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204
203화 혈교의 그림자(1)
대무장이 개방되었지만, 따로 대무장을 이용하는 사람은 없었다.
자연히 천마신교는 새로운 천마 연청운의 이야기로 들끓었다.
연청운을 천마로 인정하느냐 마느냐는 둘째 치고 화제성 하나만큼은 단연 압권이었다.
당연히 순천파의 분위기는 최악을 달렸다.
특히 장로회를 중심으로 한 천마혈족은 당장에라도 혈압이 터져나갈 것 같은 분위기였다.
“마장급 스물아홉에, 마군급 하나라……. 허허, 이거 손해가 막심하외다.”
마장급이라면 일가를 이루었다 평가할 만큼 대단한 고수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재능을 꽃피우는 데 성공한 수준 정도는 된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그만한 수준에 올라섰다면, 노력 여하에 따라 더 높은 곳을 노릴 수 있는 인재들이었다는 의미다.
순천파 입장에서는 당장의 손해도 문제였지만, 미래를 생각한다면 쉽게 생각할 수 없는 손실을 본 것이다.
“손해도 손해지만, 나는 그의 기량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보오. 마장급들이 대부분 일수를 견디지 못했소. 그것도 차륜전을 치르면서 말이요. 하지만 무엇보다도…….”
“마지막 수를 생각하시는구려.”
“맞소이다.”
이야기의 중심이 갑자기 다른 쪽으로 움직였다.
“마장 스물아홉을 상대하고도 힘이 남았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운데, 혼원마군을 상대로 보인 수는…… 솔직히 내가 봐도 위협적일 정도였소. 그 말인즉, 힘 조절을 했단 이야기인데……. 어쩌면 지금 보인 무공조차도 그의 한계가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드오.”
“나이가 무척 어려 보이던데, 정확한 신상에 대해 아는 사람이 있소?”
“아직 약관을 넘기지 못했다는 말이 있더이다.”
“허허! 기가 막히는군.”
감탄이 나올 일이다.
사실이라면 마장급만 되어도 천재라 평가될 수 있는 재능이다.
“뭐, 차차 지켜보면 드러나지 않겠소? 오늘은 기껏 마장급만을 상대했지만, 내일부터는 이야기가 달라질 테니 말이오.”
연청운의 기량에 관심을 드러내는 것을 넘어 지켜보자는 의견까지 나왔다.
그 성질을 굳이 구분하자면 흥미에 가까웠다.
어떻게 본다면 호감에 가까운 수준이다.
“온전한 천마신공이 대단하긴 한 모양이오.”
연청운이 보여준 기량이 천마신공 때문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여기 모여 있는 장로회의 장로들은 대부분 천마의 혈족이다.
“다들 보았을 게요. 묵룡보의에 떠오른 그 무늬를.”
“보았지! 내 눈엔 그것이 마치 계시(啓示)처럼 보이더군.”
“사실, 그 아이가 활용하는 것들은 모두 우리 천마혈족의 것임을 부정할 수 없지 않소이까.”
온전한 천마신공이라는 말에 천마혈족들의 눈빛은 흥미를 넘어 탐욕으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연청운의 무공과 무위를 자신들이 관리해야 할 도구로 여기는 모습들이다.
그 생각들은 하나의 의견으로 귀결했다.
“끌어들이자?”
“온전한 천마신공을 얻을 수 있다면 어느 정도는 수용할 수 있는 일 아니겠소이까? 손을 잡고 함께 천마신교를 운영하는 것까진 용인할 수 있는 일이라 보오. 그렇게 우리는 우리대로 다음 세대를 준비하면 되는 일이고.”
연청운이 있었다면 배꼽을 잡고 굴렀을 말을 태연하게 했다.
천상에서 꼭지가 돌아버린 천마가 미쳐 날뛰는 것은 덤이었을 것이고.
허나 천마혈족 장로들은 진지하게 수긍했다.
“새파랗게 어린놈도 저런 고수로 만들어주는 신공절학이오. 진정한 주인인 우리가 맥을 잇게 된다면 입천신마존도 상대할 수 있을 것이외다.”
추한 노욕이 여과 없이 흘러나왔다.
“암! 그렇고말고! 천마신공이 근본 없는 녀석의 무공 따위에 밀릴 리가 만무하지.”
장로회와 천마혈족의 노구들이 얼마나 권위적이고, 편향적인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흥!”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만 보던 이원군 대장로는 자리를 박차고 회의실을 벗어났다.
***
욕망으로 들끓는 자리를 벗어나 어디론가 향하던 이원군 대장로는 곧 음산한 분위기를 뿌리는 건물에 도착했다.
지형 자체가 태양 빛이 닿지 않는 곳에 위치해 있기에 습하고 우중충한 건물 입구에는 피에 물들어 변색된 비단이 하늘하늘 흔들리고 있었다.
어지간한 담력으로는 접근하기 어려운 분위기답게 주변에 사람 그림자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은 장소로 이원군 대장로가 성큼성큼 들어갔다.
“슬슬 올 때가 되었구나 싶었지요.”
건물 안쪽의 어둠에서 스르륵 나타나는 존재의 모습에 이원군 대장로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경계가 애매한 자.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이 안 되는 목소리와 차림도 그러거니와 주변을 둘러싼 특유의 분위기는 마치 이자가 이 지독한 음산함의 본체처럼 보였다.
이원군 대장로의 눈에도 이 모습은 이질적이었다.
“잘 오셨습니다.”
“쓸데없는 말은 됐네.”
“예, 저도 그편이 좋군요.”
“흥!”
이원군 대장로는 상대의 고개가 빳빳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장로회에서처럼 제 성질대로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준비는 잘 되고 있나?”
“몇 가지 더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만, 온갖 영약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는 천산산맥이기에 조만간 마련될 것 같습니다.”
“늦어도 보름 안에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할 게야. 외부에서 온 애송이 놈이 신교를 휘젓고 있는 지금이 입천신마존 그놈을 끌어낼 적기니까.”
“걱정 마시지요. 준비만 끝나면 함정 속으로 유도하는 일이야 쉬운 일일 테니까요. 그분은 만사를 귀찮아하는 겉모습과 달리 도전을 좋아하는 분이시니 말입니다. 함정이 있다는 걸 알아도 피해가기보단 정면에서 부수는 걸 좋아할 성격이시죠. 게다가 이전엔 본 적 없는 활기를 띠고 계시니 거침이 없을 겁니다.”
“맞아. 그건 사실이지. 배부른 호랑이처럼 늘 나른한 눈깔을 하고 있던 놈이 갑자기 변했더군. 그 애송이에게 자극이라도 받은 것마냥…….”
이원군 대장로는 이빨을 빠드득 갈았다.
입천신마존은 순천파를 사냥감 취급조차 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싸울 대상으로조차 보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그랬던 입천신마존이 움직이고 있다.
천마혈족은 길가의 돌멩이로도 취급하지 않던 놈이 외부에서 온 애송이에겐 흥미를 보이고 있다.
자존심이 상했다.
“……시건방진 놈.”
이원군 대장로에게서 감출 수 없는 열등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사이한 자가 빙그레 웃으며 다가왔다.
“마침 소개해 드릴 분이 있습니다.”
“……소개?”
열등감으로 가득하던 이원군 대장로의 눈가에 경계심이 담겼다.
“외부인을 끌어들였나?”
“입천신마존을 잡기 위해 필요한 일이라서 말이지요.”
“…….”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 이원군 대장로는 불쾌감을 속으로 삭이며 입을 다물었다.
그사이 한 사내가 이원군 대장로의 앞으로 나섰다.
온몸에 핏빛을 두른 듯한 인물.
피와 죽음, 끔찍함 그 자체를 형상화한 사내다.
“허어……!”
그 압도적인 위압감에 이원군 장로가 신음 같은 한숨을 흘렸다.
그런 가운데.
“좀 더 강해지고 싶은 생각 없으십니까?”
사이한 목소리가 소곤소곤 이원군 대장로의 귓가에 스며들었다.
***
오늘 밤도 청조 다리에 매달려 열심히 돌아다녀야 할 것 같다.
고생한 만큼 보람이 있다는 건 대무장에서 날뛰며 증명이 되었으니 감수할 만하지만, 역시 날밤은 괴롭다.
“한동안 푹 자는 건 글렀네.”
[걱정하지 마라. 뺑이 치는 게 너 혼자인 것도 아니니까.]“……옙!”
장삼풍 사부의 말에서 묘한 기색이 느껴지는 것이 갑자기 급 조심스러워졌다.
생각해보면 장삼풍 사부 역시 나 때문에 야근을 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것도 보름을 연속으로!
[갑자기 표정 관리 들어가는 걸 보면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구나.]“아하하…….”
[뭐,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너무 신경 쓰지 마라.]“……그리 말씀하시니 갑자기 잠이 확 달아나지 말입니다.”
갑자기 드는 생각인데, 천상에서 사부님들이 고생하시는 걸 자꾸 접하다 보니 굳이 신선이 될 필요가 있겠냐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걱정하지 마라, 제자야.]“예?”
[지금 너 정도면 당장 죽어도 천상으로 끌고 올 수 있을 것 같거든.]“……예?”
저기요?
예?
뭐라굽쇼?
“신선도 아닌데 어찌 천상에…….”
“예습……이요?”
[그 신경 극대화하는 거 말이다. 연경심법이라던가? 그거 일 밀려서 답 안 나올 때쯤에나 써먹는 수법이거든. 예전에 이야기해 준 적 있는 것 같은데? 정 안 되겠다 싶으면 시간 흐름까지도 조작해서 업무처리 한다고.]어쩐지 배울 때부터 싸하더라니!
안 그래도 이거 처음 배울 때 떠올렸던 생각이 그거였다.
[화타나 편작 그 치들 꼬라지 보면 알겠지만, 그 생활이 편하지만은 않아. 밑바닥에서 벗어날 방도가 없는 건 아닌데, 쉽지 않단 말이지. 기왕 관직 생활할 거면 그래도 승진할 수 있는 쪽이 낫지.]“옙…….”
대충 살다 뒈지면 천상에서 영원히 말단으로 굴려질 거란 이야기다.
‘미친 듯이 열심히 살아야겠다…….’
반드시 후임으로 들어올 노예……가 아니라 동료들도 팍팍 뽑아 놓고!
그러기 위해선 일단 당장 살아남아야 한다. 보름 동안 죽었다(?) 생각하고 강해지는 것만 신경 써야 할 것 같다.
절대로 비명횡사만큼은 피해야 한다.
죽어서 당할 꼴을 알게 되니 억울해서라도 못 죽는다!
조급함이 생겨서인지 갑자기 모든 것이 고깝게 보였다.
‘갑자기 장삼풍 사부가 청조 이 녀석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게 이해가 되네.’
자격을 갖췄음에도 올라오지 않고 지상에서 탱자탱자 놀고 있으니 좋게 볼 수가 없을 것이다.
“……그냥 깔끔하게 백숙 결말도 괜찮을 것 같네? 나는 물의 신력 얻고, 너는 천상으로 올라가서 서왕모님 모시고. 이거야말로 행복한 결말 아닌가?”
뺙?!
갑자기 피부로 느껴질 만큼 속도가 빨라졌다.
아무래도 백숙 운운한 소리를 빨리 서두르라는 재촉으로 받아들인 모양이다.
‘이 시키 농땡이 치고 있던 거네?’
역시 이놈도 보통은 아니다.
천년을 넘게 굴러먹은 놈답다.
‘이 정도 속도면…… 수거할 수 있는 영약이 더 늘어나겠네.’
보름 동안 영약 먹을 것을 떠올리니 벌써부터 배 속에서 항의가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입에 쓴 것이 몸에 좋다고, 솔직히 영약이란 게 맛이라는 영역과는 거리가 있었다.
어떤 이야기에선 침이 닿자마자 물처럼 녹았다느니, 어마어마하게 맛있다느니 하는데 다 헛소리다.
날 것 그대로의 영약은 끔찍한 맛이다.
무언가를 몇백 년씩이나 농축시킨 것들이라 그런지 맛이 어마어마하게 강하달까?
예를 들면 늘 먹는 장이나 초 같은 것을 몇백 배로 농축시켜 한입에 먹는다고 생각해 봐라.
입안에 넣는 것 자체가 고역이다.
이래서 영약 먹을 때 연단을 해서 먹는 거구나 싶었다.
그나마 사부님들께 단련된 나 정도나 되니까 고역 수준으로 끝나지, 약력 중화도 안 시킨 영약을 그만한 양을, 그것도 날로 홀라당 먹었으면 십중팔구 명계에서 번호표 뽑고 있을 거라 하셨다.
오늘 밤도 그 고역을 치러야 한다고 생각하니 절로 가슴이 웅장해졌다.
삐익!
“……응?”
청조의 울음소리가 평소와 달랐다.
위협적으로 내지르는 청조의 울음소리에 눈에 힘을 주고 청조가 바라보는 방향을 보았다.
내가 노리던 영약을 누군가가 캐고 있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쩝! 심 봤네, 저 양반들.”
영약은 하늘이 내린다고 했다. 선점하는 자가 임자인 것이다.
나야 천상을 통해서 영약이 있는 곳을 전해 받고 있으니 굳이 욕심을 부릴 필요가 없다.
“다른 곳으로…… 음?”
그런데 방향을 틀기 전, 가까워지는 만큼 노골적으로 강하게 느껴지는 것이 있다.
역겨움.
천리(天理)에 반하는, 혈교 같은 곳의 놈들이나 풍길 법한 그 특유의 불쾌함이 풍겨온다.
상화가 성장한 만큼 감각이 더 예민해졌는지 역겨움이 이전보다 더욱 선명하게 느껴졌다.
“이러면 이야기가 다르지.”
저놈들에게 귀한 영약이 들어가서 좋을 게 없다.
“일단 자세한 건 팔다리를 뜯어놓고 생각하자.”
계속 천마, 천마 거리면서 다닌 탓인지 나도 좀 과격해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