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253
252화 죽일까?(1)
우리가 예창현이란 사람을 찾는답시고 동릉을 뒤집어놓고 있는 사이에 관중연 역시 뭔가를 준비한 모양이다.
아마도 우리가 동릉을 뒤집어놓는 것 자체가 관중연이 짜놓은 계획의 일부인 것 같다.
다만, 서신에 응하고자 하니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포구까지는 어떻게 간다?”
당연한 말이지만, 동릉은 장강에 인접해 있는 도시지, 장강 바로 옆에 있는 도시가 아니다.
비가 좀 쏟아지는 시기가 되면 시시때때로 범람해서 인근 지역을 쓸어버리는 것이 장강이라는 거대한 물줄기다.
거리가 좀 떨어져 있어도 수해로 날아가 버리는 일이 무척이나 흔하다.
그런 장강 바로 옆에 도시를 짓는 건 미친 짓이다.
동릉 역시 장강 인근의 도시인 것이지, 장강과 경계해 있는 도시는 아니다.
포구까지 거리가 상당하다는 의미다.
“동릉 내부를 휘젓는 거랑은 다른 문제란 말이지.”
사실 동릉 내부를 돌아다니며, 예창현을 찾는 일 자체는 생각보다 수월했다.
일행은 이화를 제외하고 모두가 정통 무가에서 배운 무인들답게 기초가 튼튼했다.
내공을 사용할 줄 아는 무인들의 기동력은 달리는 말을 능가한다.
기동력을 살려 동릉 내부를 휘젓다 관병들이 포위망을 좁혀온다 싶으면 몸을 숨기기만 하면 된다.
관리들에게 이를 갈고 있는 동릉 주민들이 알아서 우릴 숨겨주었다.
사실상 동릉의 모든 거주지가 우리의 은신처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도시를 나가기 위해서는 도시의 관문을 거쳐야 한다.
“이를 갈고 있는 관병들이 우리가 관문을 빠져나가는 걸 그냥 두고 볼 리가 없단 말이지.”
“그러게요.”
“으으음!”
그렇다고 강행 돌파하여 관병을 죽였다간 이후 더 골치 아파지는 사태에 직면하게 된다.
가능하면 들키지 않고 빠져나가는 것이 최선이다.
“용린대에서 다른 말은 없었나요?”
혹시나 싶은 기대감으로 물어보니 용풍개가 인상을 찌푸렸다.
“……힘내라곤 하더군.”
“……‘잘’하면 된다는 거네요.”
“그렇지. 뭐든 ‘잘’하면 무슨 문제가 있겠나.”
그냥 잘.
잘하면 된다.
‘아, 쓰벌.’
순간 관중연이 낄낄거리며 웃는 얼굴이 떠올랐다.
이 작자를 어떻게 조지면 잘 조졌다는 소리를 들을까 심도 높은 고민이 떠올랐다.
문뜩 관중연 밑에서 구르고 있을 용린대원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르긴 몰라도 상당한 수가 저 작자 등짝에 칼 꽂는 꿈을 꾸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
그렇게 생각하니 사비를 들여서라도 칼 몇 자루 사주고 싶다는 생각이 무럭무럭 자라 올랐다.
[수련이 부족해, 수련이. 허공답보로 날아가면 간단한 거 아니냐. 하계 돌아가는 꼬라지가……. 어휴!]그런 우리의 고민거리가 참으로 소박해보였는지 장삼풍 사부가 혀를 찼다.
사부 기준에서 보자면 어렵지도 않은 문제로 고민하는 게 답답하신 것 같다.
‘뭐, 호풍환우를 다루시는 사부님이야 뭐가 문제겠습니까만.’
반항심이 고개를 들었지만, 이내 가볍게 진압했다.
[뭐, 날아가는 게 불가능하면 땅굴이라도 파든가. 삽질은 간단하겠지.]‘그러게 말입니…… 아?’
장삼풍 사부가 땅굴을 언급하자 한 가지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혹시 개구멍 같은 건 없나요? 이만한 도시라면 밀거래를 하는 놈들도 있지 싶은데.”
가능성은 충분했다.
밀거래를 하는 작자들이라면 관병들의 눈을 피해 물건이 오가야 하는 만큼 외부로 통하는 길을 만들어둘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용풍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없네. 송하상단이 워낙 상생에 중점을 두고 있는 터라 굳이 위험한 밀거래에 손을 대는 이는 없다고 하더군.”
“말할 송하상단 놈들!”
“염병할 놈들이지.”
진짜 삽질이라도 해야 할 판인가 보다.
[그럼 그냥 성벽을 뛰어넘든가. 아무리 허접이어도 성벽을 기어오르는 정도는 하겠지.]그 생각을 안 한 건 아니다.
어지간히 경공을 구사할 수 있다면 성벽을 기어 올라가는 것은 어렵지 않다.
문제는 성벽 위에는 경계를 서는 병사들이 있다는 것이다.
성벽은 몸을 숨길 곳이 없어 무턱대고 오르다간 자칫 발각되기 쉽다.
한밤중이라면 모를까, 훤한 대낮에는 경비의 눈을 피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돌아가는 상황을 미뤄보면 관중연은 뭔가를 낚으려는 것이다. 그리고 낚시질에는 목표가 미끼를 문 순간, 시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밤까지 기다렸다간 때를 놓칠 수가 있다.
하지만 좀처럼 떠오르는 수가 없다.
“진짜 성벽이라도 넘어야 하나…….”
“음?”
반쯤 투정을 담아 중얼거리는데 남궁한과 용풍개가 눈을 반짝였다.
“성벽을 기어 올라가 보자는 말이지?”
“……예?”
“관문을 돌파하는 것보단 차라리 그게 더 나아 보이는데요?”
저기요?
뭐지, 이거?
뭔가 병신 같은 생각인 것 같으니, 당장 해보자는 건가?
월담이라.
확실히 남자의 본능이 꿈틀거리는 단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본능에 따라 움직이면 대체로 결말이 안 좋다.
어린 시절 백무호에게 휘말렸을 때마다 엉덩이가 남아나질 않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허나 그런 내 우려와는 달리 두 사람은 이미 의견을 나누며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성동격서(聲東擊西)로 가죠.”
“그게 좋겠군.”
남궁세가 무인들이 동릉 시내를 뒤집는다면 관병들의 시선은 그쪽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
관병들은 다들 빡쳐 있을 테니 남궁세가 무인들을 잡기 위해 우르르 몰려갈 것이다.
그사이 경계가 옅어진 틈을 타 성벽을 넘자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가장 가능성이 큰 방법이다.
“그럼 시작하죠.”
일행은 둘로 갈라졌다.
남궁한과 남궁세가 무인들이 미끼가 되는 사이 나와 용풍개가 성벽을 넘는 것으로 결정했다.
용풍개는 몸을 풀며 아낌없이 조언을 주었다.
“재빠르게 움직여야 하네. 바퀴벌레처럼 성벽에 달라붙어 빠르게 사사삭!”
“……아, 예.”
이걸 개방다운 비유라고 해야 할지.
정파의 신성으로 용으로 불렸고, 소주에서는 꽃돌이라고도 불렸다가, 천만대산에서는 천마 노릇까지 했는데, 이젠 한 마리의 날쌘 바퀴벌레가 되어야 하는 상황이다.
참 변화무쌍하구나, 내 인생.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내 처지를 받아들이는 도중 이화의 반응이 걱정되어 슬쩍 돌아보니, 역시나 불만이 가득해 보였다.
“우우…….”
볼이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게 막 쪄낸 찐빵 같다.
그걸 보니 나도 모르게 손가락이 움직였다.
꾸욱!
“…….”
“……미안.”
이건 관중연이 나쁜 걸로.
***
성벽을 오르는 일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나야 화산파 절벽조차 달려가듯 올라갔었다. 이 정도 성벽이야 동네 마실 나가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용풍개는 벽호공을 익혔는지 손을 쓰자 조금 성가신 산을 오르는 것처럼 순식간에 성벽 위를 올랐다.
그리고 아무 탈 없이 성벽을 넘어 동릉을 벗어났다.
“……이게 된다고?”
나름 준비를 하긴 했다.
최대한 사각지대를 찾았고, 인기척이 적은 곳을 확보했으며, 경계에 허점이 있을 법한 곳을 골라 움직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주요했던 건 관병들의 움직임이었다.
남궁세가 무인들이 소란을 일으킴과 동시에 성벽 부근을 지키던 병사들까지 창을 꼬나쥐고 튀어 나갔을 정도였다.
아무래도 동릉의 병사들은 내 생각보다 더 빡쳐 있는 상황인 것 같다.
너무 손쉽게 성벽을 넘어서 어안이 벙벙해져 있는 내게 용풍개가 씩 웃었다.
“성공한 계획이란 게 다 그런 거 아니겠나?”
“뭐, 그렇긴 하죠.”
“그럼 서두르세.”
용풍개는 우리의 목적을 상기시켰다.
성벽을 넘는 건 어디까지나 목적을 위한 과정일 뿐이다.
‘바퀴벌레처럼 사사삭?’
조건반사라고 해야 하나?
서두르자는 용풍개의 말에 나는 성벽을 오르기 전 그의 조언이 떠올랐다.
뭔가 많이 없어 보였다.
그것보다는 차라리.
‘우리에서 벗어난 호랑이처럼.’
그래, 이게 맞는 거다.
어쨌든 포구를 향해 달렸다.
그런 가운데.
“무인?”
포구에 다다르자 신경을 건드리는 기척이 다수 느껴졌다.
무인들 특유의 날 선 존재감이 짙게 깔렸다.
“선객이 있는 모양인데요.”
“허! 어느 경우 없는 새끼들이 거지 밥그릇을 넘보나? 확 대가리 깨벌라.”
용풍개가 개방다운 분노를 표출했다.
“송하상단에서 나온 놈들일지도 모르겠네요.”
동릉에서 우리가 노린 표적은 송하상단이다.
관중연이 낚으려는 대상 역시 송하상단이다.
그렇다면 저들은 낚여서 팔딱거리는 놈들이다.
“오호?”
상황을 파악한 용풍개의 입에서 호성이 흘러나왔다.
“그럼, 사지만 분질러놔야겠군.”
“살려는 드려야죠.”
“마음이 맞는구먼.”
생각을 정한 나와 용풍개는 속도를 한층 올렸다.
소란이 일어나고 있는 포구가 손에 닿을 듯 가까워졌다.
그만큼 뚜렷하게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창현, 어디 있나!”
“예? 누구요?”
“나와! 불렀으면 나와야지!”
예창현을 찾는 무인들이 상인들을 닦달했다.
만류하는 포구 상인들과 짐꾼들을 헤집고 다니며 난동을 부렸다.
포구 상인들과 짐꾼들이 노기를 드러냈지만, 무인들이 눈에 불을 켜고 노려보니 함부로 움직이질 못했다.
이미 일꾼 중 나름 힘 좀 쓴다 싶은 이들이 만류하러 나섰다가 화를 당했는지, 덩치들이 팔다리를 부여잡은 채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저렇게 과감하게 손을 썼다가는 추후 평판에 문제가 생길 우려가 있다. 그럼에도 거침이 없다.
그렇다는 것은 저들은 이면에서 송하상단을 위해 일하는 작자들이라는 소리다.
‘제대로 낚았군.’
내 눈엔 그들이 낚싯바늘에 낚여 뭍에 올라온 파닥거리는 물고기처럼 보였다.
그럼 굳이 예의를 차릴 필요가 없다.
나는 상인의 멱살을 잡고 있는 무인에게 몸을 날렸다.
나가는 몸, 뻗어내는 손에 무당권의 진결이 실린다.
자칫 상인이 말려들어 다칠 수 있기에 확실하면서도 부드럽게 제압할 필요가 있다.
기습적으로 다가간 만큼 상대는 대응할 틈조차 없었다.
낚아챈 상대의 손목에서 마른 나뭇가지 꺾이는 소리가 났다.
우득!
“아악!”
꺾은 손목을 크게 휘두르며 어깨로 밀친다.
상인의 멱살을 놓친 놈을 고법으로 밀어내 거리를 벌려낸 순간 발끝으로 상대의 무릎을 노렸다.
와작!
“으아아악!!”
썩은 대들보마냥 다리가 부러지자 몸이 바닥을 구른다.
데굴데굴 구르며 비명을 지르는 놈을 완벽하게 제압하기 위해 놈의 전신 요혈을 짚었다.
“……!?!”
비명도 지르지 못하게 된 놈이 공포와 고통에 눈물을 펑펑 쏟으며 몸을 움찔움찔 떨었다.
그사이 옆에서도 비슷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호랑이처럼 불한당들을 덮친 용풍개의 손에 사지가 부러지는 소리였다.
난동을 피우던 무인들을 순식간에 제압했다.
“……역시나.”
그러자 기세를 숨기고 있던 이들이 힘을 드러냈다.
이전에도 느껴본 적이 있는 차가운 검은 기운이 자욱하게 퍼져 흘렀다.
학.
송하상단이 숨기고 있는 어둠.
그 일각이 기세를 뿜어냈다.
‘관중연, 이 잡놈이 진짜.’
그리고 그 혼란 도중 포구 한쪽에서 나를 보며 이죽거리는 관중연의 모습이 보였다.
정확히 관중연에게서 받은 서신을 읽을 때 상상으로만 떠올렸던 그 웃음이다.
“아, 쓰벌.”
죽일까?
아니, 진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