…… 삼양현이란 곳에서 왔소?”
조심스레 질문을 던지는 그는 더 이상 싸가지 없는 모습이 아니었다.
은근히 물어오는 게 영락없이 아쉬운 것이 있는 모습이다.
백진성 아저씨의 얼굴에 슬쩍 웃음이 그려졌다.
“그렇소만.”
“그…… 혹시 그곳에 그럼 연, 자 자, 염 자 쓰시는 분을 아시는……지……?”
“알다마다.”
씩 웃는 백진성 아저씨가 슬쩍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우연의 일치일까? 백진성 아저씨와 비슷한 웃음을 짓는 표사들이 저마다 내가 있는 쪽을 바라봤다.
갑자기 주변의 시선이 한곳으로 쏠리자 문사는 간신히 짜증을 누르는 얼굴을 하면서도 의아한 기색을 보이며 고개를 갸웃했다.
돌아가는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새로 부임해 오신 이조 참정 서윤건 대인께서 평소 가장 흠모하시던 분이 연 대인이라 하시는데, 종 대인이 그에 대해 서 대인께 한 마디 올린 게 있는 모양이오. 그러니까 그분 근황에 대해서라도 조금 듣고 싶다고…….”
왜 이쪽을 부르는지 알겠다. 그리고 왜 저 문사가 갑자기 저자세로 나오는지도.
처음처럼 거드름을 피우고 강압적으로 나갔다가 그냥 휙 떠나 버리면 낭패를 보는 건 저쪽이다.
게다가 종인걸이란 자가 백진성 아저씨의 신분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면 더욱 조심할 수밖에 없다.
서윤건이란 인물이 정말 소림과 연이 있다면 화산파 속가제자 신분인 백진성 아저씨 역시 나름 대접해 줄 공산이 크다.
문사 입장에선 여러모로 불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마침 잘됐구려. 여기 연 대인의 손자분도 와 있으니.”
“예?”
“저기 저쪽. 저 친구가 연 대인의 손자요. 연청운이라 하지. 누구보다 연 대인의 근황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 아니겠소? 하하하!”
“하하하하!”
백진성 아저씨가 시원하게 웃었다. 그를 따라 백무호가, 백가표국의 표사들이 함께 웃음을 터트렸다.
문사의 얼굴이 꺼멓게 죽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