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200
199화 생즉필사 사즉필생
“마음에 드는군.”
‘가식이 없는 자다.’
좋으면 웃고 싫으면 화낸다.
웃음을 그쳤다는 건 그리 좋은 신호가 아니다.
“……지나치게 마음에 들어.”
무언가를 가늠하고 있는 눈빛이다.
“선물을 받았으니 보답이 있어야겠지. 말해 봐라. 뭘 원하나?”
‘속을 드러내라는 거지?’
아무래도 입천신마존은 내가 자신을 꾀어내어 이용하려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비슷하지만 정답은 아니다.
그의 개입을 바라지만, 내가 그린 그림과 그의 예상 간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을 것이다.
“대무장을 부활시킬 생각이오.”
“……허어?”
입천신마존이 한 방 먹은 얼굴을 했다.
왠지 직접 내가 얼굴을 후려친 기분이다.
‘좋네.’
나는 기분 좋게 말을 이을 수 있었다.
“보름간 마존들의 개입을 막아 주시오.”
“보름?”
기한을 두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 듯 입천신마존이 고개를 갸웃했다.
“대무장을 부활시킬 수는 있는가?”
“나는 천마외다.”
그 말과 함께 걸치고 있는 묵룡보의에 천마신공을 불어 넣었다.
전대의 천마들이 보여 주지 못했던 모습.
남색 바탕의 보의에 검은 불길이 살아있는 것처럼 일렁이며 숨겨진 모습을 끌어냈다.
“……흑룡!”
멀리서 누군가 신음처럼 말을 토해냈다.
가까이에서 보면 검은 불꽃이지만 멀리서 보면 용처럼 보인다던가.
멀리에서 지켜보는 자들의 눈엔 내가 천마의 재림, 혹은 검은 용의 화신처럼 보이는 듯했다.
내 대답에 입천신마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굳이 보름의 유예를 둔 이유는?”
입천신마존이 가장 이해하지 못한 부분으로 짐작되는 조건.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정해져 있었다.
마존들을 제한하는 것부터가 평등하지 않다.
그건 또 다른 모순(矛盾)일 뿐이다.
“나는 이강무가 아니니까.”
내게 모순 따윈 필요 없다.
“크하하하하하!”
머리를 부술 때 보였던 웃음.
그 웃음을 뛰어넘은 광소(狂笑)와 함께 흘러나온 기세가 순식간에 주변을 뒤덮었다.
감출 수 없는 기쁨이 입천신마존에게서 흘러넘쳤다.
“좋아! 아주 좋아!”
내가 한 말이 무척 잘 먹혔다는 건 알겠다.
너무 잘 먹힌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이런 괴물이 흥분해 날뛴다면 절대 가까이에 있고 싶지 않다.
‘문제는 나도 지금 정신줄을 놓을 것 같단 말이지.’
뭔가 가슴에 북받치는 게 있다.
참고 참아왔던 무언가가 터져 나온 것처럼.
그리고 그 감정들이 만나 뒤섞인 결과는,
“보름이 지나기까지 마존들은 그대를, 천마(天魔)를 건드릴 수 없을 것이다.”
하나의 선언.
“보름 뒤 네 목은 내가 따주지.”
“대무장 위에서.”
“그래, 바라는 대로 대무장 위에서.”
그리고 하나의 다짐을 낳았다.
***
한밤중 반천파의 영역에서 파란을 일으킨 연청운의 행보가 만들어낸 여파는 생각보다 컸다.
“……씨발, 지릴 것 같네.”
“더러운 소리긴 한데, 이해는 한다.”
폭발적으로 들끓는 공기는 여름의 뙤약볕보다 뜨거웠다.
“그래…… 저게 천마지.”
“아가리 함부로 놀린다? 천마? 저분이 니 친구야?”
반천파에서 이런 말이 나올 것이라고 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다른 곳도 아니고 이곳 반천파에서 천마라는 두 글자를 높여 부르고 있다.
물론 모두가 그 감정을 공유하고 있진 않았다.
하지만 그런 이들조차도 한 가지는 인정했다.
적어도 지금 본 천마는 지금까지 천마라 칭했던 작자들과는 달랐다.
“그럼 뭐라 불러야 하나?”
“그거야 천마…… 천마님? 천마 형님? 어, 씨벌! 욕으로 쓰던 말에 다른 감정을 섞으려니 영 이상한데?”
존칭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조차 혼란스러워하는 이들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입천신마존이 결론을 내려주었다.
“있는 그대로 불러라.”
힘이 있는 목소리가 좌중을 누른다.
한순간에 반천파 모두의 이목을 끌어당기는 영향력.
혼란스러워하는 이들에게 입천신마존은 자유를 주었다.
“그것이 그 위치를 부여해 줄 것이다.”
천마신교 내에서 천마라는 글자는 일방적인 숭배의 대상이 아니게 된 지 오래였다.
오래전 사라졌던 존중(尊重).
이 땅에서 천마라는 이름에 대한 존중이 돌아왔다.
***
‘후끈하네.’
신당으로 돌아가는 길, 등 뒤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충분히 느껴졌다.
후끈거리다 못해 불태워버릴 것 같은 열기다.
“후…… 후우…….”
덩치만큼이나 모든 것이 큰 흑완마군은 아무리 흥분을 억누르려 노력해도 그의 기분이 주변으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당장에라도 곰처럼 울부짖어도 아무런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그럼에도 눈총을 받지 않는 것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가 같은 감정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흐……흐흐흐…….”
“……천마시다. 천마께서 오셨다.”
특히 천자산에서부터 나와 함께해 왔던 천마수신위들의 눈에는 광신도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의 감정이 자리 잡는 것 같을 정도였다.
[괜찮으시겠습니까?]다행히 모두가 이 열기에 휩싸인 것은 아닌 모양이다.
머릿속에 들려오는 종 노의 전음에는 격양된 감이 없지는 않지만, 앞으로의 상황을 걱정하는 염려가 담겨있었다.
‘역시 과몰입은 안 좋다니까.’
기세에 휩쓸렸을 뿐이다.
그럼에도 참을 수 있지 않았냐고 스스로에게 묻는다면, 아마도 가능은 했을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참지 않았다.
참지 않아야 했다.
생즉필사 사즉필생(生卽必死 死卽必生)
이젠 있는 힘껏 전진할 뿐이다.
“……그래도 준비는 해 둬야겠지.”
나도 아무 생각 없이 대무장이라는 패를 뽑아 든 것은 아니다.
나름의 방도는 있다.
“어떤 준비입니까?”
“뭐든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잔뜩 흥분해 있으면서도 내 언행에는 민감하게 귀를 열어 놓았는지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일 시키기는 편하겠네.’
“대무장이란 곳이 오래 방치되어 있었다면 엉망일 것이 분명하겠군. 적어도 내일 해가 중천에 떴을 때까지는 상태가 온전해졌으면 좋겠어. 대무장이 부활되었다는 이야기도 모두가 알게 되었으면 좋겠고.”
“아! 그렇군요!”
“차질 없이 준비하겠습니다!”
소문이야 반천파를 통해서 많이들 퍼져나갈 테니 아마도 내일이면 마교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오랜 기간 방치되었을 대무장은 확실히 정비가 필요할 것이다.
생각했던 준비를 위해 당장 오늘 밤부터 움직여야 할 텐데, 이들과 함께 있는 것은 좀 부담스럽다.
그러니 일을 시키는 것이다.
“내일 정오까지 내가 오를 곳이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으면 좋겠어.”
“당장 서두르겠습니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천마수신위들이 대무장을 향해 우르르 몰려갔다.
그 선두에 있는 것은 무려 흑완마군이었다.
“일부러 떼어내신 겁니까?”
내 심중을 정확히 읽어낸 이화가 날카롭게 물어왔다.
“해가 뜨기 전에 준비할 것이 있거든.”
“……그러시군요.”
이화가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딱 봐도 나와 함께 가고 싶어 하는 눈치지만 참는 것 같다.
“신당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나를 향해 하는 말이지만, 종 노와 이경천에게도 하는 말이다.
영리한 아이다.
씨익 웃으며 이화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는 한 걸음 물러나며 손을 들어 올렸다.
“청조.”
삐이이이!
내 부름과 함께 거대한 존재감이 드리운다.
“가자.”
청조가 내 손을 낚아채며 날아올랐다.
지상에서 멀어지는 시야가 순식간에 밤하늘 위로 눈높이를 맞췄다.
***
사람은 본능적으로 하늘을 동경한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청조의 다리를 잡고 하늘로 날아오른 경험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그렇게 처음 접하게 된 짜릿한 경험은 천산산맥의 어느 한적한 장소에서 끝났다.
주변에 사람의 인기척이 닿을 수 없는 곳에 내려앉자마자 바로 사부님을 찾았다.
“계십니까?”
‘여기서 천마 사부가 대답하면 볼만 할 텐데.’
역시 음흉하게 훔쳐보고 있는 거라며 놀릴 수 있을 거다.
그런 내 부름에 답하는 분이 계셨다.
[천마 여기 없다, 이놈아.]“…….”
장삼풍 사부시다.
내 생각을 꿰뚫어 보신 모양이다.
소소한 반란(?)은 여기서 그쳐야겠다.
[그래, 이 말썽꾸러기 제자 놈아. 뭐가 필요해서 사부들을 귀찮게 찾는 거냐?]“에이, 다 아시면서~.”
장삼풍 사부라면 내가 바라는 것을 이미 알고 계실 것이다.
[물의 신력 말이지?]“예.”
오행신력을 이루었을 때의 고양감은 지금도 잊지 못할 정도다.
구대문파 중에서도 손꼽히는 곤륜파의 정상급 고수를 한순간이나마 압도했을 정도였다.
마존급의 무인에게까지 통할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그 아래 단계라면 분명 통한다.
마군, 마왕, 마제로 나뉘어 있는 마교 상위 수준의 고수라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쉽고 빠른 길은 네 눈앞에 있는 그 녀석을 푹 고아 먹는 것이겠다만.]“……오호라.”
힘의 근본인 정(精)이 없었기에 넘겨받은 물의 신력은 금세 사그라졌던 것이다.
확실히 이 녀석에게서 그 근본을 온전히 받아낸다면 물의 신력이 완벽하게 자리할 수 있을 것이다.
뺙?
내 눈빛에서 뭔가 위험함을 느꼈는지 은근슬쩍 거리를 벌린 청조가 벌러덩 누워 배를 보였다.
그리고 구슬프게 울었다.
뺘앗!
“……병아리 흉내 내지 마! 천 년을 넘게 살아서 그 시절이 기억도 안 날 녀석이 말이야.”
오랜 삶의 끝이 백숙이라니. 좀 심하긴 하다.
“좀 덜 쉬운 방법은요?”
[굳이 멀리 돌아가야겠다면야…… 뭐, 질보단 양으로 때워야겠지.]“신력이란 게 양으로 대체되는 힘이었나요?”
[일반적으론 안 되지. 그게 가능하면 신력이 그리 귀해졌겠냐? 다만, 넌 좀 이야기가 다르다. 이미 물의 신력을 경험해 본 바가 있고, 미력하게나마 오행신력을 완성해 봤거든. 대체할 수 있는 대량의 힘이 있다면 어떻게든 구색은 맞춰 볼 수 있겠구나.]“이미 보유하고 있는 다른 신력들이 가진 상생상극을 통해 비슷하게나마 끌어올려 볼 수 있다는 거군요.”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으니 편하구나.]“……제가 좀 크긴 컸죠.”
신선이란 뭘까?
최근, 이 화제에 대해서 생각하다 보면 자괴감이 드는 때가 많은 것 같다.
아무튼.
“서왕모님이 화내시려나요?”
[화내기는. 너라면 못 퍼줘서 안달이신 분인데. 이번에도 무척 재미있었다고 좋아하시더라.]“하하, 다행이네요.”
곤륜산맥은 서왕모님의 영역이자, 청조의 텃밭이며, 온갖 영약들의 보고다.
한번 작정하고 제대로 털어볼 생각이다.
[보름이라…… 넉넉하게 잡았군.]“청조가 좀 고달프겠죠.”
청조를 향한 장삼풍 사부의 묘한 악감정이 느껴진다.
뺙?
청조의 고개가 부러지기라도 할 것처럼 옆으로 돌아갔다.
어째 다시 드러누워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것 같다.
“백숙이 낫겠냐? 보름 동안 좀 고달픈 게 낫겠냐?”
뺘아.
청조의 날개가 축 늘어졌다.
보름 동안 죽어라 날아다녀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보름 뒤라…….’
보름 동안 밤마다 청조를 타고 곤륜산맥의 영약들로 힘을 기른다면, 과연 보름 뒤의 나는 얼마나 강해져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