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279
278화 도발(挑發)
허도진인께선 안휘에서 퍼져나가기 시작한 내 새로운 별호를 알고 계셨다.
무종.
과연 여기 있는 다른 분들은 듣지 못했을까?
‘아니겠지.’
소문이라는 녀석이 어디 사람을 가려가며 선별적으로 들어가겠는가.
그렇다면 내 나이가 어리다는 것 역시 알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어린놈, 핏덩이 운운한 것은 작정하고 시비를 걸었다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무당파까지 싸잡아서.
‘이화가 없어서 다행이네.’
무려 구파의 회동이 있는 자리다.
다른 곳도 아니고 구파의 양대 기둥 중 하나인 무당파의 중심부다.
지금까진 이화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았지만, 여기라면 안심할 수 없다.
자칫 큰 문제로 이어질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기에 이번만큼은 잠깐 떨어져 있기로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무척이나 잘한 결정이다.
장강에서 도적 연맹과 싸운 이후 나에 대한 광신이 더욱 짙어진 이화다.
저 양반 말에 발끈해서 힘을 썼다간 곤란한 상황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그건 그렇고 엄청 삐져 있을 텐데, 뭐로 달래야 하나…….’
이화를 생각하니 걱정이 앞선다.
뭐, 그건 추후의 문제고, 지금 당장은 눈앞에서 길길이 날뛰는 종남파 장로를 해결하는 것이 먼저다.
“어린놈이 감히! 네가 종남파를 무시하는 게냐!”
“무시라뇨. 저는 제가 자격이 있다 주장하였고, 그를 부정적으로 보시는 ‘노 선배’께 증명해보실 생각이 있는가를 물었습니다만?”
상대는 종남파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화를 내고 있다.
사실 구파의 회동이 있는 자리에 종남파를 대표하여 온 것이니 어느 정도는 인정받을 수도 있는 주장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는 뭐라고 말을 하던 좋은 결과를 얻어내긴 어렵다.
그래서 ‘노 선배’라는 말로 구분을 지은 것이다.
종남과 이 늙은이 사이를 구분해 짚어낸 이상 상대는 이야기의 주체가 어디인지를 스스로 선언해야 한다.
그리고 어떤 대답이 나오던 나는 슬쩍 발을 뺄 수 있는 외통수다.
‘자아! 낚여주면 좋겠는데…….’
하지만 내 기대와 다르게 종남파 장로는 걸려들지 않았다.
“크흐흠!”
화가 많이 난 모습인데, 분노에 흔들려 선을 넘진 않았다.
그렇다고 드러낸 분노를 얌전히 내려놓으면 체면이 상한다고 느꼈는지 어떻게든 다음으로 이어질 수를 끄집어냈다.
“네가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자격이 있다 했겠다?”
“예.”
“그 말인즉슨, 네 격이 나나 여기 있는 명숙들과 동등하다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이냐! 존장에게 무례한 것도 정도가 있지! 시건방진 것 같으니!”
내가 자격이 있다 말한 것을 배분의 격과 연결하여 나를 책망한다.
은근히 다른 문파의 명숙들을 끌어들이며 판을 키웠다.
나로서는 실소가 나올 대응이다.
장고(長考) 끝에 악수(惡手)라는 격언의 전형이라 하겠다.
일견 그럴싸하긴 하지만 저 대응은 실수다.
“그 부분은 확실히 잘못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를 인정하……!”
“저는 노 선배의 성함도 모르거든요.”
“뭐라!”
“어느 분이신지도 모르는데 본의 아니게 격이 같다 들으셨다면 잘못이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풉!”
흥미진진하게 주시하고 있던 구파의 어른 중 한 분이 참지 못한 웃음을 흘렸다.
입고 있는 도복으로 보아 공동파의 어르신인 것 같다.
나와 대치하고 있던 종남파 장로가 씹어 먹을 듯한 눈으로 노려봤지만, 공동파 어르신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사과했다.
“허허! 미안하외다. 사레가 들려서 말이오. 어휴~ 젊을 적엔 이런 일이 없었는데. 나이를 먹는다는 게 참으로 서글픈 일이외다. 으허허!”
은근히 돌려 까신다.
왠지 그 성격이 눈에 보이는 것 같다.
하지만 덕분에 다음 수를 넣을 기회를 잡았다.
“존장께 무례했다면 죄송합니다. 허도진인께 하시는 모습을 보니 그래도 되는 편한 자리인 줄 알았거든요. 경험이 얕아 그런 것이니 너그러이 봐주시길 바랍니다.”
“이잇……!”
새파랗게 어린 애송이와 나이 지긋한 장로는 같은 잘못을 해도 책임져야 할 무게가 다른 법이다.
하물며 나는 무당파 제자로 알려져 있다.
치기 가득한 젊은이가 사문의 최고 존엄이 받은 무례를 참지 못하고 날뛴 것으로 포장될 수 있다.
하지만 저 양반은?
그냥 추한 거다.
방금 공동파 장로분의 말처럼.
“한 가지 바로잡을 부분이 있군.”
그런 가운데 웃음이 만연하신 허도진인께서 나서셨다.
“사천에서 저 아이에게 내 송문고검을 내린 바가 있네. 젊은 시절 스승께 받은 낡은 검이라 수리라도 맡겼는지 지금은 들고 있지 않은 모양이네만.”
“허어!”
“그렇다는 건…….”
“헐! 저 아이가 내 사제(師弟)?”
‘어라? 어째 장문인의 목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아무튼, 추가타를 넣어주신 허도진인 덕분에 종남파 장로의 주장은 무의미해졌다.
사실상 내 배분은 구파 장문인들과 격을 나란히 할 정도가 되어버렸다.
“연 소협은 사문의 웃어른이신 신승께서 직접 명예 제자로 삼으셨소.”
이번엔 소림이 나섰다. 처음 뵙는 분이지만 이마에 소림의 계를 찍은 노승께서 뜬금없는 이야기를 추가하셨다.
소림의 명예 제자가 된 것은 사실이지만, 명예 제자도 사승 배분을 받았던가?
다시금 좌중이 소란스러워졌다.
“이거야 원…….”
“그럼, 이거 배분이 어떻게 되는 것이외까?”
허도진인이 검을 내렸다는 말 못지않은 충격이 퍼져나갔다.
“정식 제자는 아닌 만큼 권한은 없으나, 신승께서 명예 제자로 삼으신 권위는 있으니 배분을 놓고 본다면 내게도 웃어른이 되오이다. 육영기 그대가 감히 격(格)을 논하며 깎아내릴 분이 아니외다.”
소림의 엄중한 선포가 육영기라 불린 종남파 장로를 겨냥했다.
그러는 소림의 노승께서 묘한 시선을 허도진인께 보냈다.
뭔가 눈싸움이라도 하는 것 같은데…… 착각이겠지?
아무튼, 상황이 이렇게 되자 육영기라 불린 종남파 장로는 완전히 몰려버렸다.
모멸감에 부들부들 떨며 나를 노려본다.
‘저거 터지겠네……. 어?’
사람이 자기감정을 주체 못 할 때의 눈빛이다.
그리고 그 밑바닥에서 나는 익숙해지고 싶지 않은 것을 읽었다.
역겨운 느낌.
오물이 담겨 있는 단지의 뚜껑이 들썩이는 느낌이다.
나만이 느낄 수 있는 그 기색이 서서히 짙어졌다.
‘받았군…….’
처음에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는 것은 정종무공을 익힘으로써 뚜껑을 덮듯 누르고 가릴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방법이 있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위장할 방도가 있다는 의미이다.
문제는 이를 구체적인 증거로 공표할 방도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수확은 있다고 해야 하려나…….’
종남파를 대표해서 온 장로급 인사가 혈교의 대법을 받았다.
현재 종남파의 상태를 미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종남파는 완전히 선을 넘었다.
썩은 과일이 멀쩡한 과일들까지 썩게 만들기 전에 지금이라도 구파에서 격리해야 한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는 중에 종남파 장로 육영기가 억지를 부렸다.
“흥! 배분이 높다 하여 그것이 자격이 되는 것은 아니다!”
격이니 수준이니 따지다가 세가 불리해지니 판을 흩트린다.
“어이구… 이건 좀…….”
“저 양반 왜 저러나…….”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던 다른 구파 장로들이 종남파의 행동에 혀를 찼다.
알아서 판을 깔아주면 나야 좋다.
앞서 개인과 종남파를 분리하여 예봉을 피했던 것과 달리, 이젠 이 건을 종남파 전체에 대한 문제와 의문이 되도록 유도해야 한다.
눈에 보이는 증거가 없으니 바로 밝혀낼 순 없겠지만, 적어도 종남파가 정상이 아니라는 포석은 깔아야 한다.
“시험해 보시겠습니까?”
“오냐! 사해일검이 네 자격을 시험해 보겠다!”
처음에는 선을 넘지 않으려 자제심을 보였지만, 한 번 선을 넘은 뒤라 그런지 이젠 거침이 없다.
“삼양현의 연청운. 시험을 받겠습니다.”
“흥! 무종이라 하진 않는구나!”
“그런 거창한 별호를 제 입으로 떠들 만큼 낯짝이 두껍진 못해서요. 아, 그런데 노 선배 별호가 뭐라 하셨죠?”
“이이익!”
사해일검.
흔히 무림인들끼리는 ‘사해가 동도’라는 말을 하곤 한다.
여기서 말하는 사해라는 개념적인 의미는 중원 무림을 일컫는다.
즉, 사해에서 첫 번째 검이라는 별호를 풀어 해석하면 천하제일검(天下第一劍)이라는 의미가 된다.
무종이란 별호 못지않게 거창한 별호다.
그걸 비꼬았더니 화를 내는 것이다.
저렇게 늙으면 안 된다는 표상 같은 위인이다.
“종남의 도량은 하늘을 덮을 만하나! 검에는 눈이 없으니, 겁 없는 애송이는 결과를 원망치 마라!”
최소한 사지 중 하나는 잘라놓겠다는 말을 잘도 돌려 말한다.
“드넓은 사해에서도 첫 번째 검이시라니, 그 별호가 사실이라면 별일이야 있겠습니까?”
손속을 조절하지도 못하면서 사해일검이라는 별호를 쓰는 거냐고 깠더니 입을 꾹 다문다.
대신 검이 움직였다.
날카롭다!
팍!
예리한 것이 다가오는 감각에 몸을 뒤로 물리니 조금 전 서 있던 자리에 깊은 구멍 하나가 만들어졌다.
‘호오?’
검기를 화살처럼 쏘아낸 흔적인데, 단단한 청석으로 만들어진 바닥에 만들어진 구멍 자국이 무척이나 깔끔하다.
보통 바위나 돌들은 강한 힘이 외부에서 들어왔을 때 말끔하게 절단되기보단 깨지거나 부서지게 된다.
한데 검기에 뚫린 바닥은 마치 유연한 두부를 송곳으로 찌른 것 같았다.
뻗어내는 힘에 흐트러짐이 없다는 의미다.
화살이 곡선을 그리며 날아가듯, 검기 역시 멀리 뻗어나갈수록 힘이 떨어진다.
하지만 육영기의 검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기운에 일관성이 있었다.
검기 자체가 단단하게 벼려진 화살과 같다.
이런 검기가 소낙비처럼 쏟아진다면 어지간한 실력으로는 크게 낭패를 볼 것이다.
인성이라면 몰라도 무공만큼은 구파의 장로답다.
“잘 봤느냐?”
육영기가 의기양양하게 기수식을 취했다.
“각오하는 것이 좋을 게다!”
직선적인 검세가 수십 가닥으로 나뉘어 뻗어온다.
조금 전과 같은 단순한 찌르기가 아니다.
제대로 된 형과 식을 갖춘 절기다.
그 검세를 따라 검기가 뻗었다.
“태을분광검이라…….”
공동파 장로가 육영기가 펼치는 검을 보며 혀를 찬다.
능운금광보를 펼치며 공격을 피하자 내가 있던 곳으로 구멍이 촘촘하게 뚫리며 따라붙는다.
“허허! 신묘한 보법이외다.”
“금강부동신법인가 싶지만, 그렇다고 보기엔 발놀림에 허허로움이 있구려.”
“얼핏 보면 제운종 같기도 하오만, 정중동의 움직임이라…….”
육영기의 무공을 단번에 파악한 것과 달리 내가 펼치는 보법은 파악하기 어려운지 구파 장로들의 품평이 오간다.
그런 주변의 감탄과는 별개로 건물의 벽이며 가구들에 구멍이 뚫린다.
“아이고, 이러다 살림살이 다 부서지겠네.”
일단 밖으로 나가자는 생각에 뒤로 물러나는데 육영기의 얼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이익! 허장성세인 거 다 보인다!”
일부러 여유를 부리는 것으로 들린 모양이다.
본의 아니게 제대로 도발한 것이 되었다.
기왕 불난 집인 거 부채질 한번 해보자는 생각으로 구멍이 난 가재를 뜯어 던졌다.
파파팟!
강하게 내공을 실어 던진 가재 파편이 허공에서 수십 개로 쪼개졌다.
“같잖구나!”
단순히 쳐내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고차원적인 검 놀림이다.
아무리 검을 다루는 감각이 뛰어나더라도 저런 힘과 속도를 감당할 토대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과연 그 기반은 어디에서 왔을까?
영혼을 판 대가. 혈교의 대법을 통해 얻은 재능의 일각인 것일까?
저 경지가 부정한 짓의 대가라 생각하니 절로 눈살이 찌푸려진다.
‘어떻게 해야 최대한 엿을 먹이며 종남파에 대한 의심을 품게 만들 포석을 둘 수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