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221
220화 붉은 사선을 넘어
언제부터 회자된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검을 타고 하늘을 나는 어검비행술은 검선(劍仙)의 경지에 다다른 자만이 펼칠 수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확실히 어검을 타고 하늘을 나는 감각은 특별했다.
특히 다리 사이가 짜릿해지는 느낌이다.
과거 화산파에서 절벽을 타고 내려올 때 느꼈던 감각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다.
어마어마하게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검 위에 올라타 있는 만큼 피부에 닿아오는 모든 감각이 짙게 곤두섰다.
‘좋은 점은 딱 거기까지고…….’
어검비행을 직접 펼쳐보니 불현듯 백번 말하는 것보다 한 번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 떠올랐다.
‘비싼 신 신고는 못 하겠다.’
일반적인 이기어검보단 빈약하다고는 해도 어지간한 검기쯤은 찜 쪄 먹을 정도의 내공이 담긴다.
발을 올려야 하는 검면 위로 서릿발 같은 기운이 넘실거린다는 소리다.
그런 곳을 밟고 있는데 신발이 남아날 리 없다. 지금도 따로 내공을 담아 신발을 보호해주니 그나마 버티는 상황이다.
하지만 진짜 심각한 문제에 비하면 사소한 단점이다.
“……이거 그냥 목숨을 도외시한 육탄돌격 아닌가?”
아무리 고민해 봐도 어검비행이란 그냥 멋있어 보이려고 만든 비실전용(非實戰用) 무공 같다.
“냅다 들이받으려는 검 위에 사람이 타서 뭘 어쩌라고?”
같이 폭사라도 하라는 거야 뭐야?
절로 한숨이 나왔다.
[너야 그렇겠지. 뭐, 제대로 심검합일을 이룬 상태라면 또 다르게 느꼈을 거다.]내 감상에 대해 장삼풍 사부가 채점과 첨삭을 한 답안지를 내려주셨다.
그렇게 들으니 또 다르게 느껴지긴 했다.
심검합일을 이룬 상태에서, 검과 내가 하나 되어 적을 꿰뚫는다!
아마도 제대로 된(?) 어검비행은 거대한 강기 덩어리가 종횡무진으로 날뛰는 모습이 될 거다.
확실히 위력적이긴 할 것 같다.
적어도 검 위에 짐짝처럼 얹혀있는 지금의 나보다는 말이다.
화악!
혈마가 던진 붉은 강환이 날아든다.
무려 궤적까지 휙휙 바뀌는 정신 나갈 것 같은 덩어리가 세 개나 된다.
훙! 후훙!
“흐읍!”
현란하게 움직이는 이기어검들이 급선회로 그 공격을 피해냈다.
‘그냥 볼 땐 참 원초적이고 감각적이라 굉장하다 생각했었는데 말이지…….’
그 위에 올라탄 입장에서는 완전 죽을 맛이다.
성능 하나는 확실한 상화의 감각이 날아드는 강환을 피해냈지만, 이리저리 흔들리는 곳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내 입장은 무척이나 곤란했다.
‘속 뒤집어진다아아아…….’
상화가 제어하는 어검의 속도가 좀 빨라야지.
하지만 그런 상황임에도 내 입꼬리는 올라갔다.
고생한 보람이 있는지 확실히 눈길은 끈 모양이다.
심검합일을 이루지 못한 탓에 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임을 알고 있음에도 내가 검에서 내려서지 않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속아라. 속아라아아아!’
거창하게 번쩍번쩍 빛나는 신염의 검을 비롯해 오행신력을 받은 검들이 남다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거기에 나까지 어검비행을 펼치며 날고 있으니 눈길을 안 끌 수가 없다.
혈마는 내가 발휘할 수 있는 최고의 노림수가 이기어검이라 생각할 것이다.
실제로 혈마를 위협할 만한 위력이 담겨있기도 하다.
하지만!
혈마를 감싸고 있는 붉은 강기.
살아있는 생물처럼 일렁이며 혈마의 주변을 배회하는 불꽃들이 문제다.
그 면적이 대무장만큼이나 거대했다.
천 명의 장정이 도열해도 자리가 남을 만큼 크고 넓었던 그 대무장 말이다.
정면으로 들이받았다간 저 강기의 겁화를 찢어버리기 전에 오행신력이 먼저 바닥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혈마 정도의 고수를 상대로 힘 대결에 들어가는 것은 어리석은 방도다.
결국, 내가 세운 전략의 핵심은 천라무결이었다.
상대의 내부로 침투하여 타격을 가하는 내가중수법!
내공의 깊이를 알 수 없는 혈마에게 과연 통할지는 의문이지만, 당장 내가 쓸 수 있는 무기 중에 가장 승산이 높은 수법이다.
다시 말해 저 겁화 같은 붉은 강기의 파도로 몸을 던져야 하는 것은 어검으로 부리는 검이 아니라 내 몸뚱이라는 이야기다.
아무리 고민해 봐도 역시 목숨을 도외시한 육탄돌격이 맞는 것 같다.
‘기회는 한 번뿐이다.’
두 번은 없다. 실패했다간 필시 저 붉은 강기에 뼛조각까지 으스러질 것이다.
생과 사의 갈림길.
한 발 뻗어 발을 디딜 자리가 생과 사 중 어디인지 알 수 없는 도박판.
문제는 죽을 가능성이 더 큰 판이라는 점이다.
“아, 젠장! 벼락같은 거 한 방 때려주시면 안 됩니…… 응?”
뭔가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더 높일 방도가 없는지 궁리하며 투덜대는 사이 압도적인 존재감이 하늘에서 움직였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푸른 벼락같은 궤적!
뺘뺘뺘뺘뺘뺫(굉장히 심한 욕)!
성질 가득 난 소리를 내지르며 날아든 청조가 저 붉은 강기의 겁화를 냅다 들이받았다.
콰아아아아앙!
대무장만큼이나 거대한 붉은 강기의 장막이 단번에 박살 나 부서지는 광경은 그야말로 장엄했다.
신화시대에 신들의 격돌을 생각나게 할 만큼 어마어마한 여파는 두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기회가 만들어졌다.
“가즈아아아아아아!”
연경심법의 공능을 최고조로 올렸다.
비산하는 붉은 강기의 파편을 헤집으며 열두 자루의 어검들과 함께 이 열기의 근원을 향해 돌진했다.
뺘뺘뺘뺫(대략 심박한 욕)!
불현듯 난입해 한바탕 붉은 강기의 겁화를 헤집은 청조가 다시 하늘로 날아오른 순간!
“으음!”
나는 혈마의 코앞에 있었다.
아무리 봐도 자폭 구도다.
계획과 다르지만, 계획했던 것보다 오히려 좋다!
“뒈져라아아아아아아!!”
청경이, 공감각이, 모든 감각이 혈마의 몸에 흐르는 피의 운행까지 읽어냈다.
그를 바탕으로 짜내지는 천라무결의 한 수가 혈마를 향해 뻗었다.
콰아아아앙!!
혈마의 전신을 덮고 있는 호신강기 위를 후려친다!
“크으윽!”
손바닥이 끓어오른다.
불꽃 속으로 손을 던진 것 같다.
살이 벗겨지는 고통에 머리끝까지 솟구치는 비명 소리가 몸 안을 가득 채웠지만, 반대로 내 정신은 더욱 선명해졌다.
‘흩트렸다!’
천라무결은 혈마의 호신강기를 허물지는 못했다.
하지만 흩트렸다.
단단한 방벽이 물렁해졌다.
열두 자루의 이기어검이 청조의 날개처럼 펼쳐지며 혈마를 덮쳤다.
절벽으로 몸을 던지는 파도처럼 혈마를 향해 부딪쳤다.
콰콱! 파가각! 퍼퍼퍼퍽!
몇 자루는 부서졌다.
몇 자루는 그 벽에 검신을 박아 넣었다.
오행신력이 담겨있는 이기어검은 저 강대한 강기의 벽에 균열을 만들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균열로 날아가는 마지막 검!
“가라아아아앗!!”
이화의 신력이 담긴 신염의 검(神炎之劍)이 마침내 균열을 가르며 호신강기 너머로 날을 드리웠다.
퍼억!
살이 터지고 뭉개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
혈마의 입가에 웃음이 걸렸다.
그 웃음이 말하고 있었다.
팔 하나쯤은 내주겠다고!
마지막의 마지막, 천신만고의 노력 끝에 혈마의 호신강기를 뚫고 들어간 신염의 검은 혈마의 심장을 꿰뚫지 못했다.
딱 한 뼘만 더 밀고 들어갔다면 뜻을 이뤘겠으나, 짧은 순간의 힘겨룸에서 혈마의 힘은 내 힘을 상회했다.
회심의 일격은 고작 혈마의 어깨 한쪽을 날려버리는 것에 그쳤다.
‘망했네.’
팔 하나가 날아간 건 큰 부상이지만 죽을 정도는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손을 불태우고 있는 호신강기의 잔해 너머로 새롭게 세워지는 힘들이 느껴졌다.
폭발적으로 끓어오르는 힘의 준동이 손을 타고 전해져왔다.
이 힘이 혈마를 중심으로 갖춰지는 순간, 내 몸은 살점 하나 찾지 못하고 사라질 것이다.
죽는다.
그런 순간이기 때문일까?
눈앞으로 그간의 기억들이 빠른 속도로 떠올르며 지나갔다.
주마등 속의 나는 웃고, 울고, 소리 질렀다.
기쁨 앞에서 웃었고, 슬픔 앞에서 울었으며, 죽음 앞에서 소리 지르고 몸부림쳤다.
그 기억 중 하나가 내 뇌리에 선명히 박혀 들었다.
별안간 내 입가에도 웃음이 떠올랐다.
아마 조금 전 혈마가 지었던 웃음과 닮아있지 않을까 싶은 웃음이다.
“그래, 이거 총력전이었지…….”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때려 박는다!
죽음 앞에서 한 걸음 더!
그 갈림길에서 내 안에 있던 빗장을 열었다!
나의 영역 안에서, 오직 나만이 존귀하다.
과거의 기억 하나가 고스란히 떠오르며 그 당시의 순간이 내 몸에 뒤집어 씌워졌다.
제어하지 못하면 죽을 수밖에 없는 영역의 힘!
그렇기에 어떻게든 억누르고 억제해 왔던 빗장!
내 안에서 태동한 괴물이 눈앞의 붉은 열기를 향해 몸을 일으켰다.
“뒈져!”
마신의 잔재가 그를 숭배하는 이들의 땅 위에 강림했다.
***
입천신마존은 눈앞에 있는 고깃덩어리를 측은하게 바라봤다.
조금 전까지 천마신공을 완성했다고 환호하던 대장로였다.
“고작 이 정도인가?”
대장로가 이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별것 없었다.
강기를 두른 채 뻗어오는 주먹을 힘껏 후려갈기고, 팔다리를 부러트렸다. 그리고 닥치는 대로 박살 냈다.
살과 근육은 연약했고, 뼈는 속이 텅 빈 수수처럼 쉽게 부러졌다.
“고작 이것뿐인가?”
그나마 봐줄 만한 것은 복체진기뿐.
고깃덩어리 같은 꼴이 되어서도 꾸물거리며 움직이는 대장로의 몸뚱이는 천천히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려 하고 있었다.
몸을 복구시키는 재생력 하나는 대단했지만, 그뿐이다.
입천신마존에게 있어 꿈틀거리는 벌레와 다를 바가 없다.
“……그냥 인간일 때 죽여줄 걸 그랬군.”
실망이 컸다.
이래서야 개밥 찌끄레기인 혈마만도 못하다.
둘 중 하나다.
대장로가 잘못 알았던가,
천마신공이 기대와 달리 별것 없는 무공이던가.
아마 전자일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
“……그렇지 않다면 내 기다림이 너무 허무하지 않나.”
천마신교 마인에게 천마(天魔)라는 두 글자는 특별할 수밖에 없다.
스스로를 입천신마(入天神魔)라 칭한 그에게도 천마라는 두 글자는 특별했다.
언젠가 천마의 업을 짊어진 자가 나오리라!
그 업을 짊어진 자와 자웅(雌雄)을 겨루며 누가 더 우월한지 가늠할 수 있으리라!
그렇게 믿으며 입천신마존은 기다렸다.
하지만 천마혈족은 입천신마존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없었다.
입천신마존을 향해 끝없는 자괴감을 드러내던 그들은 망가져 버렸다.
그 꼴을 본 입천신마존은 어느 순간부터 기대를 접었다.
그 기대감이 다시 키워지기 시작한 것은 최근이었다.
“그래, 저런 거.”
갑자기 주변으로 뻗어나가는 이질적인 존재감에 입천신마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세상을 살라먹고자 태어나는 힘이 혈마를 한입에 집어삼켰다.
그토록 강맹했던 붉은 강기가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그 빈자리에 남는 것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무언가’였다.
입천신마존은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심연 속에 담긴 무언가가 자신을 바라본다고 느꼈다.
마치 자신을 굽어보는 듯한 시선.
이미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감각이 입천신마존을 감쌌다.
짜릿했다!
“흐흐흐흐…….”
퍼억!
입천신마존은 벌레처럼 꿈틀거리던 대장로의 몸을 터트렸다.
역겨운 핏덩어리가 바닥에 쓰레기처럼 널브러졌다.
“좋군. 아주 좋아.”
핏구덩이 위에서 입천신마존은 흡족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