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352
351화 하늘에 닿은 의지(1)
마음이 흔들리면 정신이 탁해진다.
치밀어 오르는 감정이 중단전과 상단전을 자극했다.
“후우…….”
흔들리는 마음과 정신을 느끼고 숨을 가다듬었다.
‘진정해.’
지나친 흥분은 올바른 판단을 내림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전투 중이라면 힘을 끌어올리는 용도로라도 써먹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청명심법의 호흡을 통해 청량한 기운이 일어나 마음과 정신의 혼탁함을 씻어내며 평정을 찾아간다.
또렷해진 눈으로 이 참상을 직시했다.
그러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노렸다. 의도적으로 벌인 짓이야.’
흉수는 이 자리에서 혈교 대법을 시행하였지만, 단지 그것만이 목적은 아니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짓을 한 것이다.
필요 이상의 행동을 했다면 목적에 맞는 이유가 따르기 마련이다.
특히 저 벽에 박혀있는 중년인을 살해한 방식에서는 짙은 원한이 느껴졌다.
그 이유는 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
중년인이 꽂혀 있는 벽에는 태극무늬가 그려져 있었다.
‘무당파.’
호북 표국이라면 그 출신이 무당파 속가제자들인 경우가 많다.
백가표국 같은 경우도 있지만, 열에 일곱은 무당파 출신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무당파에 대한 원한이 느껴지는 손속을 혈교 놈이 저질렀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이름이 있었다.
“윤시후?”
혈교의 대법에 손을 댄 덕풍 윤가의 장자이자 무당파에서 도망친 놈.
그놈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라면 의문이 상당 부분 해소된다.
“경 형.”
“말해.”
“사나흘 잠 안 자고 달릴 수 있겠습니까?”
아직 시체가 썩지 않았다.
근일 내에 벌어진 일이다.
흔적이 남아 있을 테니 추적이 가능하다.
사천에서 출발한 본대와 합류가 늦어지겠지만, 이놈들을 이대로 내버려두면 안 될 것 같다.
“추적하려고?”
“예.”
“그렇다면 열흘도 문제없지!”
경태세가 호기롭게 외쳤다.
고수라도 사나흘을 잠도 자지 않고 움직이는 건 힘든 일이다.
아무리 무공이 높다 해도 생존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
사람인 이상 먹어야 하고, 자야 한다.
하지만 경태세는 호언장담으로 끝낼 생각이 없는지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다들 문제없지?”
“사나이!!”
눈에 불이 붙은 삼악도 호걸들이 사나이를 외쳤다.
삼악도에 도착한 이후 끊임없이 들어온 저 세 글자가 지금은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든든하다.
“그 전에.”
나는 벽에 고정되어 있는 시신에 다가가 박혀있는 검을 뽑았다.
“양지바른 곳에 묻어줍시다.”
시간이 오래 걸리진 않는다.
무림인의 주먹질 한 방이면 사람 하나 묻을 정도의 구덩이는 쉽게 만들 수 있다.
정성스럽게 묘비 같은 것을 세워주는 것까지는 무리이더라도 편히 쉴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주는 정도는 금방 할 수 있다.
“그렇군. 억울하게 죽었는데, 들짐승의 먹이로 내쳐진다면 서럽겠지.”
경태세가 호응했다.
종노와 삼악도 호걸들이 저마다 어깨에 시신들을 들쳐 멨다.
아직 살이 썩진 않았지만, 진물이 흐르고 있는데도 아무렇지 않게 시신을 옮겼다.
나는 그런 동료들을 돌아보며 이를 갈았다.
“이 새끼들… 다 잡아 죽입시다.”
“““으오오오!”””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소리를 질렀다.
***
무덤을 만든 뒤 곧바로 혈사를 벌인 놈들을 쫓아 움직였다.
아쉽게도 흉수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었다.
사실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기본적으로 무림인들은 몸이 가볍고 날쌔다.
일반인들과 달리 이동할 때도 족적은 물론 이동한 흔적을 거의 남기지 않는다.
그렇기에 사람을 추적하는 추종술 전문가들이 전문직으로 우대를 받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무림공적으로 취급받으며 숨어 살던 놈들이니만큼 흔적을 남기지 않고 움직이는 것에 능숙할 법도 하다.
직접적인 추적은 불가능해졌다.
하지만 놈들을 어떻게 뒤쫓아야 할지는 파악했다.
이놈들은 사람을 먹이로 삼는 놈들이다.
그렇다면 이놈들이 남긴 흔적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이놈들이 노릴 대상을 추정해 움직이면 된다.
‘혈사가 일어난 곳과 가장 가까운 마을이나 도시라면…….’
다만 이것도 난관이 있다.
내가 호북 출신이라고는 하지만 호북 전체의 지리에 통달해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 어떤 마을이 있고, 어떤 도시가 있는지 모른다.
애당초 이 부근은 초행길이기도 했다.
다행히 방법은 있었다.
사부님들이 나아갈 방향을 알려주셨다.
[거기에서 북서쪽으로 좀 더 가라.] [명부의 저승사자 놈들을 탈탈 털어서 알아낸 것이니 확실할 거다.]천상에선 지상을 직접적으로 살피진 못한다고 했다.
그러나 방법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죽은 사람에게서 얻는 정보를 취합하면 놈들의 움직임을 손바닥 보듯 파악할 수 있다.
다만, 저승의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인과가 필요하지만, 사부님들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듯 선뜻 주머니를 털어주셨다.
[선계에서도 그거 보고 빡친 양반들이 많아. 다들 거들어주고 있으니 인과 걱정은 마라.] [저승에 무사히 도착한 영혼들도 기꺼이 정보를 내주고 있단다.]‘예, 감사합니다.’
다른 때 같으면 사부님들의 인과를 축내는 것이 죄송스러웠겠지만, 이번에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이놈들을 확실하게 척살하는 것이 사부님들과 선계 신선들이 보내주시는 조력에 대한 보답이라고 여겼다.
그렇게 사부님들의 지시를 따라 달리던 중 나도 모르게 얼굴이 굳어졌다.
아마 내 뒤를 따르는 이들의 표정도 별반 다를 것 같지 않았다.
“도시…….”
“염병!”
눈앞에 보이는 곳은 작은 마을 규모가 아니다.
도시라고 불러야 할 전경이 눈앞에 드러났다.
“안 좋은데.”
경태세의 말대로 상황이 좋지 않았다.
멸천회가, 혈교가 더 이상 세간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다면 저곳에서도 혈사가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포구에 구성된 작은 마을이 아니라 도시 수준의 규모에서 혈겁이 일어난다면 희생자가 얼마나 될지 가늠이 되질 않았다.
이 앞에서 펼쳐지고 있을지도 모를 흉사를 앞에 두자 절로 두려움이 일었다.
“가죠.”
나는 스멀스멀 몸집을 키우는 두려움을 굳건한 마음으로 내리누르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도시 경계선에 다다를 즘 진한 비린내가 코끝을 스쳤다.
“어유(魚油)?”
혈사가 일어났던 마을에선 맡지 못했던 냄새다.
내부로 들어서자 포구 마을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핏자국.”
길게 붓질이라도 한 것처럼 질질 끌고 간 핏자국이 바닥에 길게 이어져 있다.
마치 목적지로 안내하는 것 같은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핏자국을 문질러본 종노가 말했다.
그 말인즉 지금 이 자국 끝에 이 혈겁을 일으킨 흉수가 있단 소리다.
“어떤 낯짝인지 봐야겠습니다.”
윤시후의 비열한 얼굴을 떠올리며 걸음을 재촉했다.
그렇게 도시 중앙에 다다랐다.
너른 공터가 펼쳐진 자리에는 흉물스러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관병들이군.”
바닥에 핏자국을 남기고 질질 끌려간 자들은 이 도시를 지키는 관병들이었다.
바닥에 그어진 핏자국은 흉물스럽게 쌓여있는 관병들의 시체와 맞닿아있었다.
그 옆에 이 혈겁을 일으킨 자가 있었다.
“끄으으으으으으!!”
사람의 목으로 짐승의 울음을 내는 자다.
하지만 그자의 모습은 내 예상과는 달랐다.
윤시후가 아니었다.
노인이다.
인기척을 낸 우리를 향해 휙 고개를 돌리는 노인의 눈은 정상이 아니었다.
“버러지들이 왔구나!”
노인이 숫돌 가는 소리처럼 걸걸하게 외쳤다.
거칠고 스산하여 사람의 소리 같지 않았다.
“이 미친 늙은이가. 약이라도 처먹은 거냐?”
“크카카카카카!”
광소를 터트리는 노인의 눈이 붉게 물들더니 핏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머릿속에 쌓여있던 핏덩이가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선을 넘었나?’
사부님들이 혈교의 대법에 대해 논할 때, 피를 흡수하여 재능을 키우는 것에도 한계가 존재할 것이라 추론하셨다.
“혈마는 위대하시다! 혈마는 위대하시다!! 혈마는 위대하시다!!!”
저것이 그 한계를 넘은 모습으로 추정되었다.
[뇌가 뭉개진 모양이구나.]달마 사부가 혀를 차셨다.
[혈교의 대법이 사람의 근간을 바꾸는 것이라지만, 사람 몸은 물처럼 자유롭게 형태를 바꾸지 못한다. 그리고 사람의 뇌는 작은 충격에도 큰 문제를 일으키지.]급격한 변화를 뇌가 감당하지 못해서 망가졌다고 추정하셨다.
달마 사부의 설명을 들으니 저 미쳐버린 모습이 이해되었다.
“너희가 증인이 되리니!”
그러자 다른 의미로 걱정이 되었다.
미친놈의 행동은 예상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노인이 손을 들었다.
그 손에서 일어난 뜨거운 양강의 기운이 불꽃을 만들어냈다.
화르르르르르!
“이 땅을 그분께 바치리라!”
노인의 주변에서 불길이 피어올랐다.
기름 냄새의 근원이 어딘가 했더니 노인 부근이었다.
“혼자가 아니야?!”
노인이 불을 붙인 것이 효시가 되었는지 도시 곳곳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불에 잘 타는 짚더미나 마른나무들도 준비해놨는지 급격하게 불이 번지기 시작했다.
시야에 닿는 모든 곳에 불길이 일었다.
화마의 세상으로 변한 도시 한가운데에서 노인이 다시 한번 광소를 터트리며 외쳤다.
“캬캬캬캬! 어디 네놈들이 몇이나 구할 수 있을지 보자꾸나! 크카카카카카카!”
도시에 사람이 남아 있다?
그러고 보니 도시 중앙에 쌓여있는 시쳇더미는 모두 관병들이었다.
그렇다면 그 외의 주민들은 아직 살아있을 가능성이 있다.
어쩌면 이 화마는 우리의 발목을 붙잡아두기 위한 책략일지도 모른다.
“움직여!”
“예!”
경태세는 기꺼이 그 함정에 발을 들이밀었다.
지시를 받은 삼악도 호걸들은 기꺼이 그 명령에 따랐다.
하지만 누구도 굳어진 얼굴을 펴지 못했다.
도시 전체를 소각시켜버릴 기세로 타오르는 화마 속에서 과연 몇이나 구할 수 있을까?
이 도시의 규모를 생각하면 수천, 어쩌면 만 단위에 다다르는 무고한 희생자들이 불에 타 죽을지도 모른다.
처음 이 도시를 발견했을 때 일었던 두려움이 현실이 되자 눈앞이 암담해졌다.
“미친 늙은이! 네놈은 이곳에서 죽는다.”
경태세 역시 같은 생각을 했는지 욕을 내뱉으며 앞으로 튀어 나갔다.
당장에라도 저 미친 노인의 대가리를 깨부술 기세다.
광기와 분노가 부딪치는 가운데 나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지옥에서 옮겨온 듯한 화마의 세계를 무정히 바라보는 하늘의 모습이 보였다.
“천리라…….”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나는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빌어먹을 하늘의 멱살을 잡는다는 생각으로 주먹을 움켜쥐었다.
몸 안에서 사부님들이 가르침이 들끓었다.
장삼풍 사부의 무는 천지와 소통하는 힘이라 했다.
달마 사부의 무는 스스로 완성되는 힘이라 했다.
천마 사부의 무는 자신의 영역에서 완전해지는 힘이라 했다.
세 힘이 내 안에서 뒤엉킨다.
그리고 확장하기 시작했다.
무한히 확장한 힘이 뒤엉켜 하나로 모였다.
그 의지를 높게 쏘아 올렸다.
“닿아라!”
태극무청지.
대라조화심결은 세상을 쥐고 흔드는 힘이라고 했다.
허나 그 힘을 세상의 흐름에 투영하는 것은 간단하지 않다.
단순하게 검을 휘두르고 기를 내던지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쿠오오오오!
장강에서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압력이 몸을 짓눌렀다.
세상 전체가 나를 배척하는 것 같다.
배 속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올라왔다.
굳게 다문 입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이딴 천리, 인정할까 보냐!”
무정한 하늘에 내 의지를 관철한다.
“닿으라고오오오오!!”
꺾이지 않는 의지로.
피를 토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쏘아낸 힘이.
“이 개 같은 짓 당장 막아!”
마침내 무언가에 닿았다.
휘이이이이이이잉!
홀연히 일어난 돌풍이 내 등을 때렸다.
맑은 물에 먹물을 퍼부은 것처럼 일어난 먹구름이 태양을 가린다.
호풍환우(呼風喚雨)!
바람을 부르고 비를 다스린다.
쏴아아아아아아!
내 의지를 담은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