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213
212화 짐승들의 연회(1)
대무장은 천마신교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지만, 현재는 묘하게도 경계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위를 올려다보면 순천파가 있고, 아래를 내려다보면 반천파가 거주하고 있다.
대무장 위에서 싸우면서 도발하는 의미로 노려보았던 곳으로 발을 들였다.
뭐, 엄밀히 따지면 초행까진 아니다.
천마신교에 온 첫날, 짜천마 이강천의 뚝배기를 깨버릴 때 이 길을 지났었다.
다시금 그 길을 걷자니 뭔가 감회가 새로웠다.
첫날 아무 생각 없이 지날 때와는 달리 지금은 다양한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낡았……다고 해야 할까?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네.’
순천파 내부는 천마 사부의 손길이 닿은 부분을 그대로 유지해둔 느낌이다.
평범한 건축물이라면 어림도 없는 일이지만, 돌을 깎아 만든 공간들이 절반 이상이라 동굴에 가까운 구조를 이루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감탄이 나올 정도다. 그 자체로 역사와 전통을 중시하는 기풍이 살아있는 느낌이다.
권력에 집착하는 모습에서 탐욕에 찌들어 부귀영화(富貴榮華)와 향락(享樂)에 심취해있는 욕망덩어리들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보다는 답이 없을 만큼 고일대로 고인 선민사상 가득한 꼰대 집단에 가까운 것 같다.
어느 쪽이 더 최악인지는 차차 판단해 봐야 할 것 같다.
지금은 눈앞의 현실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역사(?)와 전통(?)이 느껴지는 순천파 영역에 들어서자 기묘한 것이 보인다.
어딘가 서늘한 공기가 흐르는 길목에 서 있는 사람.
나보다 약간 나이가 많아 보이는 정도의 청년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데, 그 모습이 무척이나 기괴했다.
망가진 톱니바퀴마냥 몸의 관절을 뚝뚝 끊으며 움직이는 모습은 정상이라 말하기 어려웠다.
여기에 기괴함을 더욱 부채질하는 모습이 이어졌다.
[저놈 눈깔 봐라?]“전생에 사마귀였나 보네요.”
좌우 눈알이 따로 논다.
제멋대로 움직이는 안구는 그 자체로 혐오스러웠다.
무섭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굳이 관여하고 싶지 않은 종류랄까.
피해갈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 애석할 따름이다.
“……덤비려나 보네.”
따로 놀던 눈알이 제 위치를 찾았다.
초점을 맞춘 시선이 나를 향해서 곧게 뻗었다.
당연할 정도로 역겨운 기색이 몰려들었다.
‘혈라강선으로 쓸어버렸던 게 이런 놈들이었던 건가?’
아마도 정답일 것이다.
게다가 이놈은 혼자가 아니다.
“카아아악!”
원초적인 소리를 내지르는 놈의 괴성에 주변으로 역겨운 기색이 몰려들었다.
벌집을 공격받은 벌떼마냥 쏟아져 나온다.
그에 비례해서 역겨움이 강해졌다.
더럽고 혐오스러운 것이 가득한 저곳에 맨정신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꼴을 정도로 술을 자셨다는 천마사부의 심정이 절로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외면할 수도 없다.
한걸음에 녀석과의 거리를 좁혔다.
퍼걱!
반응도 못 하는 놈의 머리를 일격에 부숴버렸다.
‘확실히 빨라졌어.’
혈라강선을 펼칠 때와는 다른 종류의 체감이다.
밤마다 천산산맥을 돌아다닌 보람이 있었다.
수련보다는 영약의 힘을 빌린 편법이었기에 자랑할 만한 일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단기적인 성장에는 효과가 좋았다.
‘음?’
잠시 내 성장을 가늠하고 있는 사이, 역겨운 것들이 먹이를 포위하듯 몰려들어 퇴로를 차단하는 움직임이 느껴졌다.
주변을 둘러싼 진형을 깨고 들어간 순간, 유동적으로 움직이며 둘러싸자 순식간에 적진 한가운데에 포위된 형세가 되었다.
‘이것 봐라?’
본능적인 움직임인 걸까?
그런 것 치고는 너무나 체계적이다. 어지간히 훈련된 정예들도 이렇게 일사불란하긴 어렵다.
하물며 이 정도 숫자라면 더더욱!
마치 하나의 뇌를 따르는 손발 같은 느낌이다.
몰아넣었음을 직감한 적들이 사방에서 사납게 달려들었다.
‘여기는 쳐내고…….’
쏟아지는 공격 중 하나를 쳐내며 활로(活路)를 연다.
강대한 힘이 필요한 일격에 무극장의 묘리를 담았다.
콰득!!
나와 부딪친 마인의 팔이 엿가락처럼 구불구불하게 꺾였다.
“음?”
놀란 건 그다음이다.
팔이 박살 났음에도 그대로 몸을 밀고 들어오며 관수로 내 목을 노렸다.
정확하게 내 움직임에 반응해 움직인 것이다.
반응 속도가 상당하다.
‘막으면 몰리겠는데?’
상대의 공격을 받아내게 될 경우 충격이 몸에 쌓이게 되고, 경직이 만들어진다.
하물며 몸의 체중을 모두 실은 지금 같은 공격이라면 경직이 더욱 커지게 된다.
어설프게 막았다간 사방에서 득달같이 달려들 거다.
이미 내 주변으로 포위망이 형성된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 녀석들 기량에 비해 반응이 빨라. 마치 이런 쪽에 특화되기라도 한 것처럼.’
손을 부딪쳐보는 것으로 대략 기량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 녀석들의 반응 속도는 일반적인 기량에 비해 윗줄이었다. 적어도 두 단계 이상이다.
어설프게 대처했다간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민망한 꼴을 보일 수도 있는 수준이다.
‘좀 더 진지하게…….’
촤아아악!
민망한 꼴은 절대 보여선 안 된다는 위기감(?)에 진지해지려는 찰나, 주변으로 피바람이 몰아쳤다.
순식간에 목 떨어진 시체가 양산되었다.
“가세하겠습니다.”
천마수신위들이다.
일거에 나를 포위 중이던 맛이 간 천마신교 후기지수들을 쓸어버렸다.
딱 좋을 때 개입해줬다.
‘이러면 이야기가 다르지.’
조금 전까지 가시밭이었던 공간이 깔끔하게 일소되었다.
천마수신위들이 날뛰면서 내 운신의 폭도 커졌다.
포위당할 염려가 없어진 이상, 좀 더 저돌적으로 돌격해도 문제가 없을 거다.
“이대로 찢어버려!”
“존명!”
천마수신위들이 포효와 함께 나를 둘러싼 포위망을 갈가리 찢어발겼다.
그렇게 만들어진 길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며 내 간격 안으로 들어오는 것들을 쳐냈다.
무극장으로 뭉개고, 무극권으로 부수고, 무극퇴로 쪼갠다.
나를 집어삼키려던 움직임이 삽시간에 붕괴되었다.
“좋은데?”
“저희도 이렇게 합이 맞다고 느낀 건 처음입니다!”
내가 느낀 이 묘한 일체감은 나만 느낀 게 아닌 것 같다.
처음부터 그렇게 만들어진 것처럼 천마신공과 천마수신위들의 무공은 합(合)이 맞았다.
그저 같이 움직이며 싸울 뿐인데, 합격진이라도 펼치고 있는 것처럼 상호 간에 맞물려 위력을 높였다.
아무래도 짜천마 이강무의 경우는 이 정도까지 일체감을 높여본 일이 없는지 다들 놀라는 얼굴들이다.
‘이래서 천마수신위인가?’
생각지도 못한 것을 알게 되었다.
‘천마 사부는 왜 알려주지 않으셨던……. 아, 천마 사부가 만든 게 아니겠구나.’
애초에 천마신공을 버리고 천마무겁수를 완성하신 천마 사부다.
천마신공을 바탕으로 한 이런 무공을 만드셨을 리 없다.
게다가 천마무겁수가 추구하는 방향을 생각한다면, 천마수신위 역시 천마 사부가 만들었을 리는 더더욱 만무하다.
아마도 천마신공을 바탕으로 뭔가를 해보려던 후대에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천마 사부라면…… 이들을 안 좋아하시겠지?’
이렇게 충직한 이들이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천마 사부가 좋아하는 유형은 아니다.
천마 사부가 좋아하는 인간(?)은 인성이고 뭐고 다 ○ 까고, 쩌는 재능을 바탕으로 자유롭게 살아가는 영혼들이기 때문이다.
나중에 이들이 명부에 갔을 때 똥지게를 짊어진 천마 사부를 보고 받을 충격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
‘잘해줘야겠다. 진짜로.’
적극적으로 주변을 정리하는 천마수신위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조심스럽게 다짐했다.
‘그건 그렇고…… 후기지수들……뿐인가?’
주변을 살필 수 있는 여유가 생기자 묘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대무장에서 내가 마장급 고수들을 제법 죽인 것은 사실이지만, 순천파 전력이 그게 전부일 리는 없다.
무엇보다 여기서 미쳐 날뛰는 것들이 젊은 후기지수들뿐이란 것이 눈에 걸렸다.
한동안 대무장이 잠잠하던 사이 순천파 내부에서 뭔가 일이 터진 것이 분명했다.
“이 미친놈들은 대체 뭔 짓을 한 거야?”
생강시는 아니다. 그것들이 고통을 모르는 괴물이었다면, 이것들은 그냥 미친놈처럼 날뛰었다.
무공을 배운 짐승이랄까?
움직임에는 무경의 형이 있는데, 그 감각은 야생의 날 것 그 자체다.
그러면서도 기묘하게 일사불란(一絲不亂)했다.
마치 머릿속에 뭔가 사악한 짓을 한 것 같다.
하긴, 고독도 거리낌 없이 쓰는 놈들이니 뭔 짓을 못 하겠냐만.
“이화.”
“예.”
“천마신교가 혈교의 세력을 받아들인 적이 있나?”
“없습니다.”
“……그래?”
의외다. 사실 화산파에서의 일이 있은 이후, 내심 그런 가정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화는 없다고 단언했다.
이화는 천마신교에서 술가의 맥을 이었다.
그중에는 정파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사이한 술수가 아예 없진 않겠지만, 그 뿌리는 혈교의 것과 다르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혈교가 스며들었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신녀는 권력 구도에서 배제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충분히 귀를 열어 놓고는 있습니다만, 수뇌부들이 직접 움직이는 세밀한 부분까지 파악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입천신마존을 극도로 경계하는 순천파가 다른 이들 모르게 은밀히 받아들인 것이라면 이 상황도 설명이 된다.
순천파 내부에서 벌어지는 혈사.
천마신교의 미래라 할 수 있는 후기지수들을 버림패로 쓰는 다급함.
이러한 상황임에도 나서지 않는 다른 고수들.
모든 일들이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경고했다.
무엇보다 심각한 점은 따로 있었다.
‘두 단계 이상이라…….’
만약 이게 후기지수 수준의 무인이 아니라 마왕급 혹은 마제급 고수에게 적용된다면?
“으음…….”
갑자기 오싹한 한기가 등골을 스치고 지나갔다.
“순천파가 몰래 혈교를 받아들였다면, 어디에 그들을 두었을까?”
“……짐작 가는 곳이 있습니다.”
나와 비슷한 결론에 다다랐는지 이화가 얼굴을 굳히며 걸음을 빨리했다.
***
“상황이 재미있게 흘러가는군요. 마성에 빠진 마인들과 저희가 만들어낸 괴물이 날뛰는 천마신교라…….”
여자인지 남자인지 외견으로 구분되지 않는 인물.
보는 것만으로 정신이 혼미해질 것 같은 사이함을 온몸에 두른 술사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제정신이 박힌 천마신교 마인이 들었다면 피눈물을 흘리며 오열할 이야기가 술사의 입에서 태연하게 흘러나왔다.
그런 술사의 옆에 있는 사내는 딱히 관심이 없는 듯 손에 들린 서신에 집중했다.
이내 사내는 파안대소를 터트렸다.
“하하하하하!”
좀처럼 없는 일인지 술사가 호기심을 드러냈다.
“무슨 내용이기에 그리 웃으십니까?”
“곧 남궁세가를 지워버릴 거라는 구나.”
“그렇다는 건…….”
“정사대전(正邪大戰)이지. 서신에는 그리 쓰여 있다. 천마신교를 수습하여 중원으로 진출하라.”
“아아…….”
사이한 술사의 입가에 그려져 있던 미소가 변했다.
조금 전 천마신교의 파멸을 조롱하던 미소와는 다른 감정.
그것은 환희였다.
오랜 노력의 결실을 눈앞에 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었다.
“드디어 때가 왔군요. 더 이상 구질구질하게 숨어 살 필요가 없어졌어요.”
힘이 있음에도 음지에 숨어 살아왔던 자들.
“참 길었지.”
오만해 보이던 혈교의 주인, 혈마 역시도 아련한 기색을 떠올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미 천하를 제 손 위에 올려놓은 듯 말하는 그들의 모습에는 모든 것이 뜻대로 이뤄질 것이란 자신감이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