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199
198화 선물
나와 일행들이 자리를 튼 신당은 거주 구역과 동떨어져 있는 곳에 있다.
말 그대로 신당(神堂)이기 때문이다.
한밤의 시간은 낮과는 다른 느낌의 정취를 그려냈다.
그런 거리를 거닐자 달라진 분위기의 풍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반천파는 저곳인가?”
“예.”
멀리서도 보일 정도로 불을 밝힌 그곳은 작은 불야성을 연상케 할 정도였다.
천산산맥은 십만 개의 봉우리로 이뤄져 있단 말이 있을 만큼 거대한 산맥이다.
무려 감숙에서부터 청해를 가로질러 서장의 끄트머리까지 닿을 정도로 웅대하다.
그 크고 작은 산들 사이사이에는 작은 도시 하나쯤은 들어서도 이상하지 않을 평지나 완만한 지대가 있다.
마교가 자리 잡은 이곳 부근은 가파른 산과 평탄한 평지를 모두 아우르는 지세를 이루고 있었다.
신당은 비교적 고지대에 위치해 있었기에 낮은 쪽에 있는 주거 지역이 한눈에 들어왔다.
불빛들이 밤하늘에 별처럼 가득한 모습은 이전에 소주에서 보았던 밤의 풍경을 떠올리게 할 정도였다.
실제로 한밤중인데도 활보하는 이들이 제법 많았다.
그리고 그들 대다수가 얼큰하게 취해 있었다.
“의외네. 좀 더 갑갑한 곳일 줄 알았는데.”
“반천파가 강해지면서 규율도 많이 느슨해지긴 했습니다.”
이해가 되는 내용이다. 통제할 수 없는 흐름이 생기니 규율이 느슨해지는 건 당연하다.
아마 내가 상상했던 갑갑한 마교는 과거에 실존했었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이쪽이 더 나아 보였다.
‘마교란 이름이 갖는 무게감과는 그다지 어울리진 않겠지만.’
그럼에도 천마 사부는 지금을 더 기꺼워하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뭔가 이율배반적인 느낌이다.
“다들 야행성인가? 밤늦게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많군.”
으슥한 주변의 어둠 사이로 인기척이 차오르는 것이 느껴진다.
“이미 들킨 마당에 계속 숨어 있으려고? 그냥 나와.”
뻔히 들켰다는 사실을 지적해 주자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며 나와 이화를 포위했다.
“하하하하!”
퇴로가 막힌 위험한 상황이 되었지만, 나는 그들의 신색에 웃음을 터트렸다.
“복면이라니. 진심이야?”
“……닥쳐라, 가짜 천마.”
나름 창피하긴 한 모양이다. 대답하는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그래, 사내새끼라면 쪽팔려야지.’
저들에게 이곳 마교는 나고 자란 집이며 고향이다.
제집과 고향에서 외부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복면을 쓰고 나타났으니 얼굴을 들지 못할 일이다.
“너는 이 자리에서 죽는다.”
내게 죽음을 선언한 사내가 기운을 끌어올리자 주변의 수풀이 납작 엎드렸다.
고수다. 기운을 끌어올린 것만으로 주변에 영향을 줄 정도면 어디에서도 강자로 대우받을 만한 실력자다.
게다가 혼자인 것도 아니다.
대략 스무 명가량.
이들 역시도 저마다 자랑할 만한 절기 하나쯤은 있는 고수들이다.
‘그런 주제에 얼굴도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 건 웃긴 일이지만.’
“제집에서 얼굴도 못 드러내는 얼간이들에게 죽을 생각은 없다만?”
으득!
복면 너머로 이빨 가는 소리가 들렸다.
“겁도 없이 신녀 하나만 달고 나온 걸 후회하는 게 좋을 거다.”
더 이상 내게 낯부끄러운 곳을 찔리기 전에 내 목을 뜯어가고 싶은 모양이다.
“누가 이화만 달고 나왔대?”
“……!”
콰콰콰콰콰!!
나를 포위한 복면마인들을 재차 포위하는 형태로 기척들이 우후죽순처럼 솟구쳤다.
“무, 무슨……!”
나를 포위하고 있던 스무 명가량의 복면인들이 이제는 반대로 포위당했다.
천마수신위와 이번에 합류한 흑완마군이다.
그리고 그들의 중심에는 당장에라도 이 복면인들을 박살 내고 싶은지 얼굴이 시뻘게진 종 노가 살기를 피워 올리고 있었다.
얼마나 놀랐는지 복면 너머로도 당황한 기색이 느껴질 정도였다.
“흑완마군의 진언이 있었지. 반천파에도 쓰레기들이 많다고.”
천마가 마교를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반천파에 몸담은 것이라면 강대한 권력자를 상대로도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려는 굳건한 신념의 소유자라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제멋대로 날뛰는 반천파를 순천파가 제지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약삭빠른 쥐새끼들이라면 기회를 엿보기 위해 내 주변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란 예상은 진즉에 했었지.”
세가 커진 만큼 반천파에도 기득권을 바라며 모인 작자들이 있을 것이란 소리다.
당연히 자리에 걸맞지 않은 군살이 많이 붙어 있을 수밖에 없다.
이들이 그 군살이다.
“그나저나, 이쯤 되었으면 복면부터 벗고 자기소개나 해보는 게 어때?”
내 말에 위압감을 느꼈는지 몇몇이 얼굴 쪽으로 손을 올렸다.
하지만 그런 이들을 제지한 누군가가 여전히 복면을 쓴 채로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입천신마존께서 널 가만두지 않으실 거다.”
내게 있어선 동문서답이나 다름이 없지만, 저들에게는 어디에서든 통하는 전가의 보도였을 것이다.
호가호위(狐假虎威). 같잖은 협박질이라는 소리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쓰레기다.
‘어쨌거나 반천파는 맞는 모양이군.’
정체를 알 수 없으니 죽이기 전에 확실히 해 둘 필요가 있겠다 싶었는데, 말하는 꼬락서니를 보니 반천파가 확실한 것 같다.
확인이 끝난 이상 굳이 복면을 벗길 필요도 없다.
“알았다.”
협박이 먹혔다고 생각했는지 어깨의 근육이 풀어지는 것이 보인다.
상대가 흐트러진 틈을 놓치지 않고 몸을 튕겼다.
“……그냥 죽어라.”
거리를 좁히며 이강무와 싸울 때 펼쳤던 무극장을 뻗었다.
극강격에 견줄 정도는 아니지만 강하게 한 방 먹일 때는 유용한 무공이다.
“흡!!”
상대가 뒤늦게 대응하지만, 반응이 한 박자 느리다.
퍼억!!
제대로 힘을 실은 나와, 부지불식간에 초식을 펼쳐야 했던 상대.
어느 쪽이 유리할지는 분명하다.
‘여기에 연금강이면…….’
반탄력이 충돌 순간 상대의 흐름을 찢고 들어갔다.
무극장에 맞선 상대의 손이 예상보다 크게 튕겨 나갔다.
나의 장점은 살리고, 상대의 장점은 죽인다.
크게 벌려진 틈새 사이로 내 손이 뱀처럼 표적을 향해 파고들었다.
“컥!”
단단하면서도 꺾기 좋은 목이 잡혔다.
우득!
“내…… 크륵!”
그걸로 끝.
마른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피가래 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호랑이의 그늘에 숨어 제 실력을 십분 발휘하지 못한 자의 최후다.
나는 거기에서 탄력을 잃은 몸에 다시 한번 힘을 주었다.
쿠드득!
질척하고 딱딱한 게 터지는 소리와 함께 분리된 이름 모를 자의 머리가 내 손 안에 장난감처럼 들렸다.
그 모습은 내 주변에서 차례로 이어졌다.
순식간에 스무 구의 목 잃은 시체가 생겨났다.
“자, 그럼 선물도 챙겼으니 다시 가볼까?”
입천신마존에게 줄 좋은 선물이 생겼다.
***
반천파의 영역.
이강무가 죽은 일로 할 말들이 많은지 한밤중에도 불야성을 만든 채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그곳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시끌벅적했다.
하지만 우리가 발을 들임과 동시에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거 미안하게시리.’
좋았던 분위기를 박살 내놓은 것만은 분명했다.
원인은 아마도 우리 손에 들린 이 대가리들 때문일 것이다.
복면에 싸여 있지만, 이게 사람 머리라는 것은 모를 수가 없는 탓이다.
당장 우리가 걸어온 뒤로는 핏물이 흥건했다.
“천마……!”
개중엔 낮에 나를 본 이도 있는지 누군가가 나를 알아보고 중얼거렸다.
작게 중얼거린 말임에도 짙은 적막으로 인해 주변으로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천마? 이강무의 대가리를 깨부쉈다는 그 애송이?”
“말조심해! 저분이 정말 애송이로 보여?”
“뭐, 뒈진 이강무 같은 놈보단 훨씬 나아 보이긴 하네.”
“그런데, 저건 누구 목이야?”
사위가 다시금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런 가운데 누군가 다가왔다.
“……흑완마군?”
낮에 은근히 간을 보던 모습과 달리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얼굴로 나를 따르는 흑완마군에게 다가가 알은척을 한다.
군살 없이 탄탄한 체격에 날렵해 보이는 사내를 향해 흑완마군이 활짝 웃었다.
“혈랑마군이구려. 오랜만이오.”
“자네가 이곳은 왜……. 아니, 그보다 이건 대체…….”
딱 봐도 기세가 평범한 자가 아니다 싶더라니 마군의 한 명이었던 모양이다.
황망함을 감추지 못하겠는지 늘어놓는 말이 두서가 없었다.
흑완마군이 껄껄 웃으며 대응을 했다.
“할 말이야 많지만, 존귀한 분을 모시고 온 자리외다.”
“자네…….”
“이 이상 내가 무례를 범하게 하지 마시구려.”
윗사람이 있는데 허락 없이 나설 수 없다는 소리다.
“감히 허락 없이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소마의 무례를 용서해주십시오.”
알아서 몸을 낮추는 흑완마군이다.
빨리 용서하지 않았다간 피가 뚝뚝 떨어져 있는 바닥에 그대로 머리를 찧을 기세였다.
“됐다.”
“감사합니다!”
덩치가 곰처럼 커다란 만큼 눈에 잘 띄는 흑완마군이다. 그 체구만큼이나 목소리도 커 확실하게 이목을 끌었다.
흑완마군의 행동에 주변의 술렁임이 더욱 커졌다.
혈랑마군은 얼마나 놀랐는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뻐끔거리기만 했다.
“입천신마존은 어디 있나?”
가까스로 정신을 추스른 혈랑마군이 입을 열었다.
“그분은…….”
“굳이 찾을 거 없다.”
처음 봤을 때와 마찬가지로, 압도적인 기세를 품고 등장한 입천신마존이 어느 순간 내 앞에 있었다.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까지 다가온 입천신마존이 웃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두 번째 얼굴을 마주하게 되니 더욱 확연하게 느껴졌다.
이질적이다.
나이를 따진다면 종 노보다 더 많지 않을까 싶은 이의 외견이 이리 젊으니 느껴지는 괴리감이 더 크게 닿아온다.
특유의 무거운 기세와 그 괴리감이 만나니 흡사 전설 속에 논해지는 요괴(妖怪)를 보는 기분이다.
‘두 번째라 다행이군.’
이번이 첫 만남이었으면 나도 혈랑마군 못지않게 얼빠진 추태를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가슴으로 올라오는 청량한 호흡이 그런 추태를 막아 주었다.
청명심법으로 마음을 단단히 하니 비로소 흐트러짐 없는 태도로 입천신마존을 대할 수 있었다.
“선물이오.”
“선물?”
머리를 건네받은 입천신마존은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웃음을 지우지 않았다.
“사람 머리를 선물로 받아 본 적은 없는데. 누구 머리인 겐가?”
“모르오. 애초에 복면을 벗겨 보지도 않았으니. 다만 이런 말을 하더이다. 자신을 건드리면 그대가 날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
“하하하하하!”
착각일까. 순간 입천신마존의 얼굴에 비틀림이 보인 것 같다.
“그럼 나도 모르는 게 낫겠군.”
입천신마존의 손에 들려 있던 머리가 땅으로 떨어졌다.
콰직!
복면을 쓴 채로 땅에 떨어진 머리가 짓밟혀 부서졌다.
검은 복면이 순식간에 오물 덩어리가 됐다.
살벌한 모습이다.
“들었지?”
콰지직! 콰직!
이죽거리는 내 말에 등 뒤에서 방금과 같은 소리가 일제히 울려 퍼졌다.
사방으로 짙은 피 냄새가 흐르기 시작했다.
“하하하하하!”
입천신마존이 호탕하게 웃었다. 얼굴에 보이던 비틀림이 호탕한 웃음과 함께 사라졌다.
그리고 웃음을 뚝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