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21
20화 미욱한 것들을 계도(啓導)할 땐 죽빵이 좋은 수단이지
구대문파에서 소림은 유별난 곳으로 볼 수 있다.
구대문파는 모두 험한 산 위에 자리를 잡고 있어서 일반인들이 함부로 발을 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런 성향을 지닌 문파들이 꽤 된다.
하지만 소림은 그와 거리가 멀었다.
천하공부출소림.
무의 발상지라는 자부심을 바탕으로 무림에 널리 알려진 그 위명과 이름의 무게는 세간 사람들의 존중을 샀다.
평범한 민가 사람들도 소림의 이름을 알았고, 나랏일을 하는 관리들조차 그 이름과 위명을 존중했다.
높아진 인지도 때문인지 불가의 성지 비슷한 취급을 받은 소림은 향화객이라 하여 부처에게 공양을 드리기 위해 방문하는 손님들이 줄을 이었고, 소림은 아예 향화객을 받기 위한 불당을 따로 세우게 되었을 정도였다.
그 정도로 속세와 교류하다 보니 민간의 사람들은 물론 불교를 믿는 관의 관리들과도 활발하게 소통하는 편이었다.
한마디로 소림에는 꽤나 세속적인 부분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서윤건 역시 소림과 인연이 있는 관리였고, 그렇기에 그와 연이 있었던 소림의 인물들이 방문한 것이었다.
그런 만큼 서윤건의 부탁을 거절하기가 어려웠다.
편하게 잔치나 즐기다가 가려 했던 소림의 인물들은 서윤건의 부탁에 무거운 엉덩이를 움직여야 했다.
“나 참. 개나 소나 소림 무공인가.”
그리고 그중 일부는 이 일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새파랗게 젊어 보이는 중의 입에서 거친 말이 튀어나왔다.
범각이란 법명을 받은 젊은 소림 제자였다.
얼추 약관이 막 됐을 법한 나이임을 고려하면 이곳에 참여한 누군가의 제자일 가능성이 커 보였다.
한참 수행에 힘써야 할 나이인 그가 속세에 나오려면 보통은 스승의 수발을 들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뭐가 비슷한 연배끼리 잘 어울려 보라는 거야. 그냥 짬 처리인데.”
스승은 다른 의미로 이번 일을 맡긴 것일지 모르지만, 범각은 귀찮은 일을 자신에게 떠넘긴 것이라 여겼다.
귀찮고 자질구레한 일을 하고 있다 생각하는 범각은 한껏 짜증을 내며 바닥을 툭툭 밟았다.
***
소림 쪽의 인물들에게 한 수 가르침을 받는 일은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이 됐다.
백진성 아저씨가 밀어붙여 성사되긴 했지만 나쁜 일은 아니다.
무당파 무공이야 태극권을 기반으로 어떻게든 익힌 연원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지만, 이따금 구사하는 소림권은 딱히 설명할 길이 없었다.
물론 소림의 육합권이나 나한권 같은 것들은 무림에 널리 알려져 있긴 하다.
소림 출신의 속가제자가 운영하는 무관 같은 곳에서도 심심치 않게 가르치는 무공이고, 저잣거리에 간혹 올라오는 삼류 무공 비급에서도 곧잘 찾아볼 수 있다.
그래도 이곳에서 뭔가를 배우면 이를 핑계 삼아 달마 사부에게 배운 무공들을 적당히 포장할 수 있을 거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보게 된 소림의 제자는.
“범각이다.”
띠꺼웠다.
얼굴이 딱 말해 주고 있었다.
지금 무척 띠껍다고.
눈치라는 개념이 머릿속에서 말살된 사람이 아닌 다음에야 바로 알아볼 수 있는 태도다.
[쟤, 지금 짝다리냐?] [허!허!허!]태도가 아주 불량했다.
[무당파도 답 없긴 했지만, 소림도 한 개판 하는데?] [허!허!허!허!]두 분 사부님이 어이없어할 정도다.
기분 나쁜 일이라도 있었나?
“연청운입니다.”
“어, 그래. 연청운. 그럼 청운이라고 불러도 되지?”
“예.”
“소림 무공을 배웠다고 들었는데, 한번 해 봐.”
얼굴 오래 마주 보고 싶지 않다는 듯 단도직입적으로 나온다.
사실 이쪽도 차라리 그편이 나았다.
딱 봐도 가르치려는 태도가 아니다. 이런 녀석에게 뭔가 배웠다는 말을 듣고 싶지도 않았다.
바로 등을 돌리지 않은 것만 해도 달마 사부와 소림에 대한 예우를 지키는 것이었다.
지금 시대의 소림 제자들과 만난다는 말에 표는 내지 않았지만, 은근히 기대하셨던 달마 사부를 생각하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백진성 아저씨와 서윤건 대인에 대한 배려도 있다. 여기에서 그냥 돌아서 버리면 두 분에게도 폐가 된다.
“그러죠.”
눈 딱 감고 한 번만 펼쳐 보자.
그런 마음으로 나는 달마 사부에게 배웠던 소림오권을 펼쳐 보였다.
단조로우나 정교하게.
용맹하면서 쾌속하게.
소림의 기질을 그대로 담아 보란 듯이 펼쳐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대단한 모습을 보여 범각을 놀라게 할 마음도 있었기에 전심전력을 기울였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이 이상했다.
“그거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
“예?”
지금 나 훈수 당한 겨?
저 인간, 지금 누구 무공에 트집 잡고 있는 건지 알고는 있는 건가?
너무나도 어이가 없어서 펼치던 무공을 멈춘 채 멍한 얼굴로 범각을 보았다.
한껏 지적질을 한 범각이 코웃음을 치며 설명을 이었다.
“그거 그렇게 하는 거 아니라고. 완전 구닥다리잖아. 뭐야, 그 소림오권. 무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는 촌구석 무관에서 배운 거야?”
아주 날벼락이 펑펑 떨어져 내린다.
[푸하하하하!]장삼풍 사부 웃음소리에 머리가 띵할 정도다.
뭐, 달마 사부가 아주 제대로 씹히고 있으니까.
“구닥다리라는 건…….”
“기교가 없잖아! 기교가!”
뭔 개소리야?
소림권의 특징은 강맹하면서도 빠른, 단조롭되 정교한, 용맹하고 과감하며 변화무쌍한 것인데.
거기에 기교가 왜 들어가?
달마 사부는 소림의 무공은 위엄으로 군림하는 산 중 왕 같은 것이라 했다.
군림하는 왕에게 기교라니?
헛소리라는 건 잘 알겠다.
그래도 온화하신 달마 사부님이시라면 이런 헛소리에도 대범하게…….
[허!허!허! 머리를 밀어 버릴 때 눈깔까지 밀었나 보구나, 이 땡중 녀석은.]“…….”
저기요?
달마 사부? 달마 사부 맞으세요?
사람 눈깔을 밀어 버리라는 소리처럼 들리는데, 저거.
온화한(?) 달마 사부의 입에서 나온 소리 같지 않다.
그러고 보니 이전에 장삼풍 사부가 소림 제자들이 피거품 물고 뚝배기 깨는 성깔이 어디에서 나온 것 같으냐고 말한 적이 있었지.
이제 조금 알겠다.
그사이 내가 그렇게 멍하니 있으니 저쪽은 이상한 판단을 내린 것 같다.
“뭐, 대충 이럴 거라고 예상하긴 했지. 소림 무공이 워낙 유명해야 말이지. 개나 소나 소림 무공을 익혔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역사가 깊다는 것도 참 힘든 일이야.”
개나 소나…….
이 양반 표현 하나하나가 선을 넘네.
“제가 배운 것은 꽤 귀한 거라고 가르치신 분께서…….”
“원래 사기꾼들이 사기 칠 때 하는 말들이야. 가르칠 때는 다들 그래. 내가 가르치는 건 귀한 거다, 비전이다.”
[이 땡중도 못 될 새끼가…….]장삼풍 사부, 왜 달마 사부 목소리 흉내 내세요?
……는 개뿔. 당연히 달마 사부지.
위험 신호다, 이거.
이 자식, 안 되겠어. 빨리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이대로 뒀다간 달마 사부가 드러낸 무척 좋지 않은 부분의 일면이 나에게도 향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 자식 뚝배기를 깨버리면 되는 건가?
“못 믿겠어? 네가 배운 게 얼마나 문제가 많은지 보여줘?”
어떤 꼬투리를 잡아서 조져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때마침 핑곗거리를 알아서 만들어 주었다.
다음 이어질 말을 예상하며 나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덤벼 봐. 친히 알려 주지.”
처음으로 마음에 드는 말이 나왔다.
나도 모르게 ‘감사합니다!’라고 소리칠 뻔했다.
“그럼!”
나는 지체하지 않고 앞으로 튀어 나갔다.
범각이 그런 나를 상대로 두 손을 휘저으며 움직였다.
소림오권의 용권을 펼치는 두 주먹이 묘한 흐름을 만드는 것이 보였다.
정면으로 치고 나가는 게 아니라 언제든 측면을 노릴 거라는 듯한 좌우의 움직임을 가미해 넣었다.
상대의 눈을 교란시키는 흐름을 만들며 나아간다.
범각이 말하는 기교라는 것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알겠다.
정면으로 치고 나가는 것은 많은 위험을 동반한다.
소림의 가혹하리만치 단단한 수련이 없이는 갈 수 없는 험하고 무모한 길이다.
그 길을 좀 더 편하게 가는 방법.
상대를 속이는 법이다.
[쯧! 하찮은.]달마 사부가 혀를 차며 말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소림오권은 그 자체로 권법인 동시에 수련법이다.
수련에 기교라니.
그것은 나태함이다!
백련(百鍊)을 넘어, 천련(千鍊), 만련(萬鍊)을 거친 연마 앞에 흐느적거리는 너절한 수는 무용하다!
정신을 모아 맑게 세상을 보는 시야에 범각의 움직임이 고스란히 보였다.
어떻게 움직이는지, 어떻게 속이려는지.
그 흐름을 낱낱이 보았다.
청경이 보고 읽었다.
파악!
측면으로 흐르듯 움직이며 뻗어낸 주먹은 제법 날카롭게 내 안면을 노리고 움직였지만, 주먹의 솜털까지 보이는 내게는 통하지 않았다.
간단하게 피하고.
파악!
다음 이어진 또 다른 연격을 피하며.
쿵!
상대의 간격으로 파고들었다.
“헙!”
가격할 수 있었지만, 이 기세를 그대로 실어 쳤다간 진짜 큰일 나는 수가 있다.
중토신공을 억지로 구사한 이후 몸에 그 기반이 만들어진 탓인지 위험할 정도의 힘이 몸 안에 자리 잡아가는 중이다.
지금 제대로 쳤다간 저놈 최소 병신이다.
한 번은 봐준다는 생각으로 그냥 물러나게 두었다.
놀라는 범각이 뒤로 물러서는 걸 보며 나도 모르게 쓴웃음이 지어졌다.
내가 배운 소림권은 나아갈 때는 물론, 물러설 때도 법이 있다 배웠다.
저런 움직임은 배운 바 없다.
내 입가에 그려진 웃음을 보았는지 범각의 얼굴이 대번에 붉어졌다.
“한 수가 있었구나!”
물러서던 몸을 억지로 반전시켜 다시 앞으로 튀어나오는 범각이 두 손을 사납게 펼쳤다.
“반야장!”
변화무쌍. 두 손을 정신없이 앞으로 뻗으며 쏟아내는 장법은 무성한 복사꽃을 보는 것처럼 현란했다.
허 속에 실이 있고, 실 속에 허가 있다.
실과 허로 눈을 속이는 기교가 가득하다.
하지만!
[무공에서 의미 없이 쓸데없는 움직임이란?]장삼풍 사부의 물음이 이 무공을 평한다.
“지랄발광이요.”
[뻔히 읽히는 수를 펼치는 놈은 뭐다?]“병신이요.”
[저건 뭐다?]“지랄발광하는 병신이네요.”
[잘 배웠구나.]모든 것이 보인다.
아무리 변화무쌍한들, 아무리 기교가 넘쳐 본들 다 읽혀 버리는 무공은 그 효용을 잃는다.
나는 쏟아지는 그 모든 공격을 보란 듯이 피했다.
물러섬에도 법이 있어 흐트러지지 않았기에 쏟아지는 공격은 나의 퇴로를 차단하지 못했다.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입술만 달싹였지만, 입술의 움직임을 보고 했던 말의 일부를 알아보았나 보다. 범각의 얼굴이 홍시처럼 붉어졌다.
[그럼 이제 조져 버려.]등을 떠미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내 몸이 반동했다.
중토신공의 토대를 이룬 몸이 참아왔던 힘을 폭발시켰다.
쿵!
땅을 밟은 발길질에 대지가 떨어 운다.
그 일보가 단숨에 간격을 좁혔다.
범각이 펼치는 반야장. 그 무성한 손 그림자의 간격을 단숨에 넘어.
빠악!
“케엑!”
뻗어낸 주먹이 안면에 꽂혔다.
허공에서 세 바퀴 반쯤 회전한 범각이 그대로 데굴데굴 구르며 날아갔다.
타격하는 순간에 힘을 최대한 빼긴 했는데, 그래도 과했던 것 같다.
“그만!”
조금 심했던 걸까, 하고 생각하는 와중에 측면에서 누군가의 일갈이 떨어졌다.
노기를 품고 이쪽을 바라보는 중년의 중이 보였다.
당장이라도 이쪽으로 출수할 것 같은 상대의 모습에 머릿속에서 호전적인 목소리가 들렸다.
[한 판 더?]흥이 가득한 장삼풍 사부의 목소리.
온몸에 중토신공의 여파가 들끓고 있는 탓인지 나도 흥이 솟았다.
달마 사부의 기준으로 치면 중토신공은 아직 채 일 단공조차 이루지 못했다.
당장은 그저 기반에 불과한 이 힘이 과연 어디까지 닿을 수 있을까.
[미욱한 것들을 계도(啓導: 깨우쳐 이끌어 지도함)할 땐 죽빵이 좋은 수단이지.]달마 사부? 말씀하시는 게 좀 적응이 안 됩니다만?
[계도에 불만이라도?]“아니요.”
뭐, 적응은 제자인 내가 하면 되는 거다.
그런데, 저거 감당은 될까?
딱 봐도 미숙하기 그지없는 이놈이랑은 수준이 달라 보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