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197
196화 파란의 시작
갑작스러운 사태에 천마신교가 들썩였다.
천마 이강무가 죽었다. 그것도 자신이 외부에서 불러들인 인사에게.
그것만으로도 놀랄 만한 일인데, 그자는 이강무의 머리를 박살 내고 스스로 천마를 자처했다.
문제는 그자가 실전되었다 전해지는 천마신공을 펼쳐냈다는 점이다.
천마신교 수뇌부는 이 상황을 어떻게 판단하고 처리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천마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즉각 대대적인 추살령을 내려야 한다.
하지만 천마로 인정한다면 새로운 천마신교의 주인이 생기게 된다.
변화를 바라는 자들과 변화를 바라지 않는 자들.
연청운이 일으킨 사태는 그들 모두에게 선택을 강요했다.
***
짜천마 이강무의 지배력이 부족했던 탓에 천마신교에는 다양한 생각과 입장들이 존재했다.
그중 짜천마의 대치점에 있던 존재인 입천신마존은 막 들려온 소식에 박장대소(拍掌大笑)했다.
“아니…… 푸훕! 푸하하하하! 그 얼간이가 뒈졌다고? 자기가 불러들인 애송이에게? 푸하하하하하!”
입천신마존은 이강무를 천마가 아닌 얼간이라 부르며 비하했지만, 그 누구도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당연했다. 반천파에 속해 있다는 것부터가 이미 이강무를 천마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소리다.
“그것참 의외로군. 얼간이랑 손을 잡을 줄 알았는데 말이야.”
턱을 쓸어 만지며 중얼거리는 입천신마존의 말에 반천파 인사들이 흥미를 보였다.
“마존께서 보셨을 땐 사뭇 달랐던가 봅니다?”
“소문을 접했을 땐 상당히 과격한 성격이라 여겼습니다만, 마존께서 보시기엔 어떻습니까?”
입천신마존만이 유일하게 직접 대면해 보았기 때문이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입천신마존이 대답을 내놓았다.
“애송이지. 갓 약관을 넘었을까 싶은 녀석이니까.”
“약관…….”
“호오?”
나이가 언급되자 눈살을 찌푸리는 이들이 나왔지만, 오히려 더 큰 호기심을 드러내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 애송이가 천마라니…….”
“약관에 이강무를 꺾었다?”
누군가는 새파랗게 어린 애송이가 천마를 자처하는 것에 불쾌감을 보였지만, 누군가는 고작 약관의 나이에 이강무를 꺾었다는 것에 주목하였다.
반천파 내에서도 바라보는 시선이 달랐다.
“이거, 조만간 애송이 놈의 그늘 밑으로 들어가려는 자가 나올 것 같구먼?”
“못 갈 것도 없지. 애초에 내가 반천파에 몸담은 이유는 천마가 천마답지 않기 때문이었다. 새로 등극할 천마는 제법 천마다운 모습을 보이니 기대해 볼 만하지.”
“지금 배신하겠다는 건가?”
“하하하! 배신은 무슨. 모실 만한 천마라면 모시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반천파라고 하지만, 모여 있는 이들의 입장은 다양했다.
반응이 엇갈리며 불똥이 튀기기 시작하는 것이 재미있었는지 입천신마존이 한 가지 말을 보탰다.
“한 가지는 분명하겠군. 적어도 이강무 그 얼간이보다는 천마다운 놈이 될 거란 거.”
“크흡!”
“호오?!”
입천신마존이 보증까지 하고 나서자, 반응 또한 극명하게 갈렸다.
그 반응들을 보면서도 입천신마존의 입가에는 웃음이 가시질 않았다.
제대로 된 천마가 나왔다고 해서 딱히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다.
그 이유는 명확했다.
“가고 싶으면 가라. 처음부터 말했을 것이다. 초대 천마께서 그러했듯, 나는 모두가 모여드는 거목의 그늘이 될지언정 울타리가 될 생각은 없다.”
반천파는 처음부터 강압적인 규율이 존재하지 않았다.
무리의 대표라는 자부터가 이런 식이다.
입천신마존의 입장은 분명했다.
그저 각자의 뜻대로 살아라.
반천파에 모인 이들이 입천신마존을 숭배하고, 존경하는 이유였다.
“일단은 지켜볼 생각입니다.”
입천신마존의 말에 달아올랐던 이들이 일단 열기를 식혔다.
“배신자들!”
“흥!”
그런 이들을 배신자 취급하는 이들은 사나운 시선을 거두지 못하면서 입천신마존의 선언을 아쉬워했다.
높은 곳에서 초월자의 눈으로 굽어보는 입천신마존은 뜻 모를 웃음만을 지었다.
***
반천파의 대척점에 있는 존재들이라면 단연 순천파라 할 수 있다.
현 천마를 지지하며 그를 따르는 이들.
이번에 천마 이강무를 잃어버린 자들.
그 중심에는 천마의 혈족들이 있었다.
천마신교의 노구(老軀)들이 모이는 장로회를 중심으로 세를 구축한 천마의 혈족들은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상황에 다급히 모였다.
모임을 주관하는 것은 천마혈족의 웃어른이자 장로회의 수장인 대장로 이원군이었다.
“그래서, 천마를 해한 흉수는 지금 어디에 있나?”
“신녀께서 거두어 가셨소. 지금 신당에 있을 거요.”
“하! 신교의 정신적 지주가 실무에 개입했다고? 이참에 저들끼리 즉위식이라도 올릴 참인가?”
이원군 대장로의 노안이 쓸개라도 씹은 듯 잔뜩 일그러졌다.
“미치겠군. 서장무림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 상황에서 반천파 놈들이 말을 들어 먹지 않는 것으로도 골치 아픈데, 이제는 어디에서 온지도 알 수 없는 개뼈다귀가 천마 행세라니…….”
무공의 고수가 아니라면 뒷목을 잡고 쓰러지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이원군 대장로의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현암마존! 극마존! 네 녀석들이 천마를 잘 보필했어야 했다! 너희가 바로 옆에 있었음에도 이런 참담한 일이 생기다니!!”
“송구합니다.”
“…….”
이원군 대장로의 질책에 현암마존은 천마신교 최고수라는 위명에 어울리지 않게 즉각 고개를 숙였다.
허나 극마존은 묵묵히 말을 듣고 있을 뿐이다.
이원군 대장로의 얼굴 주름이 더욱 흉측하게 일그러졌다.
“후우…….”
하지만 이원군 대장로는 거기에서 멈췄다.
다른 천마혈족의 원로들이 다들 만류하며 고개를 저었기 때문이다.
선을 넘지 말라는 듯 다독이는 그들의 모습에 입술을 씰룩이던 이원군 대장로 역시 감정을 추스르기 위해 노력했다.
“물러가 있어라.”
“예.”
“……예”
마지못해 대답한 극마존이 신경질적으로 회의실을 나섰다.
두 마존이 완전히 바깥으로 나간 다음에야 천마혈족의 원로 한 명이 한숨을 내쉬며 이원군 대장로를 향해 입을 열었다.
“좀 더 참지 그러셨소. 지금 같은 상황에서 저들을 몰아세우는 것은 득이 없소이다.”
“알고 있네. 그러니 참은 것이 아닌가.”
“쯧! 빌어먹을 반골 놈들.”
천마가 죽었다 할지라도 새로운 천마를 내세우면 될 일이니 큰 문제는 없다.
하지만 새로운 천마는 천마혈족이 아닌 외래종이다. 다른 피를 이은 불한당이 천마라며 나타났다.
문제는 그 반향이 생각 이상으로 크다는 점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천마군림보……. 온전한 천마신공을 구사할 줄 아는 놈이라니……. 신녀가 나선 데다가 천산의 신조까지 따를 줄이야…….”
천마혈족의 위신(威信)이 순식간에 무너져버렸다.
지금은 마존들을 함부로 자극해선 안 될 이유이기도 했다.
심기가 틀어져 버린 마존들이 천마를 자칭하는 불한당에게 돌아서기라도 한다면 천마혈족은 큰 손해를 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최선의 방법은 그를 포섭하는 일이겠소만…….”
“권좌에 있던 천마조차 때려죽인 놈일세. 말이 통하겠는가?”
이원군 대장로는 외부에서 온 천마의 성정을 지레짐작했다.
“멍청한 놈. 신교 돌아가는 꼴이 어떤지도 모르고……. 후우! 성급하고 무모한 놈일세. 그런 놈을 제 앞까지 들여놓은 죽은 천마도 한심하긴 매한가지겠지만.”
답답한 심정에 이원군 대장로는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어찌하는 게 좋겠는가?”
“이미 진언했다시피 최선은 그를 포섭하는 일이외다.”
“어허! 그건……!”
“지금이야 아무것도 모르니 날뛰고 있지만, 제가 다스릴 천마신교가 근본적으로 뒤틀려 있다는 것을 안다면 알아서 머리를 숙일지도 모르는 일 아니겠소?”
천마혈족은 천마신교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것도 외부에서 온 천마가 현황을 파악하는 순간 자신들에게 협조할 수도 있다 말할 정도의 문제였다.
허나 역시 마뜩잖은지 이원군 대장로는 고개를 저었다.
“차선은?”
“반천파를 활용해 보는 것이오.”
“그 반골 놈들을?”
이원군 대장로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 되었다.
“말을 들을 놈들이 아닐 텐데? 뭣보다 외부에서 온 천마의 깽판질을 가장 좋아하고 있을 놈들이 아닌가.”
“그런 놈들도 있겠지만, 모두가 그렇지는 않을게요. 분명 그 불한당 놈을 싫어하는 것들도 있을 것이외다.”
“그놈을?”
“반천파 놈들의 소망이 뭐겠소?”
“……오호라.”
거기까지 듣고 나니 뭔가 감이 잡히는지 이원군 대장로의 입가에 웃음이 떠올랐다.
“제대로 된 천마의 즉위는 놈들도 바라지 않는다?”
“입천신마존. 그 괴물이 마음만 먹었다면 천마혈족의 역사는 막을 내렸을 것이외다. 우리의 힘도 가볍지 않은 공멸에 가까운 피해가 나긴 했겠지만……. 허나 서장 무림의 준동이 심상치 않은 현 상황은 그 괴물 놈이 움직일 절호의 명분이었소이다. 한데 어디서 굴러먹었는지 모를 외부 놈이 들어오지 않았소이까. 그러니 놈들도 속이 탈게요. 놈들이라고 해서 마냥 천마에 반발해서 거기에 선 것이 아니니 말이오.”
반천파. 천마가 천마에 어울리지 않으니 인정할 수 없다며 천마신교 내에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한 반골분자들.
허나, 그들이라고 해서 모두 순수한 의도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아! 그리고 듣자 하니 이번에 외부에서 온 자들 중에 신녀와 쏙 빼닮은 자가 있다고 하더이다. 아무래도 과거 외부로 나갔던 우리 혈족인 것 같소이다.”
“그게 무슨 상관인가?”
“……외부에서 온 천마와 함께 움직이고 있는 혈족……이라면 천마신공을 그자가 가르친 것이 아닌가 싶어서 하는 말이오.”
“호오?”
납득이 되었다. 약관도 갓 넘었을까 말까 한 놈이 천마신공을 펼쳤다.
당연히 이를 가르친 스승이 있어야 한다.
차차선이긴 하지만, 오히려 차선보다 더 좋은 그림이 그려질 것 같다.
“좋은 생각이군. 한번 손을 써 보세.”
“뭐, 온전한 천마신공만 손에 들어온다면 잠시나마 천마 자리를 약속해 주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요.”
“흐흐흐! 맞네. 그쯤이야 줄 수 있지.”
탐욕을 드러내는 이원군 대장로와 천마일족의 장로들, 원로원 늙은이들의 웃음소리가 음충맞게 흘러나왔다.
***
이화가 머무른다는 신당은 화려하지 않았다.
그냥 돌로 된 석굴이다.
불에 탈 것을 염려한 탓인지 제대로 된 가구 하나 없는 신당을 둘러보자 이화가 고개를 숙였다.
“부끄럽습니다.”
“너도 그런 말을 할 줄 아는구나?”
신기해서 물어보니 고개를 푹 숙였던 이화가 갑자기 눈을 마주쳐 왔다.
뭔가 말실수라도 한 느낌이다.
‘화제를 바꿔야겠다.’
“그러고 보니 다행이네.”
“……예?”
“입천신마존, 그 괴물이 움직일 것 같진 않아서 말이야.”
대책 없이 사고를 치고, 뒤늦게 뒷수습에 대해 떠올렸을 때 가장 최악의 상황은 입천신마존이 내 머리통을 쪼개겠다고 움직이는 것이었다.
외부에서 굴러들어온 웬 개뼈다귀가 천마 뚝배기를 박살 내버렸다. 그리고 스스로가 천마라고 떠든다.
입천신마존이 권좌에 욕심이 있다면 최고의 명분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는 천마위가 오히려 번잡하다고 질색할 사람입니다.”
“그래, 왠지 그럴 것 같았어.”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괴물이 작정하고 움직였다면 진즉에 천마위를 꿰찼을 것이란 생각이 지워지지 않았다.
그렇게 가정한다면 입천신마존이 반천파에 자리 잡은 것도 어느 정도 설명이 가능하다.
귀찮게 구는 순간 다 뒤집어 버리겠다는 협박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따진다면 의외로 반천파는 적으로 삼지 않아도 되겠는데?”
“그렇진 않을 겁니다.”
내 말에 반박하는 발언이 이화가 아닌 다른 이에게서 나왔다.
목소리가 들려온 동굴 입구에선 말을 통째로 씹어 먹을 것 같은 곰 같은 사내가 다가오고 있었다.
“이 몸, 흑완마군. 신녀님의 귀환을 영접하고자 왔습니다.”
곰 같은 사내가 이화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무례하다.”
당연하게도 이화는 나를 무시한 흑완마군을 질책했다.
허나 흑완마군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고개를 들었다.
“듣자 하니 천마신교가 돌아가는 상황도 모르시는 분 같은데, 아직 천마라 칭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겠습니까?”
“아직……이라?”
“예. 제가 볼 때 귀하께선 천마위에 오르시기도 전에 비명횡사하실 상황으로 보여서 말입니다.”
참 직설적이다.
기분이 좋진 않지만 돌려서 말하는 것보단 낫다.
‘본인도 그걸 말하고 싶어 찾아온 것 같고.’
소심한 성격이었다면 내쳤겠지만, 나는 대범한 사람이다.
……일단 그렇다고 해 두자.
“그래, 내가 뭘 알아야 한단 거지?”
내 질문에 흑완마군이 비로소 듣고자 한 말을 들었다는 듯 만족스럽게 씩 웃었다.
“지금 천마신교가 얼마나 비틀려 있는지 알고 계십니까?”
‘비틀려 있다?’
흑완마군은 서두만 들어도 머리가 아플 것 같은 이야기를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