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203
202화 하늘에 닿을 기세로
지금 내 앞에서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마장급 고수는 두 자 정도 길이의 철곤(鐵棍)을 양손에 들고 있는 자였다.
“으아아아아!”
짙은 긴장감을 견디지 못한 마장급 고수가 괴성과 함께 달려들었다.
정신줄을 놓은 것 치곤 짧고 깔끔하게 휘두르는 철곤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튀어나오려는 몸의 반응을 제지했다.
‘나(拿)로 잡고 솔(摔)로 던……지면 안 되지…….’
여기가 마교가 아니고, 대무장이 아니라면 공격을 피하듯 품 안으로 파고들면서 손목을 낚아챘을 것이다.
휘어 감듯 잡아채고 던지는 무당파 무공.
팔을 비틀어 제압하고, 허공에 몸을 띄웠을 때 살짝 어깨 쪽 관절만 비틀어서 떨궈도 몇 달 정도 정양하게 만드는 것은 간단하다.
실전 상황이라면 던지는 도중 목을 후려 차거나 꺾어버리는 것으로 숨통을 끊어놓을 수도 있다.
관점을 달리하자 무당파 유(柔)의 무공도 은근히 살벌하다.
예전에 장삼풍 사부가 손가락 하나만으로 사람 사지를 꺾어놓을 수 있다고 하셨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농담이 아니었던 것 같다.
‘여기서 무당파 무공은 아니지.’
아무리 거친 모습을 보일 수 있다고 해도 분위기에 맞지 않는다.
나는 무극권의 흐름을 주먹에 담고, 내 머리통을 쪼개려는 철곤을 바라보았다.
무극장이 쳐서 흔드는 용도라면, 무극권은 그냥 때려 부수는 거다.
달마 사부의 극강격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겠다.
쩌엉!
내 주먹이 철곤에 닿는 순간 쇠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부서져 비산했다.
역시 단순무식하게 뭔가 때려 부수기엔 딱 좋다.
[흐음! 극강격이 더 나을 텐데…….]무극육식 위주로만 무공을 펼치는 것에 달마 사부가 섭섭해하셨다.
‘자리가 자리라서 말이죠.’
정파 무림에 있을 당시에는 천마 사부의 무공을 펼치는 것을 자제했던 벌충도 좀 포함되어 있으니 양해해 주셨으면 한다.
“허억!”
시원스레 무기를 부수고 파고들자 위급함을 느끼며 몸을 뒤로 물린 마장급 고수가 다른 손에 남아 있는 철곤을 휘두르며 위협했지만.
퍼억!
“끄억!”
이미 상대의 거리 안쪽을 제압하고 있는 내겐 의미가 없는 발버둥에 불과했다.
제대로 들어간 한 방에 피를 토하며 엎어진 상대는 몇 번 정도 꿈틀거리다가 움직임을 멈췄다.
타격이 들어가고 나서야 눈이 움직이고 놀란 것을 보니 시야의 사각에서 파고든 내 각법은 못 본 것 같다.
게다가 휘두르던 무기를 잃었을 때의 대응이 개판인 것을 보면 강자와 싸워 본 경험이 없는 듯했다.
이래서 경험이 중요한 것이다.
약한 자를 이기는 건 쉽지만, 강한 자를 이기는 건 어렵다.
당연한 말이지만, 강자를 상대할 땐 대응하는 방식과 접근법이 모두 달라져야 한다.
무림에서 그걸 모르면 죽는다.
자고 나면 추억이라고, 무림출두 후 목숨을 걸고 싸웠던 경험들이 자산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새삼 마음이 든든해졌다.
‘그렇다고 해서 강한 상대와 겨루는 게 즐겁지는 않지만.’
강자와 싸우는 일이 즐거운 사람이 있다면, 그건 변태가 분명하다.
“그나저나…… 더 이상 축제 분위기가 아닌데요?”
정확히 말하자면 반반이다.
한쪽은 환호와 함께 축제판이 벌어지고 있는데, 다른 쪽은 비 오고 안개 낀 날 무덤가라도 되는 것처럼 을씨년스럽다.
축제판이 벌어지는 쪽은 당연히 반천파다.
광란의 열기를 온몸으로 즐기고 있는 그들은 내가 마장급 고수를 때려잡을 때마다 환호성을 질렀다.
순천파도 처음에는 호응하는 느낌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다섯까지는 뭔가 의미심장한 눈으로 보더니, 열을 넘길 때쯤부터는 먹구름이 끼었다.
거기에 다섯이 더 추가되니 비가 오더라.
아, 분위기를 말하는 거다.
[혹시 세상 사람들이 다 널 좋아해야 한다는 변태적인 사상이라도 생겼느냐?]“아뇨.”
[흥! 그럼 문제없지 않느냐. 대무장이 거의 처형장 수준인데 분위기가 좋을 리가 있나.]장삼풍 사부가 콧방귀를 뀌셨다.
돌아보면 좀 많이 때려잡긴 했다.
‘방금이 스물아홉 명째였던가?’
순천파 분위기가 얼마나 끔찍할지는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누가 마장급만 보내라고 했나요.”
[얀마. 그런 놈이 도발을 하냐?]“제가 뭘…….”
[어차피 차륜전인 거 뻔히 보이니 그냥 대무장 위에 올라와서 대기하고 있으라고 한 건 네 녀석이 아니었냐?]“……크흠!”
지금 들어보니 좀 심하게 긁긴 했던 것 같다.
“뭐, 어쨌든 이제 올라오는 놈들도 없네요.”
[자살을 희망하는 게 아니라면 마장급 녀석들 중에는 더 이상 없겠지. 아무래도 오늘은 마장급만 나서는 것으로 조율했던 모양이고.]확실히 돌아가는 상황을 되새겨보면 일리가 있는 판단이다.
하지만 그 사전 조율은 의미가 없어졌다.
순천파 입장에서는 말 그대로 대참사가 터져버린 것이기 때문이다.
“더 도전할 놈 있나?”
나는 순천파가 모여 있는 곳을 바라보며 외쳤다.
하지만 대무장에 오르는 이는 없다.
높은 자리에서 자기들끼리 열심히 쑥덕거리며 무의미한 사전 조율만 열심이다.
‘오늘은 슬슬 접어야겠네.’
“그럼 오늘은 한 놈만 더 받는다!”
내 말에 지들끼리 쑥덕거리며 조잘대기 바쁘던 놈들이 일제히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다들 엄청 놀란 표정이다.
내가 천년만년 이 위에 있을 줄 알았나 보다.
“떳떳하지 못하다!”
“도망치는 거냐!”
“뭐라는 거냐? 저 병신들이!”
“추한 꼴 보이던 주제에 지랄하고 자빠졌구나!”
내게 언성을 높이는 순천파와 그에 야유하는 반천파의 외침이 대무장을 뒤덮었다.
한동안 지켜보던 내가 오른손을 들어 올리자 사위는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내가 대무장을 다시 개방한 것은! 자격이 있는 자에겐 도전할 자유를 주기 위함이다! 원하는 것을 손에 넣기 위해 목숨을 걸고 도전하라!”
도전할 자유.
이 말의 참뜻을 알아들은 사람이 있을까?
‘적어도 능력에 비해 낮은 자리에 있다고 생각하면 알아들었겠지.’
그들이 곧 고인물들이 구분 지어 놓은 경계를 부수는 첨병이 될 것이다.
“내가 싫은 자들에겐 애석한 말이겠지만, 나도 몇 날 며칠 이 위에서만 있다가 굶어 죽을 생각은 없다.”
와하하하하하!
이건 그냥 해본 말인데 생각보다 웃는 사람이 많았다.
그리고 그 웃음의 잔향이 다 사라지기 전, 누군가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혈기만 믿고 날뛰는 애송이가! 이 혼원마군이 종지부를 찍어주마!”
드디어 마군급이 나섰다.
위풍당당하게 나선 혼원마군은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서인지 힘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쿠쿵!
천근추라도 펼쳤는지 혼원마군이 떨어져 내린 곳을 중심으로 단단한 청석으로 만든 장판들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지며 흩날렸다.
당연히 대무장을 수리하느라 밤새 고생했던 흑완마군과 천마수신위들의 표정이 썩어들어갔다.
나는 나대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마군급이라…….’
솔직히 이 정도 했으면 마왕급 정도는 나설 줄 알았는데, 아직도 얕보이고 있는 모양이다.
아무래도 순천파 수뇌부의 판단이라기보단, 저놈이 공명심(功名心)으로 나선 것 같다.
마지막으로 한 놈만 더 받겠다고 했더니 힘이 빠졌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착각이 심하다.
난 아직 밤새 고생해서 구축한 비장의 수는 꺼내지도 않았다.
[저놈도 한 방으로 끝내면 칭찬해 주지.]오늘 유난히도 두 분 사부님들께 시달리던 천마 사부의 주문이 들어왔다.
‘마군급을 한 방이라…….’
직접 부딪쳐 본 결과 마장급은 강하긴 했어도 일가를 이루었다 평하기엔 부족했다.
하지만 마군급부터는 다르다.
적어도 내가 겪어 본 이들은 그랬다.
‘해볼까.’
무리한 주문인 것은 알지만, 도전해볼 가치는 있다.
드드드득!!
나는 힘을 끌어올렸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곳에서 흘러나오는 힘이 몸속에서 균형을 이루며 형태를 갖춰갔다.
쿠오오오오오!
‘거칠어…….’
순간 일진광풍이 내 주변을 휘감았다.
외부에서 보자면 무언가 대단한 힘이 일렁이는 모습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나 스스로가 느끼기엔 미진했다.
습기를 가득 머금은 장작으로 불을 피우는 느낌이다.
‘평범한 수기로 신력을 대체하려니 이런 느낌인 것 같네…….’
지난번 완성된 오행신력을 체험했을 때는 그야말로 무언가 초월적인 영역에 발을 들인 기분이었다.
넘치거나 모자람이 전혀 없는 완전한 영역에서 정교한 톱니바퀴가 자연스럽게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삐걱거린다…….’
반면 지금은 누가 그 톱니바퀴에 모래를 잔뜩 뿌려놓은 느낌이다.
힘이 한 번 회전할 때마다 으드득거리며 저항감이 느껴지는 것이 좋게 평가하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돌아가긴 돌아간다.
분명한 것은 구색은 맞췄다는 거다.
불완전하더라도 오행신력이다.
인간의 범주를 넘어선 힘!
‘연경심법.’
여기에 천마사부가 전수한 연경심법을 움직인다.
감각의 극대화로, 온몸에 뻗어 있는 모든 신경이 각성하여 일어난다.
말없이 나를 받쳐주는 상화가 이번에도 전력으로 지원한다.
‘천마군림보!’
영역을 지배하는 권능 아래서 천마군림보가 강하게 일보를 내디딘다.
쿠웅!
발끝을 중심으로 퍼져나가는 파동이 내 기세를 따라 흑완마군을 뒤덮는다.
“크윽?!”
순간 시간이 잘린 것처럼 흑완마군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못했다.
순식간에 상대의 영역을 장악하여 잡아먹는다.
동시에 끌어모은 힘을 한 점에 수렴한다.
그렇게 뻗어내는 일 권.
무극권!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깨부수는 마신(魔神)의 일격이 무방비한 상대의 심장을 때렸다!
퍼억!
혼원마군의 심장에 닿은 느낌은 내가 생각한 것과는 사뭇 달랐다.
흡사 물거품을 터트리는 느낌이었다.
피륙으로 이뤄져 있다고는 하나 단련된 무인의 육신은 강철보다 탄력 있고, 바위보다 단단하다.
그런 몸뚱이가 물거품 같다.
허나 내가 느낀 감각과 귓가에 닿아온 소리는 그 결과가 달랐다.
푸아아악!
눈앞으로 붉은 운무가 자욱하게 깔렸다.
상체가 사라졌다.
사람의 몸이 터져나가며 허공으로 흩어졌다.
내가 봐도 아득할 정도다.
막연히 추측한 내 예상을 뛰어넘는 위력이었다.
후두두두두두둑!
그리고 뒤늦게 붉은 비(血雨)가 내렸다.
대무장을 붉게 물들이는 모습에 모두가 마른침을 삼켰다.
[잘했다!]가장 먼저 들린 것은 천마 사부의 칭찬이다.
오늘 처음으로 흡족해하셨다.
‘천마 사부에게 이렇게 칭찬받는 건 처음인 것 같은데.’
뭔가 묘한 감정이 심장 밑쪽을 간질이는 느낌이다.
그리고.
“천마강림!”
누군가 울부짖듯 소리쳤다.
“천마강림!!”
이번엔 한 명이 소리친 게 아니다.
“영세무궁!!!”
커지는 목소리가 불길처럼 번져나갔다.
“천마강림! 영세무궁!!”
“영세!!! 영세!!! 영영세!!!”
하늘에 닿을 기세로 커져가는 소리가 울리고 또 울렸다.
“천마강림! 영세무궁!! 영세!!! 영세!!! 영영세!!!”
나를 부정하는 순천파들조차 입을 다물게 만드는 광경.
이 자리에서 내가 천마임을 누구도 부정하지 못했다.
***
입천신마존은 대무장 위의 존재를 바라보았다.
천마신교의 마인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조아려야 할 존재가 오연하게 서 있었다.
“드디어…….”
참을 수 없는 웃음이 입에 걸렸다.
“……진짜 천마를 보게 됐군.”
진짜 천마.
입천신마존에겐 이야기 속의 주인공처럼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였다.
하지만 이제 생겼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실체가 있다.
부술 수 있다.
“어떻게 참지?”
입천신마존은 당장 대무장 위로 뛰어 올라가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기 위해 온 힘을 기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