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248
247화 뻗어오는 어둠
누구에게나 미숙했던 시절은 있다.
부족하고, 모자라고, 어리숙한.
청춘이란 단어로 포장하기엔 그 이야기들 속에 담긴 흑역사가 너무도 많다.
하지만 당시를 되돌아보면 어느 정도는 납득할 수밖에 없다.
피 끓는 시절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별거 아닌 것에도 홀린 듯 필사적으로 몰두하는 충동이 함께하는 시기.
지금에 와서 보면 헛웃음이 날 정도로 사소한 일이었지만, 당시에는 심각하기 그지없던 기억들.
무당제일검으로 추앙받는 허도진인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다행히 운이 좋게도 허도진인은 그 질풍노도와 같은 시기에 좋은 인연을 만나 머리가 하얘진 지금도 뜻을 함께할 수 있는 친우들을 사귀었다.
얼마 전 그 친우에게서 전서구가 날아왔다.
“이놈의 암호 놀이는 해도 해도 어렵구먼.”
친우인 무애를 통해 알게 되었다.
천하에 뻗어있는 어두운 그림자가 있다는 것을.
어디에 얼마나 암중 세력의 힘이 뻗어있는지 알 수 없기에 친우들끼리 서신을 주고받을 땐 암호를 넣어서 뜻을 소통했다.
“쓰면서 머리 좀 아팠겠어.”
평범한 문구들 사이에 암호를 넣는 일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읽는 것은 그렇다 쳐도 쓰는 것은 쉬이 답이 나오지 않았다.
해서 허도진인은 주로 읽는 쪽에 위치했다.
“흐음…….”
혼란스러워진 사천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는 서한 사이에 담긴 암호를 해독해낸 허도진인이 인상을 구겼다.
흑애천주 공손도의 언급도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급히 보낼 만하군.”
전서구(傳書鳩)는 빠르긴 해도 불확실하다.
훈련시킨 새가 정해진 위치로 날기는 하지만, 확실하게 전달될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전서구로 보이는 새가 있으면 일단 쏴 떨어트리는 자들도 있고, 전서구 사냥을 위해 천적인 맹금(猛禽)을 훈련시켜 풀어 놓는 자들도 있다.
때문에 어지간히 급한 일이 아닌 이상 전서구를 이용하는 일은 많지 않다.
특히나 허도진인의 경우는 무당파에 머무는 경우가 적기에 전서구로 소식을 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다행히 최근에 문파 내부를 단속하느라 무당파에 머무르고 있어 서신을 받을 수 있었다.
“사천이 소란스러워질 것이라…….”
암중 세력이 사천의 혼란을 노렸다는 이야기와 함께 구파 내부에도 암중 세력이 스며들어 있을 수 있다는 짙은 경고 속에는 허도진인의 안위를 걱정하는 마음이 담겨있었다.
허도진인은 이 경고를 웃어넘길 수 없었다.
실제로 무당파에는 한차례 내우(內憂)가 있었기 때문이다.
혈교와 오랜 세월 공조해온 덕풍 윤가와 윤시후의 존재가 그것이다.
“독버섯 같은 놈들이구나.”
은밀히 조사한 바에 의하면 윤시후는 무당파 내에서 마당발 수준으로 인맥을 넓혀 나갔었다.
끼리끼리 논다고 썩어빠진 것들이 윤시후와 어울리며 어떤 짓을 했는지 알 수 없다.
하나가 있다면 둘이 있을 수 있고, 셋이 될 수도 있다.
혈교가 오랜 세월 그 끈질긴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가진 특성이 그만큼 매혹적이기 때문이다.
“내부의 적이라…….”
허도진인은 쓴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서구가 찾아올 수 있게 훈련시켜둔 이 장소는 무당파 본산에서 떨어진 다른 봉우리에 위치한 암자다.
만약 암습을 하고자 한다면 지금이 최적이라 할 수 있다.
“허허…… 어처구니가 없구나.”
무당파 내부가 아니라곤 하나 무당산에서 무당제일검이 암습을 당하다니.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허나 허도진인의 손은 허리춤으로 향했다.
연청운에게 검을 내어준 뒤 새롭게 구한 송문고검이 청명한 소리와 함께 시린 검날을 드러냈다.
“네놈들은 나를, 무당파를 얼마나 우습게 보는 것이냐?”
조용히 분노를 드러내는 허도진인의 말에 암자를 포위한 열두 명의 무인이 존재감을 드러냈다.
“천하십검은 그간 우리 일을 너무 많이 방해했다.”
“천하십검이라? 흐음…….”
전투가 벌어지기 전 기세를 잡기 위한 발언으로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허도진인은 이를 흘려듣지 않았다.
“나만 표적으로 삼은 것이 아니구나. 목표는 천하십검인가?”
“…….”
“네놈들의 행사를 방해한 것이 나만이 아니라는 게군.”
“……어쨌든 네놈이 여기서 죽는 것은 같다.”
이들의 목표는 천하십검이다.
무당제일검이 아니다.
허도진인 말고도 이들의 행사를 방해하는 천하십검의 행보가 있는 것이다.
크게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동시에 학의 행사가 과감해진 것에 경각심이 생겼다.
만약 저들에게 죽게 된다면 엄청난 파장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이도 아니고 무당제일검, 무당파 장문인조차 권위로 찍어 누를 수 있는 존재가 무당파 앞마당에서 암살당하는 일이 된다.
무당파를 넘어 정파무림이 크게 흔들릴 일이 될 것이다.
사천과 안휘에서 벌어지고 있는 혼란과 합쳐진다면 어디까지 그 여파가 퍼져나갈지 예측할 수가 없다.
‘할 수 있다면 말이지.’
따앙~!
손가락으로 검날을 튕겨 맑은소리를 자아낸 허도진인이 빙그레 웃었다.
“아직 귀천할 생각은 없네만?”
“우리가 죽인다고 하면 죽는 거다.”
“허허…….”
무당산에서 이런 말을 듣게 될 줄은 상상도 해본 적 없는 허도진인이 헛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인정해야 할 부분은 있었다.
이들이 마냥 허튼소리를 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사천에서 부딪쳤던 자는 제법이었지. 어디 실력을 보자꾸나.”
허도진인이 머리 위로 크게 휘젓듯 검을 휘둘렀다.
검이 지나간 자리로 푸른 선이 선명하게 남아 원을 그린다.
찰나에 번득이고 사라져야 할 검광이 그 자리에 고스란히 남아 빛을 발했다.
“쳐라!”
신비한 현상에 경각심을 느꼈는지, 짙은 살기와 함께 열두 명의 무인이 일제히 몸을 날렸다.
그 순간,
“흡!”
허도진인의 주변에 원의 도해가 방벽같이 일어나 투로를 막아 세웠다.
탕! 타탕! 탕!
“헛! 대원태극검!!”
허도진인이 무당파의 절기 태극혜검을 독자적으로 해석해 창안했다는 절학.
세인들이 허도진인을 태극검선이라 부르게 된 진신절기가 십이 인의 합공을 완벽하게 차단했다.
허나 허도진인의 얼굴은 무겁게 굳어졌다.
굳어진 것을 넘어 분노를 드러냈다.
“기이하구나.”
허도진인은 느꼈다.
“어찌 네놈들의 투로가 태극혜검의 파훼식을 따르는 게냐?”
이들의 검로는 분명 태극혜검과 상극이다.
태극혜검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허도진인이기에 한눈에 파악할 수 있었다.
타앙!
허도진인의 주변을 둘러싼 무수히 많은 원들이 서로 공명하자 그를 감당하지 못한 열두 개의 검이 튕겨 나갔다.
약점을 찔러 합격을 가했음에도 맥을 못 추고 있다.
“크윽! 노괴가!!”
“칭찬으로 들으마.”
허도진인의 검이 새로운 궤적을 그렸다.
“한데, 내가 물은 것은 그게 아니다만?”
그와 함께 허도진인이 그린 원들에 기이한 힘이 깃들었다.
후우우우웅!!
주변의 흐름을 빨아들인다.
기이한 힘이 튕겨 나가는 검을 끌어당겨 휘둘렀다.
“으윽!”
검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그들의 손목이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오르고, 힘줄이 꿈틀거렸다.
크게 내상을 입었는지 입가에는 억누르지 못한 핏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토록 힘을 집중했음에도 그들은 끝내 몰아치는 이력을 뿌리치지 못했다.
검과 함께 몸이 통째로 휘청거리는 그들은 허도진인이 검을 움직일 때마다 무너져 내렸다.
그와 함께 그들의 검을 잡아 가두고 있는 원이 한층 더 짙어졌다.
푸른 청색에서 짙은 군청색으로 변해가는 원들이 한순간 폭발하듯 빛을 내뿜었다.
파아아아아아아!!
가둬 두었던 힘이 방출되며 대원태극검의 도해들이 삽시간에 사방을 휩쓸었다.
“커억!”
“쿠어억!!”
단말마를 지르며 날아가는 이들이 한 줌의 핏물이 되어 뿌려졌다.
십이 인의 습격자 중 단 한 명만이 살아남았다.
“우웨에엑!”
하지만 그도 정상인 상태는 아니었다.
어떻게든 몸을 일으켜 세우려 했지만, 그대로 무너지며 얼굴을 땅에 박은 채 피를 토했다.
“이, 이 정도… 고수일 줄은…… 알고 있던… 무위가 아니…….”
“나라고 발전이 없었겠느냐.”
태연히 답하는 허도진인의 말에 습격자가 눈을 부릅떴다.
천하십검에 이르는 고수가 벽을 넘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충분히 경악할 만한 일이었다.
“영 대답이 없구나. 내 몇 번을 물었다만?”
“크하…… 핫!”
허도진인의 추궁에 웃음을 터트리는 습격자가 마지막으로 힘을 발했다.
퍼억!!
울퉁불퉁 부풀어 오르던 몸이 폭죽처럼 터지며 사방으로 매섭게 휘몰아쳤다.
피와 뼈가 암기라도 된 것처럼 사방을 초토화하는 가운데 허도진인이 눈살을 찌푸리며 그 힘을 내리눌렀다.
“쯧! 목숨 귀한 줄을 모르는 자로다.”
소매에 묻은 핏덩어리를 털어내는 허도진인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벽을 넘지 못했다면 위험할 뻔했구나.”
과정과 결과 모두가 압도적이었고, 깨달음을 얻은 대원태극검의 위력을 확인할 수 있었음에도 허도진인은 이를 기뻐할 수가 없었다.
습격자들이 첫 공격에서 보인 합공은 완성도가 무척 높았다.
특히 태극혜검의 파훼식을 따른 검술은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대원태극검으로 활로를 만들어내지 못했다면 목이 잘린 건 허도진인이었을 것이다.
“대체 언제부터 준비해 온 자들인가…….”
합격진이 하루 이틀로 완성될 수 없음을 고려한다면 이들은 분명 오랜 시간 무당파 검사를 도륙하기 위해 담금질 되어 온 자들이란 이야기였다.
이런 놈들이 암약하고 있다.
“별다른 피해가 없어야 할 텐데.”
대놓고 구파의 산을 오를 정도로 과거와 달리 과격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간 암중모색(暗中摸索)했던 이유가 사라진 것 같은 행동이다.
이를 대비할 필요가 있다.
구파의 회동이 필요한 시점이다.
헌데 구파 역시도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예견해보던 허도진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
만물상단에서 얻은 정보를 토대로 용풍개를 길잡이 삼아 송하상단으로 향했다.
하지만 해결되지 않은 문제에 고심해야 했다.
송하상단에 접근하는 것은 만물상단을 상대하는 것과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도적 연맹에 크게 패한 남궁세가에 남아있는 유일한 이점은 아직 민심이 남궁세가에 있다는 것이다.
물론 남궁세가도 무리하게 세를 넓히며 적지 않은 패악질이 있었기는 했지만, 그 패악질이 일반 민초들에게 향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고, 어쨌거나 남궁세가의 지배력이 덮고 있을 때는 안휘가 평화로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송하상단을 노리는 순간 그 유일한 이점이 산산조각 날지도 모른다.
송하상단에 대해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이에 대한 걱정은 커졌다.
제대로 된 명분 없이 건드릴 곳이 아니다.
평판을 무기로 삼을 줄 아는 자들.
할아버지도 이런 계열을 상대할 때는 극히 신중하게 움직이셨다.
‘명분이 필요해.’
확고한 명분이 없다면 차라리 공략을 피하는 것이 낫다.
“흐음…….”
“송하상단이라…….”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것인지 남궁한과 용풍개가 침음을 흘렸다.
하지만 좀처럼 방법이 나오지 않는지 명쾌하게 입을 여는 이가 없다.
그때 한 사내가 불쑥 앞을 가로막았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도령.”
싱글싱글 웃으며 당장이라도 두 손을 쓱쓱 비빌 것 같은 사내다.
“관중연.”
용린대가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