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311
310화 외통수
아쉽게도 도연은 공격해오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내 의견을 참조하겠다는 말만 남기고 자리를 끝냈다.
기회가 생기면 아예 소림을 뒤집어놓을 생각까지 했었던 것을 고려하면 다소 아쉽게 끝나버렸다.
그래도 수확은 쏠쏠했다.
소림 내부에 학의 주구들이 암약하고 있다는 경계심을 심었고, 그들에 대한 구분법을 널리 알리기까지 했으니 내가 취할 이득은 거진 다 챙겼다고 해도 무방했다.
그렇게 일을 벌이고 돌아왔더니 신승 어르신이 묘한 눈초리로 바라보셨다.
“아주 거하게 판을 벌였더구나.”
벌써 신승 어르신 귀에 내가 벌인 일이 들어간 모양이다.
“소림 참 좁네요.”
“이젠 여기도 머릿수가 제법 되니 말이다.”
별일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이시더니 얕은 웃음을 흘리신다.
신승 어르신은 내가 벌인 일을 나쁘지 않게 보신 것 같다.
“……이젠 나도 몰겄다.”
범각 녀석은 감당이 안 된다는 듯 중얼거렸지만, 못 들은 척했다.
“그럼 다음은 어찌 움직일 생각이냐?”
“저쪽을 더욱 궁지로 몰아야죠.”
다행스럽게도 공동파와는 달리 소림은 아직 혈교 대법을 받은 자들의 세력이 소림을 집어삼킬 정도는 아닌 것 같다.
소림은 무림의 태산북두이며 정파가 나아갈 방향을 주도하는 곳이다.
소림 문하의 제자들은 스스로 소림의 제자라는 것에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자부심이 하늘에 닿아있는 이들에게 사마외도의 수법이나 다름없는 사악한 수법을 권한들 단번에 흔들리는 경우는 흔치 않을 것이다.
구파라면 대부분 그러하겠지만, 소림은 특히나 더하다.
다만 이를 반대로 생각한다면 빠른 성취로 이른 시기에 벽에 부딪히는 현 무림의 경향이 혈교 대법을 퍼트리기 좋은 환경을 만든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조급함과 답답함으로 절박한 사람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소림 내에 혈교의 대법을 받아들인 자들이 나온 이유다.
“이제 소림 제자들은 무엇에 주목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다른 때라면 그냥 넘어갔을 부분도 이제는 의혹의 눈으로 보게 될 겁니다.”
“압박감을 느끼겠군.”
“시답잖은 변명들도 나오겠죠.”
도연은 중토신공을 빌미로 나와 신승 어르신을 몰아세울 계획이었다.
그런 만큼 한두 번 정도는 중토신공에 대한 의혹을 무기로 여론을 만들려는 시도가 있을 수 있다.
그것이 저들을 조여 오는 압박감에서 벗어날 방법일 테니까.
“하지만 사람은 스스로가 듣고 싶어 하는 것에 집중하는 법이죠.”
머리가 있다면 함부로 시도하지 않을 짓이겠지만, 도연과 결탁한 자들 모두가 영리하고 신중한 것은 아니다.
애초에 조급함을 못 이겨 소림의 자부심을 버리고 편한 방법을 찾은 작자들이다.
참을성은 그들이 가졌을 덕목에서 빠져있음이 분명하다.
인성질 삼인조만 봐도 알 수 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오히려 악수(惡手)지.’
지들이야 중토신공으로 효능을 보지 못했지만, 혜원 스님이나 혜정 스님처럼 효능을 본 경우도 적지 않다.
중토신공을 사이한 수법이라며 폄하하고 깎아내린다?
그럼 왜 니들은 수련을 등한시했는데 성취가 그리 높은 거냐는 반박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아직까지 소림은 혈교 대법에 손댄 이들이 소수이니만큼 시간이 지날수록 유리해지게 된다.
이래서 여론을 만드는 것은 선수필승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렇게 분열이 극심해질수록 숨어있던 학의 주구들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다만 문제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허면 방장은 어떤 분이십니까?”
궁지에 몰린 도연에게는 소림방장이 ‘녹옥불장의 권한으로 내린 명령’이라는 무기가 있다.
신승 어르신께 반발했고, 도연을 가까이하며, 도연에게 녹옥불장의 권한을 내렸다.
여기까지만 봐도 대충 감이 잡히지만, 보다 분명히 알기 위해 신승 어르신께 물은 것이다.
“방장이라…….”
신승 어르신은 잠시 생각을 정리하시고는 대답을 주셨다.
“자부심이 강한 편이지. 그런 만큼 주관이 강하다. 나와 대립할 정도일 줄은 몰랐지만.”
“자신이 옳다고 맹신하는 성격이군요.”
“한 무리의 수장으로서는 나쁘지 않다고 볼 수 있겠지. 단점만큼 장점 또한 뚜렷하니까. 으음…… 지금 같은 상황이 아니었다면 좋은 방장으로 이름을 남겼을지도 모르겠구나.”
사족처럼 느껴지는 신승 어르신의 뒷말을 들어보니 다행히 방장이 혈교에 넘어갔다는 최악의 상황은 면했지만, 불행히도 여전히 최악에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의 판단이 옳다고 확신하는 유형이라……. 대충 어떤 사람인지는 알겠네.’
쉽게 흔들리지 않는 바위 같은 성정을 지닌 유형이다. 할아버지 수하로 있던 관리 중에도 여럿 있었다.
이런 사람들은 스스로의 판단을 맹신하는 만큼 누군가를 신뢰하면 끝까지 믿는다.
신승 어르신의 평가대로 지도자로서 좋은 덕목이기도 하지만, 사람 보는 눈이 어둡다면 큰 실책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문제는 그런 사람이 도연을 신뢰하고 있다는 것이다.
도연에게 있어 방장은 최후의 보루다.
잠깐이지만 소림방장 역시 혈교의 주구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했지만, 신승 어르신의 평가대로라면 절대로 혈교의 대법을 받았을 리가 없다.
오히려 극도로 혐오할 것이다.
이를 증명할 수만 있다면 절대로 도연을 비호할 리가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학의 주구들은 드러나게 될 터.
결국, 멀리 본다면 소림방장의 비호 역시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런데 왜 불길한 기분이 사라지지 않지?’
상황은 분명 이쪽이 유리하다.
그렇게 흘러가도록 판을 짰다.
시간이 지날수록 도연과 학의 주구들은 궁지에 몰리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안에서 깊은 위화감을 느꼈다.
‘뭔가 놓치고 있는 기분이 드는데…….’
그런 가운데 장삼풍 사부가 조언을 내려주셨다.
[답이 안 나올 때는 문제를 바꿔봐라.]‘어째 내가 느끼는 위화감이 어디에서 오는지 답을 알고 계신 것 같은데…….’
답을 알기에 그곳으로 향할 수 있는 단서를 내주시는 느낌이다.
“쩝! 그냥 편하게 알려주시지.”
“어엉?”
“아뇨, 혼잣말입니다.”
입을 다물고 고민하던 나를 빤히 바라보시던 신승 어르신이 득달같이 반응하신다.
위에서도 내 말에 대한 대답이 내려왔다.
[넌 좀 굴리는 쪽 반응이 재미있다더라.]“…….”
어떤 분인진 몰라도 심보가 참으로 고약하다.
뭐, 어쨌든 내가 어떻게 할 수는 없으니 넘어가고.
‘문제를 바꿔라…….’
시점을 바꾸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까?
지금 시점을 바꾸라는 것은, 역시 도연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내가 도연이라면 지금의 위기를 어떻게 넘길까?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했다면 시간이 자기편이 아니라는 것은 알 테고.’
그럼 다급하게 일을 벌일 거다.
그렇다고 무력으로 뭔가를 해보려는 건 하책이다.
소림에 피해를 줄 수야 있겠지만, 승산은 희박하다.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최후의 발악이라면 모를까 가능성은 작다.
‘가지고 있는 무기 중 가장 강하고 효과적인 것이라면?’
현재 도연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무기는 소림방장에게서 위임받은 권한이다.
내부의 불순한 자들을 찾아 없애라는 소림 최고 권력자의 지시.
‘자신을 신뢰하는 소림방장을 앞에 세운다?’
확실히 잠깐이라면 효과가 있긴 할 것이다.
하지만 결국 자충수(自充手)가 된다.
거짓이란 결국 어긋남을 품게 된다.
서로를 겨냥하는 진실과 거짓이 한자리에 서게 되면 거짓은 어긋남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잠깐이야 도연을 옹호하며 싸고돈다고 해도 결국 어느 쪽이 진실이고 거짓인지를 알아볼 것이다.
‘자충수를 감수할 만큼 시간벌이가 급하다면 무당파의 경우처럼 외부세력을 불러들일 생각일까?’
소림은 공동파나 점창파처럼 확실하게 장악되지 않았다.
어떻게 본다면 무당과 비슷한 상황이다.
비록 무당에서는 실패했지만, 충분히 유용한 방법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위화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위화감이 가장 강하게 느껴지는 순간을 되새겼다.
“소림방장…….”
소림방장이 시간벌이용 자충수라고 판단한 시점.
‘문제를 바꾼다…….’
소림방장을 앞에 세운다.
‘시점을 바꿔라…….’
이 상황을 다른 시각으로 본다면?
‘소림방장을 앞세우는…… 응?’
그때 문뜩 드는 생각이 있었다.
“……죽인다?”
“뭐라?!!”
[쯧!]장삼풍 사부가 혀를 찼다면 틀렸다는 것이겠지만, 지금 이건 달마 사부다.
그렇다면 장삼풍 사부가 내린 결론과 일치했다는 의미다.
“그게 무슨 소리냐? 방장을 죽인다니!”
“아뇨, 제가 죽인다는 소리가 아니고요.”
오해하신 것 같다.
범각도 식겁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게 거하게 오해한 것이 분명하다.
내가 아무리 막 나간다지만 소림방장을 죽일 생각까지 할까.
하지만 그런 막 나가는 생각을 실천에 옮길 동기가 충분한 작자는 있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어서요. 현재 도연 입장에서는 소림방장이 살아서 옆에 있는 것보다, 죽어서 시체가 되는 쪽이 이득이 아닌가, 하는.”
“그게 무슨… 터무니…!!?!”
생각지도 못했는지 신승 어르신이 터무니없는 소리 말라며 소리를 지르려다 멈추신다.
신승 어르신도 어느 정도 감이 잡히신 것 같다.
“방장께서 입적(入寂)하시면 도연은 일종의 고명대신(顧命大臣)이 되겠지요. 실제로 방장께서 크게 신뢰하고 있으며, 녹옥불장의 권한을 빌려주기까지 했으니까요. 학의 주구라는 것이 아직 밝혀지지 않은 지금이라면 평판도 좋을 테고요. 이 정도로 큰 사건이 터지면 중토신공과 관련된 논의는 단번에 수면 아래로 가라앉겠네요.”
소림방장이 죽는 순간 도연으로서는 골치 아픈 모든 사항이 일시에 보류된다.
“그런 상황에서 타살로 밝혀진다면 의심받을 쪽은…….”
“……아미타불!”
“내부의 불순한 무리를 소탕하라는 소림방장의 마지막 지시를 따르겠다고 나서면 아주 멋들어진 그림이 나오겠는데요.”
나와 신승 어르신의 목을 날려버리고 모든 걸 은폐할 것이다.
그리고 소림의 정점에 도연이 앉으면 그날로 끝이다.
아마 제일 먼저 무당파에서 길길이 날뛸 테니 말이다.
소림 대 무당파의 한판 승부라는 호사가들이 꿈에서 그리는 싸움이 펼쳐질지도 모르겠다.
“방장… 도천이 녀석에게 가봐야겠다!”
신승 어르신이 빠르게 몸을 날렸다.
***
‘언제부터 짠 계획이었을까?’
신승 어르신과 함께 소림방장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던 중 떠오른 생각이다.
내가 개입하면서 도연은 다급해졌을 것이다.
그 여파가 낳은 결과인 것일까?
[아마 처음부터 방장을 제거할 계획이었을 거다.]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인지 장삼풍 사부가 예상한 바를 알려주셨다.
[저 공료라는 아해의 평가대로라면 도연이란 놈에게 방장은 방해물이 될 수밖에 없을 테니까. 네가 개입하지 않았더라도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그럼 더 안 좋은데요.”
처음부터 죽일 생각이었다면 미리 방법을 준비해놓았을 가능성이 크다.
어쩌면 지금 바로 방장에게 달려가는 것은 엉뚱한 오해를 낳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가야 한다.
관망만 하고 있다간 저쪽이 원하는 순간, 원하는 시기에 터트릴 것이다.
갈 수밖에 없다.
일종의 외통수가 되어버렸다.
가는 길목 사이사이에 지켜보며 경계하는 이들이 있지만, 신승 어르신이 길을 열었다.
그렇게 나와 신승 어르신은 한달음에 소림방장이 거하는 곳에 다다랐다.
“……어쩐… 일이십니까?”
소림방장은 강직한 인상의 노승이었다.
하지만 인상과 달리 어딘가 힘이 없다.
상당히 위태로워 보일 지경이다. 소림의 고승이 아니라 오늘내일하는 노인의 눈이다.
신승 어르신도 그것을 느꼈는지 조심스럽게 방장에게 다가갔다.
“괜찮은 겐가?”
“모르…… 욱! 우웩!!”
스스로도 자신의 상태가 정상이 아님을 느꼈는지 고개를 젓던 소림방장은 피를 토하며 경련을 일으켰다.
“독?”
무당파를 방문했던 도연이 중독시킨 것이라면 어쩌면 이 독은 허도진인께 쓰려 했던 독과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관련자들은 이미 명부에서 따로 관리 중이니 해독제를 만드는 법을 알아보마.]척하면 척이라고 사부님들도 바로 움직여주셨다.
나는 소림방장에게 다가갔다.
“제가 의술을 좀 압니다.”
“그럼 한 번 봐 보거라.”
진맥을 하며 내공과 신력의 일부를 혈에 불어넣어 몸을 살폈다.
‘다행이다. 아직 살아 있어…….’
매우 위급하지만, 아직 숨은 이어져 있다.
그렇다면 살릴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 오는구나.”
어째 호의적이지 않은 인기척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