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220
219화 총력전
승산 없는 싸움으로 보이던 이 자리에 개입해 오는 이들이 있다.
“이게 무슨 꼴이오, 현암 선배!”
분노와 측은함이 뒤섞인 탄식과 함께 종 노와 싸우고 있는 현암마존에게 달려드는 고수.
극마존.
“함께합시다, 종 선배!”
현암마존이 꼭두각시 신세가 되어 있는 것을 보았을 때, 같은 순천파인 극마존이 보이지 않는 것이 이상하긴 했다.
‘고생이 많았던 모양이군.’
극마존의 몸에는 상흔이 가득했다.
필시 저 혈교의 마수를 피해 몸을 빼는 도중 입었을 상처들일 것이다.
마존급 고수에게 상처를 입힐 만한 자가 천마신교에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극마존과 함께 전투에 뛰어든 인물.
검은 강환의 주인이 존재감을 발했다.
“대가릴 부숴 주마! 혈마!”
하늘을 넘고자 하는 강대한 의지의 주인이 분노를 표출했다.
입천신마존.
천마신교 최강자가 날려 보낸 다섯 개의 강환은 내가 펼쳤던 이기어검처럼 허공에서 자유로운 궤적을 그렸다.
쾅! 콰쾅! 콰콰콰!!
압도적인 기운이 허공에서 격돌했다.
“아하하…….”
새삼 보름 안에 저 괴물을 상대로 싸워볼 만한 수준까지 힘을 키운다는 게 얼마나 무모한 발상이었는지 반성이 일었다.
‘그나저나, 저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는 건가?’
입천신마존은 정확하게 상대를 언급했다.
혈마(血魔).
듣기만 해도 불길함이 느껴지는 별호다.
콰콰콰쾅! 콰콰콰콰콰콰!!
굉음이 땅을 흔들었다.
힘의 충돌로 만들어진 후폭풍이 어지럽게 사방을 흔들었다.
“마존 따위가!”
붉은 기운과 검은 기운이 뒤엉켜 싸운다.
강환이 부딪치고 강기가 날뛴다.
힘이 격돌할 때마다 명멸하는 섬광이 세상을 뒤흔드는 후폭풍을 동반한다.
어지간한 고수라도 멀쩡히 서 있기 힘들 압박이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가운데, 나는 억지로 버텨내며 그 격전을 바라봤다.
‘엄청나다…….’
공령을 앞세운 혈마의 주변에선 붉은 강기가 불길처럼 일렁였다.
한 줄기만 뻗어내도 대단한 고수로 인정받을 수 있는 강기가 거대한 산불마냥 들끓어 오르며 날뛴다.
입천신마존은 그 거대한 불길 속에서 날뛰는 수라(修羅)였다.
강철조차 단숨에 녹여버릴 것 같은 붉은 강기 속에서 날뛰고 있기에 더욱 선명하게 보이는 검은 수라가 붉은 괴물과 초식을 교환했다.
콰콰쾅!!
“……노옴!”
“흥!”
그 결과는 놀라우면서도 당연했다.
강기와 함께 부딪치며 뒤엉키던 두 사람의 몸이 교차하여 만났을 때, 뒤로 밀려난 것은 혈교의 괴물 혈마였다.
한순간 붉은 강기를 가르고 들어간 입천신마존의 검은 일격이 혈마를 뒤로 밀어냈다.
강기를 찢어버리는 검은 힘!
혈마의 손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기는 여전히 강하고 거대했지만, 입천신마존 앞에서는 초라해지는 느낌이다.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었는지, 일순간 혈마의 강기가 다른 형태로 변모했다.
불꽃처럼 덩치를 키워가던 혈마의 강기가 한순간 모여들어 응축되었다.
혈마의 강기를 가볍게 찢고 다녔던 입천신마존도 가볍게 취급할 수 없는 힘인지, 저돌적이던 진격을 멈췄다.
콰르르르르릉!!
붉은 벼락이 입천신마존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 순간 입천신마존 역시 감췄던 힘을 드러냈다.
콰아아아아아앙!!
흑요석처럼 검은 손이 후려치자 줄기차게 뻗어나가던 붉은 벼락이 산산이 깨져 안개처럼 흩어졌다.
그 여파로 입천신마존 역시 두어 걸음을 밀려났지만, 혈마의 표정은 전혀 밝지 않았다.
마지막에 와서 혈마가 본연의 힘을 발휘했지만, 전체적으로 우세를 점한 것은 입천신마존이었다.
“천마신교에 너 같은 놈이 있을 줄은…….”
“흥! 허접한 놈이 큰소리는.”
천마신교를 비하하는 말에 입천신마존이 콧방귀를 뀌었다.
오히려 혈마를 깔아뭉갠다.
혈마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아직 승부가 난 것이 아니다. 멀리 보고 싸운다면…….”
“그야 장기전이 된다면 대양무절기를 익힌 네놈이 이기겠지.”
혈마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자신의 무공을 알아본 것에 대해 놀라는 눈치였다.
사실 나도 내색은 안 했지만 크게 놀랐다.
무림삼불기.
설아 누나에 대해 알아보다가 접하게 된 명칭.
지나치게 강하면서도 상리에 어긋나는 힘을 휘두르는 존재들.
무림사에 기록되는 것조차 꺼려지는 그들은 무림에 등장할 때마다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고 했다.
그중 혈마가 익힌 것은 대양무절기.
큰 기운이 끊임없이 이어진다는 무공명은 그가 펼치는 힘의 원천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공령.
“그렇다면 장기전으로 끌고 가지 않으면 될 일이 아니냐.”
쿠오오오오오!!
입천신마존의 온몸이 검게 물들었다.
혈마의 붉은 벼락을 깨부순 힘이다.
온몸에 검은 강기를 두른 것인가 싶었지만, 그게 전부가 아닌 것 같다.
사람 자체가 바뀐 듯한, 마치 존재 자체가 사람이 아닌 무언가로 바뀐 것 같았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랬다.
혈마의 얼굴에도 경각심이 어렸다.
“아깝군. 네가 혈교로 왔다면 좋은 친구가 되었을 것을…….”
은근한 회유인 걸까?
마치 지금이라도 혈교로 넘어오라는 말처럼 들렸다.
“나 눈 높다.”
“……뭐?”
“네 그 개밥그릇 같은 몸뚱이는 필요 없단 소리다.”
입천신마존의 손가락이 하늘을 가리켰다.
“내가 바라보는 곳은 좀 더 먼 곳이다.”
별호가 말해주듯 입천신마존의 의지는 하늘 너머를 향하고 있었다.
“……허황된 꿈이다.”
입천신마존의 말을 들은 혈마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어떻게든 유지하려 애쓰던 평정에 금이 간 것 같다.
딱딱하게 굳어 있는 표정 사이로 뜨거운 무엇인가가 넘실거리며 흘러나온다.
“음?”
입천신마존과 대치하고 있는 혈마를 주시하던 중 기감에 잡히는 움직임이 느껴졌다.
기척을 죽이고 몰래 접근하는 솜씨는 훌륭하지만, 혈마에 버금가는 역겨움을 풍겨내는 이상 내 감지를 피할 수는 없다.
혈교의 수법으로 역량을 키운 자다.
나는 이기어검 중 하나를 그쪽으로 날렸다.
“카앗!”
이기어검이 만들어낸 상처를 무시한 채 괴한은 입천신마존을 향해 몸을 날렸다.
콰앙!
놀랍게도 입천신마존의 일격을 받아냈다.
그 대가로 손가락 몇 개가 찌그러졌지만, 당사자는 그 결과를 기쁘게 받아들였다.
“하하하하! 보았느냐! 내가너와손을겨뤘다!”
“대장로?”
‘천마혈족의 대장로?’
천마혈족의 장로들과 싸울 때 왠지 구심점이 없단 느낌이 들긴 했다.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왜 천마혈족 장로들이 그리 허무하게 무너졌는지도.
“저능아 같으니. 그딴 병신 짓을 하다니. 천마의 피가 울겠다.”
“네놈을넘기위함이다!”
광기를 넘은 지독한 집념이 느껴진다.
혈교의 수법에 손을 대고 얻은 힘인지, 찌그러진 고철처럼 망가진 손가락과 이기어검에 베인 상처가 다시 원 상태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복체진기?”
“그래! 나는천마신공을완성했다아아아아아!”
도마뱀처럼 즉석에서 몸을 수복시키는 재주를 보이며 천마신공을 완성했다고 떠들어 대는 대장로의 외침에 헛웃음이 나왔다.
천마신공의 실체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내 입장에서는 가소로운 소리였다.
입천신마존의 일격을 받아냈음에도 두 팔이 멀쩡하다는 건 확실히 대단하지만, 천마신공을 완성했다는 말은 가당찮다.
그래도 뭔가 이뤄낸 것은 분명하다.
“오늘! 네놈을! 넘어서겠다아아아아아아!”
모든 것을 불사르기라도 하겠다는 듯 대장로가 방어를 도외시한 채 입천신마존에게 달려들었다.
쾅! 콰콰쾅! 콰콰콰쾅!!
강 대 강.
뚜렷한 기량 차이를 그야말로 집념으로 따라잡고 있었다.
혈마는 의외로 대장로와 싸우는 입천신마존의 뒤를 노리지 않았다.
도리어 기운을 갈무리하며 입천신마존의 무공을 주시했다.
적이지만 현명한 판단이다.
협공이라는 것도 어느 정도 합이 맞을 때 효과를 발휘한다. 미친놈과 합을 맞추려 했다간 도리어 큰 낭패를 볼 수도 있다.
하물며 입천신마존은 대장로에게 전력을 쏟는 것도 아니다.
[가만히 보고만 있을 거냐?]돌연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천마 사부시다.
“술은 좀 깨셨어요?”
[지랄.]분위기 전환 좀 할 겸 농 한마디 걸었더니 바로 욕설이 날아왔다.
한데 이상하게도 마음은 편해졌다.
웃기는 일이다. 욕을 먹는데 마음이 편해진다니.
‘그럼, 사부님 분부대로…….’
– [혈마는 내가 상대할 테니, 느긋하게 볼일 보셔도 됩니다.]
심어로 입천신마존에게 내가 나설 것을 통보했다.
– [흥! 벌써부터 명령질이냐?]
입천신마존에게서 날아온 심어에는 가시가 가득했다.
하지만 그 말에서 유독 걸리는 단어가 하나 있었다.
‘벌써부터……라…….’
내겐 나를 천마로 인정하겠다는 말로 들렸다.
“그렇다면 이겨줘야지.”
내가 한 걸음을 내딛자, 어검들도 나를 따랐다.
“곧 손봐줄 것이니, 나서지 말고 차례를 기다려라.”
혈마는 입천신마존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내게 경고를 보냈다.
나는 그런 혈마를 보며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쐐액!!
이기어검 하나가 혈마의 관자놀이를 향해 매서운 속도로 쏘아졌다.
카앙!
하지만 혈마는 간단하게 호신강기를 두르는 것으로 내 이기어검을 막아냈다.
“나서지 말라 했거늘.”
“그래서 어쩌라고?”
“……천마신교 놈들은 하나같이 말귀를 못 알아먹는구나.”
“개밥 찌끄레기가 하는 말을 알아듣는 게 더 신기한 일이지.”
입천신마존이 한 말로 도발하니 입을 다문다.
동시에 훈계질을 하며 고상 떨던 표정도 사라졌다.
“……그래. 죽고 싶다는 놈, 죽여주는 게 무림의 미덕이겠지.”
“뭐래? 개밥 찌끄레기가.”
나는 호신강기에 막혔던 어검을 다시 움직였다.
호신강기만을 믿고 태연히 서 있는 혈마를 향해서 쏘아진 이기어검이 한층 더 속력을 높였다.
콰아아앙!
조금 전과는 다른 결과가 만들어졌다.
혈마의 호신강기에 닿는 순간 튕겨 나가는 것이 아니라 벽력탄처럼 폭발했다.
내가 터트린 이기어검의 폭발에 상처를 입은 것 같지는 않지만, 충격이 아예 없진 않았는지 혈마가 눈살을 찌푸렸다.
“이건 못 봤지?”
“……열두 자루 남았구나. 다 던져보지 그러냐?”
어디 해볼 테면 해보라는 듯 혈마의 눈이 이제야 내게로 향했다.
하지만 조금 전과 같이 압도되는 느낌은 없었다.
오히려 입천신마존과 싸우는 모습을 통해 노려봐야 할 빈틈을 찾아냈다.
팽팽하게 당겨진 끈일수록 쉽게 끊어진다.
입천신마존을 상대로 혈마가 과연 전력을 다하지 않았을까?
정상적이지 않은 공령의 활용으로 몸에 가해지는 반작용을 감수하고 있는 것이라면, 전력을 다해 힘을 일으킨 순간 혈마는 팽팽하게 당겨진 실과 같을 것이다.
육체라는 그릇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른 상태였을 거란 소리다.
그 상태로 밀리기까지 했다.
과연 타격이 전혀 없었을까?
대장로와 싸우는 입천신마존의 뒤를 노리지 않고 힘을 수습하는 것을 통해 확신할 수 있었다.
‘지금이라면 오 푼이 아닐 것 같단 말이지.’
적어도 육체에 실금 하나 정도는 그어졌을 것 같다.
그 실금을 크게 키워보는 것 정도는 노려볼 수 있다.
견고한 성벽이라도 작은 구멍 하나에 무너지는 법이다.
“끝을 보자!”
기혈을 열고 공령을 통해 들어오는 힘을 흘려보낸다.
그 흐름 속에 오행신력을 섞는다.
‘오행신력을 끌어낸 이상 단기 결전으로 승부를 본다!’
공령을 통해 끌어올 수 있는 일반적인 기운과 달리 신력에는 양에 제한이 있다.
상화를 통해 뻗어나가는 오행신력이 열두 자루의 이기어검 중 다섯을 물들였다.
가장 먼저 조화를 상징하는 땅의 황색.
다음으로 푸르른 나무의 청색이 자리를 잡는다.
그 둘과 달리 비교적 힘이 떨어지는 쇠의 신력과 물의 신력(?)이 각각 백색과 흑색을 이루며 검을 물들였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
불의 신력이 붉게 타올랐다.
“맡깁니다!”
이화가 일순간 불의 신력을 몰아넣었다.
갑자기 물밀 듯이 밀려오는 불의 신력이 나를 거쳐 붉은 검으로 흘러간다.
그 짙은 힘이 담긴 검이 허공에서 불타올랐다.
태양을 떼어다 만든 신검이라도 된 것처럼 불타오르는 검이 내 옆에 자리를 잡았다.
“신염(神炎)?”
검에 담긴 예사롭지 않은 힘에 혈마의 표정이 굳어진다.
그런 혈마를 향해 몸을 날리며 내가 부리는 이기어검에 올라탔다.
열두 자루의 이기어검과 어검비행!
그리고 연경심법!
모든 것을 긁어모은 일격을 준비한다.
‘총력전이다!’
열두 개의 궤적이 나와 함께 허공을 갈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