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295
294화 개전(開戰)
간자의 무서움은 누가 간자인지를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문제가 생겼을 때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 여겨 상의를 했는데, 간자였다면 그냥 망하는 거다.
소림의 도연대사가 혈교의 대법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구파를 향한 경계심은 한층 더 높아졌다.
육영기와 미리 손발을 맞춘 것으로 보이는 그 설계는 무척이나 위험했다.
만약 내가 혈교 대법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그대로 속아 넘어갔을 것이다.
때문에 오문도장 역시 마냥 신뢰할 수는 없게 되었다.
비록 그가 혈교 대법을 받지는 않았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학의 주구가 꼭 혈교대법을 받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때문에 지금 주방을 지켜보는 오문도장의 행동은 명확히 확인해 봐야 한다.
혹여나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호위를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몰래 접근해 봐라. 입막음을 하려 든다면 검정색 확정이니 이참에 조져 버리고.] [정말 그리된다면 천사대선 그 양반이 오열하는 걸 보겠다만.]달마 사부의 말을 들어보면 천사대선이란 분께서 제법 주머니를 털린 것 같다.
고참급 신선씩이나 되는 분이 오열할 정도라면 대체 얼마나 털린 걸까 싶지만.
‘진짜 울고 싶은 것은 접니다만…….’
아무리 그래도 나만 할까.
다른 곳도 아니고 구대 문파를 신뢰할 수 없는 상황이라니 기가 막히다 못해 어이가 상실될 지경이다.
대체 일이 어떻게 돌아가려고 이러는 건지 원.
이러다 사방팔방에서 다 터지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예를 들어 구파가 내전 상태로 돌입해 서로에게 칼을 겨눈다든가.
북란대전을 일으켰던 북방 세력들이 일거에 공격해온다든가.
잠자코 있는 줄 알았던 사파 세력이 역습을 준비하고 있다든가.
만약 저게 한꺼번에 다 터진다고 한다면 그야말로 대환장 축제가 벌어지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는 것이니, 실제로 일어날 리가 없겠지만.
‘일단… 해보자.’
정말 오문도장이 학의 주구라고 해도 소란이 일어난다면 주방에서 음식이 만들어지는 일은 중단될 터이니 손해 보는 일은 아니다.
나는 조용히 몸을 움직였다.
동화의 법을 통해 기척을 주변에 녹였다.
극도로 거리가 좁혀지고 있음에도 오문도장은 내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온 신경이 남수가 죽은 곳에 몰려 있는 것 같다.
허나 그것도 오래가진 못했다.
“음?!”
다섯 걸음 정도의 간격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오문도장이 나를 향해 몸을 휙 돌렸다.
숨을 쉬듯 자연스럽게 허리춤으로 손이 간다.
스릉!
내 감각 또한 날카롭게 벼려졌다.
하지만.
“하아! 자넨가…….”
반쯤 뽑혔던 검이 다시 검집으로 들어간다.
완전히 마음을 놓은 모습은 아닌지라 여전히 검파에 손을 올린 채 나를 경계하고 있지만, 곧장 달려들 모습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자넬 믿어도 되겠나?”
“제가 할 말인데요.”
“하긴, 그것도 그렇군.”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먼저 결단을 내린 것은 오문도장이다.
“자네 정도 되는 기재가 그들과 한패라면 구파에는 미래가 없단 의미일 테지.”
검에서 손을 완전히 떼며 경계를 푼 오문도장의 모습에 나도 경계를 낮췄다.
[일단 믿어도 될 것 같다.]‘예.’
허의 허를 찌르는 계책일지도 모르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무조건 의심만 하는 것도 문제가 된다.
지나친 의심은 없던 적도 만드는 법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아군이다.
뭣보다 뭔가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하는 오문도장의 말이 걸렸다.
‘그들과 한패라…….’
당장 급한 불부터 끈 다음 이야기를 나눠 봐야겠다.
“일단, 다른 피해가 생기기 전에 진압 먼저 하죠.”
남수가 가져온 말린 전복을 요리하다 간이라도 보는 사람이 나오면 큰일이다.
***
나눠야 할 이야기가 많았지만,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 나가는 걸 구경만 할 정도는 아니다.
일단 주방 쪽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에 나는 오문도장을 앞질렀다.
자연스럽게 오문도장에게 배후가 노출되었다.
그러면서 청경과 공감각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휴우! 아니네.’
설령 대비하고 있더라도 오문도장 정도의 고수라면 상처를 각오해야 할 정도의 빈틈이었다.
다행히 오문도장은 내가 자연스럽게 드러낸 빈틈을 공격하지 않았다.
이 정도면 믿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자연히 오문도장이 꺼낸 이야기에도 신경이 쓰였다.
‘서둘러 끝내자.’
주방에 다다른 건 순식간이었다.
난입이란 말이 어울릴 정도로 주방에 뛰어들자 말린 전복을 어떻게 요리할지 고민하는 주방장을 볼 수 있었다.
귀한 식재료를 두고 헤벌쭉 웃는 것이 꽤나 만족스러운 요리를 상상하고 있는 것 같다.
행복한 상상을 깨부수는 건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단숨에 말린 전복이 담긴 상자를 낚아챘다.
“깜짝이야!”
행복한 단꿈에서 깨어난 주방장이 화를 내려다가 나를 알아보고는 인상을 찌푸린 채 입술을 달싹이며 화를 삭였다.
“청운이냐? 아니… 그런데 그건 왜… 어 씨… 그거 귀한 건데…….”
이미 내 소문은 무당파 내에 자자한 상황이다.
함부로 화를 낼 상대가 아님을 알지만, 귀한 재료를 뺏긴 것에 대한 화가 가라앉지 않는 모양이다.
“이거 누가 가져왔습니까?”
“그거? 어…… 아! 그래서 화내는 거구나. 그거 남수가 너한테 미안하다고 어렵게 마련한 거야. 자자, 너무 화만 내지 말고…….”
아무래도 이 사람은 남수가 가져온 것이기에 내가 화를 낸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남수가요?”
“그래, 남수가.”
“잠깐 이리 와 보실래요?”
나는 주방장을 주방 후문 쪽으로 불러냈다. 그리고 무너진 장작더미를 걷어차 치웠다.
“이 녀석이 말이죠?”
“아니, 이게 무슨……!”
장작더미에 파묻혀 있던 남수의 시체를 본 주방장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거 설마 네가…….”
상황 파악이 매우 더딘 사람이다.
아무래도 무당파에서만, 그것도 주방에서만 쭉 지내온 것 같다.
“딱 봐도 드러나지 않게 숨겨둔 모습인데, 제가 그랬다면 이걸 까발리겠습니까. 제가 멍충이도 아니고요.”
“어어…….”
당황스러운 사태에 주방장은 완전히 정신줄을 놓은 모습이다.
주방의 다른 무당파 제자들도 황망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대부분은.
‘한 놈이 아니었네.’
둘이었다.
당황하고 있지만, 그 이유가 다른 사람이 둘 있었다.
교토삼굴(狡免三窟). 교활한 토끼는 굴을 여러 개 판다.
허도진인과 무당파 장문인을 독살하는 작업이 이번 반란의 핵심이다.
그런 중요한 곳에 딱히 한 명만 심진 않을 것이라 여겼는데, 역시나 예상대로다.
나는 유력한 용의자 한 명에게 다가가 다짜고짜 손에 든 마른 전복을 입에 처넣었다.
“웁! 우엑! 웨엑!!”
말린 전복을 입에 넣은 용의자는 필사적으로 구역질을 했다.
혀를 뽑을 기세로 손을 입에 넣고 토악질을 하는 모습에 지켜보는 이들이 아연실색했다.
“귀한 건데 왜 그래? 마치 독이라도 먹은 사람처럼?”
“우윽… 웨엑!!”
“정말 독이 들어 있나 봐?”
토악질을 하는 무당파 제자는 대꾸할 새도 없이 토하는 것에 전념했다. 하지만 점점 사지를 부들부들 떨고, 피부가 변색되기 시작했다.
“신기하네. 정말 여기 독이 들어있었다면 넌 그걸 어떻게 알고 있었지?”
주방에 있던 다른 무당파 제자들은 그제야 상황을 파악했다.
“와… 뒈질 뻔했네…….”
“나도 슬쩍 먹어 보려 했었는데…… 으으…….”
죽을 뻔했다는 걸 알아차리자 절로 몸서리를 쳤다.
“어, 가만. 아까 남수가 장작더미 넘어트리고 갔다고 말한 녀석은…….”
남수를 후문으로 유도해 목을 분지르고 장작더미를 무너트린 놈은 지금 토악질을 하는 이 녀석이 아니다.
“치잇!”
모두의 시선이 향하자 들켰다는 것을 알아차리곤 날쌔게 몸을 돌렸다.
하지만 내가 더 빨랐다.
우득!
“아악!”
단번에 무릎과 어깨 관절을 뽑아버리자 바닥을 구르며 발버둥쳤다.
주방의 무당파 제자들은 화를 내야 할지 기막혀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나마 주방장이 터덜터덜 다가가 물었다.
“왜 그랬냐?”
“너처럼 될까 봐!”
“뭐?”
“X발! 내가 무공 배우러 왔지 요리 배우러 왔냐! 왜 내가 요리 따윌 해야 하는데!!”
“허허…….”
주방장은 넋이 나간 얼굴이었다.
정신이 아찔한지 한동안 눈을 감고 있던 그가 다시 물었다.
“무당파 제자들은 누구나 잡무 하나씩은 맡아야 한다. 누군가는 빗질을 하고, 누군가는 물을 길어오며, 누군가는 빨래를 한다. 조건은 모두 같아.”
“그딴 거 알게 뭐냐고!!”
“불쌍한 녀석…….”
주방장은 이 잔인한 현실을 눈앞에 두었음에도 배신자를 동정했다.
어리석은 자다.
벽궁도장에게 넘어간 이유도 이 때문인 것 같다.
그 가운데 얼핏 오문도장의 얼굴이 굳어지는 것이 보였다.
이 광경에 뭔가 걸리는 것이 있는 듯하다.
‘이제 들을 수 있으려나…… 어?!!’
오문도장에게 말을 걸려던 찰나, 공기의 질이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무림의 거친 세상을 겪으며 맡아본 냄새가 난다.
전장의 냄새.
사람이 죽어 나가는 자리에서 나는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벌써?’
시기를 생각하면 이르다.
아직 시작될 때가 아니다.
독이 든 전복이 조리되어 올라가지도 않은 상황이 아닌가!
그렇다는 것은 계획이 변했다는 의미다.
나는 주변 나무 중 가장 높게 솟은 나무를 찾아 몸을 날렸다.
나무 몸통을 평지마냥 밟고 달리자 순식간에 시야가 넓어진다.
저 너머에서 다수의 인원이 대치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제갈세가…… 아!”
내가 만든 변수 중 하나.
벽궁도장이 부른 외부 전력과 남궁세가가 마주친 것이다.
상황이 촉박해졌다. 느긋하게 오문도장과 이야기를 나눌 시간도 사라졌다.
급히 내려온 나는 서둘러 상황을 정리했다.
“선배님. 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을 모아 장문인께 데려가 주십시오.”
오문도장의 얼굴이 단번에 굳어졌다.
내 말에 뭔가를 직감한 모양이다.
“자네는?”
“무당파 제자로서의 역할을 하러 갑니다!”
작게 몸을 움츠린 몸을 펴며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허공을 밟아 몸을 가속했다.
파앗!!
내 몸이 허공을 향해 화살처럼 쏘아졌다.
***
제갈윤재와 팽철이 가져온 소천룡의 요청에 제갈세가는 여러 논의를 거쳤다.
무당파를 위협할 정도의 적을 막아 달라는 요청이다.
쉽게 응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제갈세가는 움직였다.
이 일을 통해 어떤 이득을 얻을 수 있는지 제갈윤재가 충분히 설득한 덕분이다.
그렇게 무당산 입구를 틀어막은 제갈세가는 수상쩍은 사내가 다가오는 것을 발견했다.
“엉덩이 무거운 분이 어째 움직이셨대?”
비틀린 웃음을 짓는 사내.
타고난 유쾌함 속에 피비린내가 가득했다.
제갈세가의 선두에 서 있는 인물, 하얀 학사의를 입고 있는 제갈세가의 가주 천기신검 제갈신무가 사내를 지그시 바라보며 물었다.
“불공평한 것 같구려. 그대는 우리를 아는데, 우리는 그대를 모르니 말이오.”
“하하하! 천혜라는 제갈세가도 모르는 것이 있나?”
비아냥거리는 기색은 여전하다.
그러나 그 웃음 끝에 나온 말은 가볍지 않았다.
“흑살대.”
“호오? 그렇구려. 못 알아볼 만하군.”
“그렇겠지. 살수가 얼굴 팔려서야 쓰나. 뭐, 칭찬은 고맙게 받지.”
허나 제갈신무는 담담히 말했다.
“허면 그만 물러나는 것이 어떻겠소?”
“물러나라?”
“지금 우리가 부딪친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지 않을 터.”
한껏 기분 좋게 웃던 사내가 이내 웃음의 질을 달리했다.
한쪽 입술이 비쭉 올라갔다.
“해보시든가?”
“어쩔 수 없군.”
제갈신무는 대답과 함께 검을 뽑아 들었다.
그 뒤로 검을 뽑아 드는 무수한 검음이 메아리처럼 뒤따랐다.
주변 공기가 칼날처럼 날카로워졌다.
“그래, 그편이 나도 재미있지.”
사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주변 수풀에서 검은 옷의 무인들이 솟아났다.
선두의 두 사내가 서로를 향해 몸을 던졌다.
콰아아아앙!
일자를 그리는 두 개의 선이 격돌한다.
오랜 세월 정사 간에 존재했던 협약에 금이 가는 순간이었다.
평화에 종지부를 찍는 격돌이 개전(開戰)을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