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209
208화 여기 천마신교 맞지?
세력의 덩치가 커지게 되면 일반적으로 안쪽을 운영하는 이들과 바깥일을 보는 이들로 나뉘게 된다.
내단과 외단으로 나누는 것이다.
백기서는 천마신교 외단(外團) 혈운적살단(血雲赤殺團) 소속 마인으로 활동했었다.
외부에서는 나름 흉명(凶名)을 자랑하는 혈운적살단이지만, 천마신교 내단으로부터는 집 지키는 개라고 비하당하는 곳이었다.
백기서는 그 혈운적살단에서 공을 세우고 내단으로 전입했다.
나름 신분 상승을 이룬 것이었으나, 백기서는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내단으로 전입한 이후 접하게 된 천마신교의 실상은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던 탓이었다. 한마디로 혐오감 그 자체였다.
“이게 무슨 마인이라고!”
백기서가 볼 때 권력을 쥐고 높은 곳에서 굽어보는 권력자들은 배부른 돼지에 불과했다.
차라리 잡견 취급을 받으며 광대한 천산산맥을 자유롭게 뛰어다니던 삶이 더 행복했었다.
천마신교 내단의 삶은 거대한 감옥이나 다름이 없었다. 도저히 정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고작 하급 마인에 불과한 신분으로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러던 차에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내가 천마다!
현실이라는 벽의 두터움을 실감하고 있는 백기서에게 있어 의미 없는 공허한 외침에 불과했다.
아무도 들어주는 곳이 없는 황량한 절벽에서 내지르는 메아리만도 못했다.
하지만 그 외침의 주인은 본인의 힘으로 그것을 증명해냈다.
그 행보를 지켜보면서 백기서는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마치 과거 자유롭게 뛰어다녔던 천산산맥의 웅장함을 다시 접하는 것 같았다.
“저분이 천마이시다!”
가슴 깊숙이 받아들이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비록 눈길 한번 받지 못할 말석에 불과할지라도 그 깃발 아래 서고 싶었다.
조그만 도움이라도 되고자 부서진 대무장을 수리하기 위해 소매를 걷어붙였다.
한데 상관이랍시고 깝죽대는 돼지가 꿱꿱거렸다.
이미 충성을 바칠 대상을 찾은 백기서에겐 참을 수 없는 발언들이었다.
“씨발! 그럼 올라오든가!”
결국, 폭발했다.
앞뒤 가리지 않고 대무장 위에서 상관을 묵사발 내버렸다.
저지르고 나니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하극상(下剋上)은 중죄다.
본보기 차원에서라도 비참하게 처형될 것이다.
하지만 백기서는 후회하지 않았다.
천마신교는 잘못되었다!
바뀌어야 한다!
“천마강림! 영세무궁! 영세! 영세! 영영세!”
백기서는 그동안 참아왔던 모든 울분을 담아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어…… 어?”
“나를 부른 거 아니었나?”
그에 답하는 존재가 눈앞에 강림했다.
천마강림(天魔降臨)!
그가 외친 말처럼.
***
‘대책 없는 꼴통인 줄 알았더니, 눈치도 보네.’
허둥대는 꼴이 대무장 위에서 상급자를 박살 낸 인물로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평가 절하하진 않았다.
논리적이진 않았지만, 그의 외침에는 가슴에 닿아오는 것이 있었다.
[쌓인 게 많았나 보군.]장삼풍 사부 역시 비슷한 판단을 하신 것 같다.
‘천마 사부가 아니네?’
마교에 기거하고 있는데 천마 사부의 방문이 늦어지는 것은 좀 의외다.
“천마 사부는…… 많이 바쁘세요?”
나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제와 그제 천마 사부의 일거리를 늘려놓은 주범이기 때문이다.
[그 양반? 어제 술 빨고 진상 부리다가 지가 끓인 똥물에 튀겨질 뻔했다.]‘그, 그건 또 뭔…….’
신선도 취할 수 있나 보다.
그러고 보니 장삼풍 사부에게서 처음 천마 사부에 대해 들을 때 종종 술 먹고 진상 부린다고 하셨던 기억이 났다.
“뭔 일인데요?”
[밤사이 마인 몇 놈이 명계로 올라왔다. 근데, 내가 봐도 좀 골 때리는 상황이더라.]“헤에…….”
밤사이에 마교의 누군가가 죽었다.
천마 사부가 취할 정도로 신경 쓰이는 자들이.
‘입천신마존은 아닐 테고…….’
입천신마존을 죽일 수 있는 자가 무림에 있을지 의문일 정도로 그는 강하다.
설령 그런 강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가 죽었다면 지금쯤 마교는 홀라당 뒤집혔을 것이다.
그렇다면 죽었다는 자는 천마혈족일 확률이 높다.
“정확하게 말씀해 주시지 않는 걸 보면 인과가 소모되는 일인가 보네요?”
[잘 아는구나.]“그럼 대세의 흐름에 영향을 줄 수 있을 정도로 큰 존재라는 건데…….”
[자꾸 그런 식으로 운 띄우지 마라. 추측이 가능할 정도로 근거를 던져주는 것도 인과 소모가 꽤 되니까.]“아하하…….”
하기야 작은 단서라도 과(果)는 과다.
[정히 사부 주머니를 털어먹고 싶다면, 달마 그 양반이나 꾀어보아라. 요즘 서방정토와 선계에서 양각으로 잘 받아먹고 있어 인과가 빵빵한 모양이니까. 아주 관리의 표상 같은 양반이 됐어. 뒤로 받아먹는 솜씨가 그냥!]“……왜 제 귀에는 양각으로 털리고 있다는 소리로 들릴까요?”
[흐흐흐! 너도 이젠 짬이 좀 찼단 뜻이겠지.]장삼풍 사부가 돌연 악당처럼 웃으셨다.
‘악당이 맞지. 양각으로 털리고 계실 달마 사부님 뒷주머니를 빼먹으라고 부추기시는 거니.’
어쩐지 달마 사부도 최근 들어오시는 것이 드문드문해진다 싶더니 어딘가에서 열심히 쥐어짜이고 있는 모양이다.
현재 그나마 여유가 있으신 분은 장삼풍 사부뿐인 것 같다.
[그나저나, 저놈 저거 잔뜩 쫀 거 같은데?]슬쩍 말을 바꾸시는 장삼풍 사부의 언급에 편승해서 나 역시 눈앞으로 관심을 돌렸다.
허둥거리던 사내는 진즉에 머리를 땅에 박고 부복 중이었다.
덕분에 내가 혼자 떠드는 것은 못 본 것 같다.
“뭘 저리…….”
[그러고 보면 대무장에서 너랑 마주하고 살아서 내려간 놈이 없지 않냐?]“……그러네요?”
확실히 대무장에서 나랑 마주한 자 중 살아서 내려간 놈은 없다.
이 사람 역시 겁을 먹고 있는 것일까?
‘그런 느낌은 없는데…….’
다만 당황해하는 것은 분명하다.
“마교스럽네요.”
웃어야 할 때 웃는 법을 몰라 어리둥절해 하는 서툰 존재들.
그토록 진정한 천마를 그리워하고 부르짖으면서도 정작 천마가 무엇인지는 모른다.
나는 내 앞에 부복해 있는 이 사람을 통해서 마교의, 천마신교의 현재를 보았다.
[너는 그렇게 느끼는구나.]“예.”
[그럼 거둬라.]“그럴 생각입니다.”
‘천마 사부가 좋아하시려나?’
이것이 진상질 할 정도로 술을 자시고 엎어진 천마 사부께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길 바랄 뿐이다.
“대무장은 바라는 것을 투쟁으로 쟁취하는 곳이라더군. 그대는 무엇을 바라고 이곳에 올랐나?”
이 사람을 통해서 천마신교의 현재를 보고 있다 느낀 탓일까?
“……바꾸고 싶습니다.”
이곳 전체의 호소처럼 들렸다.
웃기는 일이다. 정파의 후기지수로 자란 내가 천마신교를 대상으로 이런 기분을 느낀다니.
서는 자리가 달라지면 보고 느끼는 것도 달라진다는 게 이런 의미인 걸까.
‘결국, 이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구나.’
작은 깨달음과 함께 어깨가 무거워졌다.
스스로 천마를 자처했을 때부터, 이는 내가 짊어져야 할 업이었다.
“내 뒤에 서라. 그럼 그리될 것이다.”
내 뒤편에는 밤중에 잠도 안 자고 뭘 했는지 피곤이 가득해 보이는 이화를 필두로 내 사람들이 서 있었다.
내 사람이 되어라.
내 말뜻을 이해한 사내가 다시금 머리를 땅에 박았다.
쿠웅!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나 참…….’
이화도 그렇고, 종 노도 그렇고, 천마수신위들도 같은 반응이다.
천마신교는 이게 기본 사상인가 보다.
“필요 없어, 그런 거.”
“……예?”
본능적인 거부감 때문인지, 나도 모르게 말이 툭 튀어나와 버렸다.
그래서인지 좀 더 나다운 느낌으로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무게감을 줄이고, 권위를 좀 내려놓은 나 본연의 모습을 드러냈달까?
“바꾸고 싶다는 사람이 목숨은 왜 바치나? 뒈지고 싶어서 바꾸겠다는 거야? 삶에 애착이 없어?”
굳이 이런 위치의 사람에게 이렇게까지 신경을 써줄 필요는 없을 것이다.
냉정하게 생각한다면 이런 말까지 할 필요는 없다.
“다시 한번 말해 주도록 하지.”
하지만 마음이 움직인다.
“나는 천마다.”
사내의 고개가 들리며 나와 눈을 마주한다.
“내가 천마위(天魔位)에 있는 이유는 너 같은 사람을 짊어지기 위함이다.”
“아아…….”
갑자기 사내의 눈망울에 물이 차오른다.
아무래도 이런 말은 처음 들어보는 것 같다.
“소마! 백기서! 반드시 끈질기게 살아남아 천마께서 여실 광명의 세상을 위해 뼈가 닳도록 일하겠나이다!”
갑자기 악질 노예상이라도 된 기분이다.
‘그래도 죽겠다는 소리보다는 나으니 다행인가?’
“차근차근 바꿔보자고.”
“존명!”
백기서라는 마인의 눈이 집념으로 불타올랐다.
“……너희는 왜 또 그런데?”
뒤를 돌아보니 울먹이고 있는 것은 백기서라는 마인만이 아니었다.
이화를 필두로 모여 있는 마인들의 눈가가 붉게 물들어있다.
“못난 꼴을…… 훌쩍…… 보였습니다…….”
“다 들린 거야?”
“대무장은 본래 소리가 잘 퍼지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나는 천마다. 이 관심종자스러운 말을 모두의 앞에서 또 외친 꼴이다.
저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면, 나는 얼굴 전체가 붉어질 것 같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그럼 저 멀리까지도 소리가 퍼질 수 있는 건가?”
“그건 제가 소리를 좀 더 멀리까지 퍼질 수 있게 손을 써서 그렇습니다.”
‘니가 범인이었구나아아아!’
갑자기 주변에서 모여드는 기색들이 늘어나고 있다 싶더니, 이화가 손을 쓴 거였다.
눈시울이 붉어진 마인들이 사방에서 밀려들고 있었다.
내게 부복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엄청난 숫자까지는 아니었지만, 전날에는 없었던 변화다.
‘여기 천마신교 맞지?’
어제까지만 해도 처형장이나 다름없던 대무장이 충성 서약을 하는 곳으로 변모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오늘은 도전자들이 보이지 않았다.
어제 마왕급 고수를 일격에 쓰러트린 것에 대한 대응책을 순천파에서 아직 마련하지 못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어휴! 마교 꼬라지 하곤.]주변이 시끄러워지는 만큼 정신없어진 가운데, 장삼풍 사부가 투덜거리셨다.
천마신교의 분위기가 낯선 것은 장삼풍 사부 역시 마찬가지라는 느낌이다.
[한 가지만 당부해 두마.]그런 가운데.
[지금부터 일어날 싸움은 더 이상 그 대무장 위에서만 국한되지는 않을 게다.]장삼풍 사부가 의미심장한 경고를 던지셨다.
[내 제자라면 빈말로 허풍만 늘어놓는 놈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책임지고 짊어진다.
나는 새삼 내가 내뱉은 말의 무게를 실감하며 느슨해지려는 마음의 끈을 강하게 조였다.
그리고 내심 장삼풍 사부의 경고를 되새겼다.
‘더 이상 대무장 위에서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이제 대무장 위에서의 싸움은 끝이 났다고 봐야 할 것이다.
달리 이야기하면 언제 어디에서 공격이 날아와도 이상하지 않단 의미다.
아마 천마 사부가 술에 꼴아 진상이 된 원인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판단되었다.
그 원인이라면 짐작이 가는 곳이 있다.
‘혈교.’
경시할 수 없는 이름이 마음을 굳건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