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222
221화 본성(本性)
천마무겁수의 완전 개방은 마치 거대한 댐의 수문을 열어버린 것과 같았다.
거친 격류와도 같은 힘이 단숨에 혈마를 집어삼켰다.
단번에 혈마의 힘과 육신을 짓밟았다.
혈마는 반항할 새도 없이 그대로 사그라들었다.
‘……흐읍?!’
문제는 튀어나온 힘이 제어되지 않고 날뛴다는 점이다.
열린 수문을 다시 닫으려고 했지만, 닫히지 않았다.
제어를 거부하며 몸부림을 쳤다.
혈마를 단숨에 집어삼킨 힘이다.
작은 반항만으로도 육체가 뒤흔들렸다.
결국, 나는 내가 열어버린 문을 닫지 못했다.
열린 문을 통해 계속해서 힘이 흘러나왔다.
‘돌겠네…….’
문제는 그 힘이 너무도 거칠다는 것이다.
기존에 구축된 체계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무너트리려 하고 있다.
굳이 구분을 하자면, 갑자기 외부에서 몰려든 유목민 같은 놈들이었다.
‘내 몸에서 나왔는데, 내 안의 힘이 아닌 것 같아…….’
풀려난 자유를 만끽하며, 이번 기회에 내 몸에 자리를 잡겠다는 듯 이곳저곳을 들쑤셨다.
‘사부님들 목소리도 안 들리고…….’
뭔가 연결이 끊어져 버린 것 같다.
묘한 것은 상화와도 연결이 되지 않는 느낌이다.
결국, 자력으로 이 모든 상황을 수습해야 한다는 말이다.
‘에휴! 이 날건달 시키들…….’
내 의지가 움직이니, 중토신공이 몸 안에서 제멋대로 날뛰는 기운들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기운을 통제하려는 의지에 마음대로 날뛰려는 기운들이 저항하니 부딪칠 수밖에 없다.
충돌은 점차 격화되며 세를 늘려 전쟁으로 확대되었다.
자기가 날뛰기 좋은 환경으로 몸을 바꿔 가던 천마무겁수의 기운은 얌전하게 처맞기만 하던 기존 체계가 대항하기 시작하니 살짝 당황한 것처럼 주춤했지만, 이내 화를 내며 난동을 부렸다.
‘탐욕 끝판왕이네, 이거…….’
천마무겁수의 기운은 어떻게든 몸집을 불리려고 했다. 탐욕스럽게 주변을 집어삼켜 영역을 만들고, 키워내려 하였다.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강해지는 것에 환장한 놈 같다.
그런 놈의 점령지를 와해시키려 하니 반발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게 마성인가?’
마기(魔氣)가 골수에 스며든 자는 미쳐 날뛴다고 했다.
천마무겁수가 하고 있는 짓이 딱 그 짓이라고 생각하니 새삼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만 대처가 늦었어도 마성에 사로잡힌 마인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둘 순 없지.’
중토신공에 이어 삼재일기공이 개입하기 시작했다.
중토신공이 정면으로 부딪치는 방벽이라면 삼재일기공은 날뛰는 기운에 걸리는 목줄 같은 힘이었다.
벽으로 막아 세우고 목줄을 움켜쥐어 통제하에 둔다.
중토신공만이라면 천마무겁수의 기운이 압도해낼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삼재일기공이 야금야금 천마무겁수의 기운을 굴복시켜가자 점차 세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천마무겁수의 기운은 강했지만, 중토신공과 삼재일기공 양쪽 모두를 압도할 정도로 강하지는 않았다.
‘……응?’
그 과정에서 뭔가 가슴을 때려오는 감각을 느꼈다.
내 안에서 나온 놈이라는 것일까?
이 거친 기운이 뭔가 굉장히 억울해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왜 거부하느냐고 항변하는 것 같다.
‘어린애도 아니고…….’
저 하고 싶은 대로 날뛰던 어린애에게 회초리질을 하며 훈계하니 자기 잘못한 건 생각하지 않고 억울함에 못 이겨 울어버리는 모습 같다.
그저 하나의 기운일 뿐인 것에 감정이 있다고 느끼는 것 자체가 웃기는 일이겠지만, 이상하리만큼 자연스럽게 그리 인식되었다.
‘……마성이라.’
그러다 문득 천마 사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마는 선악(善惡)이 없다.] [선악의 구분 이전에 마가 있을 뿐이다.]그렇다면 마는 어디에서 오는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갑자기 생겨난 것은 아닐 것이다.
나는 전례를 떠올려 봤다.
마(魔)로서 도(道)에 다다라 천상에 이른 분의 발자취를 떠올렸다.
‘천마 사부는 무엇으로 마에 닿아 마를 정립하셨지?’
나는 천마 사부에게 배웠던 천마신공의 발자취를 좇아봤다.
천마신공에서부터 천마무겁수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그 과정에 늘 존재했던 것!
‘나(我)!’
천마 사부는 홀로 깨달은 자였다.
곤륜의 도 태허를 접하고,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며 다른 공부들을 접목하기도 했으나, 그 과정에는 언제나 스스로에 대한 궁구(窮究)가 있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추구를 멈추지 않았다.
‘홀로 깨우쳤기에 언제나 곁에 있던 것이라면…….’
홀로 깨달은 존재가 시작부터 품고 있던 것.
선악의 구분이 없는,
그저 순수한 갈망(渴望).
거기까지 생각이 닿으니 떠오르는 것이 있다.
언어를 배우기 이전, 사람이 사회에 녹아들기 위해 배워야 하는 규칙보다 먼저 품고 있는 것.
날 때부터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것.
생명에 새겨진 본질.
본성(本性).
그제야 저것이 다르게 보였다.
‘저게 나라고?’
그 깨우침과 함께 무언가가 가슴을 관통하고 지나갔다.
순간 눈앞의 풍경이 달라졌다.
짙은 밤하늘.
어두운 세상 속에서 펼쳐지는 별무리의 향연.
그 어둠 속에서 숨죽이고 위를 바라보는 내가 있었다.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나라는 존재는 흔하게 있는 돌이나 나무와 다를 바가 없었다.
어둠에 파묻혀 있는 나는 그저 보잘것없는 음영에 불과했다.
세상은 이토록 아름다운데, 가슴이 미어지게 빛나는데, 그 빛나고 아름다운 것 중 어느 하나 내 것이 없다.
그럼에도 갈망했다.
아니, 그렇기에 갈망했다.
강해지고 싶다!
하늘과 이어지기 전, 무당산에서 상처받은 몸과 마음으로 홀로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가슴 속에 삭이던 의지.
눈물을 삼키며 의지만으로 버티며 갈망하던 나.
천마무겁수의 기운은 분명 그때의 나를 닮았다.
우우우우우웅!
천마무겁수의 기운이 소리 질렀다.
버림받은 아이처럼 울부짖었다.
그런 ‘나’를 지키기 위해 중토신공과 삼재일기공이 처절하게 싸웠다.
도에 이르는 궁극적인 지향점들.
불성의 근간은 구제(救濟)이며, 선도의 지향점은 무아(無我)다.
만물을 구하고, 나를 버림으로써 자연에 가까워지는 길이다.
‘싸우고 있는 모두가 ‘나’구나.’
이를 깨닫는 순간 나는 어느 것 하나 밀어내지 않았다.
모두를 보듬어 안자 내 안에서 그 셋이 격렬하게 싸웠다.
양립할 수 없는 힘들이 한자리에 모이자 불과 물이 만난 것처럼 서로에게 반발하며 격돌했다.
그 여파가 몸에 드러났다.
성벽처럼 크고 웅장하던 내 육신의 기초에 쩌억 금이 갔다.
하지만 나는 끝까지 그 모두를 끌어안았다.
격렬하게 싸우는 그것들이 점차 하나로 녹아들었다.
흐르는 피가 새로운 길을 그렸다.
***
“아…….”
다시 한번 시야가 바뀌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현실로 돌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눈을 뜨자 가장 먼저 인식한 것은 얼굴에서 뭔가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누군가가 그것을 닦아내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내가 울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시야가 확보되고 나자 가장 먼저 보이는 사람과 시선을 마주했다.
“왜 이렇게 수척해졌니?”
이화였다. 얼마나 말랐는지 젖살이 쏙 빠져 있었다.
이화는 대답이 없었다.
말없이 빠르게 눈가에 물기가 고여 갔다.
‘무……거워…….’
당장에라도 떨어질 것 같은 눈물을 닦아 주기 위해 손을 뻗으려 하니 팔의 무게가 느껴졌다.
첫 무림 출두에서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중토신공을 운용한 뒤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들었던 때의 몸 상태가 된 느낌이다.
“보름이나 식음을 전폐했으니 수척해질 만도 하지.”
“……어?”
가슴이 서늘해지는 목소리였다.
절로 무게감이 느껴지는 그 목소리는 내가 익히 알고 있는 사람의 것이었다.
“입천신마존…….”
“그대로 육신이 붕괴되어 버리는가 싶더니, 환골탈태를 이뤄버리는군. 내가 겪었던 환골탈태와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만…… 천마신공이라 그런가?”
“예?”
입천신마존이 꺼낸 이야기는 뜬금이 없었다.
뼈와 근육을 새로 정립한다는 환골탈태(換骨奪胎)라니?
‘내가?’
몸 안에서 전쟁이 벌어지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몸 바깥에까지 영향을 끼쳤던 모양이다.
“흠! 뭔가 불가와 선도의 힘이 보인 것도 같았지만…….”
중얼거리는 입천신마존의 혼잣말에 찔끔했지만, 가급적 내색하지 않으려 애썼다.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입천신마존의 시선이 따갑다.
“뭐, 일단 기력을 회복하는 일에만 집중해라. 이후 해야 할 일이 많다.”
다행히 입천신마존은 자기 할 말만 마치고 훌훌 자리를 털고 물러났다.
‘휴우! 한숨 돌린 건가?’
잠깐이지만 입천신마존이 그대로 내 머리통을 부수거나 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어쨌거나 입천신마존과 비무를 약조했었던 건도 있었기 때문이다.
‘어? 이렇게 되면 비무는 어떻게 되는 거지?’
입천신마존과 약조했던 비무는 담판을 지은 날로부터 보름 뒤.
그러나 그 시일은 이미 지나 버렸다.
하는 말로 봐서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면 한판 붙어보자고 나와도 이상하진 않다.
‘아아, 모르겠다.’
몸이 무거워서 그런지 머리도 잘 돌아가지 않는 느낌이다.
어쨌든 당장 싸우자고만 하지 않으면 문제 될 일이 없지 싶다.
“미음을 가져오겠습니다.”
이화가 먹을 것을 챙기겠다며 몸을 일으켰다.
피골이 상접한 상태면서도 내 걱정을 하는 이화의 행동에 제약을 걸었다.
“너부터 좀 챙겨. 상태가 좋지 않다.”
“예.”
이화가 짧게 대답했다.
왠지 먼 옛일처럼 그립게 느껴져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문득 이게 이화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라는 생각에 한마디를 더했다.
“피골이 상접해 있는 꼴이면 만나 주지 않을 거야.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리 전해.”
막연한 추측이지만, 아마도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슬쩍 자기 볼을 만져보던 이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에게 일러두겠습니다.”
“……그래.”
역시나 내 예상이 맞은 것 같다.
그렇게 이화마저 떠나보내고 조용해지자, 기다리고 계실 사부님들을 찾았다.
“계십니까?”
[오냐.] [허! 용케 살았구나.] [무모한 놈.]사부님들의 타박이 이어졌다.
사부님들이 저리 말할 정도다.
내가 얼마나 위험한 짓을 했던 건지 새삼 깨달았다.
“사부님들 목소리를 다시 들으니 좋네요.”
[말은 계속 걸었다. 네가 감당하지 못할 상황이었던지라 우리 말을 인지하지 못했던 거겠지.]“아…….”
소리가 열 배쯤 길게 늘어지면 그건 더 이상 말이 아니라 불규칙한 소음처럼 들릴 거다.
사부님들이라면 그런 상태에서도 태연하게 대화를 나누실 수 있겠지만, 내 수준에서는 어려운 일이 맞다.
심상 속에서 사부님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을 땐 내심 이대로 사부님들과 연결이 끊기든가, 아니면 사부님을 뵙게 되든가 둘 중 하나라고 걱정을 했었다.
걱정을 덜어서일까?
꼬르르륵.
갑자기 배 속이 오그라든다.
얇아진 위장에서 부대끼는 감각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이제야 살아 있다는 것이 체감됐다.
이화에게 미음이 아니라 밥을 가져오라 하지 않은 걸 후회할 정도다.
하지만 배를 채우기 전에 사부님들께 확인해야 할 것이 있다.
“저 괜찮은 거 맞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