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353
352화 하늘에 닿은 의지(2)
폭풍이 도시를 누르기 시작했다.
도시 전체를 불태울 기세로 치솟던 불길이 몸을 낮춘다.
물론 폭풍만 불었다면 그 바람을 타고 오히려 불길이 더욱 크게 번졌을 것이다.
하지만 거세게 쏟아지는 폭우가 동반하자 거칠게 일어나던 화마의 기세가 완연하게 사그라들었다.
도시를 불태워 절망을 퍼트리려 했던 이들, 혈교의 마인들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사태에 아연실색했다.
특히 연청운의 행동을 두 눈으로 보고, 두 귀로 들었으며, 그 결과를 직면한 혈교의 노고수는 광기와 이성이 뒤섞인 채로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이런 게…… 이런 만행이 가능할 리가…….”
연청운이 하늘을 향해 손을 뻗는 모습은 누가 봐도 절망에 빠져 하늘을 원망하는 듯한 행동이었다.
그 뒤에 이어진 일갈은 절망에 맞서는 자의 분노였다.
공교롭게도 그 말과 행동에 맞춰 하늘이 대답이라도 하듯 비와 바람이 몰아쳤다.
우연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도 공교롭다.
비현실적이지만, 이 비바람을 부른 당사자가 연청운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광경이고 행동이었다.
“말도 안 된다…… 하늘이 이럴… 리가… 이럴 리가 없다…….”
칠공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는 혈교의 노고수는 눈앞의 현실에서 눈을 돌리고 싶었으나, 외출했던 정신을 강제로 되돌리는 힘이 눈앞에 덮쳐오고 있었다.
“뭐래.”
히죽 웃는 경태세가 거구를 날리며 발을 뻗었다.
채찍처럼 휘어지는 각법이 노인의 옆구리를 후려 찼다.
뻐억!!
“큽!”
반사적으로 팔을 내려 막아냈지만, 충격의 여파만으로도 호흡이 멎을 것 같은 위력이 담긴 각법이었다.
저 무지막지한 일격을 버틴 것을 보면 내공으로 몸과 장기를 보호한 것 같지만, 완전하진 않았는지 폐를 쥐어짜는 듯한 신음과 함께 각혈이 튀어나왔다.
순간적으로 몸이 꺾인 노인의 몸이 발에 차인 공처럼 튕겨 나갔다.
“크하하하하!”
경쾌한 웃음소리와 함께 경태세가 튕겨 나간 혈교 노고수를 추격했다.
허나 이번에는 상대도 가만히 당하지 않았다.
혈교 노고수는 튕겨지는 몸을 수습하면서 즉각 붉은 강기를 뽑아 경태세에게 뻗어냈다.
붉은 강기가 경태세의 몸통을 꿰뚫을 기세로 섬전처럼 쏘아졌다.
“크합!”
콰아아앙!
힘차게 휘두른 경태세의 주먹이 날아드는 강기를 쳐냈다.
“노오오오오옴!!”
자신하던 일격이 막힌 것에 자존심이 상한 노인이 노성을 내질렀다.
동시에 붉은 기운이 혈교 노고수의 손에 어렸다.
처음 발출했던 붉은 강기와 달리 힘의 흐름이 유려했다.
침투경.
외부를 치는 것이 아니라 내부를 흔들기 위한 내가의 힘을 응축한 것이다.
외공의 고수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내가중수법이라는 무림의 정석 그대로 단단한 외부가 아닌 내부를 곤죽으로 만들려는 시도가 훤히 보였다.
하지만 경태세는 되레 몸을 들이밀다시피 방어를 도외시하며 파고들었다.
혈교 노고수의 손이 경태세의 몸에 닿았다.
통!
하지만 들려온 소리는 맑지도 웅장하지도 않았다.
탁하고 옅은 소리, 힘이 제대로 파고들지 못해 외부의 껍데기에서 힘이 그쳐 버린 소리였다.
“어엇?!”
“늙은이!”
경태세는 달려들던 기세 그대로 들이받았다.
퍼억!
단순무식한 육탄돌격이었지만, 혈교 노고수의 몸을 띄우기에는 충분했다.
그렇게 딱 알맞은 위치로 몸이 떠오른 노인의 복부를 노리며 경태세의 다리가 뻗어나갔다.
“뒈져!”
뻐어어어억!
쿠르르르릉!
가차 없이 밀어 찬 힘에 혈교 노고수의 몸이 날아가더니 건물 벽을 무너트리며 그대로 처박혔다.
그대로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을 일격을 날렸음에도 경태세는 혈교 노고수가 처박힌 건물로 향했다.
완전히 박살 난 비에 젖는 잔해를 뒤적거리던 경태세의 손에 원하는 것이 잡혔다.
비루먹은 짐승을 다루듯 한 손으로 목을 집어올린 경태세가 히죽 웃었다.
“단전이 박살 났나?”
끊임없이 피를 토해내는 혈교 노고수의 몸은 혈관이 터지려는 듯 부풀어 올랐다.
단전을 중심으로 거미줄처럼 혈관이 불거지는 모습은 꽤나 끔찍했다.
하지만 이 늙은이가 보였던 행동이 무척이나 거슬렸던 경태세는 혈교 늙은이의 고통과 절망을 즐겼다.
“크륵… 이놈이나 저놈이나… 쿨럭! 쿠에에엑!”
목이 잡힌 채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린 늙은이는 하염없이 피를 토해내면서도 납득할 수 없는 현실을 원망했다.
그냥 죽이는 건 속이 풀리지 않는지 경태세는 조롱을 담은 무의미한 대화를 이어나갔다.
“소문 못 들었나 보네. 중경에까지 장강 용왕의 화신이 나타났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안휘에서는 연 동생을 용신님이라고 한다지?”
“크아… 카… 쿨럭! 쿠엑!”
연청운의 정체를 이제야 알겠다는 듯 혈교 늙은이가 피가래 끓는 소리를 내며 몸부림을 쳤다.
경태세의 몸을 걷어차기도 하고, 손톱으로 팔을 긁어보기도 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혈교 늙은이는 더 이상 강기를 뿜어내지 못했다.
“용은 신령한 존재라지. 혈마라는 병신도 호풍환우를 부르는 용신님 앞에서는 단번에 찢겨질 것 같지 않아?”
“캬아아… 쿠엑! 쿨럭!”
혈교 늙은이의 눈에서 지독한 악의가 쏟아졌다.
피눈물을 쏟고 있어 더욱 그 악의가 짙어 보였다.
보고 싶은 것을 끄집어낸 경태세는 그제야 만족스럽게 웃었다.
“좋네.”
목을 움켜쥐고 있던 손에 힘을 주었다.
우득!
마른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혈교 늙은이의 몸이 축 늘어졌다.
경태세는 부서진 건물 잔해 위에 시신을 패대기치고는 잘근잘근 밟았다.
“흐음…….”
형태가 없어질 때까지 짓밟던 경태세가 문뜩 뒤를 돌아보았다.
“……진짠가?”
경태세 딴에는 혈교 늙은이를 자극하기 위해 한 말이지만, 이상하게도 스스로가 한 말이 굉장히 그럴싸했다.
***
경태세의 지시에 도시 전체로 흩어진 장금보와 삼악도 호걸들은 분명히 들었다.
“이 개 같은 짓 당장 막아!”
충만한 의지가 느껴지는 일갈이었다.
항거할 수 없는 힘이 담겨있었다.
눈앞에서 들었다면 두말 않고 지시에 따랐을 것 같다.
“신기하네.”
삼악도 무인들은 다들 비슷한 성향이다.
가장 특징적인 부분을 꼽자면 마음이 굳건하다는 것이다.
내공을 수련하는 자들은 운기조식을 하면 몸 안 구석구석까지 각성하는 것처럼 활성화되는 것을 느낀다고 한다.
몸과 정신이 맑게 가다듬어지는 감각은 황홀하기까지 하다나.
외공은 정반대다.
끝없는 고통의 연속이다.
고통에 적응했다는 말은 정체되었다는 의미다. 퇴보나 다름이 없다.
기량이 늘어난 만큼 더 가혹한 수련을 행해야만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강해질수록 고통도 커지는 것이다.
삼악도 호걸들이 괜히 흑기를 보고 눈이 뒤집힌 게 아니다.
이를 견뎌내려면 결국 정신도 단련되기 마련이다.
극기의 극을 달리면서 몸도 정신도 강해질 수밖에 없다.
관운장이 화타의 수술을 받으며 바둑을 두었다고 하는데, 그런 것쯤은 웃으며 할 수 있는 것이 삼악도 호걸들이다.
그런 삼악도 호걸들이 이리 느꼈다는 건 절대 평범하지 않다.
강자가 따를 것을 종용한다.
힘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이것만큼 피를 끓게 하는 일은 없다.
“흐흐흐!”
순수하기에 오히려 솔직한 감정이 몸 안에 들끓는 것을 느끼며 장금보는 기분 좋은 감각을 있는 그대로 표출했다.
그 감각이 한층 더 장금보를 재촉했다.
쿵! 쿵! 쿵!
장금보가 지나가는 뒤로 깊은 족적이 낙인처럼 박혔다.
족적이 깊어질수록 장금보의 속도도 빨라졌다.
빠르게 도시를 가로질러 달리는 장금보의 정면으로 기세가 죽은 연기가 흐릿하게 보였다.
“저기다.”
점점 비명 소리가 커진다.
더불어 방화를 저지른 혈교 마인이 가까워졌다.
“카카카카!”
퍼걱!
계획과 달라진 상황에 당황하던 혈교 마인이 반격했지만, 첫 공격을 그대로 몸으로 때워내 허점을 만들어낸 장금보가 그대로 솥뚜껑 같은 손을 뻗었다.
콰득!
한 손으로 머리통을 움켜쥔 채 그대로 손에 쥔 것을 뽑아버렸다.
“뭐야, 이 허접은! 에이, 입맛만 버렸네.”
혈교 마인의 머리통을 뜯어내자 한껏 달궈졌던 몸이 오히려 식어버렸다.
산해진미를 상상하며 군침을 삼켰는데 간도 안 된 차가운 주먹밥을 입에 욱여넣은 기분이다.
대신 냉정해진 머리가 주변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을 감지했다.
콰드드득!
쏟아지는 비와 강풍에 불길이 약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열기는 남아 있다.
그런 건물을 통째로 뜯어낸 장금보가 안을 들여다봤다.
“꺄악!”
“엄마!”
건물 안에서 공포에 떨던 주민들이 비명을 질렀다.
잔뜩 겁을 먹은 그들은 건물을 부수고 들어온 장금보와 눈도 마주치지 못한 채 바들바들 떨었다.
“나와.”
“아, 안 돼요. 나가면 죽어요.”
잔뜩 겁먹은 여자아이가 울먹이며 말했다.
“아빠가 움직이지 않아요.”
죽은 것인 줄 알고 눈살을 찌푸린 장금보는 이내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점혈이네.”
불이 났어도 왜 사람들이 도망쳐 나오지 않았나 했더니, 다 이유가 있었다.
“흐음…….”
동황정련공의 특성으로 장금보는 점혈을 당하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점혈을 익힐 이유가 없었기에 푸는 방법도 몰랐다.
“데려가야겠군.”
이걸 풀어주려면 연청운에게 데려가야 한다.
장금보가 점혈 당한 사내를 들쳐메자 아빠가 움직이지 않는다고 했던 아이가 물었다.
“곰 아저씨가 우릴 구해준 거예요?”
보통 어린아이는 덩치 큰 외부인을 보면 겁을 먹지만, 이 여자아이는 좀 특이했다.
대뜸 장금보를 곰 아저씨라고 부르는 것부터가 비범한 간덩이임을 증명했다.
비범한 담력을 좋아하는 장금보는 여자아이에게 웃어 보이며 내용의 일부를 정정해주었다.
“너희를 구한 건 내가 아니야. 난 그저 한 손 거들기만 한 정도다. 진짜로 너희를 구한 건 용신님이시다. 장강 용왕의 화신이지.”
“용신님이 정말 있어요?”
“사실 나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있는 것 같다.”
“우와아아아!”
여자아이는 감탄했다.
아직 혼란에서 벗어나지 못한 다른 가족들이 눈치를 살피고 있는 것을 보면 무척이나 특별하게 보일 정도다.
“보러 갈래?”
어차피 이 가족들의 가장인 남자를 해혈하려면 연청운에게 데려가야 한다.
그를 감안해 묻는 말에 여자아이가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예!”
“그럼 채비를 갖춰라. 주변 집을 돌면서 도시 중앙으로 향해라.”
발목을 잡을 목적으로 집마다 한두 명씩 점혈이 되어있는 상태라면 장금보 혼자 다 옮길 수는 없다.
장금보는 자신이 맡은 구역의 상황을 정리하며 인원을 통솔했다.
***
“후우우우우…….”
호풍환우의 힘을 쓰는 건 쉽지 않다.
세상이라는 수레바퀴를 홀로 돌리는 느낌이랄까.
당연히 감당해야 할 힘이 어마어마했다.
그래도 무리를 한 보람은 있었다.
쏟아지는 빗줄기에 시야가 가려지긴 했지만, 도시 주변에서는 더 이상 연기가 피어오르지 않았다.
털썩 주저앉고 싶은 것을 가까스로 견디는데 경태세가 다가왔다.
“사람 맞나?”
얼굴을 들이밀며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사람입니다. 아직은.”
“그런가. ‘아직’은 사람이군.”
나는 언젠가 천상에 오를 것이다. 이를 고려해 반쯤 농담으로 말한 것인데 경태세는 어딘가 해석을 달리해 받아들인 느낌이다.
뭐, 문제 될 것은 없어 보이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데, 사방으로 흩어졌던 삼악도 호걸들이 각기 도시 주민들을 이끌고 이쪽으로 몰려들었다.
그런 가운데 장금보를 따라온 귀여운 여자아이가 내 등 뒤로 돌아가더니 손을 들었다.
문질문질.
이화의 눈초리가 사나워졌다.
내 허리와 엉덩이 주변을 만지작거리던 여자아이가 실망한 얼굴이 되었다.
“오빠는 용신님이라면서 왜 꼬리가 없어요?”
뭔데, 이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