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280
279화 낚았다!
알려지기로 종남파는 군문에서 퇴역한 군인이 도문에 몸을 담으며 시작되었다.
그래서인지 종남파 무공은 도가적인 사상을 기반으로 한 문파들이 자기 수양에 중점을 둔 것과 달리 실전적인 성향이 짙다.
무겁되 진중하며.
세밀하되 반듯하다.
솔직히 찌르기만으로 파편을 쪼갠 건 꽤 멋있긴 했다.
파편이 아니라 우모침 같은 암기들을 던졌어도 모조리 반으로 쪼갰을 것이다.
바늘 하나 들어가지 않을 촘촘함.
그렇기에 자신의 영역을 밀도 있게 구축한다.
어지간한 고수라도 검의 간격에 들어가는 순간 손써볼 틈도 없이 벌집이 될 것이다.
‘허를 찔러 이길 상대는 아니야.’
세분 사부님들의 무공을 고루 익힌 나는 여러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중에서 특히 장삼풍 사부의 청경과 천마 사부의 공감각이 합쳐지면 어지간한 무공이라도 꿰뚫어 볼 수 있다.
낱낱이 헤집은 허점을 파고들면 된다.
하지만 역시나 썩어도 구파의 일좌.
딱히 겉으로 드러나는 허점이 없다.
‘뭐, 없으면 만드는 거지.’
이런 상대는 정공법이 답이다.
정면에서 부딪쳐 허물어트린다.
다행히 길은 있다.
간격 싸움.
창을 쓰는 자가 손이 닿는 거리에서 불리하듯, 모든 무공은 저마다 유리한 거리가 있다.
그것이 간격이고, 내가 십분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이다.
무를 겨룬다는 것은 결국 간격 싸움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내 영역과 상대의 영역이 부딪치는 전쟁인 것이다.
‘무당파가 남존이라 불리며 존중받는 이유를 보여주지.’
각이 없는 부드러운 투로가 내 손끝을 타고 그려졌다.
영역을 구축하고 지키는 것이라면 무당파를 따라올 무공은 천하에 몇 없다.
태을분광검의 쐐기 같은 검기가 쏟아지는 가운데.
타앗!
물러서기만 하던 내 몸이 앞으로 밀고 들어갔다.
육영기의 검세가 제 위력을 발휘하는 영역으로 발을 들인다.
영역이 겹친다.
아직은 상대가 일방적으로 유리한 거리에서 손이 회전한다.
피슛!
날카로운 소리가 내 옆을 스치고 지나간다.
‘히야! 오싹한데.’
단단한 청석도 두부처럼 꿰뚫는 검기가 손가락 한 마디 차이로 스쳐 지나가는 느낌은 꽤나 삼삼했다.
벼락이 스쳐 지나가는 느낌이다.
그래 봐야 빗나간 공격일 뿐이지만.
그렇기에 웃을 수 있다.
공격이 빗나간 것은 우연이 아니다.
내가 비튼 거다.
반대로 육영기는 얼굴을 굳혔다.
본인도 알았을 것이다.
방금 공격이 빗나간 것이 아니라 빗나가게 만든 거란 걸.
보통이라면 어린놈이라든가, 시건방지다는 말로 깔아뭉갰을 자가 입을 다문다.
“갑자기 과묵해지십니다?”
“건방진 놈!”
슬쩍 긁어줬더니 발끈하며 다시 한번 검을 세운다.
“운이 좋은 놈이구나!”
검에 어리는 기운이 짙어진다.
마치 검강(劍罡) 같다.
하지만 기운을 가늘게 응축시킨 것일 뿐, 온전한 검강지기라 할 순 없다.
그 이유는 어렵지 않게 짐작이 가능했다.
그의 무위라면 검강지기를 뽑아내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나, 촘촘함을 자랑하는 검세에 검강지기를 담아 뿌렸다간 아무리 내공이 심후해도 금방 바닥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내공이 무한한 것도 아닌 이상 당연한 일이다.
저비용 고효율.
실전적인 성향이 짙은 종남파 무공의 특성을 생각한다면 지극히 합리적인 운용법이다.
“어디 이번에도 운이 따를지 보자!”
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받아보라는 도발에 나는 다시 한번 앞으로 나아갔다.
솨솨솨사!!
기다렸다는 듯이 검기가 한여름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하나하나가 사람을 가볍게 꿰뚫을 폭우 속으로 몸을 던지는 느낌은 짜릿함 그 자체다.
단애절벽 위에 놓인 칼날 위를 달리는 느낌이다.
온몸의 감각이 곤두선다.
목을 노리고 파고드는 검날의 예리함이 느껴진다.
철심처럼 곧고 서늘한 검기를 비튼다.
파라락!
정면에서 폭우가, 옆으로 폭풍이 휘몰아친다.
검기 하나하나를 비틀어 흘려낸다.
힘의 방향을 틀어버리는 무당파의 이화접목, 그 진수를 보여준다.
종이 한 장 차이로 검기를 흘려낼 때마다 다리 사이에서 묘한 감각이 치솟았다.
‘사부님, 보고 계십니까?’
물방울을 손 위에 올려놓고 굴릴 만큼 섬세함이 필요한 수법을 숨 쉬듯 자연스럽게 해냈다.
태극권 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했던 둔재가, 무당파 무공의 진수를 보이고 있다.
“허어!”
“저런 화경(化勁 : 힘을 흘려내는 수법)이라니…….”
명숙들의 탄성이 들려온다.
정면에 있는 내 시점에서야 소낙비를 하나하나 비틀어 흘려보내는 것이지만 명숙들이 볼 때는 바위에 부딪힌 물이 옆으로 비껴 흐르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분명 쏟아지는 검기가 내게 닿는 순간 휘어지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이젠 밀어버릴 차례다.
쏟아지는 공격을 모조리 흘려내며 앞으로 더욱 나아갔다.
상대의 영역 깊숙한 곳을 장악한다.
“흡!?”
밀리기 시작한 상대의 입에서 다급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땅따먹기로 비유하자면 내가 상대의 영역을 침범해 점령한 것이다.
종남파 장로 육영기가 더욱 사납게 검을 찔러오지만, 오히려 한 걸음 더 나간다.
간격이 더 좁혀진다.
검을 든 자가 유리했던 간격에서 이제 손이 닿는 자가 유리한 간격이 되었다.
‘자, 이제 어쩔 거냐?’
사실 대응하는 법은 간단하다.
뒤로 물러나 다시 거리를 벌리면 된다.
그러라고 배우는 것이 보법이다.
‘하지만 그러긴 싫지?’
큰소리 뻥뻥 쳐 놨으니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고 싶을 것이다.
체면 때문에 물러서서 수세를 인정하는 모습을 보이기 싫은 것이겠지.
하지만 체면을 생각한다면 그래선 안 된다.
그게 오히려 병신 짓이다.
잡아먹어달라고 딱 버티고 있는데 안 먹으면 실례다.
치고 들어간다.
한층 더 사나워진 검세가 나를 반긴다.
“구궁신행검법?”
지켜보던 명숙들의 탄성으로 바뀐 검세를 알아챌 수 있었다.
“헤에?”
태을분광검이 뻗어나가는 섬광이라면, 구궁신행검법은 방위를 논하는 검이다.
구성에 중궁과 팔괘를 팔문에 배합하여 운행하는 아홉 방위를 점하며 몰아가는 무공이다.
구궁신행검법의 요체다.
하지만 이미 영역을 구축한 내겐 효과가 없다.
다 보인다.
요체가 다 보일 정도로 낱낱이.
보고 느낄 수 있는 것은, 피하고 흘릴 수 있다.
사부님들께 그렇게 배웠다.
종남파 정수인 검법이 내 두 손에 해체되었다.
화경으로 흘리고 비튼다.
이자의 검은 내 영역에 개입하지 못한다.
그저 무던히 비껴 나갈 뿐이다.
내 영역 안에서 나를 지키고 상대를 흩트린다.
명숙들의 눈에는 내가 종남파의 검법을 갈가리 찢는 걸로 보일 것이다.
내가 간격 안에 들어오도록 둬선 안 되었다.
무당파 무공은 태극(太極)을 숭앙(崇仰)한다.
천지만물을 음과 양으로 나누고 그 균형과 조화를 탐구하는 것이 무당파 무공의 요체다.
균형과 조화를 안다는 것은 어찌하면 그것을 무너트리는지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이자의 무공을 모조리 비틀어 흘려내고 있는 것처럼.
단단하게 구축된 벽을 흩어 길을 연다.
마침내 상대의 영역을 잡아먹고, 간격을 제압한 내 손끝이 상대에게 닿았다.
투웅!
“허엇!”
육영기의 몸이 허공에 붕 떴다.
빙판에서 거하게 넘어지는 사람처럼 발끝이 하늘을 향해 차올랐다.
누가 보면 그저 손끝이 살짝 닿았을 뿐인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닿으면서 흔든다.
흔들린 것은 무너트릴 수 있다.
무당파 무공의 진수를 안다면 새끼손가락 하나로도 사람을 넘어트릴 수 있다.
소낙비처럼 쏟아지는 검기조차 비틀어버린 재간이 사람 몸에서 이뤄진다고 생각하면 된다.
허공에 헛발질을 하며 나뒹군 것도 그런 이유다.
“이, 이놈이!”
흙먼지를 한껏 들이마신 육영기가 몸을 튕겨 올렸다.
철판교의 수법으로 몸을 다시 세운다.
나는 튀어 오르는 육영기의 몸에 다시 손을 댔다.
콰당!
“큭!”
공깃돌 다루듯 휘두르고 휘저어 처박는다.
어떻게든 몸을 일으키려 하지만, 그때마다 바닥에 내다 꽂았다.
“계속 구르시게요?”
“살(殺)!”
딱 그에게만 들릴 정도로 전달한 도발에 폭발한 육영기의 몸에서 살기가 치솟았다.
누워있는 채로 사방에 검을 휘두르며 일어나려 하니 발버둥치는 것처럼도 보였다.
기세가 흉험한 데다 난잡한 검의 궤적을 타고 수십에 달하는 검기가 일거에 일어나니 보기에는 대단하다.
‘흥! 보법이 뒷받침되지 않은 무공으로 뭘 하겠…….’
그랬기에 우습게 보았다.
그런데 일진광풍을 일으키는 검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번뜩이는 검강지기 한 줄기가 내 감각을 자극했다.
“……음?!”
뜨끔한 느낌이 드는 공격이다.
합이 맞았다고 할까?
공격적으로 나섰다면 손뼉이라도 친 것처럼 합이 맞는 궤적이었다.
내가 장삼풍 사부에게 배운 무당파 무공은 수신(守身)을 우선한다.
수신으로 완벽을 추구하여 스스로의 영역을 구축하고 나아가 영역으로 부순다.
그에 반해 당금 무당파 무공은 공격을 우선하기에 문제가 생겼다고 장삼풍 사부가 한탄하셨다.
스스로 영역 앞에 나서려 하니 완벽이 깨지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육영기가 휘두른 검격은 수신을 우선하지 않았다면 맥을 끊고 몸을 가를 수 있는 공격이었다.
이전에도 이 감각을 느꼈었기에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파훼법.
무당파 무공의 파훼법을 알고 있던 자들의 검로다.
‘드디어 꼬리를 드러냈군.’
정신 못 차리게 압박을 가한다면 뭔가 허점을 드러낼 것이라 여겼는데 딱 생각한 대로 됐다.
육영기는 난잡하게 검기를 몰아치는 가운데, 딱 하나의 궤적으로만 검강지기를 뿌렸다.
그만큼 회심의 공격이었다.
무당파 무공을 몰라도 눈썰미가 좋다면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을지도 모를 정도로 어색했다.
반대로 무당파 무공에 정통한 사문의 제자라면 어떨까?
나는 허도진인의 표정을 살폈다.
내가 바라는 표정이 보였다.
***
“완전히 가지고 노는구려.”
육영기를 넘어트리더니 장난감처럼 굴리고 있는 연청운을 보며 구파 장로들이 혀를 내둘렀다.
약관이나 되었을까 싶은 청년이 구파 장로를 가지고 논다니.
누군가가 이야기했다면 코웃음을 칠 일이다.
그 농담도 안 될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러다 육영기가 사납게 검기를 뿌리자 한숨과 함께 혀를 찼다.
“화가 많이 났나 보오.”
검에 살기가 짙다.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이건 죽일 생각으로 검을 펼치는 것이다.
앞서 보인 추한 모습들도 못 봐주겠는데, 어린 아해와의 비무에서 저런 살수라니.
“어이구! 그나마도 어설프기까지…….”
게다가 그런 추한 꼴까지 보이는 와중에 엉뚱한 곳으로 회심의 일격을 날린 검격은 눈 뜨고 못 봐줄 정도였다.
구파 망신 다 시켰다.
혀를 차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그러던 중 공동파 장로가 허도진인이 있는 곳으로 눈길을 돌렸다가 얼굴을 굳혔다.
“……누구 하나 잡으실 것 같은 얼굴입니다?”
이대로 두면 정말 육영기의 목을 날릴지도 모를 정도로 허도진인의 눈빛은 무서웠다.
다른 구파 명숙들 역시 허도진인의 표정을 보고 얼굴을 굳혔다.
“내가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가?”
“당장 누가 죽어도 이상하지 않겠습니다그려.”
“발본색원…을 위해서라도 지금은 때가 아니지. 다만, 지금 내가 정말 화를 내고 있단 것을 잊지 말길 바라네.”
“으음?”
공동파 장로는 허도진인의 말에서 뭔가 의도가 있음을 읽었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 봤다.
종남파에 뭔가 있다는 추론에 공동파 장로의 표정이 무거워졌다.
이내 공동파 장로뿐만 아니라 다른 구파 명숙들 역시 뭔가를 곱씹으며 비슷한 표정으로 변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