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260
259화 느낌이 좋지 않아
송하상단에서 벌어진 일의 여파는 컸다.
송하상단의 문제는 상계의 일이었으나, 안휘 무림의 문제와 밀접해 있는 부분들이 많았다.
다행히 무림인 입장에서 껄끄러운 관의 개입을 막을 수 있게 되었으나, 나를 비롯한 모두는 마냥 그 성과를 기뻐할 수 없었다.
화산파 장문인 자천진인의 귀천.
그것도 정체불명의 습격자들에 의한 암살.
화산파에서 터진 이 악재가 어디까지 영향을 끼칠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다.
‘구파가 폭주하기 시작하면 사천의 일도 꼬여버릴 공산이 높아.’
학의 눈길을 잡아두기 위해 짜고 치는 판을 만들어놨지만, 이를 장기간 유지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청성파 장문인인 청경진인을 설득해 판으로 끌어들이긴 했으나, 이를 대놓고 드러낼 순 없으니 언제 어디에서 문제가 터질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실질적인 내용을 파악하지 못한 채 청성파 청경진인과 곤륜파 천원진인이 제어하기로 한 아미파는 말할 것도 없다.
결정적으로 입천신마존.
그 괄괄한 양반이 언제까지 참을 수 있을지도 자신할 수 없다.
그렇게 구파의 폭주가 천마신교와의 전면전으로 이어지는 순간 사실상 학의 승리는 확정적이라고 해도 무방해진다.
그것만은 막아야 했다.
하지만 그것 말고도 골치 아픈 것이 있었다.
***
송하상단에서 건진 것이 상당했는지 희희낙락하던 관중연이 한숨을 내쉬며 휴가를 부르짖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보름만 놀고먹으면 소원이 없겠다나.
그렇게 스스로의 미래를 예언한 관중연이 떠나기 전 문뜩 내게 물었다.
“오대세가를 믿으십니까?”
“뭔 소리야?”
“오대세가는 구파와는 그 근본이 다릅니다. 안휘에 모여든 오대세가가 정의나 의리를 위해 움직였을 것이라 생각하신다면 너무 순진한 판단이라 말하고 싶네요.”
내심 짐작하고 있는 내용이긴 했다.
그들이 남궁세가를 돕기 위해 움직이고는 있다지만, 제각기 목적과 노림수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문제가 생긴다고 해도 안휘를 탈환한 이후이지 않겠어?”
이러니저러니 해도 세가는 혈족 중심의 세력이다.
체면치레나 하기 위해 어설픈 전력을 보내, 가서 뒈지라고 할 수는 없다.
뭔가 계산속이 있다고 해도 안휘의 문제를 해결한 이후일 것이다.
남궁세가야 상당한 이권을 뜯기겠지만, 안휘에서 도적 연맹을 밀어내고 세가의 안전을 확보한다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관중연은 생각이 다른 눈치였다.
“그 정도면 차라리 낫겠습니다만…….”
음흉하게 웃는 모습에 절로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아하하… 나름 실마리를 드리려는데, 분위기가 너무 흉흉하시네요. 자자, 거기 주먹에 힘 푸시고…….”
관중연이 다급히 웃으며 나를 살살 달랬다.
그리고 주머니에 담긴 뭔가를 내게 내밀었다.
“혹시 하북팽가에 팽철이란 녀석이 있다면 써먹어 보십시오.”
관중연이 내민 주머니에 담긴 것은 부러진 쇳조각이었다.
무기의 파편으로 보이는데, 이걸 어떻게 써먹으라는 건지 모르겠다.
말 안 들으면 마빡에 꽂으라는 건가?
“이걸로 뭘 어쩌라고?”
“보여주면 알게 되실 겁니다.”
은근하게 말하는 꼴이 여전히 마음에 안 든다.
다시금 나도 모르게 주먹에 힘이 들어가는데, 이를 눈치챈 관중연이 후다닥 도망쳤다.
***
당연하지만, 관중연과 나눴던 대화는 남궁한, 용풍개와도 공유를 했다.
송하상단의 일을 마무리한 뒤 다음 목적지를 향하던 중 꺼낸 이야기에 남궁한은 얼굴이 굳어졌다.
“터무니없는 이야기였나요?”
“……반대입니다.”
남궁한은 관중연이 한 이야기가 너무도 납득이 되어서 얼굴을 굳힌 것이었다.
“오대세가끼리는 상당히 끈끈한 관계라고 들었는데요.”
“서로 이득이 될 때라면 그랬지요. 하지만 지금은 확신할 수 없네요.”
고개를 젓던 남궁한이 무슨 생각을 떠올렸는지 쓴웃음을 지었다.
“솔직히 실제로 그런 상황에 닥쳤을 때 다른 세가를 야박하다고 타박할 수도 없고요. 만약 아버지가 살아계시고, 다른 세가가 지금과 같은 화를 당했다고 한다면…… 아마도 남 보기 부끄러운 짓을 많이 하셨을 겁니다.”
“흥! 자네가 그놈 같은 성격이면 나도 이렇게 땀 빼고 돌아다닐 일이 없지.”
아들임에도 아버지에 대한 평가가 야박하다.
그에 동조하는 용풍개의 평을 들어보면 아무래도 전대 남궁세가 가주는 확실히 대인이라 칭하기에는 곤란한 양반이었나 보다.
‘곤란한데…….’
구파를 중심으로 일어날 폭풍을 생각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도적 연맹을 몰아내고 안정을 되찾아야 한다.
자칫 일이 늘어지게 될 경우 매우 높은 확률로 불똥이 튀게 될 것이고, 그 종착점 중의 하나가 천마신교가 될 것이다.
한데 오대세가에서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고 하니 환장할 노릇이다.
“이걸 믿어도 되려나?”
무의식중에 손에 잡힌 쇳조각을 만지작거리며 팽철이라는 이름을 다시금 떠올렸다.
“……어째 느낌이 영 더러운데.”
소개해 준 작자가 그놈이다 보니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
본래 남궁세가의 본진은 안휘 남부에 있는 황산 인근에 있었다.
아마 지금은 도적 연맹이 점거해서 잘 써먹고 있을 것이다.
본가를 털려버린 남궁세가의 잔존 세력은 안휘 중부에 위치한 장봉 인근에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남궁세가가 한창 영향력을 넓힐 때 전진기지처럼 쓰던 곳이라고 한다.
다른 오대세가의 전력들 역시 이곳으로 모이기로 했다는 것이 남궁한의 설명이다.
말을 타고 며칠은 달려야 할 곳까지 쉬지 않고 움직이는 가운데, 나는 의외의 상황을 눈에 담았다.
“생각보다 안정적이네요.”
남궁세가는 수백 년간 안휘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 정도로 강한 세력이 위세를 보이면, 그 외의 다른 세력이 자리 잡기가 힘들어진다.
거목 주변에 작은 나무들이 자라기 힘든 것과 같은 이치다.
한데 그 거목이 꺾여 넘어갔다. 사실상 안휘 대부분은 공백 지대나 다름이 없다.
남궁세가의 영향력을 줄이겠다고 날뛰는 도적놈들은 물론이요, 한탕 해보겠다는 어중이떠중이들이 몰려들어도 이상할 것이 없다.
하물며 군부는 기묘한 침묵을 보이며 움직이지 않고 있다.
한데 그런 것 치곤 치안이 안정되어있다.
도적 연맹의 잡것들이 통 보이질 않았다.
“남궁 소협의 노력이 빛을 발한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남궁한은 내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그랬으면 좋겠습니다만…… 그 정도로 활약하진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어딘가 난처함이 감도는 웃음이다.
도적 연맹의 세력권이 된 곳에서 옥쇄(玉碎)를 각오하고 날뛰던 젊은 영웅의 행보와는 거리가 있는 모습이다.
“아마도 도적 연맹의 움직임에 변화가 생긴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확인할 필요가 있겠네요.”
남궁한은 차분하게 앞뒤를 살폈다.
눈앞의 상황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냉정한 판단을 내렸다.
‘많이 변했네.’
처음 보았던 남궁한과는 많은 부분에서 달라졌다.
구김 없는 모습으로 천연덕스럽게 스스로의 성과를 자축했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에 반해 지금은 한 무리를 이끄는 우두머리로서의 관록이 묻어났다.
성장했으나 뭔가 어색한 느낌이다.
반면 이를 딱딱하다 여긴 것인지 용풍개가 고개를 휘휘 저었다.
“덕담을 들었으면 좋게 받아들이며 즐길 것이지, 뭐 그리 딱딱하냐?”
“아, 아아…….”
용풍개 딴에는 처진 분위기를 회복시킬 기회라 여긴 모양이다.
남궁한도 그제야 그 부분을 떠올렸는지 아차 하는 모습이다.
“아 거, 우리 대장 까지 마십쇼, 용풍개 선배.”
“맞슴다. 가뜩이나 피곤한 양반이 피곤하게 사는데, 선배까지 그럼 곤란하지 말임다.”
하지만 되레 남궁세가 무인들은 남궁한의 편을 들었다.
그들에게서 남궁한을 향한 깊은 신뢰가 느껴졌다.
‘안쓰러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
같은 세가의 사람들이니 과거 남궁한에 대해서는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랬기에 남궁한의 괴로움과 노력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보아왔을 것이다.
상처 입은 새끼를 지키는 어미마냥 남궁세가의 무인들은 남궁한을 중심으로 단단하게 뭉쳤다.
“허, 참!”
생각지도 못한 반응에 용풍개는 혀를 차며 발을 뺐다.
하지만 그렇다고 기분 나쁜 기색은 아니다.
깊은 신뢰로 다져진 사내들이 뭉쳐 단합하는 모습은 당사자들은 물론 지켜보는 사람들마저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다.
그 신뢰의 중심부에서 남궁한이 이를 악물었다.
더 잘하고 싶은데 능력이 부족함을 절실히 느끼고, 부족한 능력으로 인해 신뢰에 부응할 수 없어 미안하고, 미안하기에 더 보답해주고 싶고.
감정이 넘쳐흐르는 것을 막기 위해 눈에 힘을 주는 그 모습이 꼭 울음을 참는 것처럼 보였다.
‘단 한 명도 잃고 싶지 않겠지.’
나 역시 하나의 세력을 이끄는 자로서 남궁한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느껴졌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남궁한은 더욱 성장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 순수한 열의를 양분으로 삼아 어디까지든 자라날 것이다.
향후 남궁세가의 미래가 기대될 정도다.
‘나는 어떨까?’
부족하기론 매한가지다.
사부님들에 비해 모자란 제자이고, 이들 못지않게 강한 신뢰를 품은 이들에게 부응할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다.
그렇기에 지금 남궁한의 모습이 남의 일 같지 않다.
문뜩 어깨가 무거워지는 느낌이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것일까?
꾸욱!
함께 말을 타고 있던 이화가 허리를 감싸고 있는 팔에 힘을 주었다.
언제 어느 순간에도 내 옆에 있고자 하는 아이.
허리에 닿아오는 여린 팔이 무거워진 어깨의 짐을 덜어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문득 이화가 눈을 찌푸릴 정도로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꼭 해봐야겠다.
***
한참을 달리자 커다란 장원이 눈에 들어왔다.
장원의 경계에는 여러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모용세가. 하북팽가. 제갈세가.”
“사천당가 빼곤 다 모였군.”
특히 모용세가의 깃발이 많이 보였다.
각 가문을 상징하는 깃발은 멀리서도 보일 만큼 각자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남궁세가의 본거지임에도 남궁세가의 존재감이 흐릿하게 느껴질 정도다.
‘느낌이 좋지 않아.’
관중연에게 들은 말이 있는 탓인지, 저 깃발의 존재감이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객(客)이 주인을 누르고 있는 모습이랄까.
굳이 저렇게 많은 깃발을 세워 놓는 것이 남궁세가에게 위세를 부리는 것처럼 보였다.
‘불협화음이 나올 수밖에 없겠어.’
이런 상황에서 뜻이 일치하지 않는다면 어찌 될까?
일이 순탄하게 풀릴 것 같지 않았다.
“깃발이 많군요.”
나와 같은 생각인지 남궁한의 표정이 어두웠다.
“뭐, 그만큼 많이 왔다는 의미이지 않겠는가.”
“그런 거면 좋겠습니다만.”
용풍개는 나름 좋은 방향으로 해석을 했지만, 스스로도 자신의 해석을 신뢰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역시나 장원에 들어서는 순간 불길한 예감은 현실이 되는 것 같았다.
‘점령군 같네.’
꽤나 머리가 아플 것 같다.
마음의 평화가 필요하다.
“아, 이화야. 잠깐 이리 와 줄래?”
“예.”
내 부름에 이화가 아무런 의심 없이 순수한 얼굴로 쪼르르 내 옆에 섰다.
그리고 내 손이 움직였다.
쓰담쓰담.
부비부비.
“……저기요?”
“왜?”
쓰담쓰담.
부비부비.
“우우…….”
이화가 눈을 잔뜩 찌푸렸다.
이화의 뺨이 찐빵처럼 부풀어 올랐다.
만족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