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261
260화 제갈세가의 생각
장원에 들어서자 과거 남궁한과 함께 인연이 있던 남궁조 대협이 반겨주었다.
“어서 오게, 연 소협.”
남궁한이 장강 주변에 자리한 도적 연맹과 싸우면서 남궁세가의 영향력을 지키는 사이 남궁조는 분열되어 가는 남궁세가의 잔존 세력을 통합하고 안정시키기 위해 노력 중이라 했다.
생각 이상으로 고생이 심했는지 얼굴이 반쪽이 됐다.
“얼굴이 많이 상하셨네요.”
“말도 말게. 요즘은 아침에 일어나기가 무서울 지경일세.”
머리를 쓱쓱 만지며 하는 말이다.
주변 분위기가 너무 처져 있어 나름 분위기를 풀어볼 생각으로 농담을 꺼낸 것 같은데, 웃을 수가 없었다.
오히려 더 분위기가 경직되는 느낌이다.
본인도 그걸 느꼈는지 남궁조 대협이 깊은 한숨과 함께 화제를 돌렸다.
“언젠가 자네가 본가에 오면 단단히 은혜를 갚겠다고 큰소리를 쳤는데, 미안하게 됐네.”
“좋은 날이 오겠죠. 그때 못 받았던 것들까지 다 받겠습니다.”
어째 신경 쓰지 않는다고 겸양을 부리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것 같아 다른 방식으로 희망을 담아 대답했다.
“그래, 그래야지. 꼭 그랬으면 좋겠군.”
내 의도를 이해했는지 남궁조 대협의 얼굴에 미소가 그려졌다.
“들어가세. 현재 상황에 관해 이야기해주겠네.”
안 그래도 듣고 싶은 부분이었다.
은근히 주변의 시선이 모이고 있음을 느꼈지만 무시한 채 남궁조 대협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
남궁세가의 분위기는 개판이었다. 내부 분열의 조짐까지 보이고 있었다.
도움이 필요한 남궁세가는 목소리를 내기 힘든 상황이다.
주도권을 잡으려는 모용세가는 목소리를 높였고, 하북팽가는 어찌 되든 상관없다는 식으로 관망했다.
제갈세가만이 남궁세가에 호의를 비쳤지만, 모용세가와 부딪칠 정도로 나서지는 않았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이 한자리에 모였으니 잘 돌아갈 리가 없다.
영역싸움을 하는 맹수들마냥 점차 예민해져 갔다.
그런 가운데 갑자기 외부에서 들어온 이들이 있다.
제갈세가는 그들을 눈여겨보았다.
“장강 부근에서 항전의 의지를 내세우는 남궁세가의 적통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그가 돌아왔나 봅니다.”
“과연 기재구나.”
보통 담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적진 한가운데에서 목숨을 내걸고 싸웠으니 일신시담(一身是膽)이라는 고사를 만들어낸 장수를 떠올릴 만했다.
“남궁세가 꼴이 말이 아닌 수준이라 본래 목적을 포기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만, 저런 녀석이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제갈세가의 칠종칠검이 남궁한을 눈여겨보았다.
하지만 제갈윤재는 다른 쪽을 더 눈여겨보았다.
“남궁조 숙부가 함께 왔던 이들 중 한 명을 연 소협이라 부르며 반겼죠?”
“그래, 마치 일생의 은인이라도 맞이하는 모습이었지.”
“연가라…….”
연씨 성을 쓰는 청년 고수라면 떠오르는 이름이 있긴 하다.
혜성처럼 나타나 순식간에 몸집을 키운 그 이름의 무게는 상상 이상으로 무거웠기에 쉬이 언급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제갈윤재는 확신이 있었다.
“남궁 형을 도와 녹림칠십이채 채주 중 하나인 철공패도를 일수에 격살한 청년 고수가 있다는 소문을 들었지요.”
“……소천룡.”
“그가 아니면 또 누가 있겠습니까.”
제갈윤재의 얼굴에 진한 웃음이 그려졌다.
“안 그래도 백가표국에 손을 내밀 방법을 찾고 있었는데 잘된 일이죠.”
남궁세가가 안휘를 온전하게 탈환하기를 바라는 제갈세가.
“잘만하면 일거양득(一擧兩得)이 되겠습니다.”
그들이 그리는 미래의 모습에는 백가표국도 들어 있는 것 같았다.
***
남궁조 대협은 나를 극진히 대접했다.
개인적으론 좀 과하다 느낄 정도다.
하지만 나와 함께하는 이들 중 어느 누구도 이를 과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남궁조 대협이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나는 한마디로 그 이야기를 축약했다.
“개판이네요.”
그야말로 개판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을 지경이었다.
“부끄럽구먼.”
“딱히 남궁 대협 잘못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어쩌겠나. 결과가 모든 걸 말해주는 것을.”
남궁세가는 여전히 의견을 합치하지 못했다. 여전히 본거지를 옮겨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확실히 충분히 고려해볼 만한 의견이긴 했다.
재물이 있고, 다음 세대를 기약할 무공이 있다.
본거지를 옮기게 되면 당장은 힘들지라도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
게다가 유일한 희망이라고 해도 좋을 다른 오대세가의 조력자들을 만나며 실망감이 커졌다.
모용세가는 남궁세가를 소모품으로 쓸 생각이고, 하북팽가는 어찌 되든 상관없다는 반응이었다고 한다.
제갈세가는 호의적이었지만, 적극적이지는 않았다.
이대로라면 그나마 있는 전력마저 소모품으로 전락할 상황이라 이전론자들의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푸념을 늘어놓는 남궁조 대협의 말에서 그간의 고생이 절절하게 느껴졌다.
“차라리 나도 검을 들고 따라나설 걸 그랬어…….”
“그랬다간 아예 수습하지 못했을 겁니다.”
남궁한은 그나마 이 정도로 수습하고 있는 것이 남궁조 대협이 힘쓴 결과라며 위로했다.
내 생각도 같았다.
무엇보다 내 입장에선 남궁세가가 꽁무니를 빼는 것은 곤란했다.
도적 연맹이 장강을 기반으로 힘을 키운다면, 오대세가를 넘어 정파의 재앙이 될 것이다.
만약 이대로 시간이 지나 다시 관의 비호를 받는다면 정파에서는 대응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용린대가 관을 억누르고 있는 지금 뿌리를 뽑아야 한다.
‘관중연 그 작자는 여기까지 짐작했던 건가?’
문득 소매에 넣어 둔 부러진 쇳조각이 떠올랐다.
여기에 무슨 비밀이 숨겨져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하북팽가를 설득할 단서가 될 물건이라면 지금 당장 써먹어야 한다.
당장 가 봐야겠다.
결심을 하고 몸을 일으키는데 남궁한이 뒤를 따랐다.
“하북팽가를 찾아가시렵니까?”
“예.”
“같이 가시죠.”
남궁한의 눈에는 결의가 가득했다.
어떻게든 하북팽가를 설득하겠다는 열의가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그 전에 손님이 있는 것 같네요.”
“예?”
복도를 지나 문을 나서자 기다리고 있는 누군가가 있었다.
얼굴에 가득 웃음을 품은 인상 좋은 사내다.
“오래 기다리셨습니까?”
“…아하하하.”
직설적인 물음에 녀석의 웃음에 살짝 실금이 갔다.
“크흠!”
하지만 곧 헛기침으로 다시 얼굴에 웃음을 깔며 정중하게 포권을 쥐었다.
“제갈윤재라 합니다. 인사드립니다. 남궁한 형님. 소천룡 연청운 형님.”
나를 알아본다.
정중하게 인사를 해오는 모습을 보면 우리 쪽에 용무가 있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전에 확인하고 넘어갈 것이 있다.
“연배가 어떻게 되시죠?”
“예?”
갑자기 나이를 물으니 반응이 색다르다.
“작년에 약관을 넘겼습니다만…… 그건 왜?”
“그럼 제가 연하네요.”
“……예?”
다시 한번 제갈윤재의 표정에 실금이 그어졌다.
내 말을 이해하기 힘들다는 얼굴이다.
제갈윤재의 머리 주변으로 무수히 많은 물음표가 솟구친 것처럼 보였다.
‘하북팽가를 찾아가려 했는데, 제갈세가가 먼저 찾아왔네.’
순서가 좀 바뀐 느낌이지만, 제갈세가 역시 설득해야 할 곳이긴 하다.
그나마 남궁세가에 협조적이라곤 하지만, 미진하긴 마찬가지니까.
“형이라고 불러 드릴까요?”
“……????”
여전히 머리 위에 띄운 물음표는 지워내지 못했다.
왜 이렇게 이해력이 달려?
이 양반 제갈세가 사람 맞아?
***
제갈윤재와 함께 남궁조와 이야기를 나눴던 회의실로 도로 들어갔다.
“놀랐어. 무림에 명성이 자자한 소천룡이 아직 약관도 넘지 못했다니.”
제갈윤재는 여전히 충격이 가시지 않은 얼굴이다.
내가 좀 규격 외이긴 하다.
제대로 배우기 시작한 지 이 년도 안 돼서 이만한 경지에 올랐으니 성장 속도만 보면 전대미문일 것이다.
“사부님들이 워낙 대단하신 분들이신지라.”
[짜식!]장삼풍 사부가 무척이나 뿌듯해하셨다.
“님들? 소림과 무당…… 소문이 사실인가?”
그런 내 말에 제갈윤재는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렸다.
나도 모르게 말하긴 했지만, 혹여 캐묻기라도 하면 대답하기 귀찮은 내용이라 맥을 끊어냈다.
“제게 볼일이 있으신 듯합니다만, 하실 말씀이 뭡니까?”
사실 공식적인 일이라면 남궁조 대협과 이야기를 하는 것이 맞다.
실제로 제갈윤재는 적당히 남궁조 대협에게 떠넘길 생각이었다.
그러지 못하고 이 자리에 함께한 이유는 제갈윤재가 날 지목했기 때문이다.
직설적인 물음이 싫진 않은지 제갈윤재도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제갈세가는 백가표국에서 진행 중인 역참 방식의 유통 구조에 관심이 있어.”
“……그거 누구랑 손잡고 진행하는 일인지는 알고 계시죠?”
“당연히 알지. 왜 되물었는지 이해는 하는데, 제갈세가에선 그 일이 무척 파격적이라 판단하고 있어. 엄청 높이 평가한단 소리야. 자랑스러워해도 좋아.”
표국과 산적의 조화를 파격이라 표현한다.
일단 칭찬인 것 같으니 기분 좋게 받아들이자.
“관심이 있다는 건 한 발 걸치고 싶단 뜻이겠네요.”
“응.”
“한데 그걸 여기서 꺼내시는 이유는요?”
그런 용건이라면 백가표국을 찾아가야 할 일이다.
굳이 여기서 이 말을 꺼낸 이유를 모르겠다.
하지만 이어진 말을 들어보니 그 연유를 알 수 있었다.
“이왕 하는 김에 호북 옆 동네인 안휘까지 연결하면 좋겠다 싶어서?”
“아? 아! 알 것 같네요.”
제갈세가가 바라는 것이 뭔지 알겠다.
‘남궁세가가 안휘에 가진 막대한 영향력과 인맥이라면…… 당장 호북에서 진행하는 일보다 한결 쉽겠네? 여기에 장강을 연결한다면?’
갑자기 많은 것이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나와 달리 바로 이해하지 못한 이들이 있기에 제갈윤재는 계속 설명을 이었다.
“우리 잘난 선조님들께선 머리는 좋아도 땅에 투자하는 재능은 없으셨나 봐. 하필 말뚝을 박은 곳이 복룡산 근처란 말이지.”
풍수지리상으로 명당임에는 틀림없다.
다만 문제는.
“바로 지척에 무당파가 있죠.”
“그렇지.”
큰 나무 주변에는 작은 나무가 자라기 어렵다.
제갈세가의 체급이 작다 평할 수는 없지만, 무당파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작은 것이 맞다.
제갈세가는 오대세가에서도 말석(末席)으로 취급되는 곳이다.
반대로 무당파는 남존(南尊)이라 불리며 북숭(北崇) 소림과 함께 구파의 양대 산맥으로 통한다.
“무당파가 속세에 속한 곳은 아니지만, 다른 동네처럼 그 영향력이 산 위에만 머물러있는 게 아니잖아? 속가제자들이 알박기한 곳이 한두 곳이 아니란 말이지. 무당파 눈치 보느라 우리는 영향력을 키우는 게 쉽지 않다고.”
“백가표국에서 진행 중인 일에 발을 걸치고, 그걸 안휘까지 이어버리면…….”
“우리도 뻗어나갈 활로(活路)가 생긴다는 거지.”
제갈세가가 오대세가의 말석으로 취급당하는 가장 큰 이유다.
다른 오대세가는 모두 한 지역의 패자로 군림하고 있지만, 제갈세가는 무당파의 눈치를 봐야 한다.
“안휘 쪽으로 슬쩍 발을 넓혀도 지금의 남궁세가라면 받아들여야 하는 처지고요.”
“그렇게 말하면 너무 계산속인 것 같잖아?”
“아닌가요?”
“뭐, 어쨌든 제갈세가는 남궁세가가 정상화되기를 누구보다 바라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야. 확신만 든다면 지금 이상의 전력을 투입할 수도 있어.”
제갈세가는 가문을 대표하는 고수들인 칠종칠검이라는 강수를 꺼냈다고 했다.
여기에 도적 연맹을 박살 낼 수 있다는 확신만 있다면 제대로 된 투자를 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다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남궁세가의 입장도 중요하다.
“어찌 생각하시나요?”
“……거부하긴 어렵겠군.”
제갈윤재의 물음에 남궁조 대협은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했다.
조건부이긴 하지만, 이걸로 제갈세가와는 같은 배를 탔다.
‘그럼 이제 하북팽가와 모용세가가 남았는데…….’
하북팽가라면 방법이 있을 것도 같다.
뭐니 뭐니 해도 관중연이 주고 간 물건도 있으니까.
***
“너, 그 새끼랑 한패거리냐?”
관중연에게 받은 부러진 쇳조각을 들고 팽철이란 인물을 찾아갔더니, 무척이나 불합리한 대우를 받았다.
관중연이 이 친구에게 무슨 짓을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나는 팽철이란 녀석에게 관중연이랑 같은 놈으로 취급당한 것 같다.
억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