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198
197화 다 뒤집어 줄게
‘마교가 비틀려 있다…….’
흑완마군이 한 말을 가만히 되짚어보던 나는 피식 웃었다.
“그거야 이미 알고 있던 일이지. 누가 봐도 모를 수가 없을 만큼 엉망진창인 상황이잖나. 여태껏 망하지 않고 돌아가는 게 더 신기할 정도인데.”
마교의 주인이라는 천마가 전전긍긍하며 눈치나 살피고 있고, 그런 천마를 개똥으로 보는 반천파는 태연히 마교를 거닐었다.
중원 무림이 두려워하며 경계하는 마교의 실체가 이런 거라니, 여러 입장에 걸려 있는 나로선 한숨을 쉬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모를 상황이었다.
“그리 말씀하시는 걸 보니 아직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내 대답에 흑완마군이 도발하듯 긁었다.
“말해 봐. 그렇게 뜸만 들이지 말고.”
“아! 죄송합니다. 말하는 입장에서도 좀 짜증 나는 일이라서 말이지요. 나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달까…….”
흑완마군이 자세를 바로 하며 대답했다.
내 신경을 긁으며 허실을 살피려는 것인가 싶었는데, 이제 보니 마음을 다질 시간이 필요했던 것은 흑완마군이었던 것 같다.
“마인들이 어떻게 길러지는지 아십니까?”
“보고 들은 것이 있긴 했지.”
재능을 자랑하며 말하던 아이가 웃으며 차후 복수하겠다고 말하는 모습이 참 살벌하더라.
다만, 그 이상으로 인상적인 것이 있었다.
“일단 모두에게 기회는 주어진다.”
“예, 그겁니다. 기회는 모두에게 평등하다. 재능 있는 자는 성공할 수 있으며, 공을 세우는 자는 모든 것이 약속된다. 처음 소마관에 들 때 듣는 말입니다.”
이건 무척 대단한 정책이다.
재능이 있어도 개화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묻히는 인재들은 세상에 널리고 널렸다.
무공이라는 재능에 한정되긴 했어도 확실하게 인재를 구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다.
“정말 평등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완벽한 평등은 아닌 것 같았지.”
정말로 모두에게 평등한 기회가 주어지고, 그 결과에 따라 성과를 누린다면 천마혈족이라는 위치가 존재할 리가 없다.
기회는 주어졌지만, 평등하진 않았다.
“아아…….”
마교의 정황.
순천파와 반천파.
기회의 평등.
이 곰 같은 사내가 무얼 말하려는지 알겠다.
“겉으로 드러났다는 거군. 기회가 평등하지 않다는 것이.”
“다른 이도 아닌 전대의 천마들이 공표해 버렸지요.”
천마신공이 불완전해지며 천마의 무위에도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급기야 휘하의 마존들보다 약해져 버렸다.
손속을 겨뤄봤던 이강무의 무위만 해도 마존들에 비해 몇 수 아래다.
그런데도 천마는 마교의 지존으로서 마교에서 가장 존귀하다는 자리에 앉아있다.
모순(矛盾)이다.
“입천신마존이 세상에 무위를 드러냈을 때 순천파에서 제일 먼저 한 일이 대무장(大武場)을 없애 버린 일이었지요.”
“대무장?”
“일종의 비무장입니다. 잘잘못을 가릴 일이 있으면 무(武)로 결정짓자는.”
들어보니 마교에는 문제가 생겼을 때 시시비비를 가리는 방도가 있었던 모양이다.
약육강식(弱肉强食).
강자존(强者尊).
참으로 마교다운 법도가 살아 숨 쉬고 있던 것 같다.
순천파 입장에선 바로 없애버릴 만하다.
“그런데, 그런 사실들이 내게 문제 될 것이 있나? 아무리 들어봐도 내게는 무척이나 유리한 상황이란 걸로 들리는데?”
가짜 천마를 몰아내기 딱 좋은 명분 아닌가?
단편적으로 생각하면 그렇다.
“윗물이 더러운데, 아랫물이 맑을 리 있겠습니까.”
“흐음! 집단의 안 좋은 부분을 배워갔군그래.”
자리를 잡고 터를 넓힌 이들은 기득권이 되어 고인물이 되었고, 그들이 마교를 주름잡는 상류층이 되었다.
선이 그어진 것이다.
기회는 여전히 주어지지만, 선을 넘지는 못한다.
선을 넘더라도 고인물들에게 고개를 숙이고 말을 잘 듣는 개가 되어야 한다는 조건이 달려버렸다.
“반천파는?”
“그쪽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처음에는 순수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세월이 흐르면서 그쪽도 고여 버렸지요. 어떻게 보면 순천파보다 더하지요.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기득권이 되었다는 건 분명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천마신교를 대표한다는 거군.”
체제를 무너트리는 순간, 명분에 따라 본래의 마교로 돌리고자 한다면 단순히 천마가 바뀌는 정도로 끝낼 수가 없다.
마교를 대표하는 자들을 무너트려야 한다.
마교 자체를 부숴버려야 한다.
“무언가를 바꾸고자 천마위에 오르려면 천마신교 자체와 싸워야 할지도 모르겠군.”
생각했던 것보다 적이 크다.
새삼 흑완마군이 권좌에 오르기도 전에 비명횡사할 것이란 말이 이해가 되었다.
“개판이네.”
“……송구합니다.”
굳이 이화나 종 노에게 한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뭐가 그리 죄송스러운지 둘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고개를 숙였다.
다른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는 가운데, 멀찍이 거리를 두고 있는 이경천이 보였다.
이경천의 얼굴에는 실망이 가득했다.
***
밤이 되었지만, 일행들은 편히 쉬지 못했다.
언제 습격을 당할지 모른다.
번갈아 가며 경계를 서면서 휴식을 취하는 가운데, 나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사실 좀 뜨끔해지는 이야기이긴 했지.”
허술한 판단에 대한 자책을 좀 곁들여서 말이다.
따지고 보면 나 역시도 천마의 위세를 빌려 마교를 바꿔 보려 했다.
이화와 종 노가 나를 향해 바치는 충성을 보면서 생각보다 쉽게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안 했다면 거짓말일 거다.
하지만 실제 현실은 다르다고 단언하고 있다.
그 길이 아니라고 경고하고 있다.
관에서 일하실 때의 할아버지 역시 절대 탁상에서는 현장을 알 수 없다고 하시며 직접 살피고 확인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으셨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나는 천장을 올려다보며 조언을 구했다.
세 분 사부님 중에서도 유독 바쁜 천마 사부가 자오경 앞에 계실지는 의문이지만.
[고민 같은 거 안 하기로 한 거 아니었냐?]“……선택과 행동을 과감하게 하겠다고 한 거지, 막 생각을 잘라내겠다는 말은 아니었는데요.”
깜짝 놀랐다.
정말 천마 사부가 계셨다.
“음흉하셔라. 계속 말없이 지켜보고 계셨던 겁니까?”
[뭔 헛소리냐? 방금 막 왔는데.]“진짜요?”
[그래. 안 그래도 싱싱한 천마 하나 튀기고 오는 길이다.]“…….”
내가 보낸 그놈이 벌써 지옥으로 배달되어 똥물 속에서 튀겨지고 있는 모양이다.
‘보통 거기까지 가는 데 중간 과정이 좀 있지 않나?’
죄질이 워낙 나쁘고 명확해서 중간 과정이 대부분 생략된 것인가 싶었다.
얼굴을 마주한 데다, 직접 머리를 박살 내준 작자라 그런지 지옥에서 똥물에 튀겨지는 모습이 상상되었다.
일단 뭔가를 먹고 있는 중에는 절대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유해한 모습이었다.
[이상한 상상을 하는 얼굴이군.]“하하…….”
생각한 걸 고스란히 말했다간 혼날 게 분명하다.
대충 넘기자.
‘허락받을 일도 있고.’
“사부.”
[뭐냐?]“개판인 현 상황을 고칠 방법에 대해서 생각을 좀 해봤는데요.”
[곰 같은 놈이랑 대화하면서 버릇이 옮았느냐? 서두가 길다.]지옥에서도 볼 건 다 보시는 것 같다.
역시 음흉한 구석이 있으시다.
‘뭐, 까라면 까야지.’
쉬이 꺼내기 힘든 말을 직접적으로 던졌다.
“제가 천마의 권좌를 이어받지 않아도 될까요?”
“하는 데까지는 해 보겠지만, 이 방법을 쓰면 구할 확률로 제가 천마가 될 일은 없을 것 같거든요. 목숨도 좀 간당간당할 것 같고. 아, 물론 십 년쯤 뒤엔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살아 있다면요……. 아하하하…….”
좀 변명 같아서 사족을 달아 봤는데 어째 더 변명 같아진 느낌이다.
한데 어째 바로 대답이 없으시다.
[겨우 그런 거냐?]잠깐의 침묵 끝에 나온 대답에는 어처구니가 없단 감정이 담겨 있었다.
[별것도 아닌 걸로 머리를 굴렸구나, 헛똑똑아.]“예?”
[마음대로 하란 소리다.]천마 사부의 반응은 무척이나 시원시원했다.
“진짜요?”
[이름 따위가 뭐 그리 중요하다고. 이 멍청한 제자 놈아, 네가 신경 써야 할 것은 딱 하나뿐이다. 네가 내 제자라는 것!]“어어…….”
이건 좀 세다.
말로 다 설명하기 힘든, 가슴을 울렁이게 하는 뭔가가 있다.
천마 사부가 한 말이라서 더 그런 경향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쯧! 삼풍이 놈이 했던 말이 입에 달라붙었군.]아무래도 저 말의 원작자는 따로 있는 모양이다.
‘그래도 천마 사부 역시 마음은 같다는 거겠지.’
괜히 웃음이 나왔다.
[뭘 웃고 있냐? 짜증 나게.]“이제 웃는 것 가지고도 뭐라 하십니까?”
[흥! 알아서 해라. 멍청한 제자 놈.]천마사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이 바로 자리를 비우신 모양이다.
‘아니면 어딘가에서 몰래 지켜보고 계시든가.’
어느 쪽이든 미소가 그치지 않았다.
“자아아아, 그럼 기대에 부응하는 의미로 미친 짓이나 하러 가 볼까.”
나는 기지개를 켜며 몸을 일으켰다.
신당 외부로 향하자 아직 깨어 있는 이화가 다가와 예를 갖췄다.
“이화야.”
“예.”
“혹시 천마의 권위를 상징하는 신물이 있을까?”
제(祭)를 주관하는 신녀인 이화라면 신물을 가지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
이화가 신당 안에서 치렁치렁한 짙은 남색의 겉옷을 가져왔다.
“묵룡보의라는 신물입니다. 자격을 갖춘 천마께서 입으면 특별한 문의가 떠오르지요. 그동안은 제대로 된 전승자가 없다 보니 봉인되다시피 묵히게 되었습니다.”
그런 신물이라면 봉인될 수밖에 없다.
입었는데 그 특별하단 무늬가 떠오르지 않는다면 낭패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화가 건네는 옷을 받아 걸치자 짙은 남색의 옷 위로 무늬가 떠올랐다.
“묵룡보의라고 해서 용무늬라도 나오는 줄 알았더니…….”
“멀리서 보면 용처럼 보인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래?”
어릴 때라면 무척 좋아했을 것 같지만, 어째 지금은 뭔가 속이 간질간질하다.
‘마교에서만 입는 거니까.’
이곳에서 벗어나는 순간 곧바로 척살령이 떨어질 것이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해 줘야 할 일이 있는데.”
“말씀하십시오.”
“입천신마존을 보러 가야 할 것 같아. 길 안내 좀 해줘야겠다.”
“……잘 못 들었습니다?”
고개를 살짝 갸웃하면서 답하는 이화다.
그 모습이 귀엽다.
“잘 들은 게 맞는 것 같은데?”
“…….”
“대무장을 부활시킬 생각이야. 그러려면 아무래도 그쪽과 합을 맞춰야 할 부분이 있을 것 같거든.”
역시 잘 들은 게 맞는 것 같다.
이화의 얼굴이 잔뜩 찌푸려졌다.
“천마의 명으로 폐지된 거라면 천마의 명으로 부활시키는 것도 되겠지. 지금은 내가 천마잖아.”
나는 걸치고 있는 묵룡보의를 흔들며 말했다.
“……대무장을 폐지한 이유를 아실 텐데요.”
이화는 얼굴을 굳히며 만류했다.
내게 맹목적인 믿음과 충성을 바쳐온 이화에게선 좀처럼 보기 힘든 모습이다.
나는 그런 이화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렸다.
“뿌리째 바꿔 버릴 거야.”
“…….”
“건성건성 움직일 생각은 없어.”
나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의지를 담았다.
“다 뒤집어 줄게.”
“……존명(尊命).”
그 뜻을 읽었는지 이화는 깊이 허리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