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256
255화 벗겨진 위선
나는 관중연이 송화상단 무인을 심문하는 과정을 모두 지켜봤다.
관중연의 심문은 폭력적이었지만 과격하지 않았고, 모든 행보에는 복합적인 계산이 깔려있었다.
“대단하네.”
관중연은 송화상단 무인에게 잡혀 온 지 닷새가 지났다고 했지만, 사실 고작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다.
머리를 때려 계속해서 의식을 잃게 함으로써 시간의 흐름을 놓치게 만든 것이다.
시간의 개념을 뭉개 판단력을 잃게 했고, 분노를 심었으며, 지독한 두통으로 자제심을 갉아먹었다.
“심문 중에 쓸데없는 소리 금지입니다.”
“어차피 듣지도 못하잖아.”
“제가 흐트러지잖습니까. 이거 생각보다 섬세한 작업이라고요.”
확실히 정밀한 조정이 필요한 일이긴 했다.
섬세하게 작품을 살피는 장인마냥 이리저리 살피던 관중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슬슬 관객을 모아도 되겠는데요?”
“방도들을 움직이도록 하지.”
관중연의 말에 용풍개가 발 벗고 나섰다.
여기서 관객이란 당연히 동릉의 주민들과 상인들이다.
나와 남궁세가가 동릉을 들쑤시고 다니는 동안 용린대 역시 나름대로 사전공작을 했다.
순식간에 ‘예창현에 대한 소문’이 퍼지고 있는 것도 하오문을 이용해 용린대가 손을 쓴 결과다.
장강을 차지하고 있는 도적 연맹과 짜고 안휘를 좀먹는 자들의 배후를 캐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존재라는 소문이 바로 그것이다.
그랬기에 남궁세가에서 예창현을 찾아 돌아다니는 것에 확실한 근거가 생겼다.
그리고 그 떠다니는 소문들 사이사이에 안휘를 좀먹는 배후로 송하상단이 언급되었다.
물론 동릉 주민들은 쉽사리 믿지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뇌리 한편에 작은 의심의 씨앗을 심어 두기에는 충분했다.
“어차피 너희 정파 병신들은 송하상단을 못 건드려. 우리가 송하상단을 위해 동릉에서 뭔 개짓거리를 했건 그걸 밝힐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고! 하하하하하!”
결국, 송하상단 무인은 참지 못했다.
차곡차곡 쌓인 내면의 분노가 훌륭하게 터졌다.
사실, 저 말 한마디로 동릉의 여론이 일거에 변화할 수는 없다.
하지만 깊숙이 숨어있던 의심의 씨앗을 발아시키는 단초로는 충분했다.
그리고 일단 발아된 의심은 작은 부추김만으로도 걷잡을 수 없이 성장하게 된다.
그렇게 모든 것을 깨닫고 넋이 나간 것으로 보이는 송하상단 무인을 농락한 관중연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으며 내게 다가왔다.
“이게 댁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이란 말이지?”
“평범한 업무죠.”
평범, 다 얼어 죽었다.
관중연이 뭐가 문제냐며 어깨를 으쓱였다.
“사람이란 다 비슷합니다. 먹지 못하면 배가 고프고, 잠을 못 자면 피곤하고 짜증이 나죠. 심문이란 그런 겁니다. 그저 우리가 바라는 방향으로 가도록 길만 터주면 되죠. 그다음은 알아서 흘러갑니다. 물이 흘러가는 것처럼 말이죠.”
이 정도는 당연한 일이라는 듯 말했다.
내겐 그냥 잘난 척하는 걸로 보였지만.
‘대단하긴 하네.’
과연 섬세한 작업이라 할 만했다.
심문하는 곳을 개방들이나 사용할 법한 토굴처럼 꾸민 것도 놀라웠다.
이곳이 인적이 드문 개방이 쓰는 토굴이라 생각했기에 송하상단 무인도 저렇게 대놓고 소리를 지른 것이다.
“이거 작업할 때 댁은 뭐 했어?”
“훌륭한 부하를 둬서 행복합니다.”
“응. 그렇구만. 알겠어.”
역시 이번 일이 끝날 때쯤 그 무뚝뚝한 양반에게 꼭 칼 하나 사줘야겠다.
***
바깥의 상황은 생각했던 대로 흘러갔다.
“이게 뭔 소리야?”
“아니, 잠깐…… 이게 그러니까…… 그러니까…….”
“송하상단이 도적 연맹과 손을 잡고 있다고?”
“말이 되나?”
“그럼 작년에 무령상단 창고가 불탔던 것도 송하상단이 저지른 짓?”
“이거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송하상단이 평소 쌓아올린 평판 때문에 쉬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대화들이 오갔다.
기존에 품고 있던 생각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이야기가 나왔으니 당연하다.
“이거 조작 아냐?”
부정하는 사람도 나왔다.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다. 물증도 없이 그저 누군가가 발악하듯 소리친 발언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순간 주민들 사이에 끼어있던 하오문의 바람잡이들이 움직였다.
“송하상단을 모함해서 뭐 하게?”
“누가? 왜? 도적 연맹이 장강을 먹은 이 시국에?”
부정하는 이야기는 순식간에 묵살당했다.
동릉 주민들의 내부에 심겨 있던 의심이 커졌다.
“그러고 보니 송하상단이 자리 잡았을 때도 좀 이상한 부분들이 있다는 이야기가 있지 않았나?”
“맞아. 갑자기 밀려난 상단들이 상당했지.”
“그저 경쟁에서 밀려났던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면?”
“작년 무령상단처럼 갑작스러운 횡액이 누군가의 수작질이었다면?”
“종가상단은 우리와도 거래를 텄던 곳이었다고! 오랜 세월 이곳 동릉에 자리해 기반이 튼튼한 곳이었는데, 어느 날 야반도주 하듯 갑자기 사라졌었어. 그리고 그 자리를 송하상단이 차지했지.”
송하상단은 그리 역사가 오래된 곳이 아니다.
신생 업체가 자리를 잡아 한 도시를 대표할 정도로 성장했다는 것은 기존에 자리 잡고 있던 업체를 밀어냈다는 의미다.
물론 상단끼리의 경쟁은 언제나 있어왔고, 경쟁에서 밀려난 곳이 도태되는 것도 당연하지만, 그 과정으로 만들어지는 여파는 작지 않다.
순식간에 거래처가 사라져 피해를 보는 곳이 생겨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게 송하상단 때문이었다면?
도적 연맹의 행패에 숨죽이고 있던 것이 송하상단의 수작질이라면?
분위기는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남궁한과 남궁세가 무사들이 그런 주민들의 앞에 섰다.
확실히 여기선 일단 남궁한이 나서는 것이 가장 그림이 좋다.
“들은 것이 있다면 다들 동의할 것이오!”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동릉에서 이런 말을 하면 앞뒤 가리지 않고 돌부터 날아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분노한 동릉 주민들은 당장에라도 폭동을 일으킬 것 같은 분위기다.
이걸로 송하상단을 건드릴 명분을 확보했다.
“송하상단이 의심스럽소이다!”
물론 이곳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 동릉의 총의를 대변한다고 할 수는 없다.
이번 일을 알지 못하는 대다수는 여전히 송하상단을 비호할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 움직여야 한다.
기회가 생긴 지금, 송하상단을 중심으로 움직인 불온한 자금의 흐름을 찾아내야 한다.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물증을 확보해야 한다.
무림의 일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들, 관리들의 일이나 상단의 일은 용린대에 맡기면 될 것이다.
“우리는 이 의혹들에 대한 해명을 듣기 위해 송하상단으로 향할 것이오!”
대문이 활짝 열려버린 철옹성.
지금이 그 성을 공격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
거칠 것이 없어진 나와 남궁세가 무인들이 바람처럼 달렸다.
그동안 건드릴 수 없었던 송하상단의 대문이 빠른 속도로 가까워졌다.
대문을 지키고 있던 호위무사들이 심상치 않은 공기를 느끼곤 검을 뽑아 들었다.
“가급적 살수를 자제해! 입은 많을수록 좋다!”
남궁한의 지시를 파악한 관중연이 피식 웃었다.
“하! 이거야 원.”
정파 무인이 상단을 치는 일이다.
당연히 뒷말이 나올 수밖에 없고, 동릉의 치안을 담당하는 관에서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 관을 누를 수 있는 뒷배가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증거만 확보한다면 용린대가 알아서 찍어 누를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용린대를 부려먹겠다는 소리다.
“좋은 가주가 될 것 같구랴.”
남궁한은 관중연의 비아냥을 흘려 넘겼다.
대답 대신 가장 먼저 대문을 지키는 호위무사들을 덮쳤다.
쩌엉!
가로막는 모든 것을 부순다는 남궁세가의 중검(重劍)이 호위무사의 검을 부수고 팔을 잘랐다.
“아악!”
“남궁세가다!”
“막아!”
“어르신을 불러!”
호위무사들이 남궁세가의 진격을 막아보려 했지만 역부족이다.
고작 상가의 대문이나 지키는 실력으로는 막을 수 있는 힘이 아니었다.
나는 순식간에 호위무사들이 쓰러진 틈으로 뛰어들었다.
콰아아아아앙!
커다란 짐과 마차들이 드나들 수 있는 거대한 송하상단의 대문이 산산조각 나며 파편을 흩날렸다.
가로막는 모든 것이 사라지며 송하상단의 입구가 훤히 열렸다.
“빠르게 끝내라! 증거를 찾아!”
“예이!”
“달려라!”
“다 뒤집어!”
용풍개의 일갈에 송하상단 인근에 숨어있던 거지들이 일거에 들이닥쳤다.
송하상단에서 불리한 증거를 파기하기 전에 일을 끝내야 한다.
수색함에 있어 머릿수를 앞세운 개방의 조력은 반가울 수밖에 없다.
개방의 거지들은 순식간에 송하상단을 점거해나갔다.
황충(蝗蟲) 떼거리에 휩쓸린 것 같은 송하상단의 모습을 보며 관중연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휘유! 이거 생각보다 쉽게 끝나겠는데?”
말이 씨가 된 것일까?
개방 거지들에게 점거당한 송하상단 심처에서 남다른 기세를 뿌리는 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흑기를 다루는 무인들.
학의 수족들이다.
‘내 차례군.’
나는 발끝에 힘을 주었다.
용천혈을 타고 흐르는 힘이 거세게 땅을 흔들었다.
포구 때와는 달리 불가항력적으로 말려들 민초들은 없다.
싸움의 여파가 커지기 전에 전력을 다해 빠르게 진압하는 것이 피해를 줄일 수 있다.
파괴적인 힘이 주먹에 담긴다.
제한을 풀어낸 힘이 거칠게 앞으로 쏘아졌다.
“크아악!”
콰가각!
“이런!”
“말도 안 되는!!”
극강격이 담긴 일격이 단번에 흑의 기운을 휘두르려던 무인을 분쇄해버렸다.
자부심마저 박살 내는 일격에 흑의 기운을 뿜어내던 무인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히야~!”
누구보다 암중에서 그들과 부딪쳐 온 용린대이기에 관중연은 환호성을 터트렸다.
하지만!
쩌어엉!
“커억!”
거침없이 몰아치던 남궁세가 무인 중 하나가 신음을 터트리며 뒤로 나가떨어졌다.
일방적인 상황 속에서 군계일학(群鷄一鶴)의 위용을 드러내는 자가 전황을 흔들었다.
남궁한이 가족을 지키기 위해 몸을 날렸다.
쩌엉!!
“큿!”
검이 격돌하며 만들어진 거친 쇳소리와 함께 한 사람이 튕겨 나갔다.
놀랍게도 튕겨 나간 쪽은 남궁한이다.
가로막는 모든 것을 부순다는 남궁세가의 중검이 막혔다.
“고작 후기지수 주제에 나와 검을 맞대고도 무사하다니. 제법이구나. 역시 썩어도 오대세가인가.”
하지만 되레 상대는 남궁한의 무위를 놀랍다 칭찬한다.
남궁세가 무인 한 명을 패퇴시키고, 남궁한의 중검을 가볍게 밀어낸 자.
일방적인 상황 속에서도 오연히 선 자가 불현듯 나를 바라봤다.
“호오? 네가 허리에 차고 있는 송문고검이 무척이나 낯이 익구나. 그렇군. 네가 무당제일검에게 가르침을 내렸다는 후기지수구나.”
나를 알아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내 안목이 맞다면 응당 안부를 묻는 게 옳겠지. 취죽 선생은 잘 계신가?”
“……당신이군.”
사천당가에서 취죽 선생과 재회했을 때 들은 기억이 있다.
취죽 선생을 노렸던 자가 있었노라고.
허도진인께서 검을 나눴음에도 목숨을 거두지 못한 자가 있었노라고.
그자가 내게 검을 겨눴다.
“이 또한 인연이라 할 수 있겠군. 그럼 거둬야겠지.”
그 오연한 태도가 무척 거슬렸다.
“와라.”
“원한다면…….”
삼단의 합일이 이뤄지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신력을 끌어올리는 일을 의식적으로 자제했지만, 지금만큼은 예외다.
전신에서 꿈틀거리고 일어난 신력이 온몸을 가득 채웠다.
‘부숴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