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296
295화 일기당천(一騎當千)
허공을 밟으며 위로 솟구친 현재 내 눈높이는 어지간한 산봉우리 꼭대기 수준이다.
높은 곳에 경기를 일으키는 사람이면 진즉에 기절했을지도 모르겠다.
청조에 매달려서 하늘에 떠 있을 때와는 느낌이 또 달랐다.
발에 밟히는(?) 것이 있음에도 허리 아래가 무척이나 허전했다. 아무래도 아래쪽만 보고 있어서 더욱 그런 것 같다.
대신 시야만큼은 확실하게 확보했다.
넓게 무당산의 정경을 훑자 거대한 집단의 흐름이 명확하게 구분되었다.
“호각(互角)이라…….”
제갈세가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의문의 세력과 격돌 중이다.
제갈세가가 오대세가의 말석이라고는 하나 정파를 대표하는 기둥이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제갈윤재가 제대로 전달을 했다면 상당한 전력을 끌고 왔을 것인데, 그런 제갈세가와 대등하게 맞선다는 것은 벽궁도장이 불러들인 외부 세력 또한 보통이 아님을 의미한다.
게다가 무당산에 들어온 것은 제갈세가와 격돌하고 있는 세력만이 아니다.
다른 세력이 하나 더 끼어 있다.
제갈세가에 발이 묶인 자들 외에 우회하여 무당파를 향해 진격하는 일련의 집단이 보였다.
무당파 내에 깔려 있던 함정과 음모들이 깨부숴졌다는 것을 모르니 어떻게든 내응을 기대하며 전력의 일부를 할애한 모양이다.
이를 달리 해석하자면 무당파가 조금만 혼란스러워도 어느 정도 타격을 입힐 자신이 있다는 이야기다.
고수들이라는 의미다.
“무섭네…….”
제갈세가와 호각을 이루는 전력도 만만치 않은데, 그와 별도로 우회시킨 전력만으로도 무당파를 위협할 정도다.
새삼 다시 한번 느끼는 것이지만, 벽궁도장의 계획을 훼방 놓지 않았다면 어쩌면 무당파가 박살 났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정도면 제육천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사파의 여섯 하늘.
구파일방 오대세가가 정파를 대표한다면, 제육천은 사파를 대표하는 곳이다.
최악의 가정 하나를 떠올리며 혀를 차는 사이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몸이 아주 도화지구나. 대가리까지 빡빡 밀고, 문신을 박아 넣었어. 소림에서 파문당한 파계승 놈들인가?] [소림은 저런 병신들은 취급하지 않는다네.]거리가 가까워지자 멀리서 보이던 놈들의 면모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온몸의 털을 모조리 밀어버린 자리로 빼곡하게 용 문신이 새겨진 자들이다.
머리는 물론 얼굴까지 문신으로 뒤덮여 있어 미간을 찌푸릴 때마다 문신으로 새겨진 용이 꿈틀거리는 것처럼 보인다.
“흑룡회(黑龍會).”
최악의 가능성이 현실이 되었다.
제육천의 하나.
입회하면 온몸에 빼곡히 문신을 새기는 것으로 유명한 작자들이다.
사도 무리가 악업으로 벌어 먹고사는 것이야 널리 알려진 일이지만, 저 작자들은 극사도(極邪道)에 속하는 진짜배기 악당들이다.
그냥 미친놈들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선을 넘었네.”
휴전 중이라고는 하지만 정사마간 소소한 분쟁과 마찰 정도는 있었다.
하지만 저 정도 규모의 전력이 무당산을 오르는 것은 이야기가 다르다.
사실상 전쟁 선포라고 해도 무방하다.
평화(平和)라는 두 글자가 갈가리 찢긴 종잇조각이 되어 흩날리는 것을 지켜보는 기분이다.
당장 눈앞의 상황도 문제다.
저 강맹한 전력을 막아 세워야 한다.
혼자 막을 수 있을까?
“뭐, 적당히 치고 빠지면 되겠지.”
걱정이 들었지만 금방 가라앉았다.
이곳은 무당파 앞마당이다.
무당파 내부에서 일어날 혼란을 수습하는 동안 시간을 끄는 것이 목적이지만, 정 안 되겠다 싶으면 그냥 물러나면 된다.
본거지를 뒤에 두고 수비하는 이점이다.
하물며 뒤에 있는 그 본거지가 바로 무당파다.
마냥 신뢰하기에는 불안 요소를 품고 있지만, 무당파는 무당파다.
생각이 거기까지 닿으니 묘한 열기가 배 속에서 피어올랐다.
일기당천(一騎當千)!
과거 맹장들은 무인지경으로 적진을 헤집고 들어가 수장의 목을 땄다고 전해진다.
촉을 대표하는 맹장 장익덕은 장판파에서 홀로 수천의 적을 막아 세웠다고 전해진다.
무인이라면 누구나 피가 끓어오르는 이야기다.
“좋지, 그런 거!!”
허공을 박차며 사선으로 떨어져 내렸다.
이미 진즉에 내 존재를 알아차리고 있던 흑룡회 무인들이 빠르게 반응했다.
따앙!
나를 향해 날아드는 손도끼 하나를 쳐냈다.
하늘을 나는 새라도 떨어트릴 것 같은 공격이다.
왠지 과거 전 녹림의 고수였던 악군패와 싸울 때가 떠올랐다.
그때도 달려드는 나를 향해 손도끼가 날아들었었다.
다짜고짜 무기부터 던지고 보는 것이 어쩌면 정말로 전형적인 사파 방식인지도 모르겠다.
확실히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벌떼 우는 소리와 함께 눈앞으로 빼곡히 손도끼가 날아든다.
후우우우우웅!
단번에 수십 개가 날아드는 손도끼의 폭풍 속으로 파고들었다.
탁! 타탁! 탁!
날아드는 손도끼를 발판 삼아 이리저리 몸의 방향을 바꿨다.
정중동의 묘리가 담긴 능운금광보의 보법으로 적들의 정면으로 향한다.
그러면서 가용한 모든 공력을 용천혈로 집중했다.
인사를 받았으면 보답을 하는 것이 예의이자 범절이다.
천마군림보!
손도끼에 대한 대답으로 이 이상 좋을 대답은 없을 것이다.
천마신교에서도 제대로 구사하는 자가 없어 전설이 된 무공!
힘을 실은 발이 땅에 닿는 순간.
콰아아앙!
대지에 그려진 파문을 따라 모든 것이 뒤집혔다.
흙과 바위가 튀어 오르고, 나무가 뿌리째 뽑혀 떠오른다.
파문에 휩쓸린 사람도 다를 것이 없었다.
선두에 있던 자들이 피를 토하며 허공으로 튀어 오른다.
“우오!”
“장난 아닌데!!”
“X바! 저 새끼 대가리는 내가 딴다!!”
‘미친놈들인가?’
내가 내려선 삼장 주변에 있는 놈들은 투명한 거대 바위가 떨어지기라도 한 듯 전신이 짓눌려 납작해졌다.
그나마 어느 정도 간격이 있던 놈들이나 허공으로 튕겨진 거다.
그걸 보면서 좋다고 웃는다.
제정신이 아니다.
약이라도 한 놈들 같다.
아니, 어쩌면 정말 약을 했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남쪽 지방의 어떤 부족 전사들은 싸움에 앞서 공포심을 잊고자 약으로 의식을 흐리게 만든다고 했었다.
흑룡회는 전투에 도움이 된다면 뭐든 할 작자들이다.
괜히 무림에서 극사도로 분류하는 것이 아니다.
촤아아악!
사방에서 날카로운 기운이 흙먼지를 가르며 날아든다.
공간을 가르며 들어오는 참격이다.
부숴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천마무겁수를 펼친 영향일지도 모르겠다.
온몸에 들끓는 힘이 어서 꺼내 쓰라며 재촉하는 느낌이다.
실제로 사부님들 무공 중 일대 다수의 싸움에 가장 적합한 것이 바로 천마신공이다.
‘하지만 여기까지.’
여기는 무당산이고, 무당파의 앞마당이다.
가능한 무당파 무공으로.
적어도 정파 무공으로 상대함이 옳다.
그것이 사부님들에 대한 예의다.
[화경으로 비틀고 찢어버려! 뭔 천마군림보냐아아아아!] [그냥 치고 들어가서 뭉개면 되지 않겠느냐. 연금강도 슬슬 익숙해졌다면 몸을 극강격처럼 만드는 수법도 가르쳐주랴?]역시나 닦달이 떨어져 내렸다.
한데, 달마 사부의 닦달(?)은 귀가 솔깃해졌다.
‘와! 전신에 극강격의 힘을 담는 거라면 그냥 돌진만 해도 다 뭉개버리는 거 아닌가?’
이전에 장삼풍 사부가 세 분 사부님들끼리의 상성 이야기를 할 때 맨몸으로 공간이고 영역이고 다 찢고 들어가 뭉개버리는 것이 달마 사부의 무공이 추구하는 극의라 하신 적이 있었다.
자신의 영역 안에서 전능한 존재가 된다는 천마 사부의 권능조차 찢어버리신다고 했다.
천지만물과 소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도가 무공과 달리 존재 자체로 완성되는 불가의 공능이 힘을 발휘하는 것이라고 하셨는데, 달마 사부의 닦달을 들으니 왠지 그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마도 극강격의 수법과 연금강의 수법을 섞는 것인 모양인데, 한번 해 봐야겠다.
기본이 튼튼한 자는 실전 속에서 크게 발전하는 법이다.
나는 쏟아지는 칼날 속으로 파고들었다.
“쿠헤헤헬! 뒈져라아아아!!”
눈앞으로 칼질 하나가 떨어진다.
시커먼 검기를 두른 참격이 가파른 각도로 뻗어온다.
찌르기 같은 베기랄까.
집단전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공격이라 하셨다.
아무래도 다수가 있는 자리에선 공간이 협소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깨를 바싹 붙이고 있는 아군을 베지 않기 위한 방법이다.
공격의 각도가 가파르기에 방어하는 입장에서도 흘려내기가 힘들다.
하지만 힘들 뿐이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타앙!
몸을 옆으로 슬쩍 빼며 검면을 어루만지듯 튕긴다.
“크아악!”
그것만으로 칼끝이 제 동료에게로 향한다.
화경으로 비틀고 찢어버리라는 장삼풍 사부의 지시를 충실히 이행했다.
탕! 타탕!
“끄억!”
“아악!!”
같은 공격이 연거푸 이어졌지만, 가볍게 비틀어 제 동료에게 향하도록 했다.
전투의 흥분으로 희열감에 가득 차 있던 흑룡회 무인들의 얼굴이 서서히 굳어가기 시작했다.
아무리 미친놈들이라도 제 동료들을 상하게 한다는 것에 머뭇거림이 생겼다.
빈틈이다.
그 틈새로 내 몸이 물처럼 스며들었다.
능운금광보가 품은 정중동의 움직임.
순식간에 파고들어 가장 앞에 있는 자의 머리를 움켜쥔다.
“썅!!”
깜짝 놀라며 칼을 휘두르려 하지만 이미 내 손이 머리에 닿은 상태다.
우득!
목을 꺾어.
콰드드득!
척추 채 뽑아버린다.
문신으로 가득한 머리 하나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개자식!!”
동료의 죽음에 분노하며 두터운 구환도를 수직으로 휘두른다.
강기라고 해도 믿을법한 짙은 검기가 어린 구환도가 단번에 내 몸을 쪼갤 듯이 떨어져 내렸다.
그 궤적으로 팔을 가져갔다.
쩌엉!
천마 사부의 권갑이 참격을 감당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소리가 다르다.
달마 사부가 말한 극강격과 연금강의 조화.
혹시 모르기에 천마 사부의 권갑 쪽으로 막아 봤는데, 엉성하긴 하지만 뭔가 된 것 같다.
두 개의 방패가 생긴 것이다.
지금까진 수세에선 무당권을 중심으로, 공세에선 소림권을 중심으로 사용했다.
그런데 이젠 소림권을 수세에 활용할 수 있다.
무당권의 투로가 방패이며, 몸뚱이 자체도 방패가 된다.
두 개의 방패를 뚫지 못하면 내 몸에 생채기 하나 낼 수 없다.
공격의 실패는 자연스럽게 빈틈을 만든다.
그 틈새로 내 손이 부드럽게 파고들었다.
하지만 결과까지 부드럽진 않았다.
“꺼억! 컥!”
콰득!
내게 검을 휘두른 흑룡회 무인의 목에 사람 주먹이 들어갈 정도의 구멍이 생겼다.
손에 들린 목울대를 뒤로 던지며 다음 적을 향해 파고든다.
부드럽게 들어가 사납게 뜯어낸다.
사나운 무공.
[공동파?] [오호?]정갈한 무도에 흉성이 어렸다.
***
“귀엽네, 저놈.”
자오경 앞.
눈가에 시퍼런 멍이 들고, 이마에는 푸른 줄이 그려진 천사대선이 장삼풍과 달마 옆에 나타나더니 휘파람을 불었다.
그런 천사대선을 장삼풍과 달마는 웃음을 흘리며 맞이했다.
귀엽다고 말하는 것치곤 꽈악 움켜쥔 주먹이 너무나 도드라졌다.
넙죽넙죽 받아먹는 모습은 확실히 보는 맛이 있다.
신선들 기준에서야 재롱이나 다름없지만, 저 역동적인 모습은 제법 자극이 된다.
“뭘 더 보여주려나?”
비단 천사대선만의 감상이 아니었다.
유흥(遊興)에 굶주린 선계의 시선이 모여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