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219
218화 모르면 당해야지!
천마수신위와 피에 취한 마인들이 격돌하는 사이, 현암마존과 경혼마존이 눈에 혈광을 띤 채 움직이기 시작했다.
현암마존과 경혼마존의 움직임은 상식 밖에 있었다.
미리 대비하고 있었음에도 흐릿하게 보일 정도로 코앞까지 닥쳐왔다.
혈교의 수작질에 강화되었던 광혈마제와 흑성마제의 움직임도 빠르긴 했지만, 이제 보니 귀여운 수준이었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크윽!’
더 이상 천마신공만으로 상대할 수는 없었다.
내겐 이를 정면으로 상대할 힘이 없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천마신공의 무극육식은 우월한 기량과 힘을 앞세워 상대를 압살하는 무공이다.
결국, 장삼풍 사부의 영강수를 구사해야 했다.
퍼걱!
힘을 정면으로 받아내지 않고 비껴냈는데도 묵직한 충격이 몸을 따라 흘러나갔다.
“으음……!”
별호만큼이나 묵직한 기운을 뿜어내는 현암마존이 종 노를 상대하는 사이, 나를 향해 덮쳐온 것은 경혼마존이었다.
경혼(驚魂), 혼을 놀라게 한다는 별호에 걸맞은 힘이다.
경혼마존과 손을 섞었던 팔이 벌써부터 떨려왔다.
이화접목의 수법으로 힘을 흘려보내고 있음에도 팔에 전해지는 충격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속도가 높아지면 파괴력은 몇 배로 오른다.
하물며 그 근간이 마존급 고수의 일격이다.
일 초식을 견뎌낸 것만도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상대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후속타?’
후확!
힘을 흘려냈음에도 투로를 흔들지 못했다.
경혼마존의 손이 뱀처럼 내 팔을 감아왔다.
앞서 상대했던 마제들과는 다르다.
짐승이나 다름없던 그들과 달리 마존들은 나름 형과 식을 갖춘 무공을 펼쳤다.
‘천라……무결로…….’
파앙!
삼재일기공의 교류와 소통을 섞은 천라무결은 강한 내공을 가진 자라도 내부를 흔들 수 있는 필살의 내가중수법이다.
내 손을 휘감아오는 뱀 같은 손놀림이 팔꿈치를 뜯어내려는 순간, 내가중수법을 흘려 넣으며 경혼마존을 쳤다.
예상 못 한 충격이었는지 눈살을 찌푸린 경혼마존이 거리를 벌리며 손을 털었다.
제대로 먹혔다면 내부를 흔들어 기혈이 망가졌어야 했다.
경혼마존은 손을 털어내는 것으로 내가 흘려 넣은 기운을 해소해냈다.
“호오? 힘을 흘려내는 이화접목의 수법에 범상치 않은 내가중수법이라. 천마신교의 무공 같지는 않구나. 어디서 배웠지?”
혈교의 괴물도 나와 경혼마존 사이의 짧은 격돌 사이에서 내가 펼친 무공을 눈여겨보고 촌평했다.
묵묵히 그 물음을 무시했지만 혈교의 괴물이 나를 주시하고 있다는 것은 적지 않은 압박이 되었다.
‘이래서 가능한 한 숨겨 보려고 했는데…….’
본래는 최대한 기량을 숨겨 볼 생각이었지만, 경혼마존은 아무리 재봐도 그게 가능한 상대가 아니다.
내 밑천이 드러나는 것을 염려해 힘을 아끼다간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하고 목이 떨어지게 생겼다.
“쯧! 간다!”
나는 미리 수거해둔 무기 보따리 쪽으로 감응을 시도했다.
촤라라라락!
거리를 넘어 소통된 검들이 허공으로 치솟아 내 주변을 감쌌다.
열 자루의 어검이 나를 중심으로 유유히 선회하는 모습은 내가 봐도 장관이었다.
“이기어검이…… 열?”
혈교의 괴물 역시도 듣도 보도 못한 기사인지 놀라는 눈치다.
오히려 눈앞의 상대인 경혼마존이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무인이라면 누구나 놀랄 만한 수법일 텐데 아무런 반응이 없다.
‘어느 정도 무공을 사용하는 것을 보면 아예 머릿속이 텅 빈 상태는 아닐 거고……. 감정이 봉인 당했거나, 아니면 지시받는 것을 실행하기 위한 일 외에 다른 것은 받아들일 수 없는 상태이려나?’
어느 쪽이든 꼭두각시 신세인 것은 변하지 않는다.
문제는 그 꼭두각시가 무지막지하게 강하다는 것이다.
투웅!
한걸음에 거리를 좁혀온 경혼마존의 일격!
최근 급격하게 성장한 감각으로도 읽어내기 힘들 정도다.
파앙!
가까스로 비껴내며 공격 방향을 틀어냈는데 순간 팔꿈치가 저릿했다.
‘크윽!’
마치 뼈를 발라내고 얼음물을 부은 것 같은 통증이다.
막아냈다고 생각했지만, 경혼마존이 잡아 뜯으려 했던 팔꿈치에 타격이 남아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어떻게든 공격을 흘려냈다.
이번엔 내 차례다!
허공에서 기회를 노리던 열 자루의 이기어검이 피 냄새를 맡은 식인 물고기마냥 등과 옆구리를 노리고 일제히 달려들었다.
파팟!
경혼마존의 옆구리에서 예리하게 잘리는 소리가 났다.
옷자락과 살이 베이는 소리다.
허나 내가 기대했던 소리는 아니다.
검이 몸에 박히는 것이 아니라 살을 베이는 정도로 그쳤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 짧은 순간에 감각적인 움직임으로 치명상을 피해냈다.
‘나도 알아! 댁이 빠른 거!’
전조도 없이 사각으로 파고든 공격을 피해냈다.
확실히 이 정도 속도라면 비상식적이다.
열 자루의 어검을 펼쳤음에도 몸에 박아 넣는 건 힘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연경심법!’
내게도 출력을 높일 방법은 있다.
천마 사부가 전수한 감각을 극대화시키는 무공!
신경에 자리를 잡은 상화에게 즉효성 영약을 먹이는 것이나 다름없는 무공이다.
이기어검을 움직이는 상화의 능력이 순간적으로 강화된다.
푸욱!
경혼마존의 오른쪽 어깨에 검이 꽂혔다.
순간적으로 속도가 상승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이제부터 눈 돌아가게 빨라지는 건 경혼마존만이 아니라는 거다.
푸욱!
이기어검 하나가 경혼마존의 오른쪽 팔꿈치에 꽂혔다.
어깨에 검이 꽂힌 탓인지 대응이 늦어지며 당한 것이다.
이걸로 오른팔은 완전히 묶어냈다.
그러자 경혼마존이 대응을 바꿨다.
쩌엉! 쩡!
날아오는 검을 모조리 쳐내기 시작했다.
주먹과 각법으로 빈틈을 노리고 들어오는 이기어검을 부러트렸다.
그 대응에 나는 오히려 반색했다.
‘모르면 당해야지!’
천마혈족의 장로들도 취했던 대응법이다.
허나 내 이기어검은 고작 부러진 정도로 멈추지 않는다.
경혼마존이 부러트린 칼날이 오른쪽 허벅지와 발목 언저리에 꽂혔다.
오른팔에 이어 오른 다리까지 묶었다.
이건 크다!
다리가 부상당한 이상 속도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이제 경혼마존을 상대하기가 한층 더 수월해질 것이다.
하지만, 역시나 마존급 고수는 달랐다.
텅! 터터텅!
경혼마존은 열 자루의 공격을 일일이 받아낼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아예 호신강기로 온몸을 감싸버렸다.
몸에 박힌 검들을 하나하나 뽑아내며 부러트리는 경혼마존이 감정 없는 눈으로 나를 지그시 바라봤다.
전혀 감정이 담겨있지 않기에 더욱 섬뜩하게 느껴지는 시선이다.
“어쩌라고.”
호신강기로 버틴다.
내가 펼치는 이기어검에 대해 자평하며 대응 방법을 궁리했을 때 떠올렸던 방법 중 하나다.
내 이기어검을 막아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하지만 저렇게 온몸을 강기로 두르는 것은 내공 소모가 극심하다.
이미 승기는 내 쪽으로 기울었다.
시간 벌이만 하면 내공이 바닥날 것이다.
내공이 바닥나기 전에 나를 쓰러트릴 수 있다면 모를까, 허벅지와 발목을 다친 상황이라면 속도에서 나를 압도할 수도 없다.
내가 그런 판단을 내리는 사이 부상당한 오른팔을 이리저리 움직여보던 경혼마존이 멀쩡한 왼손으로 제 오른쪽 어깨를 잡았다.
부북!
제 오른팔을 스스로 뜯어 버렸다.
잘 움직이지도 않으면서 덜렁거리는 것이 성가시기라도 했던 모양이다.
제 기능도 못 하면서 쓸데없이 호신강기 면적을 잡아먹는 부분을 줄여야겠다는 판단일 수도 있겠다.
‘미친놈인가…… 아니, 어차피 제정신은 아니었지.’
제 몸을 하찮게 여기는 걸 보면 같이 죽자 덤비는 동귀어진도 염두에 둬야 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승산은 잡았다.
“쯧!”
경혼마존을 상대로 우위를 점한 것은 분명 자랑할 만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마냥 기쁘진 않았다.
비장의 수인 이기어검을 혈교의 괴물에게 보였기 때문이다.
경혼마존과 상대하는 모습을 보며 내 이기어검의 장단점을 파악했을 것이다.
정말 이화의 말처럼 무한 내공인 공령을 구사하는 자라면 호신강기를 두른 채로 싸우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장삼풍 사부의 판단처럼 한계가 있다면 나름대로 승기를 만든 것일 수도 있지만, 이를 위해서는 장기전을 각오해야 한다.
다만 힘과 기량에서 부족한 내 입장에서는 장기전은 좋은 상황이 아니다.
얕은 밑천이 드러나면 장기전이고 뭐고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장기전은 불리하고, 단기 결전은 사용할 패가 없다.
‘자, 그럼 어떻게 해야 한담…… 이런!’
불리한 상황을 타개할 방도를 고민하는데, 갑자기 감각에 경종을 울리는 기운이 느껴졌다.
명백하게 나를 노리고 날아드는 세 개의 붉은 강환!
‘이 새끼, 잘난 척하며 관망하려던 거 아니었어?’
붉은 강환의 궤적을 읽은 나는 일단 몸을 뒤로 뺐다.
희박하던 승산이 아예 없어지는 순간이라 생각하니 눈앞이 아찔했다.
“응?”
하지만 그 순간 강환의 궤적이 비틀렸다.
쾅! 콰쾅!
기존의 궤적에서 벗어난 강환이 경혼마존에게로 날아들었다.
폭음과 함께 짙은 먼지가 피어올랐다.
자욱하던 먼지가 가라앉은 자리에는 핏물조차 말라붙은 그을린 자국만이 남아있었다.
세 개의 붉은 강환이 호신강기를 부수고 뭉개버린 흔적이었다.
“하나는 그럭저럭 되는데, 둘부터는 어렵군. 세 개쯤 되니 궤적이나 살짝 비트는 정도가 고작이라. 어디 가서 내공으로는 밀린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데, 대체 열 자루나 되는 이기어검을 어떻게 제어하는 거지?”
저 혈교의 괴물은 경혼마존을 과녁 삼아 강환으로 내가 펼쳤던 이기어검을 따라 한 거다.
‘진짜 미친놈은 따로 있었네…….’
피에 미친 혈교놈답다.
정신줄도 신박한 방식으로 놓은 놈이다.
덕분에 경혼마존을 빠르게 치울 수 있었지만, 놈이 보여주는 정신 나간 행동에 소름이 돋았다.
경혼마존쯤 되는 존재를 장난감 버리듯 치워버렸다. 저만한 고수도 그리 귀하지 않다는 의미다.
난적이었던 경혼마존을 간단히 뭉개버린 힘도 상식 밖이다.
‘오 푼이라…….’
밑바닥까지 긁어모아야 승산이 오 푼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는 장삼풍 사부의 말이 뼈저리게 느껴졌다.
‘오 푼…… 안 될 것 같은데?’
혹시 장삼풍 사부가 용기를 내라고 살짝 승산을 높게 쳐 준 것이 아닐까?
마음이 흔들린다.
때마침 일어난 청명심법이 흔들리는 마음을 씻어주지 않았다면 꼴사납게 다리를 떠는 꼴을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자! 끽해 봐야 죽기밖에 더 하겠냐.’
“뭐, 네놈을 잡아서 무슨 무공을 익혔는지 탈탈 털어보면 되겠지. 흥미로운 시간이 되겠어.”
‘씨발?’
자칫 잘못했다간 저기 뒈진 경혼마존처럼 실혼인 꼴이 날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무래도 잡힐 것 같으면 그냥 자결해야겠다.
어쨌거나 지금 뒈져도 천상에서 허드렛일하는 수준은 된다고 하셨으니, 나중에 지옥에서 만나면 그때 똥물에 튀길 수 있는 기회도 생길 거다.
‘……뭔 개 같은 생각이냐!’
나는 잠깐이나마 떠오른 생각을 강하게 부정했다.
‘내가 당하고 나면 수하들이 무슨 꼴을 당할 것 같으냐. 얼간아!’
이화도, 종 노도 그리고 나를 따르겠다 말한 모두가 저놈 아가리 속으로 들어가거나 장난감 신세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그 꼴을 천상에서 지켜보라고?
나는 양손을 얼굴 높이로 들어 올렸다.
그리고 내 양 뺨을 후려쳤다.
짜악!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랄!’
패배를 생각하고 싸우는 무인은 없다.
장삼풍 사부가 오 푼이라 하셨다.
스무 번을 싸우면 한 번은 이긴다.
억척같이 물고 늘어져 그 한 번을 만들어내면 되는 거다!
“후우!”
호흡을 가다듬고 기혈에 흐르는 기운을 다듬는다.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기운을 끌어모은다.
기혈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르며 내 주변으로 검들이 떠오른다.
그 숫자가 열셋!
무리하며 끌어올린 이기어검의 수다.
“호오?”
혈교의 괴물이 이를 보며 웃음을 흘렸다.
웃음에 담긴 탐욕이 더욱 짙어지는 것이 느껴진다.
그때였다.
“잡긴 뭘 잡아? 비비다 만 개밥 찌끄레기 같은 것이! 니 애미가 새치기 함부로 하면 대가리 깨진다는 거 안 가르쳐주디?”
하늘에서 나타난 신형과 함께 다섯 개의 검은 강환이 허공을 갈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