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258
257화 구파가 미쳐 돌아가겠군
흐름이 바뀌던 전황이 다시금 뒤집혔다.
나름 비장의 수라고 준비했던 매복(埋伏)이 순식간에 도륙 나버린 상황이다.
자신만만하게 준비했던 만큼 기량이 빼어났겠지만, 갑자기 검이 살아 움직여 몸통을 절단할 것이란 상상력을 발휘하지 못한 대가는 컸다.
뭐, 그런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놈이 제정신이겠냐만서도.
다만, 이후로는 이처럼 기습의 효과는 누리지 못할 공산이 높다.
혈마 정도 되는 고수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할 정도로 충격적인 무공이니만큼 입소문을 타지 않을 리가 없다.
안 그래도 검문(劍門)으로 이름 높은 남궁세가 무인들의 표정에는 경악, 감탄, 숭배의 기운이 가득했다.
하나 분명한 것은 나를 사람이 아닌, 검선(劍仙)으로 보는 듯한 시선이다.
번거롭게 되었다.
‘이게 다 저 새끼 때문이고.’
이름 모를 개새끼.
간신히 동정심 비스무리 한 것이 생겨서 묘라도 만들어준다면 묘비에는 ‘착각으로 깝치다 뒈진 개새끼’라고 써놓을 테다.
어쨌거나 주둥이는 날려버리자.
저 새끼가 뒈지면 사부님들한테 갈 텐데, 제자 된 입장으로 일하시느라 바쁜 사부님들께 헛소리 지껄이는 꼴은 못 본다.
마음을 정하자 상화를 통해 검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홉 자루의 검이 상대에게 쇄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과정이 이전과 달랐다.
나로서도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다.
세 자루 검의 움직임이 다른 검들과 달랐다.
단 한 번도 각을 만드는 일이 없이 유수의 흐름처럼 곡선을 그리는 검.
무수한 각을 만들며 화사한 꽃과 같은 변화를 그리는 검.
그리고 쏘아진 화살처럼 날아가는 검.
무당, 화산, 점창.
틀림없이 그 무공의 진의가 펼쳐지고 있다.
‘따라 하는 건가?’
애들 앞에서는 입조심, 행동거지 조심하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어린아이들은 뭐든 따라 한다.
특히 욕같이 자극적인 건 듣자마자 바로 어른들에게 달려가 나불댄다.
저자가 구사한 검법이 그처럼 호기심을 자극한 것이었을까?
상화는 바로 따라 했다.
사방을 에워싸며 두들긴다.
쩡! 캉! 까깡!
“크윽!”
상대는 우리에 갇힌 짐승 꼴이 되었다.
필사적으로 저항하려 했지만, 이미 몸은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굉장하네.’
나는 상화가 펼치는 검을 보며 감탄했다.
씨앗이 남다른 존재. 천상에 근본을 두고 있는 존재답게 상화는 구파무공의 검리를 순식간에 파악했다.
본능만이 있던 상화의 검에 검리가 담겨갔다.
그렇다고 본래 가지고 있던 본능적인 움직임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상화가 펼치는 본능적인 움직임에 검리가 담기며 조화를 이뤄가고 있다.
마치 본능밖에 없던 맹수가 구파의 무공을 배워 익히고 있는 느낌이다.
‘만약 상화가 구파의 모든 검을 배운다면?’
아홉 자루의 이기어검이 구파의 무공을 펼치는 장관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상상만으로도 짜릿했다.
절대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소름이 돋았다.
더 나아가 구파의 검뿐 아니라 다른 고수들의 검까지 익힌다면?
예를 달면 장문경 선배의 검이라든가.
천의무봉이란 평에 걸맞은 난공불락의 요새와도 같았던 장문경 선배의 검이 나를 지켜준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설렐 정도다.
벌써 검의 움직임이 응용의 단계로 넘어가고 있는 상화의 습득력을 보면 충분히 시도해 볼 만하다.
“대체, 이게…….”
무당파의 검리가 담긴 이기어검이 상대의 검을 잡고 흔들며 검로를 흩트린다.
변화무쌍한 화산의 검이 흐트러진 검로를 파고들며 빈틈을 키워낸다.
점창의 검은 저격을 하는 화살이 되어 드러난 빈틈을 놓치지 않고 꿰뚫는다.
그야말로 모범적인 구파 합격진을 보는 느낌이다.
지켜보는 나도 기가 막힐 지경인데, 당하는 입장에서는 미칠 지경일 것이다.
“크아아아아!!”
상황이 이리되자 상대도 대응을 달리했다.
“사파?”
기세가 달라진 검은 더 이상 구파의 무공이라 볼 수 없을 독랄함을 품었다.
저자가 익힌 검은 구파 무공만이 아니다.
대단한 자다.
하나만 익혀도 끝을 보기 어려운 것이 구파 무공이다.
게다가 구파는 각 문파의 성향 차이만큼이나 무공의 철학과 기반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점창의 사일과 무당의 태극은 그야말로 정 반대에 자리하고 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어지간한 재능으로는 흉내도 낼 수 없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사도의 검을 꺼냈다.
그 이유는 쉬이 짐작되었다.
‘어디 이것도 따라 해보라는 거겠지.’
무당파 출신이니 무당의 검을 구사하는 것은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화산파의 검은 나와 동행하며 이름을 날린 백무호의 검을 따라 한 것으로 여길 수 있다.
점창의 검은 변화가 거의 없으니 그저 흉내만 내는 것으로 판단했을 것이다.
자의식 과잉에 허세가 가득한 애송이.
틀렸다.
그리고 그 오판에 대한 결과는 곧바로 드러났다.
쇄액!!
본능적으로 움직이던 검들 중 하나가 일순간 독랄함을 품었다.
그 순간 그의 움직임이 작게 움츠러들며 기운을 하나로 모았다.
궤리에서 어긋난 검을 만들며 빈틈이 드러나면 그 빈틈을 파고들기 위함일 것이다.
허나 이기어검은 내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내 태세에는 빈틈이 없었고, 상화가 움직이는 이기어검들 역시 견제를 잊지 않았다.
반대로 내가 드러낼(?) 빈틈을 노리고자 무리수를 둔 그에게서 큰 빈틈이 생겨났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독랄한 검이 그의 팔을 날렸다.
서걱!
“……허!”
팔이 잘렸음에도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은 고통에 겨운 비명이 아니라, 어이가 없다는 한탄이었다.
균형을 잃은 그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그대로 무너져 무릎을 꿇는 상대를 두고 아홉 자루의 검들이 허공에 뜬 채 주시했다.
어디 더 보일 것이 있다면 보이라는 느낌이다.
무너진 자와 그를 지켜보는 나.
그리고 허공의 검들.
누군가의 침 넘어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릴 만큼 사위의 모든 것이 멈춰있는 가운데 모두의 시선이 한자리에 고정되었다.
물론 당사자는 느낌이 달랐을 것이다.
포식자가 사냥감을 가지고 노는 모습.
사냥감 처지로 전락한 상대가 이빨을 뿌득 갈았다.
“오냐! 같이 죽자.”
이를 갈며 고개를 드는 그의 주변으로 막대한 기운이 폭풍처럼 뿜어져 나왔다.
일순간 힘을 격발하는 수법인지 이전과는 그 궤가 달랐다.
“구문…… 귀일신공…….”
마치 대련이라도 펼치고 있는 것처럼 무공명을 읊조린 그가 몸을 날렸다.
“죽어라!!”
곧게 뻗어내는 검세는 점창의 사일검이다.
허나 세밀하게 보면 그 검끝은 언제라도 쪼개져 갈라질 것처럼 끝없이 흔들렸다.
점창의 검에 다른 검리가 섞여 있다.
저 극한으로 응축된 힘이 폭발하는 순간, 분명 화려하게 비산하는 검의 난무를 보게 될 것이다.
푸푸푸푹!
하지만 상화가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벼락처럼 떨어져 내린 검이 상대의 사지를 꿰뚫었다.
팔과 다리, 어깨를 관통한 검들이 족쇄처럼 그의 몸을 결박하며 무릎을 꿇렸다.
그의 검은 내 그림자에도 도달하지 못했다.
내부에서는 여전히 강맹한 기운이 끓어올랐지만, 그 기운이 움직이게 할 몸은 완벽하게 무력화되었다.
몸이라는 그릇이 깨진 이상 그 안에 담겨 있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들 의미가 없다.
그는 어떻게든 움직여 보려 몸을 움찔거렸지만, 관절이 꿰뚫린 이상 의지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큭…… 크하하하…….”
마침내 저항을 포기한 듯 축 늘어진 사내가 얕은 웃음을 터트렸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이 상황이 어처구니가 없는 모양이다.
“쯧! 죽으면 당가 애송이 녀석이 좋아하겠군.”
“당가?”
“몰랐나? 사천당가는 이미…… 쿨럭! 우리 수족이나…… 컥컥…… 다름없다.”
쿨럭거리는 기침에서 끈적한 토혈의 흔적을 볼 수 있었다.
깨진 그릇에서 흘러나오는 생명력이다.
죽어가면서도 수작질을 부리는 그에게서 마지막 의지가 엿보였다.
‘당영진을 말하는 모양이네.’
아마도 저자가 노리는 것은 의심암귀(疑心暗鬼)의 계책일 것이다.
유감이지만 최후의 수작질은 얄팍하기 그지없었다.
이미 사천당가는 반란 세력을 일소했기 때문이다.
당가에서 잡아 죽인 당영진도 그렇고, 이 작자도 그렇고 곱게 죽어주지 않는다.
그럼 그에 걸맞은 보답을 하는 것이 예의이자 범절일 것이다.
굳이 죽어가는 놈에게 떠벌릴 필요는 없지만, 마지막까지 수작질을 부리는 놈을 보니 입이 무척이나 가려워졌다.
-[지금 사천에서 움직이는 천마신교가 너희 뜻대로 움직이는 것 같지?]
마치 다 알고 있단 식으로 전음을 보내니 상대가 눈을 부릅떴다.
“너어……!”
으직!
나는 그가 허튼소리를 입 밖으로 내기 전에 검을 뽑아 입을 꿰뚫었다.
“저승에서 기다리는 분들께 안부 전해 달라고.”
그리고 검을 휘둘러 턱을 잘라냈다.
상화가 진즉에 이자의 몸을 토막 내지 않은 이유에는 내가 한 말을 기억하고 있는 탓도 있을 것이다.
역시나 기다렸다는 듯 상화가 움직였다.
서거걱!
각 관절을 구속하듯 꿰뚫고 있던 검들이 움직이자 순식간에 몸이 절단났다.
사내는 경악한 표정 그대로 숨이 끊어졌다.
눈을 부릅뜬 채 원통함이 잘 살아있는 얼굴이다.
“좋네.”
죽는 순간까지 꼴 보기 싫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면 밟아 부쉈겠지만, 이건 이것대로 괜찮아 보였다.
가장 위협적인 적을 쓰러트렸으니, 남은 일을 잘 수습하는 것만 남았다.
송하상단의 일만 잘 마무리 지으면 다음 행보는 한결 편해질 것이다.
용린대가 움직이는 폭이 늘어난다면, 적어도 관의 개입을 저지하는 데는 유용할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상화야. 그건 하지 말자.”
천마신교에서 천마혈족 장로들을 쓸어버리고 상화가 한 행동을 상기한 나는 조용히 상화를 제지했다.
치링?!
내 말에 상대를 썰어버리고 의기양양하게 떠오르던 아홉 자루의 검이 움찔 멈춰 섰다.
다행히 말을 잘 듣는 우리 상화는 피 묻은 검을 내 몸에 비비는 일은 하지 않았다.
대신 춤을 췄다.
내가 방금 싸웠던 그자와 겨룰 때 보인 무당파 무공이다.
아홉 자루의 검이 무당파의 검결로 검무(劍舞)를 추니 장관이 따로 없다.
“어어…….”
“으음…….”
내 입장에서야 장족의 발전이지만, 다른 사람들이 볼 땐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뭔가 묻기 위해 슬금슬금 다가오던 이들이 발걸음을 딱 멈췄다.
어째 익숙한 눈빛들이 느껴졌다.
‘……그래, 이게 어디냐.’
호기심 많고 잘 배우는 우리 상화.
다음에는 더 수월하게 넘어가는 법도 배울 수 있을 거다.
나는 믿어. 우리 상화 믿어.
***
송하상단의 일은 빠른 속도로 정리되었다.
역시나 정보를 다루는 것에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이들이 동원된 만큼 그 전문성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개방도들에게는 잘 차려진 밥상이나 다름이 없었다.
관중연이 실실 웃으며 이리저리 어슬렁대는 것은 좀 거슬렸지만, 일이 잘 풀린 만큼 그 정도는 참아줄 수 있었다.
“분타주님! 용 분타주님! 계십니까!!”
그런 가운데 거지 하나가 허겁지겁 달려와 다급하게 용풍개를 찾았다.
“느낌이 안 좋은데…….”
경험상 저런 모습 뒤엔 대개 안 좋은 이야기가 뒤따른다.
그런 내 예상은 정확히 맞았다.
“뭔데 동냥 그릇 깨진 것마냥 지랄이냐?”
“큰일! 큰일입니다! 백매검성께서, 자천진인께서 암습으로 귀천하셨다고 합니다!”
“뭐어!?”
“자천진인께서?”
직접 대화를 나눠 보기도 했던 어르신이라 더 충격적이었기에 나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구파가 미쳐 돌아가겠군…….”
안휘가 안정되기도 전에 정파 무림 전체가 뒤집힐 사건이 벌어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