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210
209화 끝나는 꿈. 다가오는 현실.
결국, 도전자는 나오지 않았다.
충성을 맹세하고자 하는 마인들만이 대무장 위로 올라왔다.
해가 중천에 떴을 때쯤 대무장에서 내려오고 나서야 이화에게서 왜 이런 상황이 되었는지에 대해 보고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런 일이 있었나?”
“예. 일을 성사시키는 쪽만 생각하다 보니 보고가 늦었습니다.”
어쩐지 얼굴에 피곤이 가득하더라니, 천마혈족에게 넘겨줄 가짜 천마신공을 짜맞추기 위해 이경천과 밤을 꼴딱 새웠다는 것이다.
‘그럼 지금 천마혈족 녀석들은 가짜 천마신공에 푹 빠져있다는 것인데…….’
오늘 대무장에 아무도 올라오지 않은 이유가 이해되었다.
[나쁜 계책은 아니다만, 한 가지 실수를 했구나.]“예?”
“……예?”
장삼풍 사부의 언급에 무의식중에 반문해 버렸다.
이화가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 네게 한 말이 아니야.”
“아……!”
적당히 둘러댄 말에 이화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납죽 엎드렸다.
‘오해한 것 같네…….’
일단은 장삼풍 사부의 지적 쪽에 더 신경을 썼다.
이화의 계책은 꽤 괜찮다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천마신교의 여론이 내 쪽으로 기울어질 상황임에도, 순천파에서는 이를 막기 위해 나설 최적의 시기를 놓쳤기 때문이다.
이후는 눈덩이가 굴러가듯 시간이 흐를수록 막아내기가 어려워질 것이다.
“으음…….”
고민하는 내게 장삼풍 사부가 답을 알려주셨다.
[너무 쉽게 수중으로 들어온 보물은 좋은 미끼가 되기 어렵다는 거다.]“아하…….”
바로 이해가 되었다.
천마혈족 입장에서는 나름 좋은 계책이라 여겼겠지만, 그게 너무 잘 먹혀들게 된다면 오히려 의심스러워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결과론적으로는 크게 문제가 없지 싶었다.
손에 들어온 천마신공이 진짜인지 의심할 것이고, 좀 더 신중하게 진위를 알아보려 할 것이니, 그만큼 시간을 소모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그렇게 소모한 시간만큼 내게는 기회가 될 것이다.
‘나쁘지 않은데?’
“그건 그것대로 좋지 않을까요?”
[혈교가 없었다면 그랬을지도 모르지.]“아…….”
생각해보니 또 그렇다.
너무 단편적으로 생각했다.
현재 문제가 되는 곳이 순천파뿐이라면 그들이 엉뚱한 곳에 집중하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지금 천마신교는 순천파고 반천파고 죄다 문제를 달고 있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 튀어나와 독니를 내밀지 모르는 독사 같은 혈교 놈들이 숨어있다.
‘게다가 순천파는 내부에 뭔가 사고가 터졌단 말이지.’
무려 천마 사부가 답답함을 이기지 못해 진상을 부릴 정도로 술을 자셨을 정도다.
아마도 핵심적인 누군가가 죽었을 것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천상에 계신 사부님들의 보증이다.
‘내분일까?’
혹시 이화의 계책이 성공해서 어떤 불화가 생긴 것일까?
막연한 추측이지만 가능성이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쉽게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장삼풍 사부가 혈교를 언급한 것을 떠올리면 오히려 그쪽과 관계가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역시 막연한 정보만으론 답을 찾기가 어렵다.
최소한 누가 죽었는지는 확인을 해봐야 할 것 같다.
“이화야.”
“예.”
“순천파 내부에 문제가 생겼는지 알아볼 방법이 있을까?”
“종 노야나 천마수신위들을 통해 알아봄이 어떨까 합니다. 전날 내리신 지시로 그들과 접촉 중일 테니 곧 정보가 들어올 것입니다.”
“흐음…….”
아무래도 당장은 어려운 것 같다.
며칠 기다려봐야겠다.
그리고 방침에 대한 변경도 있어야 할 것이다.
일단은 천산산맥을 돌아다니는 것은 자제해야겠다.
이후의 싸움은 대무장에서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라는 장삼풍 사부의 경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좋은 미끼라…….’
고민스럽다.
뭔가 잘 써먹으면 좋은 결과가 나올 법도 한데, 이상하게 흐릿하기만 할 뿐 구체화되지 않았다.
차근차근 생각을 정리해 보려는데 흑완마군이 다가왔다.
“뵙고 싶다는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그래?”
‘천마수신위 쪽? 아니면 종 노가 접촉 중인 마존이 낚였나?’
갑자기 기대감이 생겼다.
만약 내가 기대한 대로라면 물어볼 것이 무척 많다.
특히 지금 순천파 내부 돌아가는 꼴에 대해서는 궁금한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진짜로 진지하게 달마 사부 주머니를 털어보고 싶을 정도다.
“반천파 쪽 인사입니다. 꼭 뵙고 싶다고 해서…….”
“……응?”
한데, 내 기대에서 벗어난 쪽에서 찾아왔다.
보고를 하는 흑완마군도 뭔가 떨떠름해 하며 말끝을 흐리는 것이 ‘이 새끼들이 왜 왔지?’라는 말을 생략한 느낌이다.
흑완마군의 반응대로라면 지금 찾아온 자들의 성향이 짐작되었다.
실제로 흑완마군에게서 반천파에 그런 성향들이 상당하다는 보고를 받았었다.
방임주의에 가까운 입천신마존이기에 이를 이용하고자 모인 작자들.
눈치나 살피며 권력을 추종하는 무리들.
승냥이 같은 기회주의자들.
본래 반천파에 몸담았던 흑완마군이 중립으로 돌아선 것도 그런 작자들 때문이란 이야기를 들었었다.
“일단 만나보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감히 중간에 끊어내지 못했으나, 끝까지 달갑지 않다는 기색으로 흑완마군이 물러났다.
곧이어 사내 셋이 신당으로 들어섰다.
“우경호라고 합니다.”
간단한 예의와 함께 일행의 가운데 있는 이가 스스로를 소개했다.
“그래, 무슨 일이지?”
“하하! 단도직입적이시군요.”
“굳이 돌려 말할 필요가 있나?”
협상이란 뭔가를 주고받을 게 있을 때나 하는 거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자에게는 내게 필요한 것이 없다.
그저 궁금한 것이 조금 있을 뿐이다.
지금 이 시점에 이곳에 온 목적.
굳이 예의를 차리지 않고 몰아붙인 것은 자극을 주기 위함이었다.
감정이 흔들리면 실수가 나오기 때문이다.
“당장은 그러실 겁니다.”
‘쳇! 안 먹혔네.’
우경호는 태연하게 웃으며 내가 던진 도발을 흘려냈다.
다른 자들의 눈매가 꿈틀거리긴 했지만, 크게 의미가 없었다. 곁가지에서 보이는 반응일 뿐이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중심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머리 아픈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니까 복잡한 건 빼고, 바로 본론으로 가지. ‘댁 같은’ 반천파가 여긴 왜 왔지?”
“왜 왔겠습니까.”
“내게 의탁하겠다고?”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이유지만, 쉬이 믿어지지 않았다.
헌데 우경호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무장에서 하신 말씀을 감명 깊게 들었습니다.”
“그게 이유라고?”
“오랜 세월 진정한 천마를 기다려온 이들이라면 누구나 심금이 울렸을 것입니다.”
“복잡하게 가지 말자고 했을 텐데.”
내가 엄청나게 연륜이 넘치지는 않지만, 그래도 할아버지가 관청에서 일하실 때 제법 많은 사람을 보았었다.
이자는 일순간의 감정으로 움직이는 자가 아니다.
“지금은 모르시겠지만, 결국은 저 같은 사람이 필요하게 됩니다. 사람은 꿈만 먹고 살 수 없기 때문이죠.”
“타협하는 법도 필요하다?”
“정확하십니다.”
“그래, 타협이 나쁜 것만은 아니지. 하지만 그렇기에 상대를 봐 가면서 해야 한다는 것도 잘 알아.”
애송이 취급하는 것이 살짝 거슬린다.
내가 흔들려고 했던 것처럼 나를 흔들어보려는 시도였던 것 같다.
“현명하시군요.”
“현명은 무슨.”
내가 그 정도 급이 되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다.
신승 어르신이나 장문경 선배같이 대단한 분들이 띄워주시며 자만심에 빠졌던 경험 때문인지 저 말이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았다.
“헛소리할 거면 가라.”
“지금은 그러는 게 좋겠군요.”
우경호는 깔끔하게 물러났다.
“너무 힘든 길만 좇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면서도 슬쩍 흔들어놓는 것을 잊지 않았다.
나는 내심 코웃음을 쳤다.
‘그러기엔 나를 지켜보는 대단한 분들이 좀 많네.’
“편한 길만 갈 거라면, 애당초 이렇게 움직이지도 않았겠지.”
“하하하!”
시도가 전혀 통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렸음에도 우경호는 크게 웃었다.
“곧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저도 일단 천마께서 짊어져 주실 사람이니까요.”
대무장 위에서 내가 했던 말을 이용하며 우경호는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 모습을 빤히 지켜보며 괜스레 머리가 더 복잡해졌다.
‘저런 성향을 지닌 자가 내게 오려 한다?’
우경호란 자는 누구보다 권력의 향방에 민감한 자다.
할아버지가 일하시던 관청에서 쉬이 찾아볼 수 있는 유형이다.
그렇기에 이상할 수밖에 없다.
현재 나는 시한부 천마라 평가되고 있다.
입천신마존과의 약조. 보름 뒤를 기약했던 일은 마인들의 뇌리에 뚜렷하게 남아 있다.
그런 내 밑으로 들어오겠다는 것은, 내가 보름이 지난 이후에도 천마로서 군림할 가능성을 봤다는 의미이다.
“이걸 어떻게 판단해야 하나…….”
머리 아픈 일이 하나 더 늘어났다.
***
우경호와 동행했던 일행들은 신당을 벗어남과 동시에 분노를 토해냈다.
용케 참았다 싶을 정도로 속에 쌓인 감정을 쏟아냈다.
“건방진 놈입니다!”
“맞습니다. 시한부 천마 따위가 주제도 모르고!”
“쯧쯧쯧!”
허나 그들과 달리 우경호는 혀를 차며 언짢아했다.
“입조심해라. 앞으로 받들어 모셔야 할 분이시다.”
“허나……!”
“그 이상 경망된 소리를 지껄인다면 목을 치겠다.”
“……!”
우경호의 진심을 읽은 두 사람은 더 이상 입을 열지 못했다.
우경호는 잠잠해진 그들을 보며 씩 웃었다.
“너희는 나와 동행한 것만으로 충분히 제 몫을 다해 주었다. 내 후히 보답할 것이니 더 이상 선을 넘지 말거라.”
우경호의 뜻은 확고했다.
그렇기에 사내들은 납득이 되지 않았다.
“……우 형은 그자가 정말 입천신마존님의 손에서 살아남을 거라 보시오?”
“쯧쯧쯧! 아직도 그렇게 입천신마존님을 몰라서야…….”
당연하다는 말을 돌려서 이야기하는 우경호다.
두 사람은 도저히 모르겠다는 듯 눈을 껌뻑일 뿐이었다.
“천마는 순천파와 반천파를 규합한 진정한 지존이 될 것이다. 그런 천마의 밑에서 자리를 선점해 영향력을 구축하면 지금과 비할 바가 아닌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지. 다행히 천마의 수하 중에는 실무에 능한 자가 전무하단 말이야.”
우경호의 눈에는 지금까지 드러내지 않았던 강한 야심이 일렁이고 있었다.
일행인 두 사내는 그런 우경호를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그렇기에 우경호는 그들을 신뢰할 수 있었다.
“그러니 내 말을 잘 따…….”
서걱!
모든 것을 뒤집어 버리는 소리가 들린 것은 그때였다.
방금까지 멍청한 눈으로 우경호를 바라보고 있던 머리들이 땅으로 떨어졌다.
생전의 멍청함을 그대로 간직한 채.
조금 전까지 세상 전부를 얻은 것 같았던 우경호의 야심만만한 눈이 처음으로 공포를 품었다.
“다, 당신은…….”
“시야가 나쁘진 않구나. 허나 너무 먼 곳만을 바라보았다간 발밑을 보지 못하게 되는 법이지.”
‘붉은 기운’을 뿌리는 자가 검을 휘둘러 우경호의 목마저 날려버렸다.
‘붉은 기운’을 뿌린 자는 떨어져 내린 머리를 하나하나 자근자근 밟아 부쉈다.
“꿈속을 노니는 이야기는 여기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