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212
211화 일수양단
떠도는 소문보다 나를 신뢰하는 사람들은 내 말을 믿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럴 수는 없다.
“댁 같은 작자는 많이 봤지. 입만 번지르르한 인간.”
불신 가득한 목소리가 나를 겨냥했다.
여기 모여 있는 자들이 반천파를 대표하는 것도, 이들의 목소리가 반천파의 총의도 아니다.
그저 감정적으로 튀어나와 있는 자들일 뿐.
그렇기에 감정의 움직임에 따르는 자들이 많았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천마를 믿을 수 없다는 심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사람은 관성으로 움직인다. 한번 마음을 정하면 좀처럼 바꾸지 않는다.
“입만 번지르르했다면 내가 여기 서 있을 이유가 없을 텐데?”
“……그래도 안 믿어. 어디 한두 번 속나?”
내가 한 행적은 그의 말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하지만 이미 가려진 눈은 보고도 믿지를 않았다.
‘어렵네.’
집단은 모두가 같을 수 없다.
모두가 하나의 생각만으로 하나의 목소리만 내는 집단이 있다면 그 자체로 문제가 있는 것이다.
알고는 있지만, 현 상황은 어렵고 답답하다.
사람의 마음은 상황에 따라 그 어떤 매듭보다 복잡해질 수 있다.
정말 이 모든 것을 짊어져야 할까?
속아서, 라곤 하나 굳이 이런 자들까지 짊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난해함이 가슴을 쳤다.
“난 믿는다!”
다른 목소리가 들린 것은 그때였다.
대무장을 에워싼 반천파의 졸렬함을 부정하는 외침이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천마께서는 거짓말 따윌 하실 분이 아니시다!”
며칠 전 내게 목숨을 바치겠다 말하던 그 사내다.
일반적인 평범한 마인 중 하나였지만, 그렇기에 그의 목소리는 강한 존재감을 발하고 있었다.
“저분은 언제나 스스로를 뛰어넘으시고, 언제나 우리를 놀라게 하시는 분이다! 그런 분께 네 하찮은 졸렬함을 자랑하지 마라!”
임아형.
이어지는 외침이 분위기를 뒤흔든다.
임아형에게 저 말을 꺼냈던 천마수신위가 멋쩍은 웃음으로 뿌듯함을 내비쳤다.
“개소리 그만하고 꺼져! 아니면 당당하게 대무장 위로 올라오든가! 내가 상대해주겠다! 네 졸렬함을 주둥이째로 박살 내주마!”
적소벽이다.
내게 거침없이 주먹을 휘둘렀던 당찬 성격이 불처럼 활활 타올랐다.
그런 적소벽의 옆으로 염진묵이 씨익 웃으며 기세를 피워 올렸다.
그들 뒤로 서는 무수히 많은 마인들.
순천파와 반천파에서 천마의 깃발 아래로 모여든 ‘한 무리’가 함께 기세를 피워 올렸다.
“쳇…….”
완전히 기세에 밀려버린 마인들이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쳤다.
현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나를 노려보는 시선은 여전하지만, 마음이 꺾인 모습이 역력하다.
[나쁘지 않구나.]“……예.”
내가 알게 모르게 뿌려왔던 씨앗들이 싹을 틔우는 모습이다.
그 모습들을 지켜보고 있자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가슴을 때리는 것 같았다.
‘다시 생각해 볼까?’
본래 천마위에는 큰 애착이 없었다.
천마 사부가 원했고, 이화와 종노 그리고 천마수신위들의 강한 바람에 떠안듯이 받아들였을 뿐이다.
오히려 스스로를 천마라 칭할 때마다 낯간지러움을 참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잠시 임시로 앉아있을 뿐, 금방 내려갈 생각이었다.
천마신교에서의 일이 마무리되면 이강천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물러날 계획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조금 변한 것 같다.
[음? 정신 차려라, 제자야.]‘예?’
장삼풍 사부의 경고가 날아든 것은 그때였다.
[지금 한눈팔 때가 아닌 것 같다.]‘뭔가 놓친 거라도 있…… 으음?’
살짝 당황하며 주변을 살피자 감각에 잡히는 것들이 있다.
‘이건…….’
[온다.]주변에서 느껴지는 역겨운 기색들!
‘혈교?’
하나둘이 아니다.
사막의 모래바람처럼 뿌옇게 밀려드는 것 같다.
‘이 순간에?’
마치 반천파와 분란이 생긴 순간을 노린 듯한 시기적절함이다.
무슨 생각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강한 악의를 느꼈다.
혈교나, 학이나 내부에서 지랄맞은 사건사고를 터트려 혼란을 일으키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접근시켜 봐야 좋을 것이 없겠어.’
뭘 노리는 것인지 알 수 없으니, 허튼짓을 하기 전에 묻어버린다.
합리적인(?) 판단에 뒤이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모색했다.
천마 사부에게 배운 무공인 혈라강선은 실처럼 가늘게 정련한 강기를 뽑아내는 무공이다.
사파에서 쓰는 은사(銀絲)와 비슷하게 운용할 수 있으나, 쇠를 진흙처럼 베어버릴 수 있는 강기를 활용하는 것이기에 강력한 대인 살상력과 그 화려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정작 천마 사부는 잡기로 취급하셨지만.
손장난 삼아 놀기는 좋을지언정 한계가 분명했기에 초월에는 이르지 못할 무공이라며 시큰둥하게 평하셨다.
하지만 나는 이 무공을 접했을 때 문뜩 떠오른 발상이 있었다.
‘그릇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내 무한한 내공을 쏟아부을 수 있다면 어떤 형태가 될까?’
천마 사부야 손장난에 불과한 잡기라 평하셨지만, 어지간한 상승 무공도 기초니, 입문이니 하는 수준으로 보시는 것이 사부님들의 격(格)이다.
그렇다면 내 수준에서 써먹기는 딱 좋은 정도가 아닐까?
‘괜찮을 것 같지?’
뭔가를 과시하는 것을 낯부끄러워했었는데, 지금은 뭔가를 보이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그 충동이 행동으로 이어졌다.
손끝으로 가늘게 뽑아낸 붉은 강기의 실, 강사(罡絲)가 뻗어 나왔다.
약 오장(약 15m)정도.
무리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뽑아낼 수 있는 범주는 딱 여기까지다.
‘여기서 더…….’
집중하면서 내공을 쏟아붓자 붉은 강사가 더 길게 뽑혀 나오기 시작했다.
오장 길이에서 육장, 칠장을 넘어 십장에 다다랐다.
“흡?!”
“저, 저거…….”
“이, 무슨…….”
주변에서 못 볼 리가 만무했다.
끊임없이 길어지는 혈라강선의 붉은 강사에 숨을 집어삼키며 말문을 잇지 못했다.
‘더어…….’
그럼에도 나는 멈추지 않았다.
붉은 강사의 길이가 몇 배는 더 길어졌다.
청명심법으로 온 정신을 완벽하게 집중한 내 상태는 거의 무아지경(無我之境)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는 있었다.
‘채워지는 것보다 빠져나가는 게 더 많아.’
이제 유지하는 것조차 벅차다.
가느다란 실이 만근의 무게를 넘어서는 것 같았다.
마치 한 손에 태산을 들고 있는 것 같았다.
천상의 사부님들이 정련한 내 몸뚱이가 한계라며 비명을 지를 정도다.
이걸 휘두를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이십 장? 아니, 저 정도면 삼십 장도…….”
“무슨 내공이…….”
경악하는 목소리가 사방에서 튀어나왔다.
뭔가 꽉 막혀있던 가슴 한편에 뻥! 하고 구멍이라도 뚫린 기분이다.
나 의외로 관심받는 걸 싫어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럼 오기로라도 해내야지!’
쪽팔리게 여기서 끝낼 수는 없다.
나는 태산을 올려놓은 것 같이 무거운 오른손을 힘껏 휘둘렀다.
화라라라라락!
붉은 강사가 요동치는 선율처럼 날뛰며 대기를 불태웠다.
비스듬하게 사선으로 그어지는 손끝의 궤적을 따라 붉은 강사가 허공에 선명한 선을 그었다.
닿는 것만으로도 바위를 잘라내는 강기의 실이 대기를 불태우며 호쾌하게 뻗어나갔다.
촤아아아아아아아아!!
세상을 반으로 쪼개버렸다.
눈앞에 있는 모든 사물을 베어내는 힘이 모든 것을 절단했다.
멀리서 다가오는 역겨운 기척들도 예외는 없었다.
허리 높이로 양단된 사물들이 요란하게 넘어가는 가운데, 그 사이사이에서 분명히 들렸다.
순식간에 참살당한 역겨운 자들이 내뱉는 짧은 단말마가.
일수(一手)에 모든 것을 쓸어버렸다.
“허어…….”
짙은 침묵이 지배하는 가운데 감탄 어린 한숨이 흘러나왔다.
종 노.
천마신교의 절대자인 마존 중 한 명인 그조차도 감탄할 정도의 한 수였다는 의미다.
고생한 보람이 있다.
뭐, 사부님들이라면 손장난 따위에 과몰입했다며 혀를 차고 계실 거다.
실제로 준비하는 시간도 쓸데없이 길어 실전에서 써먹기도 어렵다.
그래도 어쨌든 속은 후련해졌다.
더 이상 역겨운 기색도 느껴지지 않았다.
“천마수신위.”
“……천마수신위, 명을 받듭니다!”
아직 여운이 다 가라앉지 않았는지 대답하는 속도가 좀 늦다.
그래도 정예답게 바로 정신을 차리며 한쪽 무릎을 꿇고 명령을 기다렸다.
“숫자가 좀 늘었네?”
“……무례를 용서하소서!”
짜천마를 따르던 이들이 새로 합류한 모양이다.
나로선 환영할 일이다.
궁금한 점도 있었고.
“순천파 쪽에 문제가 생긴 것 같더군. 아는 바가 있나?”
“……소마들은 한동안 거처에서 근신 중이었던 터라 자세한 정보는 알지 못합니다.”
“그래?”
“송구합니다.”
새로 합류한 천마수신위들은 송구함에 다들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접싯물이라도 하나 내어주면 당장이라도 얼굴을 박을 것 같은 표정들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서둘러야 할 상황인 것 같다. 순천파와 정면으로 충돌할지도 모르겠어. 괜찮겠나?”
“뜻대로 부리소서! 목숨을 바쳐 명을 수행하겠나이다!”
참으로 충직한 선언이다.
하지만 나는 대답 대신 슬쩍 백기서를 바라보았다.
같은 생각을 떠올렸는지 백기서가 멋쩍게 웃었다.
뭔가를 깨달은 듯 천마수신위는 얕은 신음을 흘리며 선언을 바꿨다.
“……명을 수행하겠나이다.”
나는 그제야 미소를 머금었다.
“힘든 일이 많을 거야. 어쩌면 천마혈족을 쓸어버려야 할지도 모르겠어.”
“그런 일이라면 반드시 저희에게 맡겨주십시오!”
천마혈족의 멱을 따버릴 수도 있다는 말에 갑자기 천마수신위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몸 둘 바를 몰라 하던 어리숙함은 사라지고, 호랑이도 손가락 하나로 찢어버릴 불세출의 무인으로 돌아와 형형한 눈빛을 번뜩였다.
목줄 풀린 맹수를 보는 것 같다.
“기대하지.”
오로지 내게만 충성하는 이들의 외침에 마음이 든든해졌다.
“가자!”
명령과 함께 몸을 돌리자 나를 따르는 이들이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남겨진 자들, 나를 불신하는 자들이 망부석처럼 남아 자리를 지켰다.
***
마관은 천마신교에서도 명문가 출신이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온갖 혜택을 받으며 성장해온 마관은 운이 좋게도 타고난 재능까지 있었다.
기대받는 후기지수로 낙점 지어진 마관은 최소 마군, 어쩌면 마왕급의 고수가 될 인재로 주목받아왔다.
환경이 그래서인지 아니면 태어난 성품 탓인지 마관은 자연스럽게 선민의식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다.
언제나 주변에서 떠받들어지며 살아온 마관이었기에 지금 내려온 지시는 매우 불만스러웠다.
“아~ 쓰벌. 이게 뭔 지랄이야.”
절대 거처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지시였다.
뭐 때문에 이러는지는 알 수 없지만, 모든 일에는 융통성이라는 것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미래의 천마신교를 이끌어갈 재능들에게는 예외를 두어야 마땅하지 않은가!
마관은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숨기지 않았다.
“보나 마나 반천파 놈들 때문이겠지. 안 봐도 뻔해. 규율이라곤 모르는 짐승 같은 놈들!”
짙은 선민의식이 뼛속 깊이 새겨져 있는 마관에게 반천파는 그야말로 역겨움 그 자체였다.
권위와 규율을 무시하는 그들은 상부의 명령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입천신마존 그 망종 때문에 마교의 위신이…… 후우…….”
하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순천파의 힘으론 입천신마존을 누를 수 없다.
사고와 현실의 괴리는 스스로의 존재 자체가 통째로 무시당하는 것 같은 불쾌감을 선사했다.
“자네, 어디 안 좋은가?”
마관은 몸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 동기를 돌아보았다.
“소리가…… 들려…… 소리가…….”
뭔가 정신이 나간 듯한 모습이다.
평소 마음이 잘 맞던 동기였지만, 뭔가 알 수 없는 오싹함에 절로 몸을 뒤로 물렸다.
“쓰벌, 짜증 나게.”
“……들려…… 소리…….”
“야!”
더 이상 참지 못한 마관이 동기의 어깨를 붙잡고 거칠게 흔들었다.
“뭐, 뭐야…….”
동기는 명백히 이상했다.
입술 끝에는 거품이 끓었고, 두 눈은 뒤룩거리며 제멋대로 움직였다.
“잠깐 기다리고 있어! 금방 의원 불러올게.”
심상치 않은 모습에 마관은 급히 몸을 돌렸다.
열등한 신분이었다면 그대로 대가리를 박살 내버렸겠지만, 이 동기 놈은 같은 격의 신분이다.
그 순간 동기의 뒤룩거리던 눈동자가 제자리를 찾으며 마관의 등을 주시했다.
콰직! 우드득!
“아아악!”
숙사의 문을 열려던 마관은 순간 팔이 떨어져 나갈 듯한 고통을 받았다.
정말로 팔이 뜯겨진 것은 아니지만 그에 준하는 상태가 됐다.
양어깨 뼈가 으스러진 것이다.
지독한 고통에 무릎이 꺾이려는 찰나.
으직!
“으어…… 으아아…… 아악!!”
불에 달군 꼬챙이가 꽂힌 것 같은 고통이 목을 관통했다.
비명과 함께 꼬꾸라지는 마관의 마지막 이성은 눈앞의 현실에서 도피했다.
동기가 자신의 목을 뜯어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난…… 마존이…… 될 남자……다…… 내가…… 이런 곳에서…… 죽을…… 리…… 없…….”
으적으적!
사냥당하는 가축마냥 뜯어 먹히고 있는 그를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