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309
308화 낚았다
범각과 함께 소림 경내로 들어가니 민머리 둘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쟤네냐?”
“어.”
범각을 괴롭혔다는 동기들인 범조와 범연을 본 나는 짧게 혀를 찼다.
소문에는 범각이 덤벼든 동기 둘을 털었다고 했는데, 직접 보니 생각보다 멀쩡해 보였다.
“쯧! 어디 한 군데 정도는 부러트린 줄 알았더니.”
“난 심약해서 그런 거 못 해.”
“개뿔이. 나더러 멍멍이 똥○멍이나 빨라던 깡다구는 어디로 갔냐?”
“……아미타불.”
범각이 먼 하늘을 바라보며 나직하게 불호를 외우는 것으로 과거를 외면했다.
생각해보면 참으로 편한 방법이다.
할 말 없을 때 저거만 외우면 그야말로 만사형통이다.
한편 범각과 나 사이의 대화를 들었는지 범조와 범연이라는 두 놈의 눈빛이 한결 달라졌다.
“연 시주도…… 가십…니까?”
“범각 부른 어른들이 물어볼 거야 뻔한데, 내가 가는 편이 여러모로 낫지 않나?”
“으음…….”
반론하긴 어렵다고 여겼는지 범조와 범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시죠.”
그리고 앞장서서 나와 범각을 이끌었다.
그러던 중 범조라는 녀석이 슬금슬금 눈치를 보다 물었다.
“저기… 어떻게 해야 범각처럼 갑자기 강해질 수 있는 겁니까?”
눈을 뒤룩뒤룩 굴리면서 하는 말을 보니 미래에 대한 암담함이 가득하다는 것이 느껴진다.
한껏 괴롭히던 범각이 고수가 되어버렸으니 걱정이 될 법도 하다.
나는 그나마 선심으로 훈수를 해줬다.
“중토신공을 익힌 다음에 손톱이 빠지고, 뼈와 살이 터지도록 소림 정통파 수련을 거듭해. 아, 다칠 때마다 소림 비전인 약물을 사용해서 치료하고. 그렇게 십 년 정도만 꾸준히 고련하면 몰라보게 강해질 수 있을 거야.”
범조라는 놈이 나를 미친놈 바라보듯 쳐다봤다.
그리고 이내 입술을 삐죽 내밀며 고개를 휙 돌렸다.
“쳇! 가르쳐주기 싫으면 싫다고 하든가.”
내가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범연이라는 놈도 같은 반응이다.
‘진짠데.’
달마 사부가 이번에 가르쳐주신 중토신공을 보면 소림 비전인 약물과도 제법 연관이 있다는 것 같다.
부러진 뼈와 터진 살을 치유할 때 바르는 약기는 몸 내부에 스며들어 있는 상태인데, 이번에 달마 사부가 전수한 중토신공은 그 약기를 움직여 육신의 기능을 크게 활성화시키는 효험을 담았다고 하셨다.
즉, 기존에 쌓여 있지만 활용하지 못했던 자원들을 활성화시키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고작 며칠 만에 무공이 급성장한 이유라면 이유일 것이다.
진실을 알려줘도 받아들이지 못하니 내 탓은 아니다.
그렇게 두 못난 것들의 가슴에 낙담과 앙심이 교차하는 가운데 발이 멈췄다.
“사숙님들이 저기서 기다리고 계실 겁니다.”
“흥! 이것도 수련이라 생각하든가.”
나와 범각이 험한 꼴을 당할 것이라 여기는 모양이다.
수련이라 생각하라는 걸 보면 사지 중 어딘가는 부러질 것을 기대하며 데려온 모양이다.
“싹수가 노랗구만.”
역시 범각이 무의미한 자비를 베푼 것이다.
범각 역시 동의했다.
“대가리도 딸리지.”
“뭐, 그러네.”
나는 소림의 명예제자다.
말이 제자라는 것이지 엄밀히 따지면 극진히 모셔야 할 손님 같은 존재다.
어지간한 명분이 아니라면 내게 직접 손을 대는 일은 없을 거다.
하지만 우리를 불렀다는 이들을 본 순간 직감했다.
‘손대겠네.’
눈빛부터가 흉흉하다.
승복을 입고 있지 않았다면 나는 이들을 도적이라 여겼을 것이다.
남의 것을 빼앗을 생각이 가득한 자들이다.
[허!허!허! 저놈들 대가리에 마구니(魔仇尼)가 가득하구나.]이유는 모르겠지만 나 역시 옴마니반메훔(唵麽抳鉢銘吽)을 외우고 싶다는 기분이 든다.
아무튼 싸질러놓은, 앞으로 싸지르려는 죄가 가득해 보이는 작자들이다.
‘뭔 생각일까?’
반대로 궁금해지기까지 했다.
이렇게 대놓고 과감하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뭔가 믿고 있는 바가 있다는 것인데…….
그렇게 내가 견적을 내보는 사이에 저쪽에서 당당하게 입을 열었다.
“범각을 불렀는데 같이 왔다……? 머리카락이 있는 젊은 시주인 것을 보니 연청운이란 이름을 쓰는 녀석이겠구나.”
‘녀석?’
소림제자라면 내 신분 정도는 알 텐데, 시작부터 말이 무척이나 짧다.
오는 말이 더러운데 가는 말이 고울 필요는 없다.
노선을 정하니 대응도 편해질 것 같다.
나는 보란 듯이 히죽 웃었다.
“……망했네.”
돌아가는 꼴을 지켜보며 안절부절못하던 범각이 내 웃음을 보곤 앞으로 이어질 상황을 예상했는지 절망 어린 한숨을 내쉬었다.
“예, 뭐. 불러서 오긴 했습니다만. 지금 이야기하고 계시는 분은 인, 성, 질 중 어느 쪽이십니까?”
“……뭐?”
이해도가 부족한 것 같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해는 했어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쪽인 것 같지만.
“혜인, 혜성, 혜질 셋 중 어느 분이냐고 물었습니다.”
“……혜인이다.”
그저 법명의 뒷글자를 따서 불렀을 뿐이라고 하자 눈을 찌푸린다.
“앙칼진 녀석이군.”
또 녀석이라 한다.
뭣 때문에 까칠하게 나왔을지 잘 알 텐데 끝까지 저런다.
“어떻게 할까요?”
조용하게 사부님께 의견을 물었다.
대답은 바로 돌아왔다.
[어떻게 하긴. 마구니가 물러날 때까지 짓패버리면 된다. 이것이 구제(救濟)라는 것이다.]그건 혹시 구제(驅除)가 아닐까요?
뭔가 내가 알고 있는 단어와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뭐, 어쩌면 이게 소림식 구제일지도 모르겠다.
마음에 든다.
다행히 명분을 만드는 일은 어렵지 않아 보인다.
나는 명분을 쌓아올릴 목적으로 긁어보았다.
“그래서, 바쁜 사람을 부른 이유가 뭡니까?”
“그거야 뻔한 것 아니겠느냐.”
“중토신공 말이죠?”
“그래, 그거다!”
삿대질까지 해가며 혜인이란 중대가리가 목소리를 높인다.
“왜 중토신공을 익혔음에도 아무런 성취가 없는 거냐!”
모르는 사람이 보면 되게 억울한 처지인 줄 알겠다.
쩌렁쩌렁하게 성토하는 태도를 보면 정당한 몫을 부당하게 빼앗긴 피해자들 같다.
이 작자들이 왜 중토신공에 성취가 없는지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실소가 나올 일이다.
‘사실을 알았다면 이렇게 떠들 내용이 아니었을 텐데.’
중토신공이 충분히 퍼진 이후 언급하려 한 내용이지만, 혜인은 지금 큰 실수를 한 것이다.
충분히 고수 소리를 들을 만한 기량을 갖췄음에도 중토신공으로 성취를 못 봤다는 것은 한 가지를 의미하니까.
즉, 이들은 그쪽 부류다.
혈교의 대법을 받은 자들!
확실히 기세를 피워 올리자 억눌려있던 역겨운 기색이 풀풀 풍겨온다.
‘어떻게 할까?’
그냥 여기서 박살 내고 개값을 물어?
제대로 명분만 챙길 수 있다면 못할 것도 없다.
마냥 기다리면서 낚시질하는 것도 좀 질렸다.
차라리 이번 기회에 명분을 만들어보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그렇게 억울하십니까?”
“당연하지!”
“그럼 중토신공이 크게 성취를 볼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드릴까요?”
내 말에 셋은 고개를 위아래로 미친 듯이 끄덕였다.
나는 그들의 호응에 진솔한 답을 주었다.
“정통파의 수련을 하시면 됩니다. 손톱이 뽑히고 뼈와 살이 터지며 부러질 때까지 단련하시고 소림의 비전 약물로 몸을 치유하십시오. 그렇게 딱 십 년만 꾸준히 수련하시면 중토신공이 성취를 보실 겁니다.”
“……십 년?”
“그 지독한 걸?”
놀린다고 생각하는지 나를 흉흉하게 노려본다.
마음에 들지 않는 현실을 부정하기 위한 근거를 찾으려는 자들이 내 손을 보곤 눈을 번뜩였다.
“그렇게 말하는 네 녀석은 정통파의 수련을 거치지 않은 것 같구나.”
“저야 좀 특별한 것이 있어서 그걸로 대체했습니다.”
“그러니까! 그게! 뭐냐는! 거다!”
이름답게 구는 세 작자가 나를 포위하며 압박했다.
“신승이 감춘 비의가 무엇이냐!”
“범각이 저리 빠른 성장을 한 것도 그것 때문이겠지.”
“소림의 것을 사욕을 위해 숨기려 했다간 호된 맛을 보게 될 것이다!”
아주 합이 잘 맞는다.
저렇게 되는 대로 지껄이는데 겹치는 말이 없다는 게 신기할 지경이다.
그렇게 닦달하던 셋이 이내 손을 뻗는다.
꽈악!
어깨 위에 올라온 손이 당장에라도 뼈를 으스러트릴 것처럼 꽈악 움켜쥐었다.
“늙은이가 감춘 비의를 순순히 내어놓는 게 좋을 것이다!”
이제는 신승 어르신에 대한 존중마저 내던져버렸다.
그 정도로 벽을 넘고자 하는 갈증이 심한 것일까, 아니면 원래부터 근본이 썩어있는 자들인 것일까?
‘차차 알아보면 되겠지.’
명분은 생겼다.
이제 구제의 시간이다.
나는 어깨에 내력을 둘렀다.
소림에서 시작되어 녹림에서 완성한 연금강.
투웅!
가해져 온 힘을 반탄시키는 호신공을 어깨에 두르자 근육과 뼈를 누르고 있던 손이 튕겨 나갔다.
“뭣?!”
“반탄지기?”
내공만으로 어깨를 제압하고(?) 있던 손을 튕겨내고는 즉시 두 손을 뻗었다.
달마 사부와 장삼풍 사부가 합작하여 수정한 반야장의 일초가 사납게 뻗어나갔다.
파파팡!
“커억!”
“반야장?”
양손을 번갈아 뻗자 두 손의 그림자가 잔영을 만들어냈다.
인성질 셋이 폭풍우처럼 쏟아지는 공격에 대응하며 일장을 뻗었지만, 손이 부딪히는 순간 피화살을 뿜으며 날아갈 뿐이다.
전력을 다해서 막아도 모자랄 판에 엉성하게 대처했으니 당연한 결과다.
달마 사부와 장삼풍 사부가 함께 뜯어고친 이 반야장은 공격 일변도의 무공이다.
그러면서 수를 거듭할수록 위력이 강해지기까지 한다.
앞으로 쏠쏠하게 써먹을 수 있을 것이 분명하다.
“이익!”
그런 내 반야장에 대응해 혜인이 권을 뻗어왔다.
아라한신권.
기억에 있는 무공이다.
옆구리가 욱신거리는 기억이다.
한때 혜원 스님이 펼친 아라한신권에 당해서 기절까지 했었다.
하지만 나는 그때의 내가 아니다.
묵직하게 다가오는 소림권에 향해 나는 연거푸 장력을 쏟아냈다.
콰콰쾅!
쌍수를 뻗어 세 번을 연거푸 부딪쳤다.
하지만 내 흐름은 끊어지지 않았다.
반야장은 기본적으로 연타를 가하는 무공이다.
상대의 공격을 공격으로 상쇄시킨다.
흐름을 끊지 않고 힘이 다할 때까지 이어간다.
그렇게 이어낼수록 강해지는 무공이다.
혜인은 이 흐름을 끊어내지 못했다.
‘그럼 처맞아야지.’
소림의 무공을 펼치는 중이라 해서 장삼풍 사부의 청경이나 천마 사부의 공감각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다.
초식의 격돌 끝에 훤히 드러나는 허점을 향해 쌍수를 불꽃처럼 쏘아냈다.
펑! 퍼퍽!
“억! 커억!”
손을 뻗는 족족 타격이 들어간다.
일방적으로 혜인을 두들겼다.
“으악! 그, 그만… 그만!!”
“아직도 혀가 짧네.”
부탁이란 공손하게 해야 하는 것이라고 배우지 못한 것일까?
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면, 차릴 때까지 예절을 주입하면 될 일이다.
그때였다.
“이, 이 이상 패악질을 부린다면 도연 사숙이 가만있지 않으실 거다!!”
‘도연?’
나잇살 먹을 대로 처먹은 주제에 불리해지니 어른에게 이르겠다는 꼬라지가 참으로 병신 같지만, 그 병신 같은 언행 속에서 그냥 넘기기 어려운 법명이 나왔다.
“도연대사가 뭔 연관이 있길래요?”
“소림 내에서 혈교의 대법을 받은 자들을 찾아내란 방장의 명을 수행하는 분이 도연사숙이시다!”
어이가 가출할 뻔했다.
그 도연이 바로 혈교의 대법을 받은 불온한 무리의 주구인데, 누구에게 뭘 맡겨?
어떻게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길 수 있겠냐고 비웃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것이 실제로 벌어졌다.
아무래도 소림 방장은 좀 모자란 사람이거나 보는 눈이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여기까지 들으니 이들이 믿는 바가 뭐였는지 알 것 같았다.
갑작스러운 실력의 상승을 혈교 대법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몰아갈 생각이었던 것 같다.
잘만 포장하면 그럴싸한 말이긴 하다.
“댁네 배후에 도연대사가 있다는 거네?”
다만 저들이 내세울 수 있는 건 증명되지 않은 의혹뿐이다.
냉정하게 살펴보자면 말도 안 되는 일이기도 하고.
고작 그따위 의혹으로 신승 어르신과 소림의 은인인 나를 건드린다?
제대로 맞받아치기만 하면 도연이 치러야 할 책임이 막중할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다.
주도권을 잡는다.
이런 건 먼저 터트리고 목소리 높이는 쪽이 이기는 싸움이다.
저쪽이 개소리로 분위기를 잡기 전에 먼저 선수를 친다.
소림의 은인인 나를 증명되지 않은 억측으로 핍박한 건 저쪽이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내가 저지를 깽판은 모두 합법이다.
뭔가 터무니없는 기적의 논리 같지만 착각이다.
‘안 그래도 어떻게든 엮어서 조질 생각이었는데, 잘 걸렸다고 해야 하나?’
이따금 들려오는 달마 사부의 이 가는 소리를 고려하면 가능한 빨리 사부님 앞으로 보내야 할 작자다.
나는 혜인의 목을 움켜쥐었다.
“컥!”
“어디 도연대사가 뭐라는지 한번 들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