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310
309화 뭐 찔리는 거라도 있으십니까?
갑자기 나도 범각 못지않은 인기인이 되어버렸다.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다.
기절시킨 인성질 삼인조를 어깨에 걸친 채 움직이는 중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를 본 소림제자들 중엔 황망한 얼굴로 다가와 묻는 이들도 있었다.
“연 시주, 대체 이게 무슨 일입니까? 업고 계신 이들도 부상을 입은 것 같은데…….”
일반적인 상황을 상정하고 물은 것 같다.
예를 든다면 비무 중에 부상을 입어 운송 중이라든가.
상식적인 선에서 생각한다면 그게 옳다.
문제는 지금이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라는 거다.
일일이 상황을 설명하는 것도 자칫 발목을 잡힐 하책이다.
그래도 제법 다양한 경험을 쌓아 왔던지라 이런 상황에서 최적의 대처법이 뭔지는 잘 알고 있다.
짧고 굵은 것이 최선이다.
“이분들이 신승 어르신 멱을 따버리겠다고 하더라고요.”
“……예?”
너무 짧고 굵었나 보다. 말을 걸어온 소림제자는 입술을 뻐끔거리며 어떻게든 이해해 보려 노력했다.
“그게… 무슨… 허어…….”
다행히 이해력이 부족하지는 않은 것 같다. 뭔가 심상치 않은 상황이라는 것을 느낀 모양이다.
사태 파악이 끝나기 전까진 함부로 나서지 않겠다는 듯 물러난다.
현명한 어른의 대처법이다.
“……아미타불.”
역시 저 불호는 다방면에서 참으로 편리했다.
그 뒤로도 같은 일이 몇 차례 더 벌어졌지만, 반응은 모두 같았다.
나를 따라오던 범각이 질린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너, 이거 전쟁 선포나 다름없다는 거 알지?”
“알지.”
“내가 진짜… 하아…….”
범각은 아직도 망설임이 있는 모습이다.
이해는 한다.
‘그래도 이 녀석은 알아야겠지?’
문제해결의 첫 시작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일이다.
소림에는 문제가 있다.
그리고 나는 그 문제의 중심에 누가 있는지 안다.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이야. 처음부터 도연… 그 땡중이 우리랑 같은 배를 타는 일은 없어.”
“그건 또 뭔 소리야?”
“그 작자도 혈교대법을 받았거든.”
“……뭐?”
범각의 표정이 이제껏 만났던 소림제자들과 닮아갔다.
워낙 충격적이라 바로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다.
그런 범각을 위해 친절하게 이해를 도울 수 있는 설명을 얹어줬다.
“도연은 설득해서 교화하고 포섭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야. 쳐내야 할 적이지. 아, 물론 이건 신승 어르신도 알고 있어.”
“……돌겠네.”
다행히 범각은 아주 미련한 놈이 아니었다.
표정에서 고민이 완전히 사라졌다.
“내가 전생에 뭔 죄를 지어서 너랑 엮인 건지…… 어휴!!”
대신 뭔가 씹어선 안 될 것을 잔뜩 입에 넣은 얼굴이 되었다.
***
범각의 안내로 도연이 있는 곳에 다다르자 심각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무리 눈치가 없는 사람이라도 알아차릴 정도로 무거운 공기가 흘렀다.
아무래도 누군가 내 행보를 미리 전달한 사람이 있는 모양이다.
그 중심에 도연대사가 있었다.
평소 짓고 있던 푸근한 미소가 딱딱하게 굳어져 있다.
인자한 척, 포용력 있는 척, 나를 속여먹었다고 여길 때 짓던 그 미소 말이다.
그 낯짝에 똥칠을 했다 생각하니 이상하리만큼 강한 청량감이 뱃속에 감돌았다.
이게 그 정신적 고양감이라는 것인가 보다.
왜 사고뭉치들이 정신 나간 또라이짓을 하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갑옷처럼 둘린 저 표정을 완전히 날려버리면 더 째질 것 같은데…….’
희망사항을 키워가는 가운데 도연대사가 먼저 슬쩍 견제를 걸었다.
“자네와는 꽤 좋은 관계를 맺었다고 생각했네만.”
“저도 그런 줄 알았지요.”
나는 어깨 위에 짐짝처럼 올려놓았던 인성질 삼인조를 내려놓으며 답했다.
‘이것까지 먹혀주면 잘 풀릴 텐데…….’
그러면서 슬쩍 인성질 삼인조 중 가장 성깔이 있었던 혜인의 혈을 눌러 끊어졌던 의식을 이어주었다.
혼혈을 짚어 의식을 날리기 전에 굴욕을 느끼라고 목을 움켜쥔 채 제대로 긁어주었다.
그런 상황에서 의식을 되찾았는데 눈앞에 내가 있다면 어떨까?
그것도 뻔히 허점을 드러낸 상태라면?
모르긴 몰라도 발작하며 달려들 거다.
그러라고 지금 손을 쓴 거고.
아니나 다를까.
“이노오옴!!”
눈앞에 내가 있자 앞뒤 재지 않고 일장을 뻗었다.
그 공격을 막거나 피할 수 있었지만, 일부러 맞아주었다.
퍼억!
미리 대비를 해두었기에 심각한 타격은 아니었지만 제대로 된 장법이 가슴을 때렸다.
일방적으로 내게 털렸다가 한 수 이득을 보았다 여겼는지 득의양양한 혜인이 성깔대로 주둥이를 놀렸다.
“신승 그 뒷방 늙은이가 뒤를 봐준다고 해서…….”
하지만 이제야 주변을 볼 수 있게 되었는지 혜인이 말끝을 흐렸다.
무엇보다 그가 의식을 찾을 때 일부러 내 몸으로 시야를 가려두었던 상대, 도연대사가 내가 뒷걸음질을 치며 눈에 들어오자 사시나무처럼 몸을 떨었다.
혜인이 한 말이 선을 넘은 발언임이 분명했기에 도연의 얼굴이 더욱 굳어졌다.
결국, 얕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혜인의 발언은 명백히 기사멸조의 죄에 해당하네. 자네가 혜인을 손 본 이유도 충분히 알 것 같으이. 이 일은 내 책임지고 엄히 문책할 것인즉, 자네는 이만 사조께 돌아가게나.”
명분에서 밀렸다.
지는 싸움에 매달려 봐야 손해만 커질 뿐이다.
도연은 깔끔하게 꼬리를 잘라내고 조용히 사태를 마무리하길 바라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게 이유의 전부는 아닌 것 같다.
아무리 봐도 혜인에 대한 문제로 왈가왈부하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당장 드러내면 곤란한 것이 있다.
‘애초에 그걸 찌르러 왔는데, 그냥 돌아가라고?’
나는 혜인의 장법에 맞은 가슴 부위를 털어내며 도연을 노려보았다.
“축하합니다, 대사.”
“……무얼 축하한다는 겐가?”
“혜인 스님이 말씀하시더군요. 방장께 좋은 권한을 받으셨다고요. 소림 내에 불순한 무리를 조사하고 소탕할 권한이라던가요?”
“허허…….”
도연이 말을 아끼며 헛웃음만 흘렸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도연의 얼굴에서는 갑옷 같던 웃음이 점차 허물어지고 있었다.
도연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혜인에게로 향했다.
혜인은 도연과 눈을 마주칠 때마다 움찔움찔 몸을 떨었다.
“한데, 혜인 스님의 말 중에 걸리는 것이 있더군요.”
“이제 자네가 입을 여는 게 무섭네만…….”
“무서워해야 할 것은 제 쪽 같아서 하는 말입니다.”
소림방장에게서 비밀리에 권한을 위임받았다는 사실을 밝힌 것은 사전포석이었다.
내가 들은 정보가 이렇게 확실하다는 기초 작업이다.
이를 확실히 한다면 다음으로 이어질 말들에 무게감이 실린다.
“중토신공을 사특한 무공으로 규정하고 이와 관련된 이들을 모두 잡아낼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던데, 사실입니까?”
도연의 표정에서 웃음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짜릿한데…….’
청량감이 단전에서 머리끝까지 솟구쳤다.
이 상황이 재미진 것은 나뿐만이 아닌 것 같다.
[잘한다, 내 제자!]천상에 계신 사부님도 무척이나 좋아하셨다.
[당장 내려가서 특근 신청하고 뚜껑(?) 열어놓으면 되는 거냐?]‘아니요, 그건 아직…….’
그런데 좋아하셔도 너무 좋아하신다. 너무 성급하시다.
급할 땐 설익은 밥이라도 씹어야겠지만, 제대로 만들 생각이라면 뜸들일 시간이 필요하다.
“정도의 무공을 익힌 자가 고작 며칠 만에 무공이 급증하고 있다. 이를 수상하게 여기는 것이 이상한 일인가?”
도연의 목소리에 무게감이 실린다.
느끼한 웃음을 지운 도연의 모습은 나를 향해 겨눠진 칼날처럼 보였다.
그런 도연의 모습에 주변이 웅성거린다.
항상 인자하게만 웃던 도연의 엄정한 모습과 지금 던진 발언의 의미를 나누며 목소리를 높여갔다.
‘찍어 누르시겠다?’
소림방장이 준 권한이 있으니 소림제자라면 찍소리도 못하고 따라야 할 판국인 것은 맞다.
하지만 나도 할 말이 남았다.
“중토신공은 달마대사님이 남기신 유산입니다.”
“그게 지금 중요한가?”
느낌이 안 좋은지 내 말을 끊어내려 한다.
하지만 내 입을 막진 못했다.
“많은 분들이 이미 중토신공을 접하셨습니다. 효과를 크게 보신 분도 계실 것이고, 효과가 거의 없는 분도 계시겠지요.”
나는 주변을 돌아보며 외쳤다.
더 이상 도연과의 대면이 아니다.
여기 모여 있는 모든 소림제자들을 향한 발언이다.
중토신공은 근래 소림에서 가장 뜨거운 화제다.
당연히 모두가 귀를 쫑긋 세웠다.
“정통파의 고련을 하다 보면 몸을 다칠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극복해내며 더욱 몸을 강하게 단련하는 것입니다. 이때 사용되는 소림의 비전영약은 몸을 치유하며 뼈와 근육에 약력을 쌓습니다. 마치 수련을 거듭할수록 불어나는 내공처럼요.”
“허면, 중토신공의 성취는 정통파의 수련에 얼마나 충실했는가에 달려 있다는 소리인가?”
빠르게 이해한 누군가의 물음에 나는 크게 맞장구치며 답했다.
“정확합니다. 중토신공은 정통파의 무공입니다. 세상에 소림이 처음 문을 열었던 시기에 만들어졌지요. 당연히 정통파 수련법을 있는 그대로 따르는 사람에게 큰 효과가 있습니다. 중토신공은 그저 여러분이 쌓아온, 여러분들의 몸 안에 잠들어있는 힘을 일깨우는 촉매 역할을 할 뿐입니다.”
특별한 목적으로 수정된 탓에 내가 배운 것과 궤가 좀 다르긴 하지만, 나쁘진 않다.
애초에 중토신공의 원형이 대단한 신공인 것은 사실이고, 이번에 퍼트린 새로운 형태의 중토신공 역시 뼈를 깎는 수련을 위한 좋은 동력이 되어줄 것이다.
모두가 행복한 결말이다.
“가만, 그럼 중토신공을 익혔음에도 효과가 없는 사람들은…….”
이제부터 발작해야 할 양심 찔리는 작자들 빼곤.
때마침 적절하게 나온 발언에 나는 즉시 올라탔다.
“수련을 게을리했다는 소리겠죠.”
“하지만…… 으음?”
뭔 이야기를 하려 했는지 알겠다.
수련을 게을리한 것치곤 그의 무공이 대단히 높은 경지에 있다는 이야기를 하려 했던 것이겠지.
괜찮다. 내가 할 거니까.
“최근 무당파에서 있었던 일에 관해 들어보신 분들이 계실 겁니다. 무당파 내 불순한 무리가 외부세력과 결탁하여 난을 일으키려 했다는 이야기 말이죠.”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고 했다.
다들 들어본 적이 있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그 불순한 무리는 혈교의 대법을 받았습니다. 재능을 높여주어 좀 더 빠르게 무공을 익힐 수 있도록 돕는다고 하더군요.”
“연 시주는 억측을 삼가라!”
더 내버려뒀다간 문제가 될 것이라 여겼는지 도연이 내 말을 자르려 했다.
물론 나는 그 경고를 한 귀로 흘렸다.
“아, 물론 방법 자체가 굉장히 혐오스러운 것이기에 권하지는 않습니다. 사람을 죽여 그 피를 흡수하는 사마외도의 수단이거든요. 신승 어르신과 허도진인께서 함께 멸하신 혈교의 주구 덕풍 윤가에서는 어린아이들의 해골이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나왔습니다.”
사람이 제일 꼬운 것을 다섯 가지만 꼽으라고 할 때 반드시 들어가는 게 바로 차별이다.
나는 이렇게 시궁창인데 저놈은 잘나가네?
재능 역시 어느 정도는 그에 속한다.
나 역시 둔재로서 바닥을 기며 살았던 경험이 있기에 그 감정이 어떤 건지 잘 알고 있다.
나는 죽어라 노력해도 하나를 얻기 힘든데 어떤 놈은 별 노력도 없이 서넛을 얻는다?
그런데 그게 차마 입에 담기 힘든 비열한 수단을 써서 얻은 결과다?
열 받지 않을 수가 없다.
‘반응 좋고~~.’
기본적으로 소림의 무공은 온몸을 흉기로 만드는 고된 수련과정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제 위력을 발휘한다.
편한 길로, 기교로 부족한 빈자리를 채워 넣었더라도 노력이 차지하는 비중이 없을 수는 없다.
정통파의 고련을 덜 할 순 있어도 그걸 완전히 무시한 채로 수련을 했는데 성취가 높다는 것은 정상적일 수가 없다.
“그렇기에 중토신공을 익혔음에도 효과가 전혀 없는 사람, 효과가 전혀 없는데 무공이 높은 사람이 있다면 알려주십시오. 굉장히 의심스러운 사람이거든요.”
“혈교의 대법을 받아 무공을 습득하는 속도가 높은 것으로 의심이 된다는 것이오?”
“합리적인 판단 아닐까요? 솔직히 소림의 수련법을 충실히 따르지 않았음에도 성취가 높다는 건 이상한 일이니까요. 그렇지 않습니까?”
모두가 외면할 때라면 모를까, 지금은 정통파 수련에 대한 관심이 높다.
뚜렷한 비교대상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명백하게 비교할 방법이 있다.
“그러고 보니…….”
“으음…….”
당장 지금만 해도 누군가에게 눈길을 보내는 사람이 있다.
잘 먹혔다.
이제 서로가 서로를 주시하기 시작할 것이다.
한솥밥을 먹으며 지내는 사이인 만큼 내가 직접 하나하나 찾아내는 것보다 더 빠르고 확실하게 견적이 나올 것이다.
균열이 생기고 갈라질 것이다.
어떻게 보면 내부에 분란을 만드는 불씨를 던질 꼴이지만, 피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학의 주구는 어설프게 타협할 대상이 아니다.
모조리 거르고 솎아내야 한다.
“연청운!!”
그 걸러내야 할 작자 중 가장 큰 덩어리가 내게 소리를 질렀다.
“녹옥불장의 권한을 위임받은 이로서 명한다! 당장 그 입을 닥쳐라!!”
불타오른 분위기만큼이나 뜨거운 노기를 담은 도연의 외침이 웅장하게 울려 퍼졌다.
하지만 나는 피식 웃으며 받아넘겼다.
“왜 그러십니까? 도연대사께서 해야 할 일을 도운 것뿐입니다만?”
내 발언이 묘하다는 것은 느꼈는지 일부가 의아한 눈으로 성을 내는 도연을 바라봤다.
나는 여기에 쐐기를 박았다.
“아니면, 뭐 찔리는 거라도 있으십니까?”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은 나다.
그 분위기를 등에 업은 이 물음에 명확한 해답을 내놓지 못한다면 의혹은 의혹으로 남지 않게 될 것이다.
“아, 그런데 그 녹옥불장의 권한이라는 거 명예제자에게도 통했었나요? 아닐 텐데요?”
그리고 그에겐 내 입을 닥치게 할 힘이 없다.
굳이 있다면 직접 무력을 동원하는 것이 있겠다만.
‘덤비면 부숴주지.’
덤벼줬으면 좋겠다.
나는 도연을 향해 웃음을 지으며 손에 힘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