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340
339화 괴랄한 손가락
입천신마존과 비무 이후 사천 정파 연합에서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었다.
사천당가나 곤륜파야 진즉부터 나를 인정했지만, 청성파와 아미파의 경우는 좀 미묘했었다.
미래가 기대되는 기재로야 인정받았지만 그뿐이었다.
지금은 후기지수라는 단어 자체가 사라졌다.
비슷한 또래의 젊은 후기지수들은 극명하게 시선이 나뉘었다.
질시(嫉視)와 선망(羨望).
구파의 후기지수로서 언제나 스스로를 최고라 생각해왔던 탓인지 규격 외의 존재인 나를 어찌 대해야 할지 당황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그럴 만도 하다.
어딜 가나 대접받고 우러름을 받으며 언젠가 무림 최정상을 노릴 수 있는 기재라고 여겼는데, 내가 보여준 힘을 보고 자괴감을 느꼈을 것이다.
천재라 여겨지는 이들을 범재로 끌어내려 버린 것이다.
덕분에 또래들과는 보이지 않는 거리감이 생겨버렸다.
왜 그런 사람 있지 않은가.
편하게 술 마시는 자리에 끼어들면 갑자기 분위기가 무거워지게 만드는 사람.
그게 내가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마 이후로도 저들과 편하게 자리할 수 있는 기회는 영영 없을 것이다.
“야, 한 가지만 물어보자.”
그때 거리감 따윈 모르겠다는 듯 다가온 백무호가 내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거 어떻게 하는 거냐?”
“그거?”
“이기어검 말이야. 너 검을 무슨 무 뽑듯이 던져대더라?”
타인의 무공에 대해 이런 식으로 대놓고 물어보는 것은 피하는 것이 무림의 불문율임에도 아무렇지도 않아 했다.
그만큼 거리감이 없다고 해야 하나?
백무호만이 아니었다. 장소월 소저 역시 눈을 반짝이며 성큼 다가왔다.
“맞아요. 나도 그거 궁금했어요.”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것을 보면 정말 궁금하긴 했나 보다.
비단 백무호와 장소월 소저만이 아닌지 일대에 있는 이들이 귀를 쫑긋 기울였다. 죄다 토끼만 있는 것인가 싶을 정도다.
심지어 그중에는 장문경 선배까지 있었다.
뭐, 사실상 검에 미쳐 사는 양반이다 보니 이상한 일까진 아니지만.
삽시간에 조용해진 분위기가 압박감처럼 다가왔다.
시선만 향하고 있지 않을 뿐, 모든 신경이 내 일거수일투족에 집중되어있다.
문제는 설명할 방도가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내 머릿속에 상화라고 이름 붙인 천상 도화나무의 정이 사는데, 다들 그거 하나씩 분양받아 머리에 박아 넣으라고 할 수도 없지 않은가.
아마 장난치냐며 칼침이 날아올 것이다.
‘요는 신경을 얼마나 잘 분산시키느냐인데…….’
나는 두 손을 백무호의 앞에 쫙 펼쳤다.
“잘 봐.”
이어 손가락 하나를 꿈틀거리며 움직였다.
“근육과 신경을 완벽하게 통제하면 이런 것도 가능하거든?”
“오?”
손가락이란 원래 관절이 굽어지는 방향으로만 움직이게 되어 있다.
지금처럼 흐느적거리게 움직이려면 근육과 신경을 뜻대로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평범한 사람 중에는 귀를 움직이는 것조차 못하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되는데?”
그래도 무림인이라고 백무호가 어렵지 않게 따라 했다.
장소월 소저 역시도 어설프긴 해도 금방 따라 했다.
“자, 그럼 이제 하나 더 늘려보자.”
중지도 검지처럼 흐느적거리며 움직였다.
다만 두 손가락이 동시에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각기 따로 움직인다는 것이 중요했다.
이번에는 만만치 않은지 백무호도 쉽지 않아 했다.
어깨를 비틀고 허리를 꼬며 별의별 짓을 다 했지만 실패하고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두 개부터는 어렵네.”
“세 개는 더 어렵지.”
약지가 검지와 중지를 따라 꿈틀거리며 움직였다.
두 개만 움직일 때도 괴랄했는데, 손가락 세 개가 꿈틀거리니 기괴함 그 자체다.
내 손가락을 지켜보던 백무호가 가늘게 눈을 흘겼다.
“너 설마 열 손가락 다 되냐?”
“볼래?”
손가락 열 개가 보란 듯이 살아있는 생물처럼 제각기 움직이며 꿈틀거렸다.
내가 봐도 이건 좀 아닌 듯싶었지만, 이제 와서 뭐.
“와…… 이거 한밤중에 봤으면 괴담 하나 뚝딱이겠다.”
혐오스러운 거라도 본 사람마냥 백무호가 슬쩍 나와 거리를 뒀다.
장소월 소저는 백무호처럼 거리를 두진 않았지만, 썩 좋은 표정은 아니다.
괴담까진 좀 너무한 거 아니냐고 항변하고 싶었지만, 내가 생각해도 이건 좀 소름 끼치긴 했다.
“오…….”
“으음?”
“허어…….”
그런 가운데 갑자기 주변에서 묘한 소리들이 이어졌다.
어째 하나도 빠짐없이 자기 손을 내려다보며 궁리를 하고 있다.
“감각을 기르는 데 유용한 수련법일지도 모르겠구려.”
“정규 수련법으로 넣어봐야 하나?”
‘이 양반들 제정신인가?’
어째 이상한 방향으로 폭주하고 있었다.
졸지에 기괴한 수련법을 하나 만들어버린 것 같다.
“조만간 괴담 하나 나오겠네.”
“……닥쳐, 짜샤.”
백무호는 농담처럼 말했지만, 어째 농담으로 끝날 것 같지가 않았다.
이러다 다른 지역 사람들이 사천 쪽 무인들 수련하는 걸 보고 질겁하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같은 사천 사람들끼리도 질겁하지 않을까?
실제로 그 순간은 빨리 찾아왔다.
“……다들 뭐 하는 개지랄들이야?”
잠시 자리를 비웠던 당천기 가주가 보고 기겁을 했다.
한 사람만 한다고 해도 혐오물인데, 단체로 앉아 그러고 있으니 질겁할 만하다.
수상한 사이비 종교의 비밀집회라도 목도한 느낌이지 싶다.
“무종 연대협의 수련법인데요?”
“오? 정말?”
하지만 누군가 설명을 해주자 당천기 가주도 쪼그려 앉아 똑같은 짓을 하기 시작했다.
암기를 다루느라 감각이 섬세해서 그런지 다른 사람들보다 월등한 기괴함이 당천기 가주의 손에서 피어났다.
“이거 괜찮은데?”
‘오염당했어?’
무려 당천기 가주까지 당해(?)버렸다.
불길한 예감이 점점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제대로 된 정규강좌로 편성되기 전에 지금이라도 끊어야겠다 싶어 급히 끼어들었다.
“가셨던 일은 잘 풀렸습니까?”
“아차차.”
한참 집중하던 당천기 가주가 혐오스럽게 꼼지락거리던 손을 멈췄다.
“흑애무천 쪽에서 연락이 왔다. 미리 준비를 해둔 모양인지 빠르게 정리한 모양이더군.”
점점 이상해지고 있던 여기와는 달리 일이 잘 풀린 모양이다.
“가죠.”
더 끔찍해지기 전에 얼른 움직여야겠다.
***
입천신마존의 설명에 사천의 정황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대충 예상할 수 있었다.
애당초 사천이 지금처럼 살벌한 전쟁 분위기(?)가 형성된 것은 천마신교가 밀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암중세력, 멸천회의 시선을 잡아두기 위해 서로 짜고 치는 판이긴 했지만, 대외적으로 보이는 모습은 그랬다.
하지만 멸천회의 움직임이 본격화된 지금은 그 효용이 끝났다.
이제는 사천에서 벌어진 분쟁(?)을 마무리 지어야 할 때다.
이를 위해서 가장 좋은 방도는 새로운 표적을 설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처음부터 농락당했다!”
흑애천주 공손도, 공손 노야는 사천분쟁의 핵심수뇌부가 모인 자리에서 노성을 터트렸다.
뭐, 같이 손에 손잡고 사기도박을 하던 사람들만 모여 있는 자리였다면 수인사를 나누며 화기애애한 덕담과 함께 따낸 판돈을 어떻게 나눌지를 논의했겠지만, 이 자리는 보는 눈들이 좀 많았기에 형식(?)도 달라졌다.
“사천의 분쟁은 처음부터 암중세력의 수작에 의해 일어난 일이다! 이것이 그 증거다!”
실상을 모르던 정사마의 실무진들은 공손노야께서 꺼낸 증거를 바라보며 쌍심지를 켰다.
그 증거들은 대부분 멸천회를 겨냥하고 있었다.
살짝 조작된 것들도 있는 것 같지만, 진짜로 보이는 것도 상당했다.
그 대부분은 흑애무천 내에 암약하고 있던 멸천회 간자들이 주고받은 서신이었다. 일부 고문을 통해 확보한 진술서들도 있었다.
주된 내용은 어떻게 하면 사천을 좀 더 혼란스럽게 만들지에 대한 논의들이었다.
“허! 이거…….”
“점창파가 한통속이었었다니…….”
흑애무천 내의 변절자들이 주고받은 서신에는 점창파에 대한 내용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다.
그 백미는 역시 강정에서 정사마가 정면충돌하도록 유도하는 계책이었다.
입천신마존이 거기에 추를 올렸다.
“천마신교는 얼마 전 천마를 잃었다.”
사실과는 달랐지만, 입천신마존은 뻔뻔하게 짜천마의 죽음을 멸천회의 소행으로 몰아넣었다.
“으음!?”
천마라는 이름은 무림에서도 절대 가볍지 않았다.
왜 천마신교가 갑자기 사천으로 진군한 것인지 의아해하던 각 문파의 실무진들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우리는 이 일의 배후에 중원의 세력이 개입해 있을 것이라 확신했지. 이제야 진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의 진정한 적이 누구인지!”
얼마 전 믿기지 않는 신위를 보인 입천신마존의 발언에는 강한 무게감이 실려 있었다.
심지어 서로 적대하는 사람이 가득한 자리임에도 입천신마존의 말을 부정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을 정도였다.
‘이제 내가 나설 차례인가.’
이 일은 사천만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할 일은 이를 부각시키는 것이다.
“얼마 전, 무당과 소림에서 혈교의 대법을 받은 자들이 준동하려 한 일이 있었습니다.”
“소림과 무당에서?”
“설마 흑룡회와 흑살대가 무당파를 공격한 일과 연관이 있는가?”
소림에서의 일은 내부에서 수습을 했지만, 무당에서의 일은 외부로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어느 정도 소문은 퍼졌지만, 당시 구파 모임에 참여하지 못했던 사천에서는 자세한 속사정에 대해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이 암중세력은 단순히 천마신교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구파와 오대세가에도 그 암수를 뻗은 정황을 발견했습니다.”
“맞소! 우리가 그 증거요.”
오문도장이 분기를 드러내며 목소리를 높였다.
“공동파의 구 할은 이미 저들의 손에 넘어갔소. 여기 있는 우리는 그들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솥밥을 먹던 동기들의 산 제물이 될 뻔했소이다.”
슬슬 공동파의 상황이 퍼졌을 시기이기에 다들 얼굴을 굳혔다.
“화산과 종남도 이미 저들에게 넘어갔습니다.”
“화산마저?!”
“구파가 반 토막 났다는 것인가!”
구파를 반 토막 내고, 천마신교의 천마를 죽였으며(?), 흑애무천 내부로 간자를 심어둔 자들이다.
게다가 무당파를 공격한 흑룡회와 흑살대의 움직임만 봐도 그들의 휘하에는 사파 거두들까지 함께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그것만이 아니다.
“부끄럽지만 당가에도 간자들이 암약하고 있었지.”
“남궁세가가 크게 휘청였다는 소식은 다들 들었을 것이오. 그 일을 주도한 도적연맹의 배후에도 이 암중세력이 있었소이다.”
“미친…….”
사천이 분쟁에 휘말려있는 사이 상상 이상으로 사태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자 경각심을 넘어 두려움을 느끼는 것 같았다.
무리는 아니다.
사실상 무림 전역에 수작질을 벌여온 존재가 있음이 드러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두려움을 느끼지 못한다면 오히려 수상쩍을 판이다.
“지금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니다. 오히려 힘을 합쳐야 한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사파의 핵심 세력인 제육천의 일좌인 흑애무천의 주인이 협력을 외쳤다.
하지만 이야기에 휘말린 사람 중 어느 하나 이에 고개를 젓지 않았다.
정체를 가늠하기 어려운 강대한 암중세력의 등장에 따른 협력의 필요성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허면, 무림맹을 다시 세워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소.”
그런 가운데 힘을 모으기 위한 뚜렷한 구심점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의견이 나왔다.
“맹이라면 이미 존재하고 있소.”
제갈세가 가주가 앞으로 나섰다.
“제갈세가와 사천당가, 하북팽가, 남궁세가는 무종을 따르기로 결정하였소이다.”
갑자기 내가 대두되었다.
백무호가 뒤를 따랐다.
“살아남은 화산파 제자들 역시 이미 입맹하였습니다.”
“공동파 역시!”
오문도장이 탁자를 내려치며 뒤를 받쳤다.
“그라면 부족함이 없겠지. 저 청년이 천마신교의 사람이었다면 내 지금이라도 당장 천마위에 올렸을 거다.”
거기에 천마신교가 쐐기를 박았다.
나를 탐내는 언사에 정파 쪽 인사들의 시선이 사나워지긴 했지만, 입천신마존은 코웃음으로 넘겨버렸다.
그다음은 일사천리였다.
사천에 모인 모두가 멸천회와 싸울 것을 청명하며 무림맹의 이름 아래 하나로 뭉쳤다.
정사마의 힘이 하나로 모였다.
그동안 사천을 혼란스럽게 만든 도박판이 끝난 순간이기도 했다.
***
다만 거기에서 끝났으면 참 깔끔했을 테지만, 당천기 가주가 괴랄할 짓을 했다.
“이거 한번 해보시겠소?”
손가락이 제각기 꿈틀거리는 것이 최면을 거는 수작질처럼 모인 이들의 눈을 어지럽혔다.
“우리 맹주가 이기어검을 다발로 부리는 비법을 이걸로 깨우쳤다더이다.”
뭔 미친 짓이냐며 어이없어하던 이들이 눈이 뒤집혀 당천기 가주의 현란한 손가락 놀림을 주목했다.
괴이한 유대감이 손가락을 꿈틀거리는 속에서 만들어졌다.
‘아, 몰라…… 정신 나갈 거 같아…….’
후폭풍이 좀 세게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